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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그 해 여름은...

2010.05.02 10:30

게임 조회 수:351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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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 여름은 무척 더웠소.


 사상 최악의 폭염이라 불렸던, 그 해 여름. 그 때의 기억이 아직까지 나에겐 남아있소이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구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나 잘 기억이 나진 않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해의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는 사실 뿐이오.


 ...내 사랑. 그대는 지금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는가. 나는 언제나 당신만을 생각하오. 오늘도, 당신과 내가 만난 이 자리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오.


 그대의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이제는 빛이 바래 누렇게 변한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들여다본다.


 이제는 서서히 희미해져가는 기억. 그 기억은, 그 해 여름의 아지랑이처럼 이제는 서서히 아른아른 거리기 시작한다.


 그대, 기억하오. 나 당신과 반드시 먼 훗날 다시 만나 저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던 것 말이오. 나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오. 그대가 나에게 수줍게 말하던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그 본심을.


 나는 그것을 잊지 않았다오. 바다를 보고 싶다는 그대를 위해 바다 소리를 가지고 왔소. 그 때 본 그대의 표정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소.


 소나기가 내리고 그리고 그 소리에 매미울음소리가 묻어나오던 그 때를 그대는 기억하오. 나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대가 빗속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나는 손을 내밀었고, 그대는 잡았소. 그때 내 얼굴을 적셨던 건 비였는지 눈물이었는지 이제는 희미해져갈 무렵, 그대가 내게 찾아왔소.


 아주 멀리, 이곳을 벗어나 멀리 유학을 간다는 그대의 말. 내가 그때 그대를 붙잡았으면, 그대는 내 곁에 있었을까 한 번씩 생각하오.


 그대 기억하오. 그대가 내게 준 물망초 한 송이. 나는 아직까지 그것을 잊지 못하고 있소. 나를 잊지 말라는 꽃말처럼, 나는 그대를 잊지 않고 하루하루 그대를 떠올리고 있소.


 그 해 여름의 아지랑이처럼, 그때의 기억은 아른아른 거리고 있소. 하지만 잊어지지는 않다오. 우리가 함께했던 그 시간이 그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상, 나는 그대를 잊지 아니할 것이오.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났는지 이젠 더 이상 셀 수가 없소. 그리고 그대와 있었던 추억을 열거하려면 얼마나 오래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소.


 그대, 그대는 지금 나와 같은 하늘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어디선가 바라보고 있을지 잘 모르겠소. 허나 그대가 나를 잊어주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오.


 오늘도 그대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지갑을 열어 사진을 보오. 이제는 너무 많이 손이 가 얼굴마저 흐려진 그 사진 한 장을, 나는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을 것이오.


 이제 다시 떠나갈 시간이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곳은 여전히 변함이 없구려. 그래서 나 그대를 여전히 기다리는 것이오.


 그럼 이제 떠나가겠소. 그대가 올 때까지, 나는 이곳을 찾아오겠소.




 노인이 자리를 떠났고, 몇 시간 후 한 노인이 장소를 찾아왔다. 앞이 보이지 않는지 지팡이를 든 채 힘겹게 산길을 올라 이곳을 찾은 노인은 앞에 있는 넓적한 바위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대, 기억합니까. 우리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신과 내가 이곳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그 때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었죠.


 어째서 그대는 한 번도 이곳에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까. 나는 언제나 이곳을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데, 그대는 어째서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까. 나를 잊으신 겁니까. 눈이 서서히 잠겨갈 무렵, 그대에게 준 물망초를 그대는 잊으신 겁니까.


 나, 사실 빗속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를 바라보며 울음을 참는 그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도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빗물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였겠지요.


 당신을 잊지 않기 위해 당신을 항상 바라보았습니다. 멀리서, 멀리서, 이제는 흐려져가는 눈으로 그대를 내 눈 속에 담아두었습니다.


 내겐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당신과 찍었던, 유일하게 남은 사진 한 장. 언제나 그대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습니다. 나, 눈이 보이지 않아 사진 속 당신의 얼굴은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내 기억 속에는 그 때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나는 그대가 내 눈에서 사라지는 것이 무서워 도망쳤습니다. 당신은 왜 날 잡지 않으셨나요. 당신은 어째서 내가 떠나가는 것을 막지 않으셨나요. 나, 그대가 내 손을 잡았으면 영원히 그대 곁에 있었을 터인데.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내 눈이 보이지 않아 그대에게 고생을 주는 것이 나는 싫었습니다. 그것이 무서웠고, 그래서 나는 도망쳤습니다.


 얼마 후 암흑이 찾아오고, 더 이상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여전히 그대는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당신과의 모든 기억은 내 세상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그대가 아지랑이처럼 보였는데, 그것이 내 눈의 착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기억은 여전히 또렷합니다. 보이지 않기에, 아무것도 보는 것으로 추억을 남길 수 없기에 그대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목소리가 잘 생각나지 않아요. 무섭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당신의 목소리를 잊어서, 더 이상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이.


 다시 오겠습니다. 당신이 이곳을 찾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이곳을 오겠습니다. 나를 잊지 아니하셨다면, 아마 언젠가 이곳을 찾겠죠.


 당신, 당신은 지금 나와 같은 곳에 있나요.




 앞이 보이지 않는 노인이 힘겹게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몇 일의 시간이 지났다. 둘은 계속해서 엇갈렸다. 


  이 해 여름은 무척이나 시원하였다. 바람도 선선하고, 더워질 무렵이면 비가 자주 왔다.


 맴-맴-


 후두둑 후두둑


 매미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울려 퍼졌다. 기묘한 소리가 산 속에 울려 퍼졌다.


 맴- 맴-


 후두둑 후두둑


 오늘은 앞이 보이지 않는 노인이 먼저 찾아왔다. 노인은 자신의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으로 만졌다. 노인은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비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하였다. 허나 노인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쏴아아- 쏴아아-


 맴- 맴-


 노인은 자리를 지켰다.


 그 때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노인이 입을 열었다.


 “당신인가요. 당신, 지금 그곳에 있나요.”


 “나, 이곳에 있소. 줄곧 이곳에서 그대를 기다려왔소.”


 비가 그쳤다. 그리고 매미 소리도 멈추었다.


 모든 것이 활짝 폈고, 세상이 맑아졌다.


 두 노인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이었고, 그 기다림이 끝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시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