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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단편]세상의 끝, 너와 둘이서

2008.01.14 22:03

과자 조회 수:402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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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흘러 날이 저물고 있었다. 지는 해가 비추는 마을의 풍경은 삭막함을 더했다. 마을 전체가 주홍빛에 물들고 있었다. 집도, 나무도, 풀도, 모든 것이 주홍빛이었다. 그 가운데를 한 소년과 소녀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등 뒤로는 긴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소녀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걸음을 멈췄다.


 “공원이다….”


 그들 앞에는 주홍빛에 물든 공원이 있었다. 이곳 역시 피해를 받았는지 마을과 다를 바 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미끄럼틀을 비롯한 놀이 기구들은 모두 망가져 있었고 나무란 나무는 모두 다 쓰러져 있었다.


 “이곳도 마찬가지네.”


 소년이 말하며 소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뒤에는 여전히 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한참을 둘러보던 둘은 느린 걸음으로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모래와 재가 섞여 발밑에서 밟히는 느낌은 좋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른 위화감. 어색한 느낌이었다. 공원 안은 바람소리와 흔들리는 그네의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끼익-끼익-


 녹슨 그네가 내는 소리는 소년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소년의 얼굴에는 다시 불안한 기색이 나타났다.


 “여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소년이 안절부절 못하며 말했다. 소녀를 돌아보았지만 소녀는 집에서 나온 후로 아무 말도 없었다. 영혼이 비어버린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며 소년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소년은 뭔가를 발견했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아 하고 소리쳤다.


 “저기, 우리 호숫가에 가지 않을래? 예전에 자주 갔던 데 있잖아.”


소년의 말에 소녀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아무 생각도 없는 무표정이었다. 한참을 그 상태로 있던 소녀는 그제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호숫가를 향해 앞장서 걸었다. 그리고 그 뒤를 소녀가 따랐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져 하나가 되었다.




 공원 옆에 위치한 마을 공용의 호숫가. 지는 노을빛에 물든 호수면은 아름다웠다. 역시 아무런 생명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바람에 잔잔히 이는 호수면은 조금이나마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두 사람의 그림자는 더욱 길어져 있었다. 호숫가는 거의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쓰러진 나무도 얼마 없었고 호수의 물도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이곳만 누군가가 보호해준 느낌. 마을과는 상반된 분위기의 장소였다. 왠지 모를 편안함이 가득했다. 소년의 얼굴에서 불안함이 사라졌다.


 “….”


 소년과 소녀 모두 말이 없었다. 그저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릴 때 곧잘 함께 놀았던 추억의 장소.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과 다른 게 없었다. 예전과 같은 똑같은 풍경. 주변의 나무들이 풍기는 풀냄새와 호수의 상긋함. 소년은 추억에 잠겼다. 정말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소녀와 신나게 놀았다. 유치원이 끝나고 향하는 곳은 언제나 공원 옆의 호숫가였다. 주변의 친구들이 놀려도 개의치 않았고 부모님들께서도 둘의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하셨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소녀의 부모님은 세상을 떠났다. 비가 내리는 날, 소녀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차를 몰고 가던 중이었다. 운이 없었다. 빗물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웠을 뿐더러 한시 빨리 소녀에게 가기위해 과속을 했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던 중 반대 차선에서 지나가던 덤프트럭과 충돌했다. 수 십 톤의 트럭과 승용차가 충돌한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승용차에 타고 있었던 소녀의 부모님은 즉사했다. 고속도로 전용카메라에 의해서 과속이라는 판정이 났기 때문에 소녀의 가족은 자기 과실로 어떤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이로 인해 소녀는 깊은 실의에 빠졌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소녀는 타인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소년과도 더 이상 놀지 않았다. 소년은 며칠이고 기다렸다. 소녀의 마음이 돌아올 때까지. 하지만 인류가 멸망해버린 지금도 소녀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년과 소녀는 계속 걸었다. 제각기 다르게 생긴 나무의 연속. 소년은 나무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무은 항상 그곳에 서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을 맞고, 비에 흠뻑 젖으면서도 서있는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그 모양이 변하고 하늘 위로 뻗어갈지라도 내리뻗고 있는 뿌리만은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호숫가 주변의 나무를 둘러보다가 더 이상 나무가 없음을 알고 정신을 차렸다. 그 때, 한 그루의 나무가 소년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 나무는….”


 소년은 호수 옆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성인 두 명의 팔 둘레만큼 굵은 밑동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가지들, 거기에 달린 나뭇잎. 봄의 노을빛을 받으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소녀는 소년이 방향을 틀자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소년이 다가가고 있는 나무를 가만히 응시하였다.


 추억속의 나무. 소녀와 함께 즐거웠던 나날이 배어있는 나무.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나무. 나무에 가까이 다가간 소년은 나무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그때의 추억이 손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소녀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소녀가 호수변을 뛰어다닌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소년은 눈을 뜨고 손을 내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 소녀에게 다가갔다. 무언가 결심한듯한 다부진 표정. 소녀는 여전히 멍한 그대로 나무를 쳐다보고 있었다. 소년의 눈앞에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나무로 다가갔다. 하늘은 완전히 노을로 가득 차고 있었다. 온통 주홍빛이었다.


 “있잖아,”


 소년이 말했다.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있잖아, 이 나무, 기억 나? 이 나무에 기대서 누가 더 크나 비교했잖아. 그거 가지고 싸우기도 하고.”


 소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소년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땐 정말 행복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행복했는데. 우리, 정말 가까웠는데.”


 소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상에 잠긴 듯한 행복한, 한편으로는 슬픔에 잠긴 목소리였다.


 “…었어.”


 소녀가 속삭였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던 소년도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소리였다. 소년은 옆에 서있는 소녀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 상태로 한참을 있다 소녀가 조금은 커진 목소리로 말했다.


 “…집안에, 식탁위에, 액자의 사진 속에서, 엄마하고 아빠가, 웃고 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나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어.”


 소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울고 있었다.


 “그동안, 정말 힘들었는데.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그래도 참았어. 나 때문이었으니까,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으니까. 혼자서 열심히 할 거라고, 엄마, 아빠가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딸이 되겠다고, 맹세 했어.”


 땅 위로 소녀의 눈물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졌다. 소년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근데, 너무 힘들었어. 혼자라는 게, 너무 외로웠어. 엄마, 아빠에 대한 미안함이, 원망이 됐어. 어떻게 날 혼자 남겨둘 수 있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소녀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갔다.


 “내 옆엔 아무도 없었어.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는 언제나 혼자였어. 아침에 혼자 일어나서, 혼자 아침밥을 먹고, 혼자 등교를 하고, 혼자 집에 돌아와서, 혼자 공부하고, 혼자 집을 치우고, 혼자 잠이 들었어. 난 언제나, 그날 이후로 항상, 혼자였어. 그게, 그게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어서…. 그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액자 속의 엄마 아빠는 웃고 계셨어. 나는 뭐야. 나만 울상이잖아. 나만 힘들잖아.”


 소녀는 울음을 참으려는지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은 막을 수 없었다.


 “…나, 나는 왜 살아있는 거지? 왜 혼자서 힘들어해야 되는 거냐고. 나는 단지, 단지 혼자 있는 게 싫었을 뿐이야. 그래서,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했어. 빨리 와달라고, 아프다고,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어. 난 아무 잘못이 없단 말이야….”


 소녀의 울음은 오열로 변해갔다.


 “그런데, 그런데 난 또 혼자야…. 다시 혼자가 되 버렸어….”


 소녀는 오열했다. 평생을 걸려 울어야 할 울음을 한번에 토해내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인 채 세상이 무너져라 울었다. 소년의 눈에 들어온 소녀의 등은 작아 보였다. 여느 여자아이와 다를 것 없이 조그마한 등. 혼자라는 외로움에 지쳐 떨리고 있는 작은 몸. 평소에 항상 자신감에 넘치던 소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 소년은 소녀를 끌어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될 것만 같았다. 지금 소녀를 끌어  안으면, 자그마한 몸이 유리처럼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어느새 해는 지고 하늘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소년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혼자가 아니야.”


 소년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뭔지 모를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네가 스스로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부터, 너는 혼자가 아니었어.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었어.”


 소녀가 고개를 들어 소년을 쳐다보았다. 소년은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위로 들고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울지 말란 말이야. 지금 이 세계엔 우리 둘밖에 없잖아.”


 소녀의 울음이 그쳤다.


 “나, 나는, 네가 의지할 수 있는, 그,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소년의 부끄러움이 극에 달했다. 얼굴이 새빨개진 소년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동자세로 서있었다. 그런 소년의 모습을 한참 보던 소녀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풋, 아하하!”


 소녀는 풀 위에 주저앉으며 웃었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정말 기쁜 듯이 웃었다. 소년은 당황했다.


 “그, 그 반응은 뭐야! 사람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진짜! 울다가 웃는 게 어딨어!”


 “웃긴 걸 어떡해, 킥킥. 얼굴 빨개진 것 좀 봐. 푸하하-”


 소년은 그 자리에 선채로 굳어버렸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하지만 단 하나, 소녀가 웃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만은 기뻤다. 자신의 말에 소녀가 웃어줬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웃어준다. 돌아왔구나, 드디어. 소중한 사람이.


 “쳇.”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소년은 소녀의 옆에 앉았다. 어느새 소년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져 있었다. 날은 어두워져갔다. 호숫가의 큰 나무 옆에 소년과 소녀가 앉아있다. 소년 옆의 나무기둥에는 그들이 키를 재려고 새겨둔 자국이 있었다. 소년은 이 자국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추억이 머리를 스쳐간다. 소년과 소녀과 손을 잡고 호숫가를 거닌다. 그리고 항상 함께 있자는 약속을 하며 새끼 손가락을 건다. 이 모든게 이젠 끝인줄만 알았는데, 지금 소녀는 소년 옆에 앉아있다. 그 위를 달빛이 비춰준다. 달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는 맞대어져 있었다.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는 형상. 어색하지 않았다. 자신의 옆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이 들자 모든 걱정이 사라져갔다. 아니, 행복했다고 할까. 그러고 있기를 수 십분, 소년은 입을 열었다.




 있잖아-


 


 응?-


 



 “이 세상의 끝에선 항상 너와 함께 있을게. 이젠,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할게.”


소년이 말했다.


 


 


 소녀의 대답은 없었다. 단지 소년의 손을 잡고 소년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편안하고 행복한 얼굴이었다. 그 위로 저녁 하늘의 달빛이 이들을 축복하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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