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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엄마의 휴대폰

2008.03.28 02:34

?ookie 조회 수: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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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을 받았을 때였다. 부모님께 드리는 첫 월급 선물은 내복이라지만 뭔가 색다른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 산 게 휴대폰이었다. 멀리 외지로 나가는 내 일의 특성 때문이었기도 했다. 엄마는 그 선물이 꽤나 마음에 드셨나보다. 시간이 날 때 마다, 아니 시간을 내서 나에게 전화를 했고 새 모델의 폰으로 바꿔주겠다고 했을 때도 한사코 거절하셨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엄마가 덜컥 치매에 걸려버렸다. 집에는 나와 엄마밖에 없고, 그렇다고 내가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는 터라 간병인을 고용해 엄마를 돌보게 했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문제를 불렀다. 안 그래도 전화를 자주하던 엄마였지만 치매에 걸린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어디 있냐고, 이상한 여자가 자기를 가두고 밥도 안 주고 있다고, 빨리 구해달라고. 몇 번을 설명해도 허사였다. 가끔은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전화를 걸 때도 있었다. 전화를 숨기는 방법도 시도해봤지만 귀신같이 찾아내서 또 전화를 해댔다. 결국 난 일을 할 때는 휴대폰을 끄고 다녀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엄마의 증세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집 앞 슈퍼에만 나가도 전화를 걸었으며 나중에는 옆 방, 심지어 바로 앞에 내가 있는데도 이상한 남자가 앞에 있다고 빨리 오라며 나에게 전화를 했다. 이젠 내가 누구인지 조차도 잊어버린 것인가. 그런데 그 망할 휴대폰 번호는 어떻게 안 잊어버린 것인지. 순간 화가 치솟았다. 결국 난 엄마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바닥에 내던지고 밟고 차고 한참을 요란을 떨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휴대폰은 다시 켤 수나 있을지 의심될 정도로 박살나 있었고 엄마는 방구석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내가 잘못을 했다는 걸 바로 깨달았지만 내가 한 것은 내 탓만은 아니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도망치듯 방을 나가는 짓이었다.


 


그 날 이후 엄마는 갑자기 조용해지셨다. 아니 모든 기력이 다 빠졌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간병인에게 막말을 하지도 않으셨고 애타게 나를 찾지도 않으셨다. 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과 약간의 죄책감이 뒤섞여 하루하루를 지냈고, 어느 날 기척도 없이 돌아가신 엄마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도 마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난 며칠 동안 엄마의 방을 정리했다. 오래 걸릴 만큼 많은 짐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내 어깨에 떡하니 걸터앉은 죄책감이란 놈이 무언가를 찾아 해매고 있었다. 그렇게 느릿느릿 정리하던 도중 장롱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귀한 것이라도 되는 양 검은 비닐봉지에 둘둘 말려있던 것. 무엇인가 싶어 조심스레 열어보았더니 액정이 깨지고 더 이상 쓸 수는 있을까 싶은 휴대폰이 나왔다. 내가 부셔버린 그것. 휴대폰과 함께 쪽지 한 장이 나왔다. 떨리는 필체로 알아보기 힘들게 적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내 전화번호였다. 치매가 한창 진행될 시기에 그것만은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써나갔을 것이 분명했다. 내 오랜 의문 중 하나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을 잊어가는 와중에 자식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당신께 난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것인가. 뒤늦게 내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을 멈출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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