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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마음을 읽는 소녀

2010.05.05 06:34

악마성루갈백작 조회 수:430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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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소녀를 처음 만났던 것은…….』


그는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광활한 바다를 헤엄치는 착각이 들었다. 단어들, 표현들, 그리고 손짓들이 푸드덕거리며 뒤섞인다. 의도조차 없는 눈부심. 마치 그녀라는 개인에 빠져드는 것처럼. 그러나 곧바로 자신을 다잡는다. 다잡아야만 해.

"…그러고 보면 당신과 만난 지 벌써 2년이 되었군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기억을 회상했다.

2년 전, 그는 끝없어 보이는 밝은 색상이 감도는 병원의 복도를 계속 걸으면서, 옆의 다른 의사와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이러했다. 한 소녀가 이번에 이 정신병원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 까닭이라고 하고.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이 아니다─때때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섞여 오기도 하지만─그것이 나쁜 의미든 나쁘지 않은 의미이든, 각자의 고민과 능력을 가지고 이곳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 고민이라는 것, 그리고 그 능력이라는 것은, 어떨 때는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가 최근에 들어 본 가장 이상한 ‘고민’은, ‘언젠가 지하에 사는 지하인들이 땅으로 올라와 인류를 전멸시킨다.’라는 고민이었다.

최근에 들어 본 가장 이상한 ‘능력’은, 바로 지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소녀가,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 그러나 그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결코, 누군가가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리 없다고.

"안녕하세요."

그가 처음 방에 들어간 순간 만난 것은, 입은 환자복을 푹 덮어버릴 정도로 기다랗고,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을 지닌, 14세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다. 자세히 보니 어깨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마음을 읽는 신비로운 소녀’라는 이미지라고 한다면 조금 들어맞는 느낌이었지만, 이 아이는 정신이 약간 이상한 것뿐이다. 그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 세요?"

"오늘부터 당신의 담당 의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의사 따위, 필요 없어요."

푹 죽어 버린 소녀의 목소리. 그 정도의 냉담한 태도는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가 있는 쪽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약간 고개를 돌린 채로 그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눈을 마주쳐야죠."

"……."

남자의 이마에 잠시 주름살이 생겼다가 펴졌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어버린 나머지, 마음이 완전히 말라붙어 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불량하고 비정상적인 아이와도 대화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아이도 대화 방식이 힘들지라도 대화는 가능할 것이다.

"나는… 눈을 마주치면 안 돼요. 사람하고."

"무슨 말인가요?"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보여요."

그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남자는 처음으로 성공한 대화에 흡족했다. 그 뒤 2년에 걸쳐 그는 소녀와 대화를 나눴고, 여러 가지 것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그녀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새하얀 벽지. 멋진 책상과 편해 보이는 의자. 기분이 좋아지는 포근한 온도. 하얀색 가운을 입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남자. 매번 ‘어쩔 수 없이’ 진료실까지 왔지만, 그는 여전했다. 이런 대화는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변해버릴 것 같았으니까.

"당신, 지금…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 줄은 알고 있어요?"

"그건……."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무엇이 웃기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다음 오는 소녀의 말로,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우습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정작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남의 정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녀의 말은 지당했다. 이것도 벌써 몇 번째인가. 그때마다 그는 씁쓸하게 웃곤 했다.

"그렇다면, 지금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미안해요. 일부러 아픈 짓은 하고 싶지 않아요."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거짓이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게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당신은 알지 못해요.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진심을 알아버린다는 건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니까.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속삭였다. 물론 그것 때문만도 아니지만. 처음 이 말을 꺼냈을 때, 그녀는 그에게 자신과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는 그 말을 믿지 못했다. 누가 그런 생각을 자기가 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스스로 느껴봐요.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얼마나 깨끗한 생각, 아니면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러자 그의 입술에 지친 미소가 얽혀졌다. 그것은 그녀도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미소였다. 그는 항상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저 미소를 가면처럼 얼굴에 씌우곤 했으니까. 슬픔은 웃음의 생명을 죽여 덧없는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런 웃음을 지을 바에는 차라리 울어버리는 것이 좋을 텐데…….’

그녀는 그의 지친 미소를 볼 때마다 마음에 묘한 굴곡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안타까움이나 애처로움. 거기에 그런 이름을 붙여 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해명할 수 없는 답답한 기분이 안개처럼 해답을 흐려버린다.

그는 무엇 하나 집착하지 못하는 자신과 달랐다. 의사라는 사명으로 자신을 구속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힘들 때는 나만 이렇게 괴로운 게 아니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위안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키지 못하고 이기지 못했을 때 더욱 상처 입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가 그녀를 관찰한 것처럼, 그녀도 그를 관찰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과거를, 기억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모두가 다가와도 그는 늘 뒤로 빠져 혼자만 있고, 자신의 것이 될 성 싶어도 굳이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겉보기에 쿨하고 근사하지만, 실상은 하나도 그렇지 않았다.

그는 단지 행복이 무서운 것이리라. 괜히 친구나 소중한 것을 만들면 또 빼앗긴다. 무언가를 믿으면 독하게 배신당한다. 그런 아픔을 겪지 않으려고, 잃는 게 두려운 듯이, 그는 처음부터 불행 하려 애썼을 뿐. 그래, 그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 사람」만 보더라도….

"…그거 그만두십시오."

목소리에 불쾌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에 되물어 보지 않았다.

"이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읽었던 게 아니라 사람의 기억을 보고 있었던 거군요."

"보는 게 아니라 깊이를 느끼는 거예요."

그녀는 부정하지 않고 틀린 부분만 수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저에게 그런 건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그녀는 그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그의 요구가 개구리에게 개굴개굴하는 걸 그만두라고 하는 것처럼 순리에 맞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화가 났다.

"왜 그런 말을 하죠?"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했습니까?"

"예."

너무나 간단히 대답하는 그녀를 보면서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는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기억을 느끼는 거라고요? 좋아요, 당신이 말한 대로 읽거나 보는 게 아니라, 느낀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자신의 말보다 기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의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습니까?
자신의 존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시당하는 걸 깨닫고 기뻐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한 번이라도 당신이 저에게 믿음을 준 적이 있었나요?
대체 뭡니까? 의심하려면 의심해라, 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당신 말대로 나는 의사입니다. 나 자신의 감정만으로 사람을 무조건 신뢰할 수 없단 말입니다."

감정적으로 변한 그는 그동안 마음속 깊이 웅크리고 있던 말을 일시에 쏟아냈다. 쏟아진 감정과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설마 당신은 제가 당신을 의심하길 원하는 겁니까?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을 읽는 게 아닌가 하고 계속 두려워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겁니까?"

그녀는 무표정하게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뭐…!"

기가 막힌 나머지 말이 도중에 멈춰 버렸다. 결코,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천천히 걸어서 맞은 편에 섰다.

"당신이 의심하기를 바라고, 마음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기를 바라면… 안 되느냐고 말했어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고 있는 겁니까?"

떨리는 팔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그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태연했다.
왼손으로 오른팔을 감싼 자세로 그녀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시선을 보낸다.

"그것이 당신의 바람… 아니었나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당신은!"

"…말없이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하지 않았어요?"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눈앞에 있는 그녀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한 그의 단언에 그녀는 미소 지었다.
무지한 어린아이의 반박에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어머니처럼.

"당신은 의사예요. 남에게 자신을 나눠줘야 하는….
하지만, 당신은 누군가에게 주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녀의 미소는 냉소에 가까워졌다. 담담히 이어지는 언어의 나열이 그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결코, 그렇게 될 리 없겠죠. 당신은 잃어버린 게 많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공허감을 가득 메워줄 수 있는 상대를 원하는 거 아닌가요?"

그녀는 멈추려 하지 않았다. 독심술사가 되어주겠다는 듯이 그의 기억에서 느껴버린 모든 것을 남김없이 실토했다. 마치 고해처럼.

"「그녀」라는 사람도 당신이 잃어버린 것 중 하나겠죠.
그래서 당신은 무시해도 좋았을 「그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을 하나씩 확인했어요.
예전에 「그녀」와 함께 있었던 자신과 그들을 비교하면서.
당신은 그들을 부러워했고, 동시에 그들을 경멸했어요.
…자신보다 나을 게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녀는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녀」를 앗아간 ‘J’를 원망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나요?"

그 순간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얼굴이 왼 방향으로 돌았다. 그가 그녀의 뺨을 때린 것이다. 피부가 맞닿았던 부분이 붉게 물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통증이 달리는 뺨을 손으로 감싸지 않았다. 그저 처연한 표정을 허물지 않은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섰을 뿐.

그는 고통스럽게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음이 완전히 헐벗겨져 버린 듯한 치욕감에 몸을 떨면서.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악몽은 추억을 먹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녀는 자조하듯이 웃었다.

"후후, 내가… 당신의 아픈 추억 속을 헤집고 다닐 악몽이 될까 봐 무서워요?"

"………."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힌다. 마치 서로에게 주어버린 상처를 살펴보듯이.
그녀의 입에서 흐르는 피가 턱 아래로 수려한 선을 긋는다.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원하고 있어요……."

꽤 늦은 시각이 되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진료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그녀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마 다시는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는 그녀라면 이제 넌더리가 날만도 할 테니까. 그는 그렇게 억지로 납득하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나를 원하고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말을 끝내 부정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마음속이 텅 비워진 듯한 공허를 느낄 때 그녀라면 그걸 메워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차가운 손길이 닿을 때 마음은 오히려 따뜻해졌다. 그녀의 능력을 두려워했음에도 결국 그 능력에 계속 의지해왔다. 분명히 ‘나’는 ‘그녀’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사랑 같은 게 아니야. 단지 소유욕일 뿐이지.
옆에 있기만 해도 좋고, 그것만으로 고독을 떨쳐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허무함과 고독을 메우기 위해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아무것도 줄 수 없으면서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자신의 곁에 둔다는 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그렇기 때문에 그녀와 더 이상 가까워져선 안 된다. 집착할 필요도 없다. 사람은 진심보다 진실을 좇아야 할 때도 있다.

책상 오른편 모서리 위에 얌전하게 놓인 하얀 책자를 흘깃 쳐다본다.
정신과의사와 환자들을 위한 핸드북이다. 한 문장이 눈에 뛰었다.
「환자와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면 안 된다. 환자는 정신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환자를 교정하기 위한 사람이지 동화되기 위한 사람이 아니다.」 라고 쓰인 경고문.

설령 자신이 원하는 걸 무조건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처음처럼 그저 고독에 익숙해지면 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선 이것이 ‘정상’이었다.

남자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물론 그는 의사였고, 그녀는 환자였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에서 그는 누구보다 먼저 치료되어야 할 ‘환자’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