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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60억개의 산

2005.09.11 23:31

몽골로이 조회 수:162

extra_vars1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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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산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높은 곳으로부터
쏟아진 눈부신 햇살이
내게 손짓했다.

올라오라,
너의 긍지를 확인하라.

산을 올라야 했다.
물러날 수 없었다.
나는 올라야만 한다.

잡목을 베어 길을 만든다.
나무 뿌리를 부여잡고 기어오른다.
잠깐의 방심은 추락.
곧 낙오됨을 뜻한다.

피로에 지친 몸을
차가운 흙바닥에 누이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까마득한 곳으로부터 쏟아진 햇살이
나를 불렀다.

산을 오르는 건 고통스러웠다.
나는 정상을 생각하며 인내했다.
정상에 선다는 것은 시련의 종말.
산과의 투쟁에서 거둔 나의 승리.
나는 매일같이 산과 힘겹게 싸웠다.

산의 정복만이 오로지
나의 유일한 열정이 되었고
유일한 신념이 되었고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빨리.



어느덧 나는 정상에 올라 있었다.



짜릿한 쾌감은 잠시
칠흑같이 검은 밤하늘과
까마득한 저 대지 사이에
나는 홀로 섰다.

칼날 같은 바람이 내 몸을 훑었다.
공허한 정상은 몹시도 추웠다.
기력이 쇠한 나는 쓰러져 잠들었다.



눈을 뜨자 햇살이 쏟아졌다.
산을 올라야 하는데.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러고보니 여긴 정상이다.
더 오를 수 없구나.
정상의 햇살은
처음 산아래에서 보았던 햇살과
다름이 없었다.



산을 정상에서 내려다보고 싶다.
내게 시련과 고통만을 안겨주었던
흉칙한 산의 몰골을 보아야 하겠다.
그 정도야 승자의 전리품이 아니겠는가!
사지에 기운이 없어서
나는 굼벵이처럼 기었다.
절벽에 이르러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산은
몹시도 아름다웠다.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듯 하다.
나는 정상만을 보느라 미쳐
산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올라온 길을 보았다.
푸른 수풀은 베어지고
나무는 뿌리가 뽑혀 쓰러졌다.
파괴의 흔적은 정상까지 길게 이어져
내게 닿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은 하나가 아니었다.
여기도 산, 저기도 산.
끝없이 펼쳐진 게 산의 연속이다.
셀 수 없다.
나는 저 산들도 못 보았구나.

현기증이 난다.



다시 하늘을 보니
햇살은 여전했다.
아직도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하늘에 닿아야 했다.
날아야 하는구나.
창공을 훨훨 날아
포근한 햇살에 안길 수 있을까.

나는 산의 속박에서 벗어나
허공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나는 날개가 없구나.

산의 진녹색이 내 시야를 가득 메우며
정상은 내게서 점점 멀어진다.





추락하는 순간
문득 떠오른 일인데
정확히 셀 수는 없지만
그 산들을 다 합친다면
육십억 개쯤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