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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특별한 하루 (제발 읽어 주십사 하고 올립니다.)

2010.01.18 01:56

박경민 조회 수:344 추천:1

extra_vars1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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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1. 모두들 꿈속을 해매이고 있을 어두운 새벽. ‘솨-’ 억수란 이런 것이다 하고 소리치듯 쏟아지는, 장대비 내리는 새벽. 불빛이라고는 좁은 골목길을 비추는 노오란 가로등 불빛뿐. 그 아래 울렁이는 빗줄기의 꿈틀거림. 그 노오란 불빛이 조그만 방범창을 통해 조그만 방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 빛마저 가려진 방 한구석에 한 청년이 아스라이 들려오는 빗소리에 숨어 소리죽여 울고있다. 시간이 흘러 시나브로 허름한 건물들 옥상 사이로 동이 터오고, 쏟아 붓던 비도 잠잠해지고, 밤새 노오란 빛을 내뿜던 가로등도 하나 둘 꺼져갈 때. 그제야 청년은 방 한 구석에서 조용히 꿈나라를 찾아든다.


2. 어둠, 깊은 어둠, 그리고 어둠. 하염없이 어둡고 깊은 곳으로 떨어져 가고 있지만 공포라는 느낌보다는 이 모든 것이 끝나길 바라는 권태감. 순간 얇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샛노란 불빛. 눈을 번쩍 뜬 순간, 사람보다 커다란 가로등 전구알, 눈도 코도 귀도 아닌 징그럽게 미소 짓고 있는 입술과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와 있는 길고 넓은 혓바닥을 가지고 있는 전구알. 그리고 그 혀 위에 서있는 청년. 청년은 이런 관경에도 별 감흥이 없다. 그때 청년의 발 앞에 노란 포스트잇 같은 쪽지 한 장이 떨어진다. 청년은 포스트잇을 집어 들고 읽는다.


 “마지막 기.......”




3. ‘삐삐삐삣 삐삐삐삣’


 매일 아침이면 어여어여 일어나 바삐 움직이라며 울어대는 시계알람소리. 지루하기 만한 또 하루의 시작이다. “어제 무슨 꿈을 꿨더라?”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밤 꿈을 꾸지만, 기억나지도 않는.......


 “개꿈 일까나?”


 어깨를 주무르며 일어나 책상 위에 놓여있는 달력을 본다. 오늘은 5월19일. 내일은 20일. 20이라는 글자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내가 태어난 지 스물세 번째 생일, 그리고 이십삼 년 이라는 지루하고 고달프던 삶에 끝맺음을 짓기로 결심한 날.


 두 달 전 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로 엄마와 나는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고 이사에 이사를 거듭할수록 엄마는 쇠약해져만 갔고 밥 먹는 일부터 대소변을 가리는 일까지 내가 도맡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둘이서 죽지 못해 살고 있던 날. 노가다판에서 번 푼돈으로 엄마가 좋아하던 노오란 귤을 한 아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선 방에는 엄마가 목을 매고선 뒤집혀진 눈으로 죽어가는 모습. 귤봉다리를 집어던지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엄마에게 달려들어 겨우 바닥으로 끌어내려 눕혔다.


 “엄마! 엄마!”


 내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도 엄마는 눈을 뒤집은 채 콜록거릴 뿐이었다.


 “도대체.. 왜?” 엄마는 쥐어짜내듯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


 “너는... 왜사냐?”


 그 한마다기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 질문‘너는 왜사냐?’ 어머니의 장례식-3일장 동안 그 누구도 심지어 집나간 아버지조차도 어머니와 나를 위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과 그 주검을 화장하는 동안에도 그 한마지 외에는 무엇도 생각할 수 없었다. 넌 왜사냐? 넌 왜사냐? 넌 왜사냐? 난 왜살까? 난 왜살까? 죽어선 안 돼는 이유가 뭐지? 지금 당장 바로 여기서 죽어선 안 될 이야기 뭐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고 죽고자 하는 사람 살리는데 관심 있을 것 같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봤고 생전 발 한번 들인 적 없던 교회며 성당이며 절까지 찾아가 봤지만 스스로 납들 할 만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달 하고도 보름동안 얻은 결론은... 




4. 


 “내가 살아서 뭐하냐...”


 “아우~ 지겨워 죽겠어. 죽지도 못할 거면서 허구언날 말로만 죽네 사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뼈빠지게 뒤치다꺼리 하는 우리생각은 한해?”


 저 딸년이라고 하는 소리 하고는. 어렸을 때는 귀엽기만 하던 딸내미 었는데. 집안 환경이 문제 였을까?


 “에휴, 그래 다 내 잘못이다.”


 “아, 몰라몰라. 오늘 그이랑 늦게 들어 올 거니까 뭐라도 시켜먹던가 해”


 딸년은 고딴 말만 남기고는 만원짜리 한 장을 식탁위에 올려두고선 ‘쾅’ 나가 벼렸다.


 “그래, 다 내 잘못이지.......”


 식탁위에 만원짜리를 들고 손자 녀석 방으로 향한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가지와 책들. 누가 지 애미 자식 아니랄까봐. 에휴, 조심스레 서랍을 열고 돈을 넣어둔다. 그리고 옷가지며 책들을 한가지 한가지 씩 정리한다. 그래도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이왕 시작한거 깨끗한게 좋겠지”


 손자 녀석 방뿐만 아니라 거실이고 안방이고 화장실이고 쓸고 닦고 털고. 시나브로 아파오는 무릎을 두드리며 겨우 청소를 끝냈다.


 “에휴 병원이라도 가보던가 해야지 원.”


 그리곤 허기짐을 느껴 냉장고를 열어 봤지만, 햄이니 돈가스니 기름지고 소화하기 힘든 냉동식품들만 가득하다. 구석에 숨어있는 김치통을 꺼내어 밥통에 남아있는 굳은밥을 물어 말아 끼니를 때운다. 심심한 마음에 tv를 켠다. 커다란 tv화면 가득히 화려한 색상으로 치장한 사람들, 옷보다는 살가죽이 많이 보이는 차림으로 요란스럽게 흔들어 대는 여자들.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봐도 거기서 거기인 화면. 너무 빠르고 너무 바쁘고 너무 화려하다. 눈으로 조차 따라갈 수가 없다.


 “여보, 내가 너무 오래 사는걸까?”


 에휴, 할망구가 노망이라도 들었나, 혼잣말이 느는걸 보니....... tv를 끄고 밥을 마져 먹는다. ‘철컥 철컥’ 아마도..


 “할머니 문열어!”


 손자 녀석이다.


 “문열어 문열어 문열어 문열어 문열어~!”


 원 성질도 급하지. 서둘러서 문을 연다.


 “아이고 내새끼 오늘...”


 “아! 할머니 왜캐 느려 터졌어!”


 쪼르르 지 할 말만 쏘아대고 지방으로 사라진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배고프지? 할미가 맛있는 간직 해줄까?”


 갑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소리를 지르는 녀석


 “할머니! 내방 청소했어?!” “어어, 방이 조금 지저분 한거 같..”


 “내방 물건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 아 짜증나! 엄마한테 말할거야!” ‘쾅’


 “왜 뭐 없어졌...”


 “아, 몰라! 할머닌 신경꺼!”


 에휴, 아픈 무릎을 두드리며 식탁으로 와서 앉는다. 벽에 붙어 있는 달력을 본다. 오늘은 5월 19일. 내일은 20일. 20이라는 숫자에 ‘결혼 20주년’ 이라는 글자와 빨간색 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나도 빨간색 팬을 한 자루 가지고 온다. 그리고 20이라는 숫자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적는다. ‘할머니 생신’ ...아니다. 다시 찍찍 긋고 이렇게 적는다. ‘내 생일’ 그리고 한가지 결심을 한다. 예순 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나 자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기로 했다. 바로...




5. 


 영원한 안식. 그래. 고통스러운 삶을 끝마쳤을 때 주어지는 최후의, 최고의 선물. 그래, 내일이면, 내일이면...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얇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 설렘?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 이생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잡이 오지 않는다. 이불을 옆으로 치우고 방 천장을 본다. 빗물에 얼룩지고 곰팡이에 여기저기 검푸르스름하게 변해있는 지저분한 천장.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매일 보아왔던 천장조차 새롭게 보인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집 옥상으로 올라간다. 봄, 상쾌한 봄 공기 사이로 아카시아 꽃 향갸가 아스라이 느껴진다.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빛나고 있다. 건물 아래쪽을 내려 본다. 달동내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중간중간 노오란 가로등 빛이 비추고 있고 저 멀리에는 높다란 건물들과 수많은 차들이 만들어내는 야경. 나랑은...“어울리지 않아” 다시 작은 골방으로 내려간다. 자리에 누워 억지로 눈을 감는다. 검은색, 회색, 그사이 어디쯤에 있을 색들의 조각조각. 꿈틀거리고 물결치고 소용들이 친다. 소용돌이. 대변기의 물 쓸려 내려가듯 잠으로 빠져든다.


6.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오밤중에 오줌이 왜 이렇게 마려운지. 어두운 방을 나와 화장실로 향한다. 팔락팔락. 어디로 들어온 거지? 화장실 안에 나방 한 마리가 바쁘게 돌아다닌다. 노오란 화장실 전등 주위를 빙빙. 그러다... ‘탁’ 전등에 머리를 박고 정신없이 비상착륙을 시도한다. 안타깝게도 비상착륙은 실패로 돌아가고 나방은 대변기 속에 불시착 한다. 아등바등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살려주려고 손을 내밀지만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던 나방은 결국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에휴”


 물은 내린다.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는 나방. 불꺼진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푸르스름한 별빛. 아이보리색 나비무늬의 천장이 보인다. 저것도 오늘로 마지막이겠지? 다음 생에는 나비... 아니 나방이 됐으면 좋겠다. 눈을 감는다.


 ‘팔락팔락’


 ...아까 그 나방이었을까?





 ‘팔락팔락’


한 마리 검은색 나방이 창문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온다. 방을 한바퀴 돈 나방은 잠들어 있는 노인의 이마에 깊게 새겨진 주름위에 내려앉는다. 그렇게 잠시 동안 가만히 있던 나방은 이내 날아올라 밤하늘로 사라진다. 방안에는 별빛에 반짝이는 가루들이 흩날린다.




8. 


 ‘팔락팔락’


 한마리 검은색 나방이 밤하늘은 날고 있다. 하려한 시가지를 지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 노오란 가로등빛이 들고 있는 방범창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아주 조그만 방. 그 한가운데 한 청년이 곤하게 자고 있다. 나방은 방을 한 바퀴 돈 후에 청년의 이마위에 내려앉는다. 그렇게 잠시 동안 가만히 있던 나방은 이내 날아올라 밤하늘로 사라진다. 방안에는 가로등 빛에 반짝이는 가루들이 흩날린다.




9. 


톡탁 톡탁 톡탁 ‘스-윽’ “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




10. 


 ‘삐삐삐삣 삐삐삐삣’


 어김없이. 결국 오늘까지도 어여어여 일어나 바쁘게 움직이라고 울어대는 알람시계. 하지만,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툭’ 평소처럼 알람스위치를 누르는 대신 전기 콘센트를 뽑아버린다. 시계를 방 한구석으로 던져버리고, 자리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다. 이제 모두 끝이다. 아직 남아있는 잠기운에 몸을 맡긴다.




11. 


눈을 뜬다. 아니, 감고 있는 건가? 아주 조용하고, 아주 어둡다. 그러고 가만히 있다 보니 째깍거리는 초침소리. 어렴풋하게 보이는 천장. 언제부터일까? 딸년이 결혼을 하고, 손자를 낳고, 손자 놈이 학교에 가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쭈글쭈글 할머니가 될 수록 새벽잠이 없어져 이렇듯 모두가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곤 한다. 두려운 걸까? 깨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수면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죽는 것이.. 무서웠던 걸까?


 “호호호 호호호”


 무섭다? 무서워?


 “하하하하 아하하하”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잠들었는데 죽는게 무서워 꼭두새벽에 깨다니.


 “에휴에휴”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땡겨온다. 이러고 힛죽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오늘은 특별한 날 이니까!




12. 


 눈을 뜬다. 아니 감고있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보고 있지만 창밖으로 자동차 소리와 재잘 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온다. 어제는 5월 19일. 오늘은 20일. 내생일. 아주 특별한 날. 두달 전 내 곁을 떠났던 어머니의 물음에 답하는 날. ‘너는 왜...’


 ‘띵동띵동’


 상념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경박한 초인종소리. 눈을 뜬다.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얼마 만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일까?


 “계세요?”


 삐걱거리는 문을 빼꼼히 열고


 “누구세요?”


 “저.. 아랫집에 새로 이사와서..”


 문틈으로 노오란 귤이 담겨진 바구니가 보인다.


 “저 내일이면 이사 가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되요.”


 문을 닫는다. 아니 닫으려 했다.


 “아! 그럼 귤이라도 좀 드세요.”


 문틈으로 들이미는 귤바구니.


 “에.. 감사히 먹겠습니다.”


 무뚝뚝하게 말하고선 귤바구니를 받아들고 문을 닫는다. 귤이라. 방 한구석에 놔둔다. 소복하게 담겨있던 귤 한 개가 굴러 떨어져 발에 걸린다. 집어 들어 껍질을 까고 입안에 집어넣는다. 시다. 너무 시어서 눈물이 난다.




13. 


‘끼익’


 내 무릎처럼 오래되어 삐그덕 거리는 장롱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내 필부처럼 오래되어 쭈글쭈글 해진 손가방 하나를 집어 든다. 그리고 그 속에 당연하다는 듯 들어있는 운전면허증. 2년 전 혹은 그 언젠가 쯤. 늙어서 손 놓고 놀고 있으면 뭐하냐 하는 마음에 손자 녀석 학교까지라도 태워주자 해서 딸내미의 만류에도 겨우겨우 딴 운전면허증. 하지만 결코 쓸 일이 없었던, 말 그대로 장롱면허. 언제나 그렇게 그곳에 있던 면허증을 집어든다. 예쁘게 꽃단장 하고 찍은 증명사진. 에효. 나도 2년 전만 해도 꽤나 고왔구먼. 면허증을 품속에 고이 모셔두고 오늘 입을 옷을 고른다. 옷장 여기저기를 들쳐보지만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 하기사 옷 사본지가 가물가물하니. 적당하게 단정하고 깔끔한 옷 한 벌을 꺼내어 업어본다. 겨울을 본다. 움츠려든 어깨. 이런 옷이 오랜만이라서 그럴까... 거울을 향해 어색하게라도 웃어 보인다. “여보, 아직은 봐줄만 하지?” 방을 나선다. 딸아이 방으로 들어선다. 밤늦게 들어온 딸아이 내외가 깨지 않도록 조심한다. ‘탈칵’ 장롱을 열어 딸아이 옷 속에 들어있는 자동차 키를 꺼낸다. 방을 나선다. 어렴풋이 잔뜩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들이 보인다. 집을 나선다. 물은 닫는다. ‘찰칵’ 자동으로 문이 잠긴다.


14. ‘끼익’ 뒤틀린 인생처럼 삐걱거리는 서랍문을 연다. 구겨진 인생처럼 볼품없는 종이가망 하나를 집어 든다. ‘투둑’ 종이가방 밑바닥이 찢어지며 전기줄 한 뭉치가 떨어진다. 까맣고 가느다란 전기줄. 2달 전 엄마의 목을 졸랐던 전기줄. 그리고. 내 목을 졸라줄 전기줄. 다시 질문한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가?’


 떨어진 전기줄을 정리해서 다시 서랍에 넣는다. 질문한다.


 ‘내 존재 가치가 무엇인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엄마 장례식에서 입었던. 아무도 봐주지 않았던 그옷. 다시 질문한다.


 ‘죽어야 하는가?’


집을 나선다. 다시 질문한다.


 ‘죽는게 겁나냐?’


 ... 문을 닫는다.


 ‘쾅’


 하늘을 바라본다. 징그럽게도 파란 하늘. 현기증이 난다.




15.


 파아란 하늘. 모든 세상이 쨍- 하게 보이는 그런 날이다. 지금 쯤 이면 집에서는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노망난 할멈이 빨간색 스포츠카-그것도 뚜껑이 열리는! -를 타고 가출을 했으니...“호호호” 상쾌한 기분이다. 무릎에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는다. 저 멀리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가 보인다. 거의 다 왔다. 눈이 부셔 차 안에 있던 선글라스를 쓴다. 저 앞에 걷고 있는 젊은 청년이 넋을 놓고 쳐다본다.


16. 넋을 놓고 쳐다본다. 뭐하는 할머니 인지 빨간색 스포츠카를 타고 선글라스를 끼고 파마머리를 휘날리며 느릿느릿하게 운전해서 지나간다. 젊게 사는 건지, 노망이든건지. 하기사 돈이 저렇게 많으면 뭘 못하겠나... 신경 끄자. 나랑은 상관없는 일 따위. 계속 걷는다. 걷는다. 또 걷는다. 아마 여기쯤.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한곳.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곳. “엄마, 아들 왔어요...” 주머니에서 귤을 두개 꺼내서 하나를 호수 물이 찰랑이는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그리고 나머지 귤 하나는 까서 입에 집어넣는다. 너무 시어서 눈물이 난다.


‘끼이이익- 쾅’


 ! 호수 건너편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아까 그 할머니였을까?




17.


 ‘첨-벙’


 정신이 없다. 아득해 지려고 하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는다. 잠시간 떠있던 차가 조금 씩 가라앉는다.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물이 발목을 적셔온다. 살만큼 살았다.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 가라앉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춥다. 늙은 할머니 하나 죽는다고 달라질건 없다. 물이 어깨를 넘어 턱까지 차오른다.


 “여보-”


 눈을 감는다. 정신이 아득해 진다...


 ‘톡톡톡’


 ...?




18. 


걸어걸어 돌아온 집 앞. 아까 그 할머니가 신경 쓰인다. 사고였을까? 아니면... 자살? 상관없다. 죽으면 죽는 거다. 그 외는 중요하지 않다. ‘끼익’ 문을 연다. 그리고 닫는다. ‘끼익’ 이제는 내 차례다. 서랍장에서 전기줄을 꺼낸다. 의자를 밟고 올라서 줄을 올가미 모양으로 묶어 천장에 매단다. 팽팽하게 당겨본다. 마른 내 몸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올가미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는다. 이렇게 마지막 인가. 매끈하게 목을 스치는 전기줄을 촉감을 느낀다. 23년간의 삶. 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았던 인생. 무감각한, 무가치한 인생. 여기서 끝내자. 조금씩 의자를 뒤로 밀어낸다. 눈을 감는다. 감은색과 회색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 즈음의 색들의 조각들. 마치 어제봤던 무수히 빛나던 별빛들 같은... ‘덜컹-’ 의자가 뒤로 넘어지고 전기줄의 매끈함이 목을 감싸며 조여 온다.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은, 아니 죽여주는 고통. 방금 보이던 별빛들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직 보이는 건 끝없는 어둠뿐. 정신이 아득해 진다...




19. 


 톡탁 톡탁 톡탁 스윽- “뻐꾹,뻐꾹,뻐꾹,뻐꾹,뻐...”




9-2. 


 “...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




10-2. 


 “삐삐삐삑 삐삐삐삑”


 어김없이, 결국 오늘까지도 어여어여 일어나 바쁘게 움직이라고 울어대는 알람시계. 하지만,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툭’


평소처럼 알람 스위치를 누르는 대신 전기 콘센트를 뽑아버린다. 시계를 방 한 구석으로 던져버리고 자리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다. 이제 모두 끝이다. 아직 남아있는 잠기운에 몸 을... ?


“에...?”


 ??


“이...”


 ???


 “난?...”


 !!!


 “으악!!!”


 목을 감싸 쥔 채 이불을 던져버리고 벌떡 일어난다. 헉헉, 뭐야? 아찔한 정신. 억지로 기침을 하며 주변을 살핀다. 아무 일도 없다. 왜? 왜 아무 일도 없는 거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천천히 숨을 고른다. 분명 오늘.. 아니 어제인가? 상관없다. 분명 난 목을 매 죽었다. 다 끝냈었다. 그런데 왜?


 “꿈..”


 꿈이라도 꿨던 걸까?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꿈이라기에는 황당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생생한 그런 꿈. 내가 미친게 아니라면, 내 삶이 바로 이 삶이 내가 죽어서 가야할 지옥 바로 그곳이 아니었다면..


 “그래 분명 꿈...”


 ‘띵동 띵동’


 !초임종 소리. 경박하기 짝이없는, 꿈에서 들었던 초인종 소리.


 “계세요?”


 말은 할 수가 없다.


 “띵동 띵동”


 “계세요?”


 무섭다. 무서워서 대답 할 수가 없다. 되돌아 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아! 확인해야겠다. 급하게 뛰어가 현관문을 열어젖힌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가 놀란 눈을 하고 서있다. 손에는... 귤바구니를 들고. 귤... 젠장.


 “귤 따위는 필요없느니까 꺼져!”


 여전히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여자를 뒤로하고 문을 닫는다.


 ‘쾅!’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방으로 들어와 미친 사람처럼 서랍장을 뒤진다. 당연하게 들어있는 종이가방.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든다. ‘투둑’ 종이가방 밑 부분이 찢어지며 전기줄이 떨어진다. 전기줄 따라 내 무릎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게 꿈이라면 정말 지독한 악몽 이었을 것이다.


 “...겨우 겨우 죽은 사람에게 다시한번 죽어보시지 라고 놀리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소리친다. 꿈은 꿈일 뿐이다. 그게 잔인한 악몽이라도 깨어나면 모두가 끝이다. 옷을 갈아입는다. 꿈에서 입었던 그 옷. 문론 목적지도 같다.


 “아”


 생각해보니 챙길 귤이 없다. 젠장 상관없다. 현관문을 열고... 문 앞에 얌전히 놓여있는 귤바구니. 그리고 쪽지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쉬고 계시는데 방해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랫집에서 새로 이사.......’ 처음 보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꺼지라고 한 사람에게... 이렇게 바보같이 착한 사람도 있나?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귤을 만지작거리며 걷는다. ‘붕-’ 뒤에서 들리는 엔진소리. 역시나 꿈에서 본 그 할머니 그 모습 그대로다. 눈이 마주친다. 할머니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어색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다. 차가 호수 저만치로 사라져간다. 도저히 자살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걸어걸어 호수에 다다른다. 역시나 귤 한개를 물이 찰랑이는 바닥에 내려놓고 나머지 한개를 까서 먹는다.


 “크.. 나왔어요, 엄마”


 ‘끼이이익- 쾅’


 !!분명히 봤다. 빨간 스포츠가가 미끄러진, 실수가 아니고 고의적으로 방향을 틀어 바리케이트를 들이받는 모습. 뭐하는 할머니일까? 차가 점점 호수 속으로 가라앉는다. 주변에는 지나가는 차조차 보이지 않는다. 신고라도 해야할까?... 괜한 관심이다. 나도 오늘이면 정말로 죽을 거니까. 정말로...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리고 집 앞. 문을 연다.


 ‘끼익’


 문을 닫는다


 ‘끼익’


 서랍에서 전기줄을 꺼낸다. 여전히 매끄러운 느낌. 이번에는 진짜다. 더 이상의 악몽은 사절이니까. 꿈에서 밟고 올라선 그 의자를 밟고 올라선다. 다시 전기줄을 올가미 모양으로 만들어 천장에 매단다. 그 올가미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는다. 전기줄에 목을 비벼본다. 그래 이 느낌. 꿈이 아니다. 의자를 조금씩 뒤로 밀어낸다. 눈을 감는다. 검은색과 회색 그리고 그사이 어딘가 쯤의 색들의 조각조각들 별빛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덜컹’ 아- 이 고통 숨통을 조여 오는, 피가 두 눈으로 쏠려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 전신이 아득해진다. 타오르는 듯 한 어둠 속에서 얼핏 비웃는 듯 한 입모양이 보인다. “우..웃기지마!” 어둠이 회오리치며 나를 삼켜온다.


10-3.


 “삐삐삐삑 삐삐삐삑”


 한손으로 더듬더듬 시계를 잡아 눈앞으로 가지고 온다.


 “이건 사기야”


 시계로 이마를 툭툭 친다.


 “이건 사기약!”


 시계를 이마에 세게 내려친다. “나가지고 장나 치지 말라고!” 벌떡 일어나 시계를 방구석으로 집어던진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머리에선 피가 흐린다. 옥상으로 뛰어가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당신 입니까? 나가지고 장난치는게 신이라고 불리는 당신 짓 입니까?”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 좆 까라고...


 “좆 까라고해! 지금까지 어디서 뭐 하다 이제와서 죽는다니까 염병이냐고!”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퍽-’


 주위사람들이 놀라서 달려온다. 흘러내리는 피로 시야가 흐리다. 누군가 날 들쳐 업는다. “내려놔..”


 “..?”


 “내려노라고!”


 그 사람이 놀라서 날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젠장 죽는게 이렇게 어려워서야.


 “아직 멀었어...”


 후들거리는 다리로 대로변 까지 걸어간다. 멀리서 덤프트럭이 달려온다. 이를 악문다. 돌진해 오는 차를 향해 몸을 날린다.


 “끼이이익-”


 퍽! 몸이 땅으로부터 멀어진다. 정신이 내게서 멀어진다.




10-4.


 “삐삐삐삑 삐삐삐삑”


 ...


 “삐삐삐삑 삐삐삐삑”


 ... 그렇게 시계도 나도 하염없이 운다. 서럽고 서럽게 운다.


“왜..”


 왜이렇게 된걸까? 살아야될 이유가 없어서 죽겠다는데... 그래서 그냥 죽겠다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그렇게 쉽게 끝내줄 만큼 내 인생은 친절한 게 아니었나? 그냥.. “날 좀 버리라고!” 벌떡 일어나 시계를 바닥에 내리 꽂는다. 발로 밟아 부수고 주먹으로 내리쳐 부순다. 시계파편들이 여기저기로 튄다. 더 이상 튈 파편이 없자 대신 피가 튄다. 그렇게 내려치고 내려치고 내려친다. 그제야 통증이 느껴진다.


 “젠장..”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다.


 “띵동 띵동”


 역시나 어김없다. 그 아가씨


 “계세요?”


 문을 연다. 그 아가씨 귤바구니를 건낸다.


 “저.. 아랫집에 새로 이사 와서..”


 뭐라고 해야하지?


  “아, 예”


 일단 귤바구니를 받는다.


 “아! 손에서 피나요”


 손을 내려다본다. 피가 물과 섞여 손가락 사이사이로 흐르고 있다.


 “아, 좀 다쳐서..”


 급하게 손을 옷가지에 닦는다.


 “사, 상처가 심한 것 같은데.. 잠시만요!”


 그러더니 급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그러더니 다시 급하게 올라온다. 한손에는 조그마한 구급상자를 들고. 허겁지겁 어설픈 손길로 내 손에 상처를 어찌해 보려 하지만 피가 멈추질 않는다.


 “아..”


 손을 빼서 다시 옷자락에 문지른다.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매몰차게 얘기하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띵동 띵똥”


 오지랖이 넓은 여자다. 그렇게 못 듣는 척 하며 방 한구석에 앉아 있는다. 여자는 한참이나 문 앞을 왔다 갔다 하더니 이내 포기한 듯 조용해 졌다. 조용하다. 혼자다. 초인종 같은 건 다시 울리지 않는다. 이제...


 “뭐하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방안에 널브러져있는 시계파편들만 보일뿐 아부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변하는 것은... 없다.




10-5


 “삐삐삐삑 삐삐삐삑”


 잠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어 멍하게 앉아있기만 했다.


 “삐삐삐삑 삐삐삐삑”


 왜 시계가 멀쩡하지? 알람 스위치로 손을 가져간다. 손조차 멀쩡하다. 떨리는 손으로 알람 스위치를 누른다.


 “이거..”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연다. 눈부시게 파란하늘. 다시 서랍을 연다. 여전히 그대로 있는 종이가방. 천천히 문으로 다가간다. 문을 연다. 놀란 듯이 문 앞에 서있는 아가씨. 그리고 귤바구니.


 “아..저.. 아랫집에 새로 이사와서...”


 여자가 수줍게 말한다. 손을 든다. 여자가 내미는 귤바구니 대신 손목을 잡아챈다.


 “예?!”


 여자가 놀란 듯이 말한다. 신경 쓰지 않고 여자의 손목을 잡아끌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여자를 끌어안고 옷을 벗긴다.


 “끼약-!”


 ‘찰싹’


 여자의 뺨을 때린다.


 “시끄러워”


 집밖으로 도망치려는 여자를 붙잡아 바닥에 눕힌다. 점점 높아지는 비병소리... 내가 뭐하는 걸까? 여자를 내리 누르고 가슴을 주무르고 억지로 입을 맞춘다. 여자가 울부짖는다.     “살려주세요...”


 내가 뭐하는 걸까?


 “죽이지 않아요. 그냥... 그냥 귤 말고 위로가 필요해서요.”


 여자를 누르고 있던 몸을 일으킨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집밖으로 달려 나간다. 내가 뭐하는 걸까? 바닥에 눕는다. 바지를 벗는다. 내가 뭐하는 걸까? 자위한다. 내가 뭐하는 걸까? 사정한다. 옷을 추스른다. 몸을 일으켜 부엌칼 하나를 집어 든다. 집을 나선다. 집근처 슈퍼에 들어간다. “어서 오세요.” 부엌칼로 아줌마를 위협한다. 카운터에서 돈을 꺼낸다. 나간다. 아줌마가 몸으로 막는다. 거세게 밀쳐낸다. 부엌칼이 아줌마 팔뚝에 상처를 낸다. 다시 가계로 들어간다. 카운터에서 디스 한 갑과 일회용 라이터를  집어 든다. 주머니에서 삼천원을 꺼내 내려놓는다. 다시 나간다. 옆에 아줌마가 쓰러져있다. “저를 기억해주세요” 걸어간다. 담배 한가치를 물고 불을 붙인다. 들여 마신다. 내뿜는...


 “콜록”


 아..


 “내가 뭐하는 걸까?...”




10-6.


 시계가 보인다. 시계


 ‘짹깍짹깍’


 ... 초침소리 들릴 일 없는 전자시게 건만 왠지 모르게 귀에서는 계속 짹깍짹깍.


 “삐삐삐삑 삐삐삐삑”


 알람스위치를 누른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뭐하지?”


 멍하게 시계만 바라보고 앉아있다.


 ‘띵동 띵동’


 몸을 일으킨다. 문을 연다. 여자가 서있다. 귤바구니를 건낸다.


 “아.. 저.. 아랫집에 새로 이사와서..”


 여자가 수줍게 말한다. 저 여자는 언제나 수줍다. 내가 소리 지르고 따귀를 때리든, 끌고 들어와 겁탈을 하든, 저기 부엌에 있는 칼로 찔러 죽이든. 언제나 수줍은 목소리로 귤을 건낸다. 귤은 받는다. 문을 닫는다. 여자가 내려간다. 나도 집을 나선다. 집근처 슈퍼에 들어간다. “어서 오세요” 아줌마가 건성으로 얘기한다. 저 아줌마는 내가 돈을 훔치든 밀치고 발로 짓밟든 언제나 건성으로 “어서 오세요” 담배와 라이터를 산다. 가게를 나선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다. 들여 마신다. 내뿜는...


 “콜록”


 기침을 한다. 눈물이 난다.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간다. 그리고... 잔다.




11-7.


 당신은 자고 있다.


 “삐삐삐...”


 당신은 얼핏 알람소리를 듣는다. 단신은 신경쓰지 않는다.


 ‘띵동...’


 당신은 얼핏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당신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당신은 깊은 무기력감을 느낀다. 잔다.




11-8.


 당신은 자고 있다. 오늘이 여덟 번째 오늘일지, 아니면 팔천 번째 오늘일지,


 ‘띵동..’


 저 초인종 소리가 첫 번째인지 아니면 백 번째인지 당신은 모른다. 당신은 더 이상 알람소리도 초인종 소리도 듣지 못한다. 그냥 잠을 자고 있다.




11-9.


 “짹짹-!”


 아직은 어슴푸레한 방안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들어와 지적 인다. 하지만 청년은 짐에서 헤어 나올 생각이 없다. 짜증이 오를 대로 오른 작은 새는 청년의 가슴위로 올라가 앉는다.




20.


 눈을 뜬다. 아직은 방안이 어둡다. 창가에 비치는 노오란 가로등 불빛에 방안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왜 일어난 걸까?


 “짹짹”


 가슴위에 앉아서 부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고래를 갸웃 거리며 지저기는 작은새 한 마리.   “날 깨운 거니?”


 나도 미친 소리라는 걸 알기에 몸을 일으킨다. 작은새는 놀라서 날아오른다. 그리고... 오늘... 내가 걸어 놓았던 전기줄로 만든 올가미 한가운데 조심스럽게 앉는다. 그리고 거기에 붙어있는 노오란 포스트잇 한 장.


 ‘마지막 기..... 회다. 잘해봐. 파이팅!’


 천천히 손을 들어 포스트잇을 때어낸다. 작은새는 놀라서 또다시 날아오른다. 그리곤.. 창문이 아닌 벽과 바닥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구멍, 빛이 새어나오는 구멍으로 들어간다. 다시 포스트잇을 본다. 읽는다.


 “마지막 기회다. 잘해봐... 파이팅...”


 노오란 포스트잇을 찢어버린다. 그리고 곰팡이 핀 천장을 향해 양손을 치켜 올린다.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세운다. “이거나 드쇼. 파이팅!” 그리고 빛이 새어 나오는 구멍으로 다가간다. 무릎을 꿇는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는다. 주먹으로 내리치고 발로 걷어찬다. 손톱이 들리고 주먹은 깨져서 피가 흐리지만 아프지 않다. 그렇게 오랫동안 구멍을 팠다. 겨우 기어서 지나갈 크기가 되었다. 숨 한번 크게 들이 마신다. 내쉰다. 구멍으로 들어간다.   ‘풍덩~’




18-1.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물이 발목을 적셔온다. 살만큼 살았다.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 가라앉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춥다. 늙은 할머니 하나 죽는다고 달라질건 없다. 물이 어깨를 넘어 턱까지 차오른다.


 “여보-”


 눈을 감는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톡톡톡”


 ... ?


 “톡톡톡톡톡톡톡톡톡톡톡톡톡!!!”


 다시 눈을 뜬다. 한 청년이 창문이 무서져라 두드리고 있다. 어디서 봤던 것 같은 청년. 어쩌면 저렇게 피곤해 보일까? 여기서 나가면 푹-곤 곰국으로 떡국 한그릇 배부르게 먹여야 겠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