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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Te amo♡

2007.08.10 00:39

IroNPurplE 조회 수:922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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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사랑받고 있니?"


"사랑에 대한 정의를 도저히 모르겠어요"


최근에 받은 세가지 질문.


그리고 내가 쓴 수많은 낙서중에도 사랑에 관련된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였다.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떠다니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사랑에 대한 되도 않는 잡소리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세계는 어짜피 이기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미움의 장소라는


내면적인 염세주의가 반영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내가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지않는 또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인생은 또 혼자사는 것이다.


그 인생이라는 긴 시간의 끈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 걸까?


나는 단테만큼 감성적이지도 못했기에 베아트리체도 만나지 못했고 당연히 베아트리체를 위한 詩조차도 써보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허상이었고 그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그러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아가페가 아닌 '연애감정'으로서의 사랑은


핵폭탄과 같이 순식간에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감정의 폭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호르몬작용에 의한 화학반응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의 장난감에 대한 잠깐의 흥미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또 세상은 너무 재미없어지고 건조해지는걸까?







영번째 장.


 


비가시적인 감성의 영역을 언어로 옮기는 것 만큼 힘든일도 없다.


그리고 감성의 영역은 이성의 논리가 다스리는 곳은 아니다.


논리와 비논리가 공전(共轉)하는 감성의 영역


사랑도, 감성의 영역의 일부인 만큼


논리와 비논리가 공전한다.







첫번째 장. certus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사랑에 대한 정의를 도저히 모르겠어요"


사랑은 '소통'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살아가면서 만나고


그리고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소통'


그 소통이 가장 완벽에 가까워지는 순간이 사랑이라고 대답하였다.


자신의 가장 완벽에 가까운 반쪽. 그것을 찾는 과정.


비단 하버마스 선생의 대화이론의 축소판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은 완전한 소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누구를 만나 누구와 살을 섞었다는


1차적이고 원시적인 쾌감을 위한 에로스가 아닌


좀 더 고차원적이고 정신적인 교감인 플라토닉이었다.


-에로스는 플라토닉을 거친


소통의 완전한 모습으로서 발현가능하다는 그 외침은


sexual fidelity라든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방임주의적 애정관으로 인해 묻혀지나가겠지만-이성을 넘어 감성의 영역까지의 완벽한 교류와 소통.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도 모두 조금 더 완벽한 소통을 바라기 떄문이 아닐까?







두번째 장. carus


 


"사랑받고 있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분명히 나는 사랑받는 아들이고 사랑받는 가족의 구성원이며


사랑받는 친구일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인생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


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사람이 그다지 착하지 않고 오히려 이기적이고 모나서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부처의 자비심이나 그리스도의 아가페가 없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적도 만들었고


또 그런 행동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사람들이 멀어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사랑받지 못하는'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사랑받는 인생이기도 하다.


 


그대에게 되묻기를


 


'사랑받고 있니?'







세번째 장. Rosa rubicundior, lillio candidior...


 


이러니 저러니 수많은 말들을 늘어놓아 보아도


사랑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발에 채일듯이 수많은 그 사랑에 대한 글귀들이 존재하고


가식적이고 값싼


수많은 사랑에 대한 정의도 넘쳐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사랑이라는 것이 古代로부터 내려온 人類史的 難題라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한순간의 연애감정이라든가 호감 혹은 단지 쾌락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지속적인 의미의 사랑은 치열하고도 순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사랑은 장미보다도 더 붉고 백합보다도 더 하얗다.


그리고 이 모든 말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절대적인 명제 앞에서는 힘을 잃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종차와 유개념이 동일한


순환논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념인 것이다.


'사랑은 사랑이다.'


죽음의 절망으로 치닫는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도


성스러운 승화를 가져온 그레트헨과 파우스트도


사랑하는 여인에게 테이블에 분필로 고백한 톨스토이도


전부 사랑이라는 범주 내에서 설명이 되는 것을 보면


앞서 내가 내린 것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그에 대한 일면일 뿐이다.


자. 이제 끝을 맺는다.


 


Rosa rubicundior, lilio candidior


장미보다도 더 붉게, 백합보다도 더 하얗게
omnibus formosior, semper in te glorior!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당신을 늘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라틴어 세속 시집 'Carmina Burana'의 20 번째 시 VENI, VENI, VENIAS 中


 


-당신을 사랑합니다.


-Ego te a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