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언덕

2010.05.02 07:58

악마성루갈백작 조회 수:331 추천:1

extra_vars1 114550-1 
extra_vars2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이 이야기는 어차피 환상에 불과합니다
실존하는 어떤 개인, 단체, 지명, 사건과도 관계 있을 리 없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언덕.
아니,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언덕.
그 언덕에 무성히 뿌리내린 이름 모를 풀들을,
나는 지금 깔고 앉아 있다.
…내 이름이 뭐냐고?

어차피 한번 스쳐 지나갈 뿐일 인연일 텐데, 그런 걸 기억하고 있어도 아무런 소용도 없을 거야.

언덕.
멀리 보면, 이 언덕보다 높은 산이 있고,
그 산 밑으로 칙칙한 색의 그다지 높지는 않은 건물들이 빽빽하고,
그 땅 위에 사뿐히 올라앉아 있는 붉은빛의 하늘.
뒤를 돌아보면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희고 작은, 집 한 채.

너무나 조용하고,
또한 평화롭기 그지없다.
세상에서 음(音)이란 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소멸해버린 것 같은 공간.
누군가는 그것이 꺼림칙하게 느끼겠지만,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그것이 내가 여기 앉아 있는 이유 중 하나.

다른 하나는, 단순히 혼자 있고 싶었을 뿐.
상대에 관계없이 타인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져 가는 자신을 느낀다.
나는 상대의 마음을 전부 머리로 생각하려 한다.
때때로, 그것이 괴로워지곤 한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아무도 오지 않을 법한 곳에 와서 상념을 정리하는 것이다.

만일 여기서 살 계획이 있다면 어떤 의미에선 탁월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도시의 삭막함보단 이런 곳에서 느긋하게 일상을 만끽하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겠지.
설령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하더라도, 꿈을 꾸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아.
알고 있으니까 그것을 믿는 일을 자신에게 허락하는 것이다.

다시 언덕 아래로 눈을 떨어뜨린다.
칙칙하고, 전혀 예쁘지 않은 건물들.
대자연의 아름다움, 그 조화를 한껏 일그러뜨리는 그것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모두 인간들의 짓이지만.
인간이란 만족을 모르는 생물이라 했던가?
한참을 혼자서 대자연의 바람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던 도중,

"안녕하세요."

저녁노을의 살랑이는 바람에 실려,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와,
나는 조금은 별생각 없이 뒤를 돌아보았고,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났다.

나이는 20대 초반쯤 돼보였을까.
검은 긴 팔 티에 하얗고 기다란 원피스.
허리까지 약간 못 미치는 긴 흑빛 머리칼.
청초하고 기품있어 보이는 표정.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나뭇결 손바구니.
흠, 왠지 부잣집 아가씨처럼 보이는데….
그런 그녀는 확실히 나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저기. 안녕하세요."

누구일까? 이 주변에 사는 사람인가?
나는 그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대답이 나올 기색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일어선 채로 조금 안절부절못하더니,
살며시 내 쪽으로 발을 옮겼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여전히 나는 침묵만을 그녀에게 던졌고,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그녀는 자신의 몸을 땅 위의 이름없는 풀에 내맡겼다.
살며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칼을 흔들어댄다.
나에게 그림 소질이 있었다면 당장 스케치하고 싶을 정도로 잘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위태로운 듯한 모습또한 엿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름, 가르쳐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실망한 듯한 눈빛을 저녁노을이 비춰주었다.

"사는 곳은…?"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그 여자의 방긋 웃는 얼굴이 비쳤다.
왜 웃는 거지? 방금 그건 화를 낼 상황이 아니었나?
모르겠다. 전혀 알 수 없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추론은 특기지만, 사람의 마음을 추측하라고 하면 난 바로 자신이 없어진다.
정말 모르겠다. 타인의 마음은, 한없이 내 이해의 범위를 초월하고 있다.

"…왠지 바보 같아 보이는군요, 둘 다."

도무지 알 수 없었기에 직접 이유를 물어보았다.
내가 처음으로 말을 하자 여자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것은 찰나에 사라졌다.

"그러네요. 한쪽은 대답도 없는 질문을 계속 하고 있고,
다른 쪽은 뭘 물어보든 대꾸하지도 않으니까…."

그녀의 의문은 너무나 지당한 것이며 동시에 나로선, 그것을 부정할 근거가 전혀 없다.
그건 확실한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피식 웃고 말았고,
여자는 뭐가 더 재미있어졌는지 쿡쿡대고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을 본 난, 내가 아는 누군가와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이 든 동시에,
추억 속에 잔재한 기억이 슬며시 수면으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겨우 웃음을 진정시킨 여자는 또 다시 내게 물음표를 던졌다.

"이 언덕에 자주 오세요?"

이유야 어찌하든 간에 일단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좋아한다고도 말했다. 이 언덕을.
의외로 생각했던 것보단 말이 술술 나오는군.

하지만, 왜였을까.
실제론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말을 덧붙인 걸까.
단순히 형식의 범주를 따지지 않았을 뿐인가, 그렇지 않으면 변덕인가, 혹은 진심이었나?

"저도 이 언덕을 좋아해요."

특별히 어떠한 대답을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난 경험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적은 난생처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이걸로도 나쁘지 않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 라는 것도 아주 가끔은, 마음이 평안해진다.
생각해보니, 그런 간단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기분 좋죠? 여기에 이렇게 앉아 있으면."

긍정 의미의 침묵.
여자는 내 침묵의 의미를 알아낸 것인지, 빙긋 웃어 보였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짐작한 사람이 있었다니….
오늘은 놀라움의 연속인듯하다.
그러나 착각이었을까. 그때 그녀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던 것은….

"저 하얀 집 알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여자는 뒤쪽을 가리켰다.
뒤쪽에는, 아까 한번 눈에 새겨 두었던 그 집이 보였다.
확실히 내 뒤편에 하얀 집이 보이긴 했다만… 누가 살고 있었나 보군.

솔직하게 말하자면, 약간은 놀랐다.
누가 산다고 해도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젊은 여성이었을 줄은….

말 그대로 작고 아담한, 그리고 앞뜰에 놓인 주인 없는 개집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리 큰 집은 아니었지만, 살기엔 좋을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주변과의 교류는 그다지… 없었던 것 같지만 말이지.
그 집을 잠깐 보았다가 다시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는 저기서 살고 있어요. 시간 나면 언제든지 들러 주세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가고 싶지 않다던가 하는 이유는 결단코 아니다.
이유라고 한다면… 여자가 내가 알았던 ‘그녀’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모 같은 게 아니라, 분위기와 웃는 모습, 그리고 추억 속에 망각한 상흔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도 아주 약간, 가슴이 따끔거리고 있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핑계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은 가지 않겠다는 거니까.

"…하긴, 오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이번에는 목소리로부터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왠지 모르게 죄악감이 느껴졌다.
나는 비록 거짓말을 해서라도 가보겠다는 말을 해야 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일까. 이렇게까지 이 여자를 고독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그러나 그것보다, 난 그녀의 이름부터 먼저, 알고 싶었다.

"…제 이름요?"

약간의 공백. 그리고.

"곧 사라질 존재 따위의 이름은…
사치일 뿐이에요."

곧 사라진다, 라고?
당장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잠깐의 시간이 지난 나서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난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6개월 전에, 의사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어요."

물어보지 않은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는 그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차마 막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나 자신도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그것이 단순한 변덕이었는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앞으로 6개월이 한계다.’ 라고요."

말꼬리를 흐리는 그녀.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너무도 차갑고, 무섭고, 슬픈 기운이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왜 그런 이야기를 일부러 나에게 하는 걸까?
우리는 한번 마주치고 두 번 다시 만날 일도 없을 터인데….

"게다가, 아주 조금이지만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남들에게 옮길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이번에는 내 눈치를 보면서 말끝을 더듬었다.
몰래 살짝 몸을 옆으로 옮기려 했지만,
그런 그녀의 행동이 내 양심을 살짝 찔렀다.
그래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알기나 해?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듣고도 도망치지 않으시네요. 처음이에요.
고마워요. 정말로 고마워요."

정말로 고마워하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말뜻은, 병이 난 이후로 죽,
저 하얀 집에서 혼자 살아왔었다는 뜻일까.

단 혼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일도 없이, 살아왔었던 건가….
그렇다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단지,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겠지.
그 상대가 우연히 나였다, 라고 하면 앞뒤 내용은 맞는다.

타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이 언덕을 찾은 나와,
타인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언덕을 찾은 그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무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정말로 외로웠어요.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정말로…."

그러나 그것은 긴 인생의 끝에서 친구와 가족과 아는 사람 모두를 떠나보내고 이 세상에 남겨진 노인과도 같았다.
깊은 슬픔에 물들여져 지치고, 외로움에 잠기면서 희망도 꿈도 무엇하나 갖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
너무나 허무한… 목소리.

어색한 기분. 왠지 모르게 초조해졌다.
미묘하게 대화가 끊어진다. 어째서일까.
가슴의 고동이 크게 들린다.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는,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걸까?

"날개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어요?"

난데없이, 그리고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녀의 질문.
비록 제대로 된 대답을 한 적은 별로 없지만,
무엇인가 물어볼 때 말끝을 살짝 올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달고 부드럽다. 그래서 기분 좋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인간이 날개가 없는 이유는, 날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위에 항상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러니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고."

그러나 당신이 날개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이유는 아닐 것 같군요.
어떤 확신을 가진 건 아니지만, 왠지 느낌상 그럴 것 같아요.
그렇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전, 아니에요.
날개가 있다면, 이 병에서 도망치고,
다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보통 사람들이 당연하게 느끼는 그런 것들을…
어째서 전 꿈속에서만…."

그녀가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바람도 그것을 느꼈는지 조용히 불어와,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주고는 다시 날아갔다.
그렇게 얼마 동안을 혼자서 울던 그녀 곁에 있던 나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바람이 차네요. 이제 밤인가 봐요."

조금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처음에 가지고 온 나뭇결 손바구니의 뚜껑을 열고는,
녹색 테두리가 그려진 하얀 손수건을 꺼내어 자신의 눈과 뺨을 닦아냈다.

"아까도 말했지만,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선물이라도 드려야 될 텐데…."

난 당신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말해보았지만,
그녀는 들은 체 만 체하고 손바구니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어 아까 그 손수건에 올려놓고 내 앞에 놓았다.

"음, 이런 걸로도 충분할까요…?
집에 남아있던 거에요.
이제 필요 없으니까, 대충 가지고 나왔는데…
선물로 드릴게요. 감사의 표시니까, 드셔 주세요."

잠시동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젠 필요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정말로, 아무런 미련이 없을까, 그녀는.
아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나라도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대로 끝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그녀를 가게 해선 안된다.

"예? 방금 뭐라 하셨어요?"

'말 한마디…. 단지 그것뿐인데도, 그게 그렇게 힘들다.'

뭐라 말을 하면 좋을까. 살아 있다는 건 대략, 편하지 않다.
행복하게 사는 데에는 노고가 필요하고,
선택을 잘못하면 불행해지거나,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경우가 된다.
그러나 이건 중요하지 않다. 이런 게 아니다. 내가 해야 할 말은 이게 아니다.

머릿속은 정신없이 어지러운데 가슴은 싸하다.
차갑다. 혼란스럽다. 그냥 모조리 멈춰버리고 싶은데,
어느새 그 멈추고 싶다는 생각마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시 혼란으로 돌이키고야 만다.
현기증마저 느낀다. 평소 빈혈 기는 찾으려야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건강했건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이없을 정도로 싱겁게 찾아와버린다.

어떤 말이 적합할지 알 수 없다.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답답함만이 가슴을 채울 뿐이다.
넌 위선자(僞善者)인 동시에 위악자(僞惡者)다.
대체 할 수 있는 게 뭐냐? 이 무능한 녀석이.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자…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내일도 올 수 있으면, 꼭 올게요.
더 맛있는 것, 갖고 올 테니까…
꼭, 올 테니까…
오고 싶으니까…."

점점 물에 녹아내리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있는 힘껏 나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하얀 집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녀가 없어지니, 갑자기 언덕이 확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멍하니 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너무나도 조용한 이곳이 불안했다.
불과 아까까지는, 그렇게나 고요함을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그녀 자신의 생애 마지막 대화상대였을 것이다.
비록 전하고자 했던 것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슬픔과 외로움은 마음으로 전해져 왔었다.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에도,
나는 항상 붉은 저녁이 노을지는 언덕 위에서,
혹시나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올지 모르는 그녀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영원히 오지 않았다.
단지,
녹색 테두리가 그려진 하얀 손수건만이,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추억이란 이름의 잔재 속에 자리 잡은 상흔이 하나 더, 늘어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