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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지움

2008.11.19 09:25

허심 조회 수:820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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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사는 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눌렀다.


  현관에 들어서니 각종 고지서들이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주방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가 악취를 뽐내고 있었고 먹다 남은 빵에는 무료급식소의 실업자들처럼 개미들이 식량을 배급받아갔다. 거실에는 빈 캔맥주가 차곡차곡 쌓여 거실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쇼파, TV이외에는 새로운 가구가 들어 올 공간이 없었다. 내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은 시계가 아닌 달과 해의 교차점 이었다. 하루를 해와 달의 공존에서 마무리 했고 또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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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되기 전에는 평범한 대학생 이었다.


  술 마시고, 여자 친구 사귀고, 시험기간에 쫓겨 공부하고, MT가고, 동아리 활동에 빠져있는 여느 대학생과 다름없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걱정을 해야 하는 대학교4학년 때 신문에서 7,80년대에나 보일법한 대형 출판사의 때 아닌 문예창작 공모전을 보았다. 재정상황이 열악했었기 때문에 1등 500만원이란 문구만 보고 고등학교 때 심심풀이로 썼던(사실 여자 친구 에게 보여주기 위해) 되도 않는 연애소설을 가지고 응모했다.


  가세가 기울고 조금이라도 더 벌어 집에 부치던 때 갑자기 날아든 문예창작 3등에 입상해 100만원을 타게 되었다는 소식은 희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한 대형출판사에서 출판제의가 들어왔을 때에는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겠다는 생각보다 생계유지에 청신호가 들어왔다는 생각이 앞섰다.


  출판이 되고 얼마 후 출판사에 매수 된 문학평론가들의 연이은 칭찬(문체가 신선하다느니, 내용 전개가 매끄럽다느니, 침체된 문학계에 무서운 신인이 등장했다느니) 보다 출판사에서 들어오는 인센티브에 더 관심이 갔다. 소설의 성공에 힘입어 한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올해의 작가라나 뭐라나... 돈만 준다면야...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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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를 끊겠단다. 방금 걸려온 전화에서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2개월 이상 체납자에게는 단전을 하겠다는 말이 수화기 너머로 건조하게 들려왔다. 갑자기 발끝에서부터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춥다. 이불을 싸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머리 대신 손이 먼저 원고지에 무언가를 휘갈겨 썼다. 틀렸다. 지워야한다. 필통 속 수많은 지우개 중에서 하나를 집어 원고지 위로 가져갔다. 손이 떨렸다. 지우면 내가 썼던 글자가 머리 위를 맴돌다 달아날까 두렵다. Delete키가 빠져 버린 키보드처럼 손은 지우지 못했다. 지워지는 게 싫다. 나는 원고지를 구겨서 언젠가 비워야만 하는 휴지통 안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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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에 출연해 열심히 홍보하고 가정사, 연애사 모두 다 쏟아냈다. 일주일 후 방송을 보니 눈에 독기 가득한 정신병자가 ‘난 정상 이예요’ 하고 외치는 것 같았다. 결과는 예상외로 대박. 내 절박함에 공격당한 사람들은 공감의 탈을 쓴 연민에 서로 동조하며 내 책을 사갔다. 서점에서 잇따라 내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올랐다. 판매가 2배 이상 증가했고 인터넷에는 내 동영상이 올라 화제가 되었다. 나는 스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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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실에 나와 TV를 켰다. TV에는 연예인 M모씨의 자전소설이 큰 화제다. 나를 게스트로 맞았던 K모씨가 지금은 9시 뉴스의 앵커로 앉아있다. 갑자기 매스꺼움이 엄습해왔다.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한 탓인가,,, 창 밖 하늘에는 반달이 떴다. 차고 기우는 반달인 것 같다. 유난히 오늘은 달이 밝아 달빛이 내 책상 위 까지 닿았다. 죽어가는 별이 마지막 짜내는 빛과 열처럼 점점 밝아왔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다 목이 말라왔다. 맥주를 가지러 부엌에 갔다가 빵으로부터 끊겨 우왕좌왕하는 개미들의 행렬이 보였다. 나는 서둘러 빵을 떼어내어 개미들이 빵에 도달할 수 있게 부스러기를 조금씩 떨어뜨려 그들의 꿈으로 인도했다. 내가 이끌어서인지 개미들의 노력인지 둘 중에 무엇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개미는 제자리를 찾았고 계속해서 내 식량을 축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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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료로 집에 빚을 다 갚고도 남는 돈에 계속되는 인센티브 덕분에 생활비 걱정은 사라졌고 오히려 도시외곽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직장에 나가기가 싫어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자신 있었다. 이런 소설은 100편이라도 써낼 수 있었고 대형출판사와 계약했기 때문에 홍보도 걱정 없었다. 매일 밤 같이 동고동락했던 같은 과 친구들과 술을 기울였다. 웃음이 끊기 질 않았지만 친구들 얼굴에 조소와 억지로 올라간 입 꼬리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을 나는 몰랐었다. 보름 후 더 이상 TV에는 나의 책 이야기도 내 인생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으며 지하철에 내 책을 읽는 사람들, 나를 알아보고 책에 싸인을 부탁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존재했지만 없었다. 참으로 존재하려고 쓰고 또 썼다. 그러나 지우개를 쓸 수 없는 나의 다듬어 지지 않은 띄어쓰기, 문법, 철자가 틀려버린 원고, 이야기가 뒤죽박죽인 원고는 계속 거부당했다. 그 길로 문구점에 달려가 다른 지우개를 샀다. 그 날 이후로 문구점에서 지우개를 매일 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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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리에 누웠다. 열린 창문에서 초여름인데 난데없는 한기가 불어왔다. 바람에 쌓아 놓은 캔맥주 더미는 쓰러지고 노크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왔다. 몸이 으슬으슬 춥고 떨려왔지만 왠지 모를 익숙한 바람의 방문에 문을 열어 반갑게 맞았다. 조용히 그와 조우하는 시간에 그림자는 길어졌다. 그림자가 자라 내 책상을 덮고, 원고지를 덮고, 연필을 덮었지만 지우개에는 닿지 못했다. 창 밖 달빛은 점점 밝아와 내 침대까지 올라왔다. 매스껍다. 나는 달빛의 방문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서둘러 커튼을 쳐 달을 막고 바람을 안았다. 곧 따뜻해지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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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부터였다. 필통에 지우개가 쌓이고 집안이 엉망이 된 것이. 수도가 끊겨 물 대신 맥주를 마시고 꼬박꼬박 지어먹던 밥도 짓지 못해 빵으로 대신하고 구겨진 원고지가 휴지통에 쌓인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반복되던 삶에 일과에 없던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야기 좀 나누자는 전화였다. 나간 술자리에는 친구들이 줄고 줄어서 3명만 남았다. 대화는 우선 나의 걱정부터 시작했다. 요새 근황이 어떻냐는 둥, 건강은 잘 챙기냐는 둥, 경기도 어려운데 좀 여유는 있냐는 둥 계속 그 위선의 혓바닥은 자꾸 겉도는 이야기만 내뱉고 있었다. 갑자기 참을 수 없이 매스꺼움이 심해졌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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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길거리에서 서있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인사하고 가볍게 악수를 청한다.


  그래 꿈이구나.


  아마 나는 친구와의 약속장소로 향하는 것 같다. 날이 어두워지고 밝아진다. 또 반복된다. 날이 지날수록 점점 시야가 흐려진다. 나와 악수하고 미소 짓던 사람들의 모습이 흐려져 나를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나를 쫓아오며 비웃는다. 나는 도망친다. 도시의 빌딩 숲 속을 헤매면서 점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많아지고 이제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 했다. 그러다 친구를 만났다. 지우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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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전화가 왔다. 오늘은 재수가 좋다. 전화를 받으니 편집장의 전화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내일까지 대충 개요라도 짜서 오라는 전화였다. 길거리에서 그 출판사가 나의 2번째 책을 홍보하는 간판을 보았다. 광고 내용은 모 연예인 2명이서 내 책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내용이었다. 마치 상여를 얹고 가는듯한 그 모습에 나의 매스꺼움은 더욱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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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사람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몸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하늘을 보았다. 초승달은 나를 비추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러자 지우개는 자신의 몸을 갈라 1명이 들어갈 남짓한 공간을 열어주었다. 나는 지체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지움 그 자체인 나는 지워지지 않아.


  속이 편안하고 따뜻하다. 매스꺼움이 사라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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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발걸음을 재촉해 문구점에서 지우개를 사고 집으로 향했다. 옆집 이웃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이웃은 자기 집으로 향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나야’ 소리와 함께 집에 들어갔다. 나도 날 반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던건데..


 


수능 끝나고 게임도 티비도 지루해서


 


4시간동안 써내려갔습니다.


 


끝부분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조금 엉성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