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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인간 최배달

2005.05.23 07:47

배달두산 조회 수:193

extra_vars1 사람으로서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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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 오오야마 마쓰다쓰, 최영의...

모두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맹우와 싸워 그 뿔을 꺾은 강자였으며 일본 열도를 홀몸으로 무릎 꿀리고 저 멀리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싸우면서도 당당히 '한국인' 최배달로써 자신을 소개하였던 애국인이다.

세상은 그를 절대 강자, 지지 않는 사나이, 한국을 빛낸 영웅, 고독한 투사, 야수, 절대적 존재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를 그 이하의 어떤 것, 또는 그와 다른 누군가로는 여기지 못한다. 그의 일생이 남긴 일화들 때문에...

그렇다. 그 일화를 보앗을 때에 그는 진실로 영웅이었다. 17세기 무사시 이후로 끊겨버린 일본의 도장깨기를 오직 자신의 힘으로 해내었고 무사시노 벌판에서 40인의 무도인과 겨루었으며 소의 뿔을 꺾고 로프 3단 차기로 역도산을 꺾은 미국의 레슬러를 단 한번에 제압하였고 전 세계의 강자들과 겨루어 당당히 이겨보였다.

당장에 뛰쳐나와야 했을 입산수도에서 그는 자신의 눈섭을 밀어가며 정진하였고 12개의 맥주병을 넘어뜨리지 않고도 잘라내어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내였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무도 이전의 최영의는 달랐다.

그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았고,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신화처럼 보이는 그의 도전의 역사는 우리 아는 것 만큼 찬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초라한 가시밭길이었다. 40이 되어서 부터 머리카락이 한웅큼씩 빠지리 만큼 그의 전성기때의 공포에 의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 불구가 되어 살아갈 수도 있다. 그의 상대는 평범한 싸움꾼들이 아니었다. 저마다 자신의 신화와 같은 일화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각 무예의 최강자들이었다. 서슬이 퍼렇게 선 그의 두 눈은 산에서 뛰쳐나온 야수의 것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에서의 힘없는 한 사람으로써 최후의 보루였을 것이다. 미국에 가서부터 그의 상대는 지금껏 보아온 자들과는 사뭇 다른, 온몸을 갑옷같은 근육으로 둘러싼 괴물과도 같은 자들이었다. 시퍼런 눈동자, 커다란 덩치, 쇠를 씹어 삼킬듯 한 괴력... 그것은 동양인으로써 도깨비와도 같은 형상, 그는 누구보다도 거대한 공포앞에서 떨어야 했다. 그는 사람이었다.

패배를 모르며 절대적인 힘을 자랑하는 그의 몸은 절대로 무적의 것이 아니었다. 쇠는 두드릴 수록 강하고 견고한 검이 되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몸은 달랐다. 대부분의 전설적인 복서, 혹은 밑바닥의 복서들은 훗날 펀치 드렁크에 시달리게 되어있다. 최배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산에서의 수도생활은 인간을 초월하는 시간이었고 그것은 뼈를 갈아내고 살을 죽이는 행위였다. 단련된다는 것은 매우 숭고하여 보이지만 그것은 그만큼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강해졌다는 것은 그의 몸도 그만큼 죽어간 것이다. 그는 사람이다. 아무리 강하고 단단한 육체도 때가 되면 그가 싸웠던 역사와 수련했던 고통이 한걸음에 날아와 몸을 괴롭히게 된다. 소의 뿔이 잘려나간 것은 단순히 그의 강함 때문이 아닌 그가 그 전에 수 없이 싸워온 어린 소와 큰 소를 상대로 얻은 경험의 것이었다. 어떠한 자도 사람이라면 사람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는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써 일본이라는 땅에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실력으로 증명해야만 했다. 그는 그렇게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결국 세월을 이기지 못해 파괴된 몸은 그가 홀로 집에 있을 때 그를 신음하게 하였고, 그 사실은 그의 두 아들이 증명한다.

무사시노 벌판에서의 싸움이 영화에서는 마치 완벽한 승리라도 되는 듯 그리고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40인이나 되는 정통 실력파 무도가들과 한번에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모인 목표는 최배달과의 승부가 아닌 '처단'이었다. 그는 게릴라전을 펼쳐야 했고 후에는 도망을 쳤다. 그는 절대로 무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애국자였다. 비록 전 세계는 그를 오오야마 마쓰다쓰로 기억하고 있으나 그는 한국인이었다. 자신을 태권도의 달인으로 위장하여 조국에 왔을 때도 그랬고, 일본으로 귀화하여 대산배달이 되었을 때에도 그랬다. 이준구씨가 미국에 태권도를 전파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선생께서 눈물을 흘렸던 사실을 누가 알고 있을까? 그는 공수도가였으나 조국의 태권도를 전파하는 청년에게 경의를 표했고 조국에 갈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눈물로 견뎌야 했다. 그는 언제나 한국인이다. 비록 일본에서는 그를 동경태생의 일본인으로 왜곡하고 있으나 최영의선생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그의 일본인 제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우리역시 알고 있다. 그와 겨루었던 전 세계의 고수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i'm korean! 한국의 최배달! 한국인!"

그는 어디서든 당당히 자신을 말했다.

이 글은 단순히 당신들의 관심을 이끌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취지였다면 나는 시간을 들여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바란다. 적어도 조국의 국민들은 그를 '영웅 최배달'이 아닌 '인간 최영의'로써 따뜻하게 품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영웅이란 것은 어느곳에나 있다. 전 세계 어디든 자신들만의 영웅이 없는 민족이나 국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경일 뿐 자신의 가족이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최영의선생께서는 한국에 살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이제라도 그를 가슴에 품음으로써 한국에 두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