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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신입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 1

2010.05.25 02:12

시우처럼 조회 수:178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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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이 하얀 방이었다. 그리고 텅 빈 방 한 구석에 누군가가 쓰러지듯이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꾀나 넓은 방인 듯 했으나 방안에는 오직 그 사람만이 버려진 듯 처박혀 있었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서 인지 그는 온몸이 벌거벗겨진 채였다. 그의 피부는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듯 생기가 없었고 눈은 초점이 흩어져 있었다. 숨을 쉬기 위해 오르내리는 그의 가슴팍이 아니었다면 그를 비롯한 방 전체가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계도 없고 창문도 없는 이 무미건조한 방안에서 과연 하루가 지났는지 일주일이 지났는지 일 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침내 그 시간의 끝에서 그의 입이 작게 옴짝거렸다.



 이젠 정말 지겹다고. 현수는 벽에 기대어 앉아 절망했다. 그가 이 방에서 꼼작도 못하고 묶여 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사라져갔지만 그는 여전히 이 방을 벗어 날 수 없었다.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남았다고 안도할 것도 없었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이들을 부러워하는 마음 따윈 애초부터 존재 하지도 않았다. 진실을 알아버린 그 때부터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 보려고 별짓을 다 해봤지만 결국 그 어떤 방법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니 애초부터 그런 해결책 따윈 존재 하지 않았겠지. 희망이 없었다. 이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라니. 이젠 그저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 때였다. 저쪽 건너편에서 연기 같기도 하고 빛 덩어리 같기도 한 것들이 뭉글뭉글 뭉쳐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잠시 감았던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렸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어쩌면 잠이 들었었는지도 모르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건 이 방에서 시간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신입인가?’



 당연히 신입이겠지. 그는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했다. 이 방의 관리인인지는 결코 저런 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이 방에 들어올 존재라곤 신입이거나 관리인 둘 뿐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번 신입은 연기인지 빛 덩어리인지 아무튼 저런 식이로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매번 신입들이 들어 올 때마다 등장하는 모양새가 각양각색이었다. 저번 신입은 작은 소용돌이가 일더니만 그 안에서 튀어나왔고, 어떤 신입은 레고 같은 블록이 쌓여 나가더니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현수도 처음 신입을 맞이하고 나서는 자신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개성 넘치는 등장이 이 방안에서의 생활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어찌되었든 다들 떠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황금빛 찬란하게 성자처럼 등장한 사람도 예외는 없었고 소용돌이도, 레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그에게 저런 연기인지 빛덩어리인지 꾸물렁 거리는 모습은 크게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형상은 마침내 어느 정도 사람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수는 기여코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곤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비록 이렇게 관심 없다는 뉘앙스를 전신으로 내뿜으며 앉아있다손 치더라도 언제나처럼 신입은 호들갑을 떨며 이것저것 물어 오겠지. 하지만 또다시 반복될 똑같은 질문들과 무엇보다도 혼란과 공포에 빠진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부디 나한테 다가와서 이것저것 묻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봐봐. 이렇게 인상 팍 구기고 완전 무시하면서 앉아있는데 겁나서 물어보겠어? 게다가 그렇게 궁금하면 역시 스스로 알아봐야지 남한테 의존하는 건 옳지 못한 태도야. 암 그렇고말고.



“저기요....”



 현수의 눈썹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신입은 아예 그의 몸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아마도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다든지, 다행히 죽은 시체는 아닌가 보다 하고 희망을 가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희망이라. 하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낯선 곳에 혼자 있어야만 하는 시간들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때 가장 큰 혼란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니 신입에겐 현수의 눈썹 따위야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생판 처음 보는 사람 몸뚱이를 이렇게 좌우로 뒤흔들 용기도 생기는 모양이었다.



“으아악! 진짜!”



 마침내 그가 괴성과 함께 신입을 밀쳐 내며 눈을 뜨자, 깨셨어요. 라며 신입이 멋쩍게 웃어 보인다. 아 머리야. 얼마나 흔들렸는지 골이 다 울릴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이 어이없는 인간은 뭐란 말인가. 공중도덕. 타인에 대한 배려는 대관절 어디다 두고 다니시는지.



“죄송해요. 그런데 여기에 아저씨 밖에 없어서요.”



“그래서? 그러면 혼자 있는 사람한텐 이따구로 해도 되는거요?”



“아뇨. 정말 죄송합니다. 아깐 갑자기 너무 당황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나마 자기 잘못을 알긴 아는 모양이었다. 진짜 여기서 한 번 더 안하무인이었다면 그야말로 멱살 붙잡고 그놈의 버르장머리를 옳게 가르쳐 줄 생각이었지만 저쪽에서 저렇게 거듭 사과까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서로 발개 벗겨져 있는 판인지라 잡을 멱살도 없었다.



“그런데요. 혹시... 저희 죽은건가요?”



 한동안 눈치를 보던 신입은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뜬금없이 이런 뚱딴지같은 질문이라니. 아니 그보다도 이젠 나까지 덩달아 죽은 사람 취급이냐? 현수는 또다시 어이가 없어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일단은 나를 향해 당신은 죽은 사람입니까를 묻는 것이 교양 있는 사람의 덕목이 아니냐고, 어떻게 사실 확인도 없이 나를 살아있는 시체 따위로 취급할 수 있냐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신입은 단지,



확인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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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분이 있으시다면 짐작하시겠지만 이 글은


제 전 글인 '트럭에 부딪치는 우리의 자세'의 뒷이야기 입니다.


음. 뒷이야기라기 보다는 또다른 애피소드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에 2편도 마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