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걸어가는 자

2008.01.06 02:11

Ladeand 조회 수:513 추천:1

extra_vars1 The Walker 
extra_vars2 126605-1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걸어가는 자[The Walker]




오후 52.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에, 그는 약속시간을 조금 지나 그 카페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기다리던 것은 적갈색 머리칼의 여성.


'세이로'는 먼저 와서 기다리던 '엘리아나'의 맞은편에 앉은 뒤, 지나가던 웨이터에게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여성은 이미 무엇인가를 주문한 것인지, 김이 모락모락 새어나오는 컵이 그녀의 앞에 놓여있었다. 아마도 홍차의 종류겠지, 라고 생각하는 그.




그가 주문한 아이스티가 나오고 나서야 여성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그런가. 사 년...만인가?"


"벌써 그렇게 됐네."




그 말에 섞이는 '아쉬움'을 여성은 애써 감추었다. 둔감하기로 소문난 남성의 앞에서 굳이 그럴 이유는 없지만, 엘리아나는 그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라도 애써 주제를 돌렸다.




"근데, 기다리던 여성에게 사과는 안 하는 거야?"


"아아, 미안하다. 시간에 맞춘다고는 했지만, 조금 일찍 오지 못한 것은 내 불찰이었다."




세이로는 순순히 사과했다. 그가 아는 한, 엘리아나는 약속시간의 최소 십분 전에는 도착해있었을 것이다. 그도 보통이라면 그것을 감안해 조금 더 일찍 도착하려 했겠지만, 카페 근처에서 무거운 짐을 옮기는 노인 부부를 도와주고 오느라 그만 시간이 늦어버렸다. 비록 선의의 행동이었지만, 약속에 늦은 것은 사실이고, 고로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다. 최소한,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지한 그와는 대조적으로 엘리아나는 가볍게 그 문제를 넘기고 다른 곳으로 말을 돌린다.




"그 말투는 여전하네."


"...고작 사 년 만에 습관은 사라지지 않는다."


"글쎄... 어떨까?"




그리고는 찾아오는 침묵. 세이로는 조용히 그의 아이스티를 마시며 소녀가 다시 대화를 재개하기를 기다린다. 그는 단지 그녀에게 진 ''이 있고, 그것에 마음에 가책을 느껴 그녀가 그를 아무런 이유 없이 '만나자'라는 제안을 수락했을 뿐이다. 그는 단지 그녀를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기에, 묵묵히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있을 뿐이었다.




엘리아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30분 전에 도착해서부터 이것저것을 생각해보았지만, 그녀는 그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낼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세이로만이 떠올라 불러낸 그녀였지만, 과연 그녀가 그에게 이 마음의 문제를 털어놓을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아니, 그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이윽고, 컵에서 모락모락 새어나오던 김이 사라질 무렵이 되어서야 엘리아나는 조용히 본론을 꺼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불렀어. 아니, 조언을 구하는 것일까?"


"...조언 같은 것은 모르겠지만, 들어주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무엇일까, 하고 그는 생각해본다. 하지만, 사 년간 제대로 된 연락도 없이 지내던 사이다. 그녀의 사정을 그가 알 리 없었다.


엘리아나는 식어버린 액체를 조금 입에 적시고, 조용히, 그의 상처를 자극하는 말을 조심스레 꺼내기 시작했다.




", 지난 삼 년간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어."


"...그런가."




세이로는 가만히 어딘가를 초점 흐린 눈으로 응시했다. 그에게는 남의 일이다. 관계자가 아닌 관조자 - '조언자' - 로서 그는 그녀에게 해줄 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그건..."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던 것은 상처의 이유를 묻는 것뿐. 그가 관조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다. 최소한,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물론, 엘리아나가 그 정도는 답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한 행동이기도 하다.


그 예상에 부응해 엘리아나는 힘겹게, 하지만 성실하게 그녀의 상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상황은 간단했다. 단지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자가 먼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서, 그가 그의 꿈을 이루고자 멀리 떠나게 되어서,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것이다. 그는 한 번에 하나밖에 쫓을 수 없다고. 그리고 그는 자기의 꿈을 선택한 것뿐이다.




세이로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엘리아나라면 그런 그에게 달라붙지도 않을 것이고, 다만 꿈을 향해 달려가려는 그를 축복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엘리아나는 기억했다. 그 걸음을 시작한 때를. 그 걸음의 동반자가 되지 못한 자를.




세이로는, 눈을 감은 채 나직이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는 그가 갈 길을 향해 떠났고, 그의 '걸음'을 시작한 것이겠지. 그 길을, 너는 따라갈 수 없었고."


".... 내 걸음은, 내가 나아갈 길은 그 길이 아니니까."




그들은 언젠가 과거에 있던 대화를 생각해내었다. 갈 길을 정한 자. 갈 길이 정해진 자. 갈려진 길. 이별.


그들은 그때를 기억했다. 그때의 감정을. 그때의 마음을. 그 상처의 아픔을.




그리고, 그때 할 수 없었던 말을.




조금씩, 엘리아나는 그녀의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이해하고 있어. 그와 나의 길을 여기서 갈렸다고. 그가 나아가는 길은 재능있는 음악가로서의 일. 길거리 공연부터 시작해서, 각종 콘서트까지. 이미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그는, 그 실력을 더욱 가꾸고 후에 그만의 밴드를 찾고자 떠났다는 것을. 그 길에, 내 모습은 없다는 것도."


"하지만, 납득할 수 없겠지."


"이해할 수 없어. 어째서 그는 떠나야 했던 걸까? 어째서 우리는 서로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결국은 갈림길에 서게 된 걸까? 그리고..."




끝내지 못한 말을, 세이로는 담담히 마무리한다.




"어째서 자신은 그 길을 따라갈 수 없을까, 라는 거겠지."


"......렇네."




엘리아나는 그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못내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그녀와 같이 그 의문... 아니, 그 답답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그녀의 잘못이니까.


세이로는 다시 눈을 감은 채, 그 내면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는 자문했다. '그때, 자신은 어떤 답을 내리었는가?' 그에게는, 어찌 보면 간단한 답이었다.




그는 그 답을 제시해보였다.




"그 답은 당연한 것이다. 너는, '따라 걷는 자[Trail Walker]'가 아닐 뿐."


"...무슨 의미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너의 걸음은 '따르는 걸음[Trailing Walk]'이 아니라는 것을."


"...."




엘리아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그녀가 선택한 길은, 누군가를 따라가는 길은 아니었다. 그때 그녀는 그녀만의 걸음을 시작하기 원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묻고 싶었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거야?"




그것은 당연한 의문이겠지, 라고 세이로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 또한,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가능성의 여부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니, 그냥 전진하는 것만큼도 못하겠지."


"어째서?"


"네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 길이 갈라진 곳[선택의 기로]'까지. 네가 '네 걸음을 시작한 곳[the Start of Walk]'까지. 그동안, 상대는 더욱 앞을 향해 걸어간다. 그것을 따라잡는 것은 앞서간 자가 멈추어서거나, 돌아오지 않는 이상 힘들다."


"그런..."




엘리아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앞서간 그에게 자신을 위해 돌아와 달라고, 기다려달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당연하다. 그녀 자신도 그의 기분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기다려주었으면..."


"이기적인 생각이다."


"!?"




세이로가 간단히 결론지은 것에, 엘리아나는 크게 동요했다. 어느새 생각이 말로 화한 것에 그녀는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래도, 이기적이라고, 원하는 것에 잘못이 있는 거야?"




무언가가 터진 듯 흘러나오는 그녀의 의문. 그녀도 이기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계속 갈구하는 그녀 자신. 그것이 과연 틀린 것일까, 라고 그녀는 묻고 있었다.




세이로는 눈을 감으며 생각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자신은,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일까.




이윽고, 그는 눈을 감은 체, 그 솔직한 심정을 내뱉었다.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게 원하기만 해서 얻을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진정 원한다면, 그 기로에서 너는 자신의 걸음을 포기해야 했다."
"
어째서? 어째서 다른 길을 가야 하는데? 아니, 어째서 다른 길을 간다고 헤어져야 하는데?"


"원하는 것만 얻을 수 없는 것이 이 세계의 절대법칙이다. 보존의 법칙. Give and Take.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고, 얻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대가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린 아이의 투정이겠지."




흥분한 엘리아나는 그의 말이 끝나고서야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녀도 자신이 방금 한 행동은 이룰 수 없던 것에 대한 투정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진정 바보 같은 것이니까. 이루어질 리 없는 것에 기대를 거는 것은 그야말로 논리적이지 못한 행동이다. '이래서야, 세이로도 화가 날 수밖에 없나'라고, 그녀는 자조했다. 애초에 수사적 질문[Rhetorical Question]을 한 것이다. '그에 대한 답 따위, 하나밖에 없는데'




세이로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답을 제시할 수 없었다. 아니, 제시하지 않았다.




엘리아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 답을 말했다.




"확실히 내 행동은 바보 같은 거겠지. 일어날 리 없는 것을 바라는 거니까."


"...."


"그래도 말이야. '기적[Miracle]'은 일어나는 거겠지?"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은 누구를 향한 미소일까.


세이로는 여전히 눈을 감은 체 냉소했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기적'이라 정의한 것이다."




'자포자기 후 마지막으로 잡는 끄나풀'이라고, 그는 속으로 덧붙였다.




"그래도 말이야, 세이로."




엘리아나는, 상냥하게, 마치 4년 전의 소녀같이, 그에게 전했다.




"소녀의 마음은 언제나 기적을 소원하고 있다고?"


", 너는 22세일 것이다."


"마음만은 소녀니까 말이야."




세이로는 생각했다. 혹시, 소녀의 마음은 4년 전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소녀는 허락된 시간이 다했다는 것을 느끼고는, 이별의 한마디를 남겼다.




", 그럼 이만 가볼게. 투정 들어줘서 고마워."


"아아, 얼마든지."




엘리아나는 세이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몸을 돌려 그 장소를 떠났다.


세이로는, 눈을 감은 체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










"기적을 바라는 소녀라. , 나도 포기하지 못하고 투정이나 부리는 소년인 것일까."




그는 그의 '선택의 기로[길이 갈라진 곳]에 서서 자조했다.




어쩌면, 눈을 떴을 때 소녀가 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의 닫혀버린 눈을 열어줄 기적[Miracle]을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


 


 


 


---


대충 작년 여름방학 끝~가을 사이에 썼던 것인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열어보고는 "한번 올려볼까" 라는 생각에 올려봅니다.


딱히 기승전결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장면... 이라는 느낌으로 썼습니다만, 글쎄요.


모 지인이 말하기를, "주인공이 왜 이렇게 감정의 기복이 없어"라고 했었는데, 그런 케릭터라 그렇습니다 (...).


주인공의 말투가 매우 어색한 건 일부러 그의 케릭터를 표현해보고자 실험해본 것이지만, 어떤지는 모르겠네요.


 


그 외에 오타나 문법이 어색하거나 그런 것 등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학생으로서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지 꽤 되서 말이지요. 일단 오픈오피스에 문법체크 깔아서 체크는 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프로그램에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지요. 물론 그 외의 지적/비평도 감사히 듣겠습니다 (...비방은 사양하겠습니다.)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38 동화 - 악마 file 재티s 2008.01.23 572
737 저격수 - 1화 [1] 34.6 2008.01.22 677
736 이상형 [1] 다르칸 2008.01.20 679
735 X-tra episode - 내일 [4] file X-tra 2008.01.15 644
734 [단편]세상의 끝, 너와 둘이서 [2] 과자 2008.01.14 402
733 [단편]세상의 끝, 너와 둘이서 과자 2008.01.14 463
732 <마지막 투신> 환상이 사라진 후에 - 3 - file 비욘더 2008.01.13 455
731 무제 [1] KBOY∮ 2008.01.12 590
730 천사들의 제국(上) [3] file coKePlay 2008.01.10 574
729 X-tra episode - 내일 file X-tra 2008.01.09 543
728 정의는 킬러가 지킨다 [4] 우중낭인 2008.01.07 883
727 [단편]크레센도 [1] 34.6 2008.01.06 628
» 걸어가는 자 [3] Ladeand 2008.01.06 513
725 X-tra episode - 내일 [8] file X-tra 2008.01.02 662
724 기억. [2] RainShower 2007.12.20 519
723 아침에서 소망바구니 2007.12.07 532
722 아프지 않은 손가락 [2] Mr.럭키맨 2007.11.18 1080
721 누구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 後 [1] L.V.Verdinihi 2007.11.06 588
720 [단편] A4 용지 [1] 마일 2007.11.02 642
719 삭제대기 [2] 새턴인DAN 2007.11.01 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