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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단편] 19살 경험

2010.03.06 13:59

쉐로, 조회 수:564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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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19일에 쓰다만 소설이네요.


 


19살의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이름이 없으며─설령 있다해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 다들 '19세' 혹은 '일구' 라 부르는 편이다─


학교 생활 도중 무슨 생각인지 자퇴를 신청했다. 서울 끝자락에 붙어 겨우 죽지 않을 정도의 식사를 할 수 있는 형편에, 성격은 어둡고, 말 수가 적었다.


그런 그에게도 사랑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골목 밖 구멍가게 옆에 위치한 미용실 주인의 딸, '시나' 였다.


그도 19세였고, 일구와 같이 이름이 없으나 아이들이 임의로 '시나' 라고 불렀다. (아마도 10과 9의 영어 발음인 '나인'을 적절히 조합시켜 지은 이름으로 추측된다.)


그녀는 낡았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은 분위기를 띄었으며, 머리는 길게 풀어헤쳐 은은한 향기가 코를 찔렀고, 빨려들어갈 것 같은 잘 빚어진 눈동자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일구는 성격상 그녀에게 호감을 표현하기는 커녕, 말 한마디 못 붙여본 사이이기에, 주위 사람들은 시나에 대한 일구의 감정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이 동네는 지루하게 돌아갔으며, 평소에도 기운 넘치는 소년 소녀들 따위야, 몇 되지도 않기에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고 화투나 바둑을 즐기며 일상을 보내곤 하였다.


 


"어이구, 쌌네 시방!"


"뭐 어쩌것슈! 지가 먹겠음매, 침이나 잡스슈 길수댁!"


그들은 대부분 장난으로, 그러나 간혹 돈이 오갈때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점에 천원이었던 판이, 근택아버지가 성질이 뻗쳐 판을 뒤엎자, 기어코 1점에 만원이 되고 말았다.


그 중, 나이가 가장 어리고 동네에 들어온지 얼마 안된 행순이 처댁이 운꽃이 돋았는지 46점. 이 동네에서 46만원이면 꽤 막대한 양의 금액인 셈이다.


"처댁, 잇살도 안굳은 파릇청량한 계집아가 뭔 그리 큰돈을 쓸어담으요? 우리 그러지 말고 한판만 더합시더."


병신이가, 이만큼 땄는데 참치 낚아놓고 동해바다 수영시키는 소리하고 앉았네. 하며 코를 한번 세게 푼 뒤에, 금세 자기집 양반한테 쪼르르 달려가 딴 돈을 보이는것이었다.


그렇게 이 동네는 한달하고도 4일이 흘렀다. 표현이 굳은 만큼, 감정도 아직 한각도 안틀어지고 굳는 일구는 여전히 오전 10시 59분에 시나가 있는 미용실 근처를 서성거렸다. 다른 이들 눈에는 일구의 한결같은 모습따위야, 눈에 기어 들어오지도 않으리라.


드디어 11시가 되자, 항상 엄마를 돕는 시나가 아침부터 미용실 철가래를 촤라락, 하며 열어올렸다. 그리곤 또박또박들어간다.


일구의 왼손엔 편지가 쥐어져있다. 아마 오늘은 동네가 북적일듯 싶다. 그가 미용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왠 자기보다 약간 나이가 어려보이는 코흘리개가 오늘의 첫 손님을 장식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둘째손님이지만.


어쨌든 시나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일구는 또, 어제와 같이 전봇대 사이로 미용실 안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코흘리개가 뭔가를 꺼내는듯 하더니, 새하얀 편지봉투를 시나에게 내미는 것이 아닌가?


눈입이 바짝말라가고,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호기심을 못이겨 일구가 좀 더 가까이 가보니 봉투의 모서리엔 작은 하트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고백임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시나는 코흘리개의 손 때가 묻은 편지를 받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더니 한참 뒤에 코흘리개에게 싱긋 웃는것이 아닌가!


오랫동안 시나를 지켜봐왔던 일구는 지금의 상황이 기가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이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시나가 고작 저딴 코흘리개의 편지를 보고 웃었다고?


표정과 말 수의 변화는 없었지만, 그는 충분히 당황했다. 자신은 결국 시나를 빼앗긴 것이다.


한장한장 최대한 곱고 이쁜말들만 빼곡히 적혀진 편지를 모두 잘게 찢어버리고 나서,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착잡했다.


그는 쉽게 감정이 표출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다. 화가나서 벽에 손주먹질을 하지 않나, 고개를 숙이고 우울함을 그대로 표출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시나를 되찾을 수 없을까 오랫동안 궁리하던 중, 일구가 계획한것은 바로 살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