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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단편]세상의 끝, 너와 둘이서

2008.01.14 21:58

과자 조회 수:463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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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이 눈부셨다. 지나간 악몽을 휩쓸어가듯 따뜻한 봄바람이 넓은 대지를 스쳐갔다. 그러나 정작 땅 위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잿더미가 되거나 무너져버린 집들뿐이었다. 지붕이 날아간 집, 벽이 무너져 내린 집, 담이 가라앉은 집. 도로는 군데군데가 파여 있었다. 폭탄이라도 맞은 것 같은 깊고 큰 구멍도 있었다. 마을 안에는 생명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시간이 정지해 버린 듯한 정적의 풍경. 움직이는 것은 바람뿐이다. 바람이 불면 잿더미에 반쯤 묻힌 풀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늘하늘 흔들렸다.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마을과 봄의 파릇함이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푹-


 한순간 어디선가 부드러운 흙을 파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마을의 풍경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여전히 불어대는 바람과 흔들리는 풀, 무너져버린 집들 뿐.


 푹- 푹-


 소리가 잦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봄의 풍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때였다.


 후두둑-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사람의 머리였다. 중학생 정도 되는 사람 크기의 머리. 마을의 풍경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몇 차례 끙끙대던 머리의 주인은 안 되겠던지 다시 구멍 속으로 들어가 머리 위의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아니, 흙이 아니었다. 잿더미, 전쟁의 잔재였다. 잿더미에 묻혀 갇혀버린 것이다. 재를 파내기를 여러 번, 드디어 사람이 나올 수 있을만한 크기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이윽고 구멍의 둘레에 손이 얹히더니 한 사람의 몸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소년이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년. 소년은 구멍에서 빠져나온 즉시 다시 구멍 속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몸을 뒤로 젖히고 몇 분을 끙끙대던 소년의 손에는 또 다른 손이 쥐어져 있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또 다른 손의 주인이 구멍 밖으로 나왔다. 같은 나이대의 소녀였다. 소년과 마찬가지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소녀. 소년과 소녀는 잿더미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둘 다 피곤에 지친 모습이었다. 소년이 고개를 숙이자 머리 위에서 재가 떨어졌다. 소년은 머리에 손을 얹고 재를 털어냈다. 이 모습을 본 소녀는 소년을 따라 머리를 털기 시작했다. 머리를 털고, 다리를 털고, 몸을 털고, 손을 털었다. 그리고 나서 소년과 소녀는 자신이 살던 마을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평소와는 다른, 처참한 풍경.


 “마을이…사라져버렸어.”


 소년이 말했다. 소녀는 말이 없었다. 단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무너진 집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관찰을 끝낸 소녀는 잿더미 위를 걷기 시작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표정. 불안한 표정으로 마을을 둘러보던 소년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소녀가 걷기 시작하자 소년은 허둥대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소녀는 소년의 행동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다.




 걷고 또 걸어도 보이는 것은 오직 삭막한 풍경뿐이었다. 소년은 이 모든 게 꿈만 같았다. 며칠 전 집에서 웃고 떠들던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함께 있어준 엄마, 자상한 아빠, 그리고 철부지 동생까지. 이 모든게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한, 전쟁의 결과였다. 그것은 인류의 멸망. 살아남은 것은 단 둘. 소년의 얼굴에 불안이 서렸다. 소년의 걸음이 느려졌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멈췄다. 뒤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사라지자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남자가 울어?”


 소녀는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소년은 입술에 힘을 주고 소녀의 뒤로 뛰어갔다. 소녀와 거리를 두고 뒤따라가던 소년은 불안이 가득한 얼굴로 계속해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소박했던 마을. 이웃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 누군가 살고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집들이 황량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그렇게 걸은 지 십여 분이 지나자, 소년이 살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골목이 두 갈래로 나뉘기 전쯤에 위치하고 있었던 빨간 지붕의 아담한 이층집. 하지만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집이라는 것만을 알아볼 수 있는 건물이 서 있었다. 소년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걸음걸이를 늦췄다. 이윽고 소년은 며칠 전까지 자신의 집이었던 곳 앞에서 멈춰서 집을 멍하니 응시하였다. 이번에도 소녀는 소년을 따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


 소년은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TV에서나 봐왔던 인간의 죽음. 아직 어린 나이였던 소년은 절대 알 수 없었다. 여느 다른 가족 못지않게 행복했던 소년의 가족.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아빠, 엄마….”


 소년은 부모님을 부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덜컥


 문은 쉽게 열렸다. 집이 무너지면서 문고리가 망가져버린 것 같았다.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활짝 열렸다. 집 내부는 밖에서 보던 것 보다는 상태가 양호했다. 화분이 몇 점이 깨지거나 책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을 뿐이었다. 바닥에는 며칠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을 보여주듯 먼지가 얕게 쌓여있었다. 소년은 느린 속도로 익숙한 구조의 집안을 걸어갔고 그 뒤를 소녀가 따라갔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었던 거실, 부엌, 서재, 그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년은 멍한 표정으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소녀는 따라가지 않았다. 소년을 배려하려는 의도에선지 그대로 뒤돌아서 현관을 나왔다. 얼마 안 가 폐허가 된 집의 2층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절절히 느껴졌다. 어린 나이의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슬픔이었다.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을 잃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소년은 이제 자신의 곁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끝나버린 것만 같았다. 소년의 울음소리를 들은 소녀는 현관 앞의 돌계단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소녀는 그 자세에서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소년이 집 밖으로 나왔다. 소녀는 고개를 들어 소년을 쳐다보았다. 소년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괜찮아?”


 소녀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년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이 없자 한숨을 내쉰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소녀가 말했다. 소년은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소녀의 뒤를 따랐다. 둘 모두 다음 목적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소녀의 집은 소년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2, 3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소년과 소녀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하지만 둘의 성격은 전혀 달랐다. 소년은 꽤나 소심했다. 사소한 일에도 하나하나 신경 쓰고 걱정하는 아이였다. 반대로 소녀는 항상 자신감에 넘쳤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모두 해내려는 씩씩한 아이였다. 소녀는 소년의 그런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불가능이란 없다고 믿는 소녀에게 소년의 모습은 현실을 피해가려는 비겁한 모습일 뿐이었다. 그런 소년에게 소녀는 자주 불평을 늘어놓았고 소년은 그 불평들을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평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평소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


 “…다 왔다.”


 소녀의 집에 도착했다. 소년은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소녀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집을 쳐다보고 있었다.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후, 소녀는 집안으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소년이 보는 소녀의 뒷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보였다. 무언가 말하려다 포기한 소년은 현관 앞의 계단에 풀썩 주저앉았다.




 몇 분이 지나서, 소녀는 집 밖으로 나왔다. 소년과는 달리 눈이 충혈되지도 않았고 들어가기 전과 비교해서 표정에도 변화가 없었다. 가족이 사라진 것 따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무표정. 소년은 소녀의 표정에서 무언가 읽어보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


 소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말했다. 딱히 정해진 곳은 없었다. 세계 속에 단 둘만 남았다는 느낌. 이 느낌은 소년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앞으로의 일이 커다란 벽으로 다가왔다. 엄마, 아빠 없이 혼자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의구심. 소년의 머릿속을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짓누르고 있었다. 소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단 하나의 기쁨. 그것은…


 “글쎄…뭐라도 해야 될 텐데. 일단 걷기라도 하자. 우리말고도 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소년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소년의 옆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하고 소년은 생각했다. 계속 걸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본 소년은 헛된 생각임을 깨닫고 숨을 몰아쉰 뒤 소녀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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