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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꿈꾸는 마녀]마녀의 탄생

2008.12.15 02:58

misfect 조회 수:562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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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가 낙희는 부모와 말다툼했다. 안과 헤어진 것을 그녀는 숨기지 않았고, 그녀 부모는 그렇게 허망하게 좋은 사윗감을 놓친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 실랑이하고 목청 높이다, 매달리며 다투기를 반복한 끝에 낙희는 제 방으로 홱 들어가 문을 안에서 잠갔다. 두 분 부모님 한숨소리가 등 뒤까지 쫓아오는 걸 매몰차게 뿌리치면서.
 코트만 벗어두고 침대 위에 그대로 쓰러지듯 누운 낙희가, 문득 주머니 속 진동을 깨닫고서 코트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친한 직장 동료의 문자다. 낙희에게 안을 소개시켜줬던 그녀는, 낙희가 안과 헤어진 소식은 또 어디서 전해들은 걸까.


 ‘안과 헤어진 거 진짜야?’


 이미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단 듯,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그녀에게 얼버무리는 건 아무 소용없겠지. 그렇다고 하자, 곧바로 답장이 날아든다.


 ‘계집애. 왜 그래 진짜. 혹시 그가 맘에 안 들어서?’


 안이 단 한 번이라도 자기 맘에 들지 않은 적 있었을까. 낙희는 고개를 젓고 문자를 보냈다.


 ‘아냐 그런 거.’
 ‘근데 왜’


 왜냐고? 낙희는 충격 받은 얼굴로 방금 온 문자를 들여다본다. 한참 동안 답장이 없자 이번엔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 문자 보내던 친구 목소리엔 답답함과 짜증이 뒤섞여 있다.


 “야, 왜 문자는 씹고 그래!”


 “미안, 좀 전에야 봤어.” 낙희는 거짓말했다.
 “무슨 일 있었어?”


 “그런 거 아냐.”


 “근데 뭐 때문인데. 속 시원히 말이나 좀 해봐라, 이 기집애야. 갑자기 헤어졌대서 얼마나 놀라고 속상했는지 알아? 네가 그러면, 소개해준 난 뭐가 되니?”


 미안, 친구야. 나도 내 도시가 달콤했으면 좋겠어. 패션에, 멋진 사랑에 열광하는 또래 직장 여성들을 사랑하고, 그들 얘기에 즐거워하고 부러워하기도 해. 분명 그런 삶도 소름끼치도록 멋지지만,


 “정말 미안해. 하지만 아직 누굴 진지하게 사귀고 싶지 않아.”


 지금 이 자유를, 아직까진 잃고 싶지 않거든.
 수화기 너머로, 친구는 뭔가 얘기하지 못해 답답하단 듯 한숨만 내쉬었다. 낙희는 진심으로 그 친구에게 미안해했다.


 “나 지금 밖이거든? 좀 있다 얘기해. 그때까지 더 생각해보고. 알았지 최낙희!”


 응, 알았어. 낙희는 건성으로 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애써 자신을 제자리로, 가족과 친구들 울타리 안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친구가 안쓰러워 보인다. 세상을 조롱하는 마녀가 다시 그 끔찍이도 불완전하고 모순 된 자리로 되돌아간다? 낙희에겐 그것이 차라리 죽기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죽은 듯 조용히 누워 낙희는 자기 방을 멍하니 바라본다. 모든 것이 조용하다. 전화도 이젠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평화로운 지금이라면, 어쩌면 쉽게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핸드백에서 비죽 튀어나온 CD를 발견한 건 그때였다. 아까 안이 준 거구나. 잠들기 전 가벼운 마음으로 들으려고, 낙희는 누운 채로 손을 쭉 뻗어 핸드백 줄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CD플레이어는 항상 침대 머리맡에 있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다.
 케이스를 열자, CD와 함께 작은 쪽지가 튀어나온다. 노래는 예전에도 한두 번 들어본 적 있는 보헤미안 랩소디다. 어째서 안에게 이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한 걸까. CD를 재생시키며 낙희는 안이 깔끔한 필체로 적은 쪽지를 읽었다.


 ‘랩소디란 방랑의 기록이다. 인간의 삶과 가장 닮아 있는 음악 장르다. 이 세상에 던져진 여행자로서 인간이, 방황과 고난 끝에 종착지에 이르는 과정을 형체 없는 말로, 음유시인의 입을 이어 타고 끝없이 불리며 탄생한 것이다.
 가수는 랩소디를 재현하면서 보헤미안, 자유로운 방랑자의 독백을 이 서사시 형태에 담았다. 이야기 속에서, 시인은 다시 자유로워졌다. 세상의 비난과, 고통스런 삶과, 무자비한 이 세계의 속박으로부터. 그래서 보헤미안 랩소디다.’


 세상에서 자유로워진 보헤미안은 어디에 도달했을까.
 하루 종일 다른 이들과 다투기만 하고, 세상을 조롱하면서 낙희는 오로지 하나, 진리케 하는 자유만을 찾았다.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유 끝에 올 진리란 과연 어떤 것일까 조심스레 기대하기만 했다.


 ‘Any way the wind blows.’ 노래가 끝나고, 동시에 마녀는 자유 끝에 도달했다. 기대했던 만큼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건 (변함없이) 바람은 분다.’ 낯익은 가구나 책, 어느 것도 새로 더해지거나 사라진 것은 없다. 그리고 낙희 자신도.
 눈으로부터 따뜻한 물기가 뺨을 따라 흘러내리며 낙희의 입가를 적셨다. 그 물기의 맛을 보며 낙희는 중얼거렸다. 아, 바로 이 짭짤한 물기로구나, 자유 끝에 오는 진리란. 세상에 혼자 내놓인 후에야 되찾은 그 짭짤한 물기를, 낙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해 맛보았다.


 이번에도 잠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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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마녀의 세계] 타이틀의 첫 글 <마녀의 탄생>을 마칩니다.


 [꿈꾸는 마녀의 세계]란, 우리와 닮은 어떤 세계에서 사는 이런 저런 사람들 얘기를 조금씩 풀어볼까 합니다. 아무쪼록 관심 부탁드리면서,


 다음 얘기 준비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