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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5.08

2010.05.09 07:47

악마성루갈백작 조회 수:263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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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이 날이 오기 전에 대부분의 국민학교. 아니, 이제는 초등학교로 바뀌었다던데요. 뭐, 여하튼.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시킨, 어찌 보면 강제로 밀어붙였던 자그마한 소동이 매년 있었습니다. 다들 한 번쯤은, ‘부모님께 편지 쓰기’라는 것, 해본 적 있을 거예요. 물론 저도 그랬고, 제 어머니 시절에도, 그런 행사 아닌 행사는, 지금처럼 매년 5월 8일이 오기 바로 전 토요일에, 시간을 내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앉혀놓고는 했다고 합니다.

그날도 매년의 비슷한 일상과 다를 바는 없었다고 해요, ‘어버이날 - 부모님께 편지 쓰기’라는 하얀 글씨가 진초록색 칠판에 반듯이 적혀 있고, 마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듯 그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 각자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하얀 편지지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겠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만, 어버이날 편지 쓸 때 가장 고민되는 것이 바로 첫머리를 어떻게 달 것인가 였습니다. ‘부모님께’라고 쓰자니 평소 안 쓰던 말이라 스스로 거부감이 들고, ‘엄마, 아빠께’라고 쓰자니 왠지 어린애 같아 보일뿐더러, 혹시 아빠가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해서 ‘아빠, 엄마께’로 자리를 바꿔 보기도 하고, ‘어머니, 아버지께’로 써 보기도 하고. 저 같은 경우에는, 그건 편지를 다 쓰고 정하자 해서 빈칸으로 남겨두고 편지 내용부터 쓰기 시작했다가, 깜박 잊고 그걸 그대로 부모님께 갖다 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게 웃긴 일이죠.

그 중 어떤 그 아이는, 그 어버이날 편지의 첫머리를, 전혀 고민도 하지 않고, 재빠르게 써 내려갔다고 해요.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어머니는 살짝 그 아이의 편지지를 들여다보았고, 거기에는 평범한 어린아이의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

어머니께.

어머니, 저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

시원한 산바람이, 이마에 방금 맺힌 작은 방울들을 삼키고 지나갔다. 여기는 몇 달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다. 폐에 이상이 있었다고 했다. 교사라는 직업은 그만큼 위험하다고, 당신께서 웃으며 말씀하셨을 때에는, 그다지 와 닿지 않았는데.

어머니. 오늘, 어버이날입니다. 카네이션, 좋아하셨죠? 여기, 둘게요.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당신에게 처음으로 꽃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당신께 사과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사과해야만 하는 일이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는 당신이 미웠다.

그때는 모든 게 미웠지만, 그중에서도 어머니, 당신이 가장 미웠다. 가난이 미웠고, 오로지 일밖에 모르는 당신이 미웠고, 남들처럼 어디 놀러 갈 수도 없는 처지가 미웠다. 교사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나는 또래 아이들과 좀처럼 섞이는 게 힘들었다. 그들은 내가 시험 점수를 잘 받아도, 뒤에서 어머니가 봐주셔서 그렇다고 수군대곤 했다.

살아생전 따뜻한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으련만, 그래도 당신은 꿋꿋이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해주었다. 내가 반항 어린 행동을 보였을 때도, 당신이 힘들게 번 돈을 몰래 가져다 썼을 때도, 내가 멋대로 집을 뛰쳐나와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을 때도 당신은 나를 안아주었다.

아가야,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를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우시는 걸까. 나는 그저 가만히 있을 따름이었다. 널 정말 찾았단다.

그중에서도 내가 저지른 큰 잘못은 어버이날의 편지 쓰기였다. 그날 나는 당신에게 해선 안 되는 말을 적었고, 당신은 그걸 보았다. 그럼에도, 당신은 당신 탓이라며 나에게 미안하다고만 했다. 나는 화가 났다. 도대체 내가 당신에게 무엇이기에, 이토록 나를 위하고 애쓰는 건가.

그러나 나는 잊고 있었다. 당신이 내게 준 상처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이 내게 준 그 사랑이, 그 은혜가 훨씬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에게서 받으려고만 했다. 당신이 받았을 상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당신은 내 곁을 떠났다.

어렸을 때, 어버이날 편지. 첫 시작만큼 힘든 부분이 가장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써 놓고도 몇 번이나 지웠었는데. 그 한마디가 얼마나 어려웠었는지.


사랑합니다. 어머니.

5월 8일. 못난 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