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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Dauern Song

2009.09.06 12:06

까마귀 조회 수:380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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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가 아직 꼬마 아가씨라는 말을 들을 때였다. 고아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번갈아가며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도로 뺏고 있었다. 줬다 뺏기라니, 아이들을 칭얼대게 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미리 들은 말이 있어서 그런지 떼쓰는 아이는 몇 되지 않았다.


  그 광경을 먼발치에서 보는 남자가 있었다. 몸이 불편한 듯 휠체어에 앉은 나이 먹은 아저씨였는데 눈이 무척 매서웠다. 선생님은 이사장이라고 알려주었다. 물건을 주었다 되찾는 선생님은 그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초조해보였다.


  몇몇 애는 선생님의 그 꼴을 보고 우스워하다 꿀밤을 맞았다. 착한 아이는 그러면 안 되지요. 나쁜 선생님이 말했다. 멍청하고 철부지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입술에 손가락을 얹은 여자 아이는 선생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거 같았다.


  선생은 멀대 같이 키 큰 남자 애에게 그걸 잡게 했다. 여자 아이의 눈에서 남자 애는 어른이 되었다. 한 손에는 축구공을 들고 있는 남자 애는 선생을 보며 말했다. ‘뭐에요 이게? 한번 차볼까요? 저는 맞은편 골대까지 슛을 할 수 있어요. 대단하죠?’ 선생은 바로 뺏었다. 이번엔 다른 여자애가 들었다. 여자애는 주방장 모자를 쓴 요리사가 되었다. 여자 애는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흐응~ 이걸로는 아무 것도 구울 수 없어요. 그보다 후라이팬 없나요?’ 물건이 다시 선생의 폼에 돌아왔다.


  고아원에서 책벌레로 알려진 안경 쓴 남자애가 ‘바이올린’이라는 말을 해도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활을 쥐어주면 앞의 아이 등을 쿡쿡 찔렀고 거꾸로 쥔 바이올린은 둔기가 되어 남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그런 탓에 소녀도 그다지 기대 받지 못했었다. 바이올린을 쥐어 주었을 때 역시나 다른 꼬마들처럼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했고 선생님은 10초 이상 가지고 놀게 하지 않고 도로 뺏을 기세였다.


  사실 이제와 생각하면 우연이었다. 선생님이 활이라 부른 막대기가 꼬마의 작은 손가락에서 오락가락하다 바이올린의 현을 스친 것은. 소녀가 처음으로 일으킨 4개의 현과 활의 마찰이 끼익- 하는 소리를 내자 어른들과 두 여자 아이를 놀라게 했다.


  다른 아이들은 처음엔 시큰둥했다. 애들의 생각에서 바이올린은 소리 나는 물건에서 악기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음만 들으면 차라리 유리잔을 포크로 치는 것이 더 예쁜 음을 냈으니까.


  선생님은 긴장한 얼굴로 소녀의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오른손이 활의 손잡이를 쥐고 왼손은 바이올린의 목을 잡았다. 아랫부분은 어깨와 쇄골 위에 두었다. 선생님도 바이올린을 잘 몰랐기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봤다면 이마를 부여잡을 꼴이었지만 적어도 일반인이 보기엔 그럴 듯한 자세가 나왔다.


  꼬마들도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바이올린을 쥔 여자 아이는 주위가 그렇게 되자 얼굴을 붉혔다. 선생님은 찬찬히 등을 쳐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윽고 활이 좌우로 왕복 운동했다.


  이 기묘한 기분은 뭘까 소녀는 생각했다. 아이들의 웅성거림. 두 손을 마주잡고 기대에 찬 눈을 보내는 선생님. 손은 멋대로 움직이는 듯 했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빈말로도 연주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리라도 낸 아이는 여기서 소녀가 유일했다. 얼어붙은 채 활을 움직이던 여자 아이가 각도를 달리하고 목 부분의 현을 손가락으로 누르자 음이 달라졌다.


  그 음은 듣기에 따라 리듬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다. 선생과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른 여자 아이 한명만 빼고.


  끽. 끽. 끼익- 끼이-익. 끽.


  여자 아이는 소녀가 될 대로 되라 하면서 바이올린을 다루는 게 거슬렸다. 아이들의 반응들도 신경 쓰였다.


  “와 대단해!”


  “언제 배운 거야? 설마 지금 처음이야?”


  “천잰가 봐!”


  아무리 인간에게 자신이 못하는 것을 남이 하면 일단 칭송하고 보자는 습성이 있다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여자 아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뿌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휠체어 탄 남자가 그 작은 연주회를 찾아왔다. 소녀는 악기를 내리고 그를 보았다. 남자는 소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꽤 잘하는구나. 바이올린이 좋니?”


  “바이올린······.”


  소녀는 솔직히 네, 아주 좋아요. 라고 말하려 했다. 여자 아이가 끼어든 건 바로 그때였다. 여자 아이는 더 참지 못하고 소녀에게 다가와 바이올렛을 잡았다. 소녀는 흠칫하며 반사적으로 악기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여자 아이는 거세게 쥐며 외쳤다.


  “내가!”


  갑작스런 그 사태에 놀란 선생들이 여자 아이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아이는 절대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다. 팔을 쥐어뜯고 머리를 한뭉큼 잡아당겼다. 아이는 울면서도 마저 외쳤다.


  “내가,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어!”


  소녀는 그 후의 일은 잘 기억하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소녀와 가장 친했던 여자 아이가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가 소녀에게 말했다.


  “콩쿠르에 나가게 해주마. 너라면 할 수 있을게다.”


  며칠 뒤 이사장이 보낸 고급 차가 고아원에 도착했다. 명령은 처음과 달랐다. 두 여자 아이를 태운 차는 곧장 출발했다. 운전사는 ‘스쿨’로 가는 것이라 말해주었다.


  한 꼬마 아가씨는 좌석 뒤의 창문으로 멀어져가는 고아원을 보았다. 다른 아가씨는 풀죽은 얼굴로 옆에 앉아 있었다.


  에린과 리네는 스쿨에 입학했다.



 


     *     *     *


 


 


  백조와 까마귀는 닮은꼴이 될 수 없다.


  리네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들이 고아원 멤버라고 업신여겼던 건 초기의 아주 잠깐 뿐이었다. 정확히는 에린만 잠깐이었다. 스쿨의 음악 영재들은 빠르게 학습하고 적응해가는 에린과 항상 뒤떨어지는 리네를 솎아내었다.


  만약 에린이 혼자 스쿨에 왔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고아원에서 온 아이가 암만 재능에 두각을 보여도 돌아오는 건 시기와 질투뿐이다. 얼간이들은 음악을 신분으로 하냐고 따지겠지만 혼자 독방에서 악기 들고 낑낑 댈 거 아니면 단체 생활인 이상에서야 출신은 아주 중요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네는 그들이 취사선택을 내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에린은 곧 세계 각지에서 온 영재들과 나란히 걷게 되었고 리네는 홀로 남았다.


  비통하게도 에린은 천재였다.


  15살 쯤 먹으면 흔히들 자기가 천재라 생각한다는 병에 걸린 게 아니다. 에린은 백년에 한번 나온다는 어귀가 맞아 떨어지는 자질의 소유자였다. 입학 다섯 번째 날, 그녀의 바이올린 연주는 교수들의 후두부를 강타해 혼을 쫓아내고 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게 했다.


  에린은 늘 오선지가 부족했다. 망상과 구상을 구별 못하는 재능 없는 작가들이 나는 영화 같은 시나리오를 상상할 능력이 있다고 자위하는 것과 달리 진퉁인 그녀는 실천에 옮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엔 항상 새로운 멜로디가 떠올랐고 그 화음들을 콩나물 대가리로 바꾸어 오선지를 난자하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날도 에린이 연주를 끝내자 마땅히 그래야한다는 것처럼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모르는 이가 보면 이 강당이 연주회인지 수업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에린은 활을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현을 그으며 아래로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화가 날 정도로 예쁜 끝 동작이었다. 바이올린에서 턱을 떼자 새하얀 머리칼이 넘실댔다.


색소가 빠진 늙은이들의 머리와는 다른 윤기 나는 백발은 그녀의 미모와 너무나 어울렸다. 무대 위는 처음부터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좋겠어 백조는.”


  리네는 고아원 시절 서로에게 지어준 별명을 떠올렸다. 무대 뒤 커튼에서 조그맣게 중얼거렸기에 그 질투 섞인 말은 듣는 이는 없었다.


  짜기로 유명한 악명 높은 교수들도 이미지 쇄신을 노리는지 칭찬만 쏟아냈다.(자기네 스쿨에서 이런 천재가 나오다니, 하는 자화자찬으로 화제가 발전되기도 했다.) 어느 노교수는 이미 상실한 근엄함을 뒤늦게 생각해냈는지 헛기침을 했다.


  “과연 에린 데네브 양. 역시나 훌륭한 연주였소. 하지만······.”


  노교수는 혹시 있지 모를 꼬투리를 잡기 위해 방금 연주를 되새겼다. 그러곤 자신이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음을 자각했다. 그러나 이미 꺼낸 말은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교수와 학생들의 이목을 받고 있음을 깨달은 노교수의 이마는 손수건이 절실해보였다. 결국 그는 에린의 발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빽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슬리퍼라도 신고 무대에 오르도록 하시오!”


  에린은 맨발은 물론 하얀 다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고 그런 쓸데없는 지적을 한 교수도 지금까진 없었다. 결국 노교수는 옆자리의 교수들과 관중석의 따가운 눈총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음으로서 막았다.


  백조 소녀는 바이올린과 활을 쥔 손을 엉덩이 뒤로 하고 허리를 숙이며 수줍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 미소를 본 교수 몇몇이 얼굴을 붉혔다. 제자가 스승에게 홍조를 띄게 하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가. 꺄~ 하는 함성이 관중석에서 쏟아졌다. 셋이 조를 짜고 춤추며 러브리러브리 에린 어쩌구 하며 노래 부르는 학생들도 있었다. 교수들은 여학생만 입학 가능한 스쿨이란 사실을 다행으로 여겼다. 사내새끼들이 기어왔으면 하라는 음악은 안하고 깃발을 흔들면서 아예 팬클럽을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왜일까. 왜 에린에게 찬사와 연모만 쏟아지는 걸까. 자조 섞인 생각이었다. 리네는 그 이유를 안다. 당연히 인간에게는 그 반대에 해당하는 감정도 퍼부을 능력이 있다. 질투와 시기가 에린에게 오지 않는 이유는 다른 쪽으로 보낼 인물이 있으니까.


  “리네 시클라멘.”


  리네는 정말 궁금했다. 어떤 개 같은 년이 순서를 이렇게 짰는지. 아마 리네와 에린이 동시에 입학했기 때문에 생각 없는 교수가 그대로 정한 거겠지. 에린 다음 리네가 나온다. 스쿨의 코미디 코드 중 하나다. 천재가 한껏 분위기를 올려놓으면, 백조의 하얀 깃털이 떨어진 자리에······.


  까마귀가 나온다.


  무대공포증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하물며 주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악화시키는데 일조하는데 나을 리가 없다. 그래서 리네는 음악을 공부하지만 음악가를 존경하지 않는다. 대신 연극배우를 존경한다. 그들은 어떻게······.


  이 수백의 눈동자 앞에서, 가시밭길 같은 바닥을 태연히 걸을 수 있는 걸까.


  리네와 에린은 정반대다. 자질도 성격도 심지어 머리 색깔도. 바이올린을 끌어안고 걸어 나오는 소녀를 보며 모든 이가 침묵했다. 리네는 얼굴색 하나 변함없는 무표정이었지만 평정을 가정하고 있음을 모두들 안다. 얼어붙었다는 표현이 맞다. 앞자리에 앉고 시력이 조금 좋은 이라면 이미 소녀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대 중앙에 나온 소녀는 정면을 보고 섰다. 키득거림을 참으려고 애쓰는 몇몇이 보였다. 지난번부터 줄곧 신경 쓰이는 얼굴들이다. 리네의 까만 머리칼이 예쁘다는 평도 있었다. 사실은 제법 많았다. 입학 이튿날 이후로 사라져서 지금은 한명의 가치관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일주일에 한번 있는 이 심사가 리네는 너무 싫었다.


  펜을 탁탁 튀기고 있던 여교수가 대뜸 입을 열었다. 뿔테 안경에 짜증난 눈이다.


  “뭐하나요? 안 킬 건가요?”


  그렇지 않으려고 했지만 리네는 흠칫하고 말았다. 원래 행동이라는 게 안 그러려고 하면 반작용이 더 심한 법이라 모두들 리네가 떠는걸 보았다. 태연하려 애쓰며 바이올린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정면이 신경 쓰였다. 코미디를 보며 웃을 타이밍을 찾는 관객의 눈이 보였다. 리네는 시점을 달리 하는 요령도 부리지 못했다. 연습은 충분히 했다. 그저 그런 기대에 최대한 부응하지 않기 위해 활을 잡고······.


  “잠깐.”


  여교수가 손을 들었다. 리네는 뭔가요 하는 눈으로 쳐다봄으로써 당당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실제로는 그저 겁먹은 소녀로 보였지만. 여교수는 어처구니없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광경을 보온 학생들은 대폭소를 준비했다.


  “누가 연주를 하라고 했나요? 많은 건 안 바래요. 일단 비브라토(Vibrato)부터 해보세요.”


  강당은 개그콘서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수용했다. 여기저기서 귓전을 강타하는 웃음소리가 퍼부어졌다. 리네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비브라토는 바이올린 연습의 한 방법으로 소리를 떨게 하는 기교를 말한다. 덧붙이자면 이미 수업이 끝난 연습법이며 스쿨에서 비브라토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1명이라 하지 않은 이유는 리네 역시 할 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의 평가를 통과 받았냐고 묻는다면 No겠지만 그건 애초에 교수들이 리네를 빼고 바로 다음 수업으로 넘어가버린 탓이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리네는 일부로 에린의 말투를 따라해 말했다. 조금이라도 집중 받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역효과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몇몇 교수마저 웃겨버리고 말았다. 리네는 또 다시 자조했다 개그맨의 재능은 이렇게 넘치는데 왜 연기자의 필수 요소는 없는 걸까.


  활이 움직였다. 무난한 비브라토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교수들은 모두 시큰둥했다. 그럴 수밖에. 애초에 리네는 장난감이다. 혹시나 있을 연민과 칭찬 격려는 이미 앞 번에 나온 백조가 모두 쓸어 담아갔다. 이제 재고가 남아넘치는 비평으로 변장한 비난과 조언이란 이름으로 전달되는 폭력은 모두 리네의 몫이다.


  한 곡 연주를 모두 들어주었던 에린과 달리 리네는 비브라토마저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여교수가 펜을 리네의 이마에 집어 던져 강제로 멈추게 해서다. 리네는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었다. 저 무자비함에 또래 소녀처럼 울음을 터뜨리지 않다니. 나, 상 받아야하지 않을까? 고상한 교양인들이 시장잡배보다 못한 저속한 말을 폭풍처럼 몰아쳤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리네는 스쿨에 입학하고 여태 비브라토마저 제대로 못하는 쓰레기가 일곱 번 정도 되었고 세 번 정도 이해할 수 없는 이사장의 돌멩이라 평가됐다.(보석인 에린과 함께 돌인 리네도 함께 주워왔다는 비아냥이다.) 마침내 영재스쿨이란 간판을 위협하는 최저 최악의 낙제 소녀가 된 리네에게 여교수는 손가락질했다.


  “뭐해욧! 어서 나가요! 꼴 보기도 싫으니까!”


  리네는 처음으로 저 뿔테 안경년이 좋아졌다. 내가 똑바로 들은 거 맞아? 나가라고? 여기에 더 있지 않아도 된다고? 당신한테 키스하고 싶어 물론 기겁하며 피하겠지? 그늘진 얼굴로 리네는 돌아섰다. 그때 노교수가 리네를 잡았다.


  “잠깐 리네양.”


  완전히 돌아서진 않고 몸을 비틀어 고개만 그쪽으로 돌린 리네에게 노교수가 말했다.


  “거 다음부터는 머리라도 좀 감고 다니게 꼴이 그게 뭔가.”


  에린에게 태클을 검으로써 수업시간이 좀 고달파졌을지 몰랐던 노교수는 리네라는 기적의 도구를 통해 근엄한 교수의 자리를 되찾았다. 미친 듯이 키득키득 깔깔 호호호 대는 폭소를 보너스로 받아서 말이다.


  리네는 턱을 살짝 들고 눈을 내리까며 웃었다.


  “네.”


  지친다.


  커튼 너머로 돌아왔을 때 안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리네는 울고 있었다.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뺨을 자극하는 물기를 내버려두었다. 가끔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스스로에게 놀라곤 한다. 자살충동은 이미 수백 번이나 겪지 않았나?


  강당을 떠나 복도로 들어서려 할 때 하얀 두 팔이 다가왔다. 리네는 내버려두었다. 울고 있는 자신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에린은 리네를 꽉 껴안았다. 턱은 리네의 어깨에 대고 뺨으로 목을 간지럽혔다.


  “불쌍한 리네.”


  리네가 당장에 에린에 뺨을 날리지 않은 것은 이 따스함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어서다. 마지막 자존심으로 마주 껴안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몇 번의 호흡이 목가를 간질이고 소프라노 가수 같은 에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네. 스쿨이란 새집에는 별에 별 새들이 다 모여 있지만 모두 노래 할 줄은 안단다. 하지만 너는······.”


  에린은 목에서 얼굴을 떼고 손등으로 리네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너는 그저 울기만 하잖니. 울 수밖에 없잖니. 너는 안될꺼야. 기다리렴. 곧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줄게.”


  입술과 입술이 포개졌다. 리네는 놀랄 기력도 없었다. 그저 참을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이란 풍랑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어이, 에린!”


  복도 저편에 패거리 몇 명이 걸어왔다. 에린과 같이 다니는 애들이다. 에린은 마지막으로 리네에게 싱긋 웃어준 뒤 소녀들에게로 돌아갔다. 에린을 부른 키가 큰 소녀는 저희들끼리 무어라 쑥덕거리더니 리네를 보며 명백한 비웃음을 날렸다.


  리네는 돌아 버릴 것 같았다.


 


 


     *     *     *


 


 


  선생님들이 흔히 천재에 대해 해주는 격언이 있다. 천재는 결코 노력하는 이를 이길 수 없다고.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지면 그 말의 진실성에 의심을 갖지만 그 선에서 끝난다. 대부분의 이는 천재를 실제로 볼일이 없어서다.


  그리고 스쿨의 학생들은 그 답을 안다. 바로 옆에 천재를 두고 있으니까. 만약 소녀들은 그 헛소리를 내뱉은 선생의 앞에 돌아간다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럼 천재도 노력하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어떡해요?’ 대답은 듣지 않아도 모두 안다. 스쿨엔 2등이 없다. 에린과 에린을 넘어서지 못하고 밀려난 머저리들로 나뉠 뿐이다.


  스쿨이 무대라면 교수는 관객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역할을 찾으러 간다. 자존심과 자부심을 둘 다 갖고 있는 이는 주인공이 되려 하지만 이미 그 자리는 에린의 독차지. 결국 주연에 만족해야하고 그보다 더 볼품없는 이는 소도구가 된다. 에린을 비춰주는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자신을 부각시키려는 얼간이들도 있다. 특징이라면 절대 혼자 다니지 않고 에린의 곁에 붙어 다닌다는 점.


  모든 예술이 그러듯이 개인의 예술성은 부단한 노력을 먹어치우고 자라난다. 하지만 에린은 그 성장속도가 너무 달랐다. 아무리 따라가려해도 멀어지기만 했다. 실력 차가 너무 나서 경쟁이란 말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였다. 그래서 스쿨의 영재들은 일찌감치 쫓기를 포기했다.


  이제 스쿨에서 에린과 경쟁하려 하는 어리석은 소녀는 한명 밖에 없다.


  시침은 새벽 2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연습실 구석에서 리네는 머리를 부여잡고 쭈그려 앉아 있다. 초췌한 얼굴로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이길거야, 이길거야 이길거야. 한번이라도 좋아, 딱 한번이라도 이겨볼꺼야.”


  떨리는 손으로 바이올린과 활을 잡았다. 아무도 없는 연습실이지만 리네의 머릿속에는 수십 명 치에 달하는 빈정거림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괜스레 뒤통수가 따갑다. 뒤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결국 리네는 활을 떨어트렸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안되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그년을 꼭 이겨야하는데······.


  너무 무서웠다. 너무 밝다. 너무 많은 이가 노려 보는거 같다. 너무 숨쉬기가 불편하다. 너무너무······.


  활을 줍고 벽을 짚으며 일어선다. 그때 실수로 연습실의 불을 끄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시 키려 했지만 버튼이 어디 있는지 손이 기억하지 못했다. 난 왜 이리 멍청하고 바보 같을까 자조하던 리네는 묘하게 맘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어둡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날 보지 못한다.


  바이올린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손을 떠난 활이 고삐 풀린 말이 되었다. 리네는 굳이 멈추려 하지 않았다.


 


 


     *     *     *


 


 


  얼마 후 소문이 돌았다. 밤이 되면 스쿨 곳곳에서 연주소리가 들려온다고. 불 꺼진 연습실에서, 캄캄한 강당에서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그런데 그 연주소리가 놀랄 만큼 감미롭다고. 마땅히 처리해야할 일이었기에 교수들은 머리를 대어 고민 했지만 몇 가지 문제점에 봉착했다. 스쿨에 수위가 없다는 점. 그리고 교수들 또한 초현실적인 존재를 믿는다는 점.


  결국 소문은 여러 가지 내용이 더 추가되며 요약하자면 이렇게 되었다. ‘밤이 되면 콩쿠르에 뽑히지 못함을 비관하고 스쿨에서 자살한 소녀가 연주를 한다. 그 귀신은 너무나 아름다운 연주로 소녀들을 꾀어내는데 그 까만 소녀와 눈을 마주치면 기필코 자살해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학생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사실 그대로 믿고 소녀답게 겁에 떠는 이들과 용감한 척 그 존재를 부정하지만 실제로 증명할 용기가 없는 이들로. 리네는 둘 중 어느 한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리네는 소녀들이 저희들끼리 뭐라 떠드는 것에 처음으로 관심을 두었다. 그중에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연주 솜씨’라는 말에만 반응을 보였다.


  기뻤다. 리네가 근처에 있는걸 보고 진저리 치며 도망치는 애들을 보면서도 즐거웠다.


  리네는 손바닥을 내려 봤다. 물집이 잡히고 살이 까진 손가락이 보였다. 따돌림 받기 시작한 이 후로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희미한 자신감이 생기는 듯도 했다.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아마 예술인이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바로 이 순간 아닐까? 자살한 귀신이 된 주제에 리네는 마냥 기뻤다.


  리네의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는 소녀가 있었다. 에린은 한 손으로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녀는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며칠 간격을 두었지만 리네는 이제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매일 밤 숙소를 나갔고 매번 장소를 바꿔 바이올린을 켰다. 아무도 리네의 행처를 관심에 두지 않았고 그 덕에 어쩌면 있을지 모를 정체가 들키는 일도 없었다. 그건 조금 애석했다. 리네는 그 아름다운 귀신의 연주가 자신들이 업신여기던 소녀의 것임을 알게 된 그들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웃음이 삐져나왔다.


  결국 자신감이 문제였다. 리네는 그렇게 자신에 대해 진단했다. 무대에 오르기만 해도 떨렸고 보는 이가 한명만 있어도 음이 틀어지고 연주를 망쳤다. 그렇지 않는 나는? 지금 이렇게 날아오르고 있다!


  맹렬히 날뛰는 폭풍 같은 연주도 다소곳이 속삭이는 조용한 연주도 모두 할 수 있었다. 어눌함이란 가면을 벗은 리네 시클라멘은 이렇게 에린 데네브마저 뛰어넘었다!


  그렇게 믿었다.


  강당에 흐르던 멜로디에 또 다른 멜로디가 뒤섞였다. 합주를 원하는 음은 아니었다. 명백한 독주였고 도전이었다. 삐걱- 하고 강당 맨 뒤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서는 게 보였다. 리네는 바보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다. ‘괜찮겠어? 나랑 눈이 마주치면 넌 죽는다고.’


  리네의 연주도 끊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주춤거리지도 않았다.


  그 정체불명의 연주자는 관중석 사이의 길로 무대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연주가 템포가 조금 빨라졌다. 리네는 깜짝 놀라 연주를 멈췄다. 그는 방금 리네가 했던 연주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더 정교하고 더 화려하게.


  이번엔 저쪽의 연주가 멈췄다. 딱 리네가 그만두었던 부분까지였다. 리네는 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감에 다시 힘을 얻었다. 활이 손을 내밀었다. 현은 기꺼이 손을 마주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잠시 후 리네의 연주가 끝났다. 이제 그는 무대에 제법 가까워져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도 리네가 살짝 보일 것이다. 리네는 악기와 활을 공손히 잡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자 해보세요.


  네 기꺼이.


  실루엣이 악기를 들었다. 활의 침략에 4개의 현은 상의했다. 이 거친 친구에게 우리에 의견을 조율해 전달해줘야겠지? 물론이죠. 어서 혼내주자구. 잠깐, 이제 시작해요! 리네는 강당에 태풍이 내려왔나 의심했다.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쳤다.


  소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저 조그마한 바이올린에서 어떻게 이런 우렁찬 소리가 나는 걸까? 기습적으로 강당에 오페라단이 쳐들어왔다고 믿고 싶었다. 음과 음이 동시에 출발해서 맞부딪치거나 섞이며 조화를 이루고 선율을 만들어갔다. 풍부한 멜로디는 감성적으로 리네의 정신에 충돌했다. 결코 호의 있지는 않았다. 그 연주에 정면으로 부딪친 리네는 누군가 멱살을 잡고 뒤흔드는 기분을 문자 그대로 실감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실루엣은 그러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홀 어딘가에서 나오는 희미한 조명으로 둘은 서로를 알아 볼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에린 데네브가 말했다.


  “당신을 봤으니 난 이제 죽게 되나요?”


  싱긋 웃었다.


  스쿨의 귀신은 리네 시클라멘으로 돌아가 있었다.


  리네는 자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저 그녀에게서 떨어지려했다. 에린이 리네의 팔을 낚아채 잡았다. 도망칠 수 없었다.


  “뭘 원해?”


  리네가 표독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여기저기 균열이 난 쇳소리였다.


  “돌아가렴. 이제 알 때도 됐잖아.”


  팔을 잡아 당겼다. 리네는 반항하지 않았고 에린은 리네의 머리를 가슴에 두고 안을 수 있었다. 흐느낌이 들려왔다. 에린은 눈을 감고 달래듯이 말했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옛날로 돌아가자. 계속 친구로 남자. 널 더 이상 아프게 하기 싫어.”


  직접적인 말은 한마디도 없었지만 무슨 뜻인 진 알 수 있었다.


  리네는 에린의 속에서 바둥대다가 그녀를 밀쳐냈다. 리네의 맥이 풀린 얼굴을 보고 백조는 까마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활을 놓아 떨어트렸다. 목을 잡고 거꾸로 쥔 바이올린이 위로 올라갔다. 에린은 옛날 그 광경을 다시 보고 있었다.


  꼬마 아가씨의 어설픈 바이올린 연주에 바보 같은 어른들은 호응해주었다. 그때 여자 아이가 달려들었다.


  ‘내가,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어!’


  에린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쾅, 하는 소리가 강당에 메아리쳤다. 나뭇조각이 튀기고 현이 끊어졌다. 부서진 바이올린의 일부가 튀어 오르고 땅을 굴러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소녀의 두 손엔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쓰러지듯 무너지는 리네를 부축하며 에린은 같이 무릎을 꿇었다.


  등을 찬찬히 치며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리네도 과거를 보고 있었다. 선생님 대신 에린이 달래주고 있다. 여기서 그 남자를 따라가는 게 아니었다. 그냥 고아원에 남아 있을걸. 철부지 소녀로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소녀는 친구로 삼고. 이따금 남에게 자랑도 하며······.


  에린은 리네를 엉엉 울게 내버려두고 떠났다. 내일은 대망의 콩쿠르 심사가 있다. 자신이 스쿨을 대표로 나갈게 분명했지만 수면 부족으로 평소답지 않은 연주를 틀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지금 리네는 혼자 두는 게 가장 좋을테니.


  리네는 바닥을 더듬으며 기어갔다. 아직도 허상을 보고 있다. 과거의 소녀는 이제 휠체어에 탄 남자 앞에 서있었다. 수줍은 듯이 바이올린을 들고. 남자가 말했다.


  “바이올린이 좋니?”


  소녀는 눈을 깜박이다가 힘없이 웃었다. 농담하세요? 바이올린이 좋다고 하는 년이 자기 악기를 저렇게 내팽개쳐 부셔버릴까요? 이젠 정말 끔찍해요! 다시는 하지 않을 꺼야! 리네는 주저앉은 자세로 휠체어 탄 남자를 올려봤다.


  “네, 아주 좋아요.”


  감정과 지성의 조각을 툭툭 떨어트리면서도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강당 안에서 휠체어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울렸다.


 


 


     *     *     *


 


 


  에린은 아주 기뻤다. 실로 몇 년 만에 양아버지가 찾아왔다. 보디가드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이사장도 뛰어오는 에린을 마주보며 껄껄 웃었다. 부녀의 감동적인 재회에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모였다.


  소녀는 어느 모를 보아도 행운아였다. 수많은 이름 없는 천재들처럼 환경에 재능이 묻히지 않았고 오히려 무사히 개화되어 이렇게 보란 듯이 이 남자의 양딸이 되었다. 에린은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교정을 걷고 있었다.


  “며칠 전 심사가 끝났어요. 아버지. 교수들은 만장일치로 저를 뽑아줬어요. 오늘 콩쿠르에 참여하러 떠나요.”


  에린은 나무 아래에 있는 한적한 벤치에서 휠체어를 멈췄다.


  “다 아버지 덕이에요. 아버지가 없었으면 저는 고아원에서 실 뜨개질이나 하다가 어른이 되어 쫓겨났겠지요.”


  “리네는 어떠냐.”


  왜 리네에 대해 거론하는 걸까. 에린은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가엾어요.”


  “이따금 생각한단다. 그때 너희들 중 한명만 데려가려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남자는 눈앞에서 맴도는 나비를 쫓기 위해 손을 올렸다. 에린은 그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당연히 그 한명은 제가 되었겠지요. 리네는 불쌍해요. 이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겠지만 처음부터 그랬다면 이런 아픔 받지 않고 살아도 됐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네.”


  남자는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스스로 휠체어 바퀴를 움직여 방향을 바꿨다.


  “시간이 됐다. 가자꾸나. 오늘은 아주 멋진 연주를 들을 수 있을게다.”


  “물론이지요. 전 아주 연습을 많이 했답니다. 아버님.”


 



  리네는 방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었다. 조각 조각난 바이올린이 쓰레기처럼 옆에 놓여있다. 한숨도 못 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인형처럼 머리가 돌아갔다. 애초에 대답은 기대도 안한 듯 문이 벌컥 열렸다. 선글라스 쓴 남자는 팔을 잡아당겨 애써 소녀를 일으켜 세웠다.


  “약속 지키는 거야?”


  그렇게 묻는 리네는 백치처럼 일말의 이성과 생기도 없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네는 웃었다. 헤벌쭉.


 


  에린은 이사장과 함께 고급 승용차에 탑승했다. 교문부터 응원하러 온 수백 명의 학생들과 교수가 나와 있었다. 에린은 창을 내리고 밖으로 손을 흔들어보였다. 생애 최고의 날이 될 것 같았다.


  가는 길 내내 콩쿠르에 대해 상상했다. 소개는 어떻게 할까? 무슨 의상을 입을까? 뛰어난 이들이 모이는 대회라지만 에린은 자신감이 넘쳤다. 심지어 아버님도 관객으로 봐준다고 한다. 우승은 이미 따 놓은 당상일거 같았다.


즐거운 공상을 즐기다 에린은 문득 물었다.


  “아버님 물어볼게 있어요.”


  “뭐냐.”


  “그때······.”


  에린은 회상을 했다. 남자가 말했었다.


  리네도 회상을 했다. 남자가 말했었다.


  ‘콩쿠르에 나가게 해주마. 너라면 할 수 있을게다.’


  그리 말하며 남자는 리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에린은 이를 갈았다.


  “왜 제가 아니라 리네에게 그런 말을 한 거에요? 대체 왜!”


 


  의상실의 문이 보였다. 선글라스 남자는 담당자에게 신분증을 보였다.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세요.”


  안에는 미리 대기시켜둔 코디네이터들이 있었다. 그들은 소녀에게 달려들어 자리에 앉히고 인형을 다루듯 꾸미기 시작했다. 남자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사장님이 미리 준비하라고 말씀해두셨다. 너에게 어울릴 꺼라 하며.”


  “히히.”


  “웃지 마라. 그 아이는 그렇게 천박하게 웃지 않는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뚝. 지금도 어리지만 그보다 더 조그마한 꼬마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이성을 상실해가는 바보가 된 것 같다 랄까.


  까만 깃털이 달린 모자를 씌우고 칠흑의 드레스를 입혔다. 검은 술이 감각적으로 달려있었다. 코디들의 빗이 소녀의 까만 생머리를 빗었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예뻐지길 원한다. 소녀 역시 꾸며지는 자신을 거울로 끊임없이 확인해가며 감탄했다. 남자가 하지 말라고 했지만 헤헤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사장이 말했다.



  “그 말 그대로다.”


  에린은 이해하지 못했다.


  “네?”


  “그 아이는 콩쿠르에 나갈거다.”


  갑자기 화들짝 놀란 에린은 이사장의 무릎에 있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낚아챘다. 가벼웠다. 아니 무게가 없었다. 속이 빈 케이스를 보는 소녀의 하얀 얼굴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두 뺨을 부여잡고 떨었다.


  “대체 무슨······.”


 


  선글라스는 까마귀 소녀에게 바이올린을 건넸다.


  “그 아이가 애지중지 쓰던 거다. 조심히 다뤄라.”


  바이올린을 받은 소녀는 악기를 쭉 쳐다보고 헤, 하더니 히죽 웃었다. 가슴에 푼은 채 몸을 비틀어댔다. 화장을 해주던 코디들이 가만히 있어요, 라고 주의를 했지만 듣지 않았다. 마냥 기뻤다.


 




  “어떻게 된 일이야!”



  에린은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자 같이 굴었다. 운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경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이사장은 묵묵히 말했다.


  “네 말대로 그 아이는 가엾어. 여러모로 부족한 아이지. 그래서 너의 두 가지를 빌려주었단다.”


  “대체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이제 그만 괴롭혀도 되잖아!”


  에린의 분노를 온 몸으로 받던 남자는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때도 그랬었지.”


  “뭐?”


  운전수 너머 앞창으로 콩쿠르가 벌어질 대회장이 보였다.


  “너는 그 때도 그 아이의 바이올린을 뺏으며 말했었다. 내가 너보다 더 잘할 수 있어! 하면서 말이야. 기억 안나니?”


  에린은 머리를 쥐어뜯을 듯이 잡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소녀가 일어섰다. 치마 끝을 잡고 어떠냐는 듯 묻는 눈길을 받으며 선글라스 남자는 솔직히 말했다.



  “예쁘네, 아주.”


  헤벌쭉.


“  ···나가면 가능한 웃지 마라. 뭐라 말을 해줘야할지 모르겠는데 지금 너는 정상이 아니야. 그냥 연주만 하면 돼.”


  끄덕끄덕.


  다시 무표정을 돌아왔다.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에린 데네브 양? 준비하세요. 차례가 됐습니다.”


  리네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응.”


  놀랍도록 차가운 얼굴이었다.


 




  대회장에 도착하기까지 콩쿠르의 일정에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대회가 일정보다 조금 앞당겨졌다는 점. 그리고 맨 뒷줄에 있던 에린 데네브가 앞 차례로 이동했다는 점.



  문을 부술 기세로 승용차에서 내린 에린은 뛰어갔다. 선수 대기실로 입장하려 했지만 경비원의 제지를 받았다.


  “제가 에린 데네브에요! 안에 있는 애가 아니라 제가 에린이에요!”


  “멀쩡하게 생긴 아가씨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에린 데네브 양은 이미 등록이 끝났습니다. 돌아가세요!”


  절망에 물들어가는 에린의 뒤로 휠체어가 굴러갔다.


  “가자꾸나.”


  이사장은 불만 없이 정문으로 들어갔다. 에린이 휘청거리자 경비병이 그녀를 잡아주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관중은 이미 거의 꽉 차 있었다. 예약을 받지 않는 콩쿠르의 특성 탓에 미리 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이 많았던 탓이다. 일정이 앞당겨졌지만 문제 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구에게는 불행하게도.


  한껏 치장한 리네는 휘파람을 불으며 복도를 걸었다. 누군가에게 소중할지 모르는 바이올린으로 벽을 그으면서. 듣기 싫은 소음이 울렸다. 한껏 흥이 났다. 휘파람이 더욱 신나는 멜로디로 바뀌었다.


  무대로 통하는 문을 열기 전 리네는 심호흡했다. 이 밖을 나가면 수천 명의 눈에 맞서야한다. 스쿨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아니, 조금 다른 것이 있지. 경멸과 조소가 아니라 기대에 찬 이들이 대신 앉아있지.


  문을 열며 리네는 안대로 눈을 가렸다. 코뼈 사이로 보이는 아주 작은 시야에 의지하며 무대 중앙에 섰다.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매너를 아네 착한 관중들.


  “아아, 맹인이란 말은 못 들었는데요.”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당황한 듯 말했다. 리네는 머리를 삐딱하게 하며 사회자를 정확히 응시했다. 눈을 가렸지만 청각까지 막힌 건 아니다. 사회자는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네. 로데니안 스쿨에서 온 에린 데네브 양! 과연 칭송 받는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답군요! 눈을 가리고 연주하겠습니다!”


  심사단과 관중은 흥미를 잔뜩 돋우며 리네에게 집중했다. 그때 홀의 뒷문을 열며 에린이 들어왔다.


  “리네!”


  이어서 뭐라 악담을 쏟을 것 같은 에린의 난입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비는 민첩하게 달려들어 소녀의 입을 우선적으로 막았다. 몸이 움직이는 인기척과 함께 바로 근처부터 건너편 층에 달하는 수천의 눈총을 받게 된 에린은 숨이 막혔다. 억울했다. 왜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하는 거지!


  백조는 무대 위의 까마귀를 쳐다봤다. 에린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서 있는 소녀를. 리네는 정확히 자신의 이름이 들려온 쪽을 보고 있었다.


  히죽.


  에린은 똑똑히 그 비웃음을 보았다. 너무 어처구니없고 화가 나 눈물이 다 났다.


  심사단은 에린 쪽을 보다가 리네에게 눈을 돌렸다. 그중 하나가 박수를 한번 쳤다.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리네는 스쿨에서처럼 어수룩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활을 현에 얹고 크게 심호흡한다.


  경비원에게 사과를 한 이사장은 에린을 옆에 세우고는 무대를 보았다.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보통 사람이 ‘자 이제 시작하려나?’ 할 만큼 짧은 침묵이었다. 심장박동 수가 절정에 달하고, 손에 난 땀을 닦고, 생수로 한 모금 목을 축이는 찰나의 시간이 지나.


  소녀는 웃었다. 아무도 듣지 못한 아주 작은 키득거림. 왜 웃었는지 본인도 모른다.


 




  “네, 아주 좋아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바이올린은 하지 않을거에요.”



  강당에서 리네는 여전히 주저앉아 있었다. 남자는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죠? 저 같은 재능 없는 아이를 일부로 에린이랑 붙여놓았죠? 멍청한 년. 니 주제를 알아라 하면서 말이에요. 잔인했어요. 해도 너무 심했어요. 왜 희망을 불어넣었죠? 왜 에린이 아니라 내게 콩쿠르에 나갈 수 있다고 한거죠? 그냥 에린에게 모든 걸 맡기면 됐잖아요! 저 혼자 찬란하게 빛나게! 혼자 우월하게! 혼자 칭찬 받게! 나랑 비교 당하지 않게! 그렇게 뒀으면 됐잖아! 근데 왜!”


  리네는 서럽게 울었다. 끅끅, 하며 숨쉬기도 힘들어했다.


  남자는 휠체어 바퀴를 밀어 소녀 앞에 갔다. 그리고 리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리네는 남자의 손을 잡아 뺨에 갖다 대었다.


  “난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요.”


  “아니.”


  남자는 딱히 위로하려는 기색도 없었다. 그는 지극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여전히 너라고 생각한단다.”


  “이걸 보고도?”


  리네는 박살난 바이올린을 가리켰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난 묻고 있는거다.”


  그의 손이 부드럽게 리네의 뺨을 문질렀다.


  “노래 부를 수 있니?”


  소녀는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잔인한 결정을 강요하는 그 말에 몸을 떨면서도 그 상냥한 손의 체온을 갈망했다.


  딱 한번··· 딱 한번만 이기고 싶었다. 뛰어넘고 싶었다. 칭찬 받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리네는 한숨을 쉬었다. 마치 노인이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딱 한번만이에요······.”


 




  리네는 그때 에린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 알았다. 역시 난 바보 멍청이인가 봐. 이걸 하필 이제야 이 순간에 깨닫다니.



  현 위로 활을 얹었다. 턱을 치켜들었다.


  “에린······.”


  울기만 하지는 않아.


  나 역시 노래할 수 있어.


  분명히 들리게. 똑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지저귈 줄 알아.”


  연주가 시작됐을 때 리네는 잊기 시작했다.


  활을 쥐는 법을 잊었다. 현을 누르고 있는 손가락을 잊었다. 저음과 고음을 잊었다. 반음과 미분음을 잊었다. E현,A현,D현,G현을 잊었다. 비브라토를 잊었다. 아르코를 잊었다. 피치카토를 잊었다. 플래절레트를 잊었다.


  악보를 잊었다. 리네는 지금 자기가 무슨 곡을 연주하는 지도 몰랐다. 활이 가는대로 움직였다. 소리가 솟구쳤다. 바이올린을 통해 내면에 쌓여 있는 감정이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통으로 변환됐다.


  자세를 잊었다. 벽에 팔꿈치를 대고 연습해도 힘들어 했던 리네는 이제 춤추기 시작했다. 다리를 들었다 내딛으며 한 바퀴 돈다. 치마와 머리칼이 원으로 펼쳐졌다가 내려앉는다. 깃털 달린 모자가 떨어졌다. 숙였던 고개를 치켜들으며 도약했다. 숨죽이던 관중들이 탄성을 질렀다.


  심사단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관중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여기는 콩쿠르다. 아직 앳된 아이들이 미숙하고 풋풋하지만 앞으로 장래가 밝을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곳이지. 우린 그걸 들으러 왔어.


  그런데 이 소녀는 뭔가? 왜 난생 처음 듣는 곡을 연주하지? 흔해빠진 곡을 흔해빠지지 않게 연주하는 전통 대신 왜 이 자리에서 즉흥곡을 하는 거지! 어떻게 저 나이에 저만큼의 비탄과 탄식을 음악으로 풀어낼 수 있는 거지! 이건 10대 소녀의 연주가 아니라 거성이라 불렸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스완송(swan song)에 가까웠다.


  아니 그마저도 한참 순화한 표현이다. 이건 이미 연주가 아니라 바이올린으로 하는 비명에 가깝지 않는가. 음악에 조예 깊은 심사단은 이미 그 사실을 직감했다. 눈에 안대를 한 까르르 웃는 소녀가 폴짝 뛰며 활을 휘두를 때마다 뭔가가 소녀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걸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에린은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이 소리는 뭐야? 어떻게 리네가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는 거지?


  난 아무 것도 아니었나? 스쿨에서 천재 소리 좀 들었다고 지금껏 저 괴물 앞에서 주름 잡아 왔던 건가? 끝없는 자기혐오란 벌레가 타고 올라오자 몸서리쳤다.


  “아버님. 흐윽. 저는, 저는 리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홉 살 난 딸이 있었어.”


  남자가 말했다. 무척이나 진지한 목소리에 에린은 그를 돌아봤다. 그의 눈은 먼 옛날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난 항상 일에 쫓겼고. 엄마를 잃은 딸아이의 마음을 돌볼 수 없었어. 아이는 취미가 하나 있었지. 살아생전 엄마가 키던 바이올린을 키는 거야. 딸아이는 절대로 그 모습을 내게 보이지 않았지. 그 꼴을 보이는 즉시 내가 부서 버리고 자기를 마구 팰 거라는 걸 알았거든. 하지만 어느 날 내가 술에 취해 들어왔을 때 딸아이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한 손에는 바이올린을 들고 말이야. 난 당연히 화를 냈지. 하지만 딸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바이올린을 켰어. 난 아직도 잊지 못해. 선생 하나 붙이지 않았는데 그 꼬마애가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음을 냈는지. 그리고 내게 말했지. ‘아빠 생일 축하해요.’ 바이올린을 부셔버린 다음 날. 딸아이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렸어.”


  딸을 잃은 아빠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리네가 연주하는 음에 맞춰 흔들었다.


  “꼭 다시 한 번 듣고 싶었지. 그 딸아이가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소리를. 약간 다르지만······.”


  손가락이 축 늘어졌다. 남자는 뭔가를 집어삼키듯 끅끅, 웃었다.


  “제법 비슷하군 그래.”


  넋이 나간 에린의 앞으로 촤르륵 하고 순간순간들이 흘러갔다.


  안녕? 난 리네야! 너는! 나··· 난 에린. 우리 친구하자! 너 머리가 참 예쁘구나. 눈 같은 하얀색이야. 나랑은 좀 다른데. 흠! 그래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의 무지무지 귀여운 러브리 에린이니까 봐줄게! 여러분 친구랑은 친하게 지내야해요. 선생님 말 잘 알았죠? 네! 오늘은 서로 가장 친한 친구에게 별명 붙이기를 할꺼에요. 백조! 까마귀! 백조! 까마귀 까마귀! 백조! 백조! 우씨! 리네는 남들이랑 금방 참 친해지는구나. 이렇게 사교성 있는 애가 왜 남들 앞에만 서면 벌벌 덜까? 에린 왜 혼자 있어? 나한테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야? 꿈 깨시지! 넌 내 피규어야! 피···피규어가 뭐야 리네? 알거 없어! 이사장이 바이올린 킬 줄 아는 아이를 찾아요. 이 고아원에 그런 애가 있겠어요? 바이올린은 선생 붙여놔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수두룩해요! 리네는 할 수 있어! 와 대단해! 언제 배운 거야? 설마 지금 처음이야? 천잰가 봐! 떨어져··· 떨어지란 말이야. 그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내가! 그냥 리네랑 곁에 있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내가,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어! 모르겠다. 차를 타고 떠났고 입학했을 때도 우리 둘은 손잡고 다녔었다. 어떤 애가 날 잡아 당겼다. 이름 뭐라고? 에린? 너 잘하는구나. 어쩜 이렇게 쏙 다른 애가 왔지? 에린? 어디가는거야? 리네, 잠깐만. 가려는 게 아니라··· 일로 와! 지금 이 손 놓으면 다시는 안 붙잡을 꺼야! 에린? 야, 백조?


  결국 그 손을 도로 놓지 않았다. 그렇게 떠났다.


  에린은 신음하며 일어섰다. 무대를 향해 걸었다. 마치 강당에 있었던 그 일처럼. 관중석 사이로 에린은 걷고 리네는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다.


  에린이 리네를 보았을 때, 리네는 항상 울고 있었다. 번번이 수업 진도도 못 따라왔다. 언제나 자세를 엉뚱하게 잡아서 교수에게 혼났다. 노력은 죽어라 하는 듯 했지만 남의 반도 따라가기 힘겨워했다. 그런 바보 주제에 결코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다. 에린이 그런 리네를 뒤돌아보려 할 때마다 다른 누군가가 어깨를 잡아당겼다. 리네가 숙제에 힘겨워할 때 그걸 알면서도 에린은 다른 애의 숙제를 대신 해줬다. 리네를··· 리네를······.


  이제 그만 아파해도 되잖아. 그거 놓고 떠나······. 바보야. 내 말 들려?


  리네는 거리낌 없이 재능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심지는 짧았다. 평생 정진하면 바이올린 학원의 담당 선생 정도는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자질이 불살라지고 있었다. 그걸로 족했다. 평생의 딱 한번 허용된 순간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수명이 끝장나는 장엄한 연주를 수천의 관중과 심사단은 엄숙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리네는 거의 대부분의 모든 걸 잊었다.


  이윽고 소녀가 활을 놓침으로써 연주가 끝났다. 리네는 안대를 벗어 집어던졌다.


  리네는 바이올린도 잊었다.


  박수는 없었다. 필요 없다.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이 경의가 아니라 묵례임을 아는 듯 했다. 리네는 지금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에린이 무대에 올라왔다. 백조는 주저앉아 있는 까마귀를 껴안았다.


  손에 든 물건을 놓았다. 바이올린이 땅을 굴렀다.


  멍한 눈으로 홀의 조명을 보던 리네의 눈동자가 움직여 에린을 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이 에린의 등을 감쌌다. 성대가 힘겹게 움직이고 리네가 말했다.


  “뭐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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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으셨어요? 거짓말마요 안 믿어요 스크롤 내리셨어요? 현명했어요 이거 쓴 저도 스크롤이 괴로워요 


 


말 그대로 단편으로 쓰려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무지 길어졌네요 제 정신이 혼란스럽다는게 한 원인일지도 -_);


덕분에 글도 쓸데 없이 길고 난잡합니다 이해하세여 -_);


 


 


 


모레 후 입대합니다.


 


ㅇ? 지금 제가 머라구 햇져? ㅇ..입대? 잠깐 내 머리는 왜 깎는거야?! 20대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거 아니엇어? 난 아직 소년이라구?


 


네 눈 치우러 감니다 올 겨울은 눈이 덜 내리게 저랑 가치 기도해주세여...


 


이거저거 정리하고 2년 동안 떠날 준비를 하니 시간이 안 나오더군여 원래는 판타지 란에서 연재하던거 문자 그대로 대충이라도 완결내고 아 제 인생 최초의 완결입니다 아쉽지만 군대 가기 전에 끝내서 만족스럽습니다. 이럴려 했는데 제 정신이 그건 허락하지 않네여 걍 단편 하나 쓰고 떠나기로 결정 넵


 


글 얘기 해보자면 원래는 스완송(swan song) 말 그대로 백조 노래 하려 했는데 주인공 년이랑 싱크가 안 맞더군요 본 뜻과도 살짝 안 어울리고 그래서 걍 새 단어 만들어냈습니다. 참 쉽죠? 단순해서 좋아 B형은 -_); 낄낄


 


대충 설명하자면 지극히 평범한 범인이 조건이 충족됬을 때 자기 재능을 불사르는 조건으로 인생에 딱 한번 천재를 뛰어넘는 연주?(업적?)을 내는 거라 할까... 머 대충 그런 의미로 슥삭슥삭...


 


 


아앙앙아아 하여간 전 끌려갑니다 안녕히..


 


그래도 가서 하면 된다 정신과, 담번 연재작은 반드시 완결내겠다는 근성을 배우고 오겟슴다


 


여러분 교훈 삼아 기억해두세여 시간은 흐르고 언젠간 님들도 갑니다 ( -_-)


 


하지만 괜찮아여 20대는 찾아와도 30대는 안 올테니까! (다행이야..)



 


 


2년 후의 내가 이 글을 다시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글쟁이에서 작가로 진화하길 바란다 2년 후의 나... 포기하지 않으면... 뭐 언젠가는... 언젠가는.......


 


p.s 글에 필명이 자꾸 언급되서 쓰는데 좀좀 낯부끄러웟네여(백조까막 드립) 글쓴놈이 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새 이고 까만거 무지 조아해서 -_-) 이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