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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단편] 무한(無限)

2009.03.09 08:21

악마성루갈백작 조회 수:519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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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無限)


 


2009. 02. 28. ~ 2009. 03. 08.
최종 수정 : 2009. 03. 08. P.M 11:10. 


 


나는 결코 어른이 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 건 필요치 않았으니깐.


아홉 살의 어느 날. 올려다본 밤하늘. 한눈에 달에 반해버린 그때.


난 이 마음이 영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달.


차고 기울며 변하는듯하지만 절대로 변하지 않는 그 순수에 빠져버린 난.


그 몽환의 성에서 말라 죽으리라고 내 삶을, 내 죽음을 정했다.




결코, 현실이 던져주는 먹이를 취하지 않으리라!




별보다 달을 사랑한 나머지 죽어서 달맞이꽃이 되었다는 요정.


그 요정의 삶이 내게도 허락된 것인 양 그리 여겼다.


순수로 달에 욕정을 품었던 그때.




그러나 열아홉의 지금. 난 결코 요정이 될 수 없었다.


달을 사랑했던 그 마음은 진심었지만,


그 기억은 세상의 거짓된 타협과 이 타락한 산소에 중독되어 가면서,


그렇게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같이 내뱉어지고 흩어져 갔다.




난 달을 잊고 살고 있었다. 별들만이 하늘에서 고독만을 느낀 채로 떨고 있었다.


달을 사랑했던 그땐 달빛의 광기에 취해 느낄 리 없던 그것에.


그리하여 달의 차고 기움을 그저 당연함이라는 이치로 이해 채 흘려보았다.




더는 그때의 불명성을 추억하지 못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모든 것을 잊고 추억 속의 허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저 단풍과 같이 물들어 떨어진 채 썩어갔다면….




그랬다면 미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요정이 되지 못한 열아홉의 어느 날.


밤하늘이 아님에도 희백으로 눈뜬 보름달을 홀린 듯 바라보게 되었던 그때.


난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




거기에 소녀의 바람은 없다. 늙어가는 여자가 죽음을 두려워하며 주위를 흘끔 흘려보고 있었다.




그때 난 기억해 버리고 말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돌이켜 본 적 없던 아홉 살의 어느 날을.


풀린 눈, 그러나 더 없는 순수와 갈망으로 저 달을 울부짖던 내눈을.


사랑한다고 수없이 내뱉던, 이제는 그 발음조차 아득해진 꿈속의 수많은 나날.




소녀는, 아니 그 여자는 기억해냈지만,


그 몸도 마음도 태양을 우러르며 더럽혀졌기에 달을 이제는 사랑할 수 없었다.


아홉 살의 진정(眞精)은, 열아홉 그녀가 사는 이 도시의 가로등만 못한 미약한 달일 뿐.




과거의 당연했던 자신. 그 과거를 회상해 저 달을 기억해낸 그녀는.


열아홉인 까닭에 미친 것이 분명했다. 그때서야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이제 어른이니깐.




그리고 그달을 보고 결심했다.


차라리 더 이상 늙은 눈으로 달을 잊기 전에.


아홉 살의 욕정을 기억하는 지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하자.






"멈춰라."






고층 아파트의 옥상. 조금이라도 달이 가까워 보여서 기뻤다.


매우 기뻐서 고였던 물기가 방울져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 영원히 꿈꾸겠지. 그 영원 속 달을 보겠지.


더는 나이를 먹을 걱정도 할 필요가 없겠지.


영원한 열아홉. 영원한 순정. 그리고 영원한 사랑.


비록 달맞이꽃 요정은 되지 못해도.


달을 사랑한 지금의 나는 변하지 않고 영원하겠지.




영원. 달의 불멸성.


나는 무한을 손에 넣는다.


유한을 넘어. 현실을 넘어. 시간마저 넘어.


나 자신마저 넘어서……


































無限(무한) - 살아가는 이유는 없으면서도 무한하다.
























-All System Down!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개가 걸음을 멈춘 이유는 밀폐식인 내 이어폰을 뚫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기 때문이다.


항상 슬래쉬와 데스메탈을 귀에 달고 사는 내게, 보컬의 그로울링을 뒤덮는 소음이란 흔치 않았다.


분명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학생! 부모 얼굴 봐서 그러는게 아냐! 진정하고…!"




"어머, 어떡해요? 저걸…."




"어쩜 좋아. 아직 어려보이는데…!"




결코 내 눈앞.


보는 것조차 목 아픈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려고 하는 저 소녀 때문은 아니었다.




주위는 야단도 아니다. 계속해서 소녀를 설득하는 경찰관의 메가폰.


서커스 구경하듯 모인 사람들의 끊이질 않는 수군거림과 비명.


지나가다가 그 광경에 멈춰선 차와 그에게 시위하듯 경적을 울리는 뒤차들.




하지만, 이 지상의 소란스러움이야 어찌 되었든,


소녀는 맨발로 옥상 난간에 올라서서 두 팔을 벌리며 맞바람에 교복 치마를 펄럭인다.


그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무척 고요해 보였다.


오히려 웃는 듯한 착각마저 들어서 그 광경이 텔레비전 속 CF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소녀의 존재가 그곳을 이곳과는 별개의 세상으로 만들어갔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 지금도 병원중환자실에서 고통 속에 허덕이며 꺼져가는 그들.


저 멀리 중동의 모랫바람 총탄에 쓰러져 신음할 그들.


마지막 담배로 떨리는 손을 추스르며 올가미에 조여져 갈 그들.


저 소녀와 같이 어떤 이유에서든 일상을 끝내려 약을 먹고, 손목을 긋고, 높은 곳에 올라 투신하는 자살자들.




그러나 소녀는 그들과 달라 보였다.


그들은 시간이든 가난이든 전쟁이든 십자가든, 결국 타의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


지저분하고 어두운 것. 하지만, 소녀에게선 그런 냄새가 없었다.


자의에 의한, 그야말로 '완벽한' 자살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그렇게 이해해버렸다.


어딘가 희망차 보이기까지 한 그 모습을 동경하고플 정도로.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래서. 안타까웠다.




-철퍽.




완벽한 자살? 그런 것은 어디도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히 소녀의 그것은 도망이나 탈울이 아닌, 해탈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그저 가까울 뿐이기에, 그것은 미완일 수밖에 없다.




저 소녀의 자취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 가족, 친구, 친척, 연인.


그녀의 짧지만은 않은 십수 년을 부딪혀 온 것들. 학교, 학원, 동호회, 동네슈퍼.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수많은 흔적. 출생신고서, 학생증, 자격증, 영수증


누군가에게 건넸을지도 모를. 편지, 문자, 인사, 말 한마디.




그 많은 남긴 것들은 그녀가 죽었음에도 남아서 남은 것들 속을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소멸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성장을 멈춘 것이다.


그저 모습을 감춘 것이다. 그저 미래를 대화할 수 없을 뿐.




그러니 결과적으로 그녀는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보다 좁고 얇은 삶을 계속 연명해야 할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살아가는 거겠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 커져만 갔다.


여자들의 비명은 혈육파편 속에서 멈출 생각도 않는 채 저 멀리서 달려오는 구급차의 사이렌에 겨우겨우 묻혀 갔다.


나는 다시 멈췄던 걸음을 이어나갔다.


귀에 이어폰을 다시 끼우고는 음량을 최대로 올려서 소음을 소음으로 지웠다.




-Mayday! Mayday!!




이어폰의 유무와 상관없이 귓가에 맴도는 것은 갈라진 절규뿐.


그래, 저 풍경은 그저 내 귀를 채우는 하나의 데스메탈.




이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하나다.


단지 작금에 이르러서는 병원이라는 특정 장소에 과잉 해서 몰렸기에 너무나도 멀다고 착각하는 것.


그럼에도,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죽음이라는 일상.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일상 중의 하나다.




문득 나의 첫 시도 때 미수로 끝났던 오른 손목의 흉터가 아려왔다.


만약 소녀가 미수로 그치거나 천운으로 살아남았다면 알려주고 싶었는데.


가장 완벽한 자살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몸은 있어도 영혼이 없어. 내가 아픈 것도 몰라. 남이 아픈 건 알 리가 없지.


감촉을 느끼지 못해.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누군가와 손을 마주 잡아도 온기를 느낄 수 없고 상대가 웃어도 그 미소를 느끼는 건 불가능해.


비극이 더 이상 슬프지 않아. 희극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아.


극장에서도 이 몸은 아무런 감흥도 없이 거짓 손뼉을 치며 다른 관객들의 흉내를 낼 뿐 나 자신의 감동을 하지 못해.


나 자신의 기쁨도, 나 자신의 슬픔도, 나 자신의 존재도 느끼지 못하는 거야.


텅 빈 거울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지.


산채로 연옥에 던져져 피눈물을 흘리며 지독한 죽음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감정은──아무것도──느끼지 못해





나는 사람으로서는 죽어버린 거야.




모든 것은 몽상.


모든 것은 환영.


모든 것은 아지랑이.




내가 내려다보고 조소하고 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또한 달콤한 이상만을 바라는 로맨티시스트였다.


자신의 힘도, 입장도, 반성하지 않고, 고상한 이야기만을 읊어대는 이상주의자였다.


달콤하고 아름다운 농담만을 진실하다고 착각하고,


따스하고 기분 좋은 것뿐인 현실을 원하는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나는 웃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을, 세계를, 모든 것을, 이란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조롱하는 웃음이다. 너무나 우스꽝스럽다. 너무나 어리석다.


이것을 조롱하지 않고 무엇을 웃을까. 그것이 어린 아이의 몽상이 아니면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깨닫고 보니 모든 것이 변했다.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따윈 거짓된 행복을 위한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애초에 나 같은 건 정말로 살아 있을 의미가 없지만 말이야.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남에게 폐를 끼치다가,


죽어서야 비로소 주위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존재라고 할까.


죽는 것으로밖에 타인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 그거야말로 인간 이하로군. 하하하.




장자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와 같이, 목재로도 열매로도 그 어디에도 쓸모 없이 살아간다.


그러다 남은 목숨을 천명대로 마친다면.


그 삶 어디에 미련이 남아서 누군가의 아련한 추억이 될 것이며.


그 죽음 어디에 남아 기록될 일이 무엇 있겠느냐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어제의 자신을 죽이며 오늘의 나는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레한 변명이겠지. 완벽한 자살을 꿈꾸다 절망한 미수자의.


산다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자살이라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헛소리일 뿐.




















이것은 자살에 대한 이야기. 그 세 번째.


 


p.s : 원래는 두 번째 이야기가 올라왔어야 했겠지만, 사정상 세 번째 이야기를 먼저 올립니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단편을 쓴다는 건 좋던 나쁘던 간에 우울해질 것을 각오하고 써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