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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단편]눈 오는 날의 졸업식(前)

2010.02.05 20:48

로케이트 조회 수:592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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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겨운 기말고사가 끝났다. 산더미 같은 과제 제출하랴 동아리 활동하랴 정말 쉴 틈 없는 학기였다. 하지만 오늘로 끝이다. 이제 살 떨리는 학점 발표가 남았지만 딱히 더 할 일은 없다. 기숙사 짐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모처럼 내 방 침대에 누웠다. 푸근하다. 역시 집이 최고다.


 한 숨 자고나니 벌써 정오가 다 되었다. 일주일 전이었으면 악마 같은 교수가 ‘자네 학점은 이제 남은 게 없네. 다음 학기 재수강에서 또 보세.’ 했을 거다. 저녁에는 고등학생 때 친하던 애들과 만나 오랜만에 술이나 마시며 회포를 풀기로 했다. 졸업 이후로 몇 년 만에 보는 건지 -군대 가서 없는 녀석들도 있지만- 하여간 참 오랜만이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한 건 아닐지.


 문득 그 시절을 회상하니 추억이 한도 끝도 없이 튀어나온다. 병규 녀석은 아직도 퉁퉁하려나, 그 녀석 삼수한다고 했었는데 대학은 갔으려나. 시영이는 오타쿠 기질 좀 버렸을까. 여자애들은… 아, 대학가면 쌍꺼풀 수술한다고 노래하고 다니던 성윤지도 있었지! 아 그리고….


 어느새 나는 책장 한 구석에 박혀있던 졸업앨범을 꺼내 보고 있었다. ‘병문고등학교 3학년 8반 이지선 선생님(화학Ⅱ). 반장 강하늘 외 36명.’ 한 명 한 명 짚어보며 그때를 더듬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지옥 같은 고3 생활이었지만 그만큼 친구들과의 추억은 진하고 달콤하다. 상황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비유하자면, 배고플 때 먹은 밥이 제일 꿀맛 같다고나 할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친구들을 하나씩 짚어가던 내 손가락은 불현듯 단체사진 정중앙에 있는 휠체어에서 멈추었다. 휠체어에는 짧고 단정하게 자른 머리에 둥근 안경을 쓴, 아직 애티를 벗어내지 못한 얼굴의 작은 남자아이가 앉아 있다. 맞아, 얘가 있었지…. 나는 또 생각에 잠겼다. 3학년 8반에는 특별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박민우. 3학년 8반, 우리들은 그 아이까지 37명이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그런 반이었다.


 


 



2.


 민우는 말수가 적은 소심한 애였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여느 평범한 고등학생과 다르지 않았다. 휠체어와도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았다. 1년만 더 보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하면 직업을 얻고 그러다 결혼해서 사는… 그렇게 살아갈 평범한 아이였다. 물론 누군가는 선천적인 장애, 불의의 사고와 같은 불행을 겪는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러한 불행이 닥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마 민우의 경우도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어나겠지만 나는 아니겠지…. 하지만 신은 누군가에게는 주어야 하는 이 불행을 민우에게 주기로 했나보다.


 5월 모의고사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3교시는 구기 시간이었고,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나온 우리는 몸 풀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줄넘기를 서른 번 정도 가볍게 넘는 운동이었다. 2단 뛰기나 X자 넘기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냥 줄넘기였는데… 민우는 첫 발에서 갑자기 중심을 잃고 쓰려졌다.


 민우는 4교시에 조퇴를 하고 어머니와 병원에 갔다. 조퇴야 흔한 일이었기에 처음에 우리는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없었지만 나머지 36명은 평범하게 7교시를 마쳤고, 미술학원에 다니는 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야간자율학습까지 고3의 평범한 일상을 충실히 수행했다. 마치 영화 ‘모던타임즈’에 나오는 찰리 채플린처럼 말이다. -톱니바퀴처럼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인간기계, 또 그런 식으로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우리는 공부기계, 수험생이었으니까.- 내일이면 민우도 건강하게 돌아와 이 일상에 합류하겠지. 우리는 생각했다.


 그러나 별 문제 없을 줄 알았던 민우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교실에 돌아왔고, 그날 우리 반은 발칵 뒤집혔다. 민우가 전동식 휠체어를 타고 등교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우는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떠안고 왔다.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진단한 민우의 증상은 조금 일찍, 그러나 강하게 발현된 루게릭병이었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가 일주일 남짓 남은 2009년 5월 25일이었다.


 루게릭병. 다리부터 굳어지기 시작한다. 점차적으로 굳어지다가 종전에는 온몸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끔찍한 병이다. 목까지 올라오면 혀가 굳어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을 조금씩 괴롭히면서 그 고통을 즐기는 악질적인 녀석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걸린 병이기도 하다. 루게릭병에 걸린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걷게 된다. 선천적이고 희귀한 병이라 현대 의학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민우의 자리는 복도 쪽 문과 가까운 1분단 제일 뒤쪽으로 옮겨졌다. 전동식 휠체어로는 안쪽 자리에 들어갈 수가 없다. 교실문의 턱을 없애고, 사물함 위치도 바꾸었다.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 7반이었던 생물Ⅱ-민우의 선택과목- 이동수업을 우리 반 교실로 옮겼다.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마련, 구기 시간이 이에 속했다. 구기 시간마다 민우는 혼자 남아 교실을 지켰다. 일주일에 두 번, 반년으로 치면 서른다섯 시간. 친구들을 창문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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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가려고 합니다. 'ㅅ'


잘 못쓰는 글이지만 끄적끄적..


 


*참고로 저는 의학적 지식은 하나도 없답니다.. 홀홀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