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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시험

2005.06.24 16:43

潛雷劍皇 조회 수:61

extra_vars1 주제: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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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마음으로 일어났다. 한국과 비교하면 조금 늦은감이 없는게 아니지만 아침을 해결하고 8시에 학교로 출발했다. 주정부 영어시험은 1시부터 였지만, 시험 대비를 핑계로 8시 반부터 학교 복도에 죽치고 있었다. 아침부터 이상하게 사람이 많아서 아는 놈이 있는가 찾아보니, 9시부터 11학년(고2) 시험이 있다는것을 알고는 내심 아쉬워 했다. 다시 복도로 돌아왔다가 걸음걸이 소리에 고개를 드니, 남자 교장이 교실 문 열어줄까 라고 묻는것을 괜찮다 라고 대꾸하고 다시 핑계거리를 하고 있는데 갚자기 다리가 아파온다. 동생이랑 같은 학년에 입학한것이 처음에는 별로 내키는 것이 아니었지만, 말년에 와서는 많은 적응이 되었다. 특히 남자 교장이 다시 돌아올때, 문열어 주면 안되겠냐 라고 묻는 행위를 뒤에서 시키는 것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동생 때문에 문이 열리고 교실로 들어갔다. 약간의 불분명한 냄새가 후각장애 일으킬 만큼은 안 되었지만 짜증날 정도는 되었기에, 괜히 옆에서 공부하는 동생을 건드렸다.

동생은 무덤덤히 있더니 나중에 있을 시험 준비를 나름대로 하고 있었다. 나는 당장에 닥친일을 무마하려고 조금이나마 공부를 더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상실된채 그저 시험칠때 어떻게 하면 에세이를 빨리 써야 할까, 그것만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동생은 시에 쓰이는 전문용어를 번역해 놓은 종이를 뚫어져라 반복적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자연적이라 하면 이상할 정도로 분명한 인위적인 노크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오는것이 나의 미세한 청각세포에 의해 감지 되었다. 역시 동생에게 문 열기를 권하였고, 동생은 가서 문을 열었다. 필리핀 두 자매 중의 동생이었는데, 11학년 이었다. 11학년 부터는 선택과목이 많아서 전 학생이 모두 시험치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9시 반이 넘어 도착한 이 여자애는 9시 시험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보여 묻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애가 다짜고짜 하는 소리가 여기 왜 왔나? 너도 혹시 오후에 수업있냐? 하는게 아닌가.

내심 무식하다는 소리를 천번 정도 해 준 후, 천천히 윗입술과 밑입술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나중에 1시부터 시험 있다고 하니, 감탄사를 연발하며 깜박 잊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애도 우리와 같은날, 동시에 시험을 칠것이라고 나는 단 한오라기의 실만큼의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 후, 우리 담임이 들어와서 나를 보며 어떻게 들어왔냐고 묻길래, 걸어서 들어왔노라고 당당히 말한 후 다시 핑계거리를 하기 위해서 앉았는데, 막상 앉고 보니 머리가 멍하다. 누가 보면 대낮부터 술 주정하냐, 귀신 봤냐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곳만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허공중이라 분명한 사물을 보는것도 아니라 그냥 혼자 깊은 감상에 빠진것이었다.
그러다 잠시, 동생을 힐끔 보니 아직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드는 이 압박감과 동시에 나타나는 닭살. 섬뜩한 예기가 목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그 느낌에 얼른 동생이 공부하는 종이 중 여러장을 가로챈 후 같이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것이 '동생이 내 머리위에 앉지는 않을까' 라고 걱정이 몸으로 나타난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간 지도 모를만큼 지나갔다. 어느덧 반 애들이 다 왔다. 한국 유학생들도 왔다. 2명 모두 여자였는데, 한 명은 나보다 누나고, 다른 한 명은 동갑인데 공부를 잘한다.

두 명 모두 이번에 한국에 들어간다고 하던데,, 그렇게 질투는 나지 않지만 씁쓸하다. 동생 지갑에서 꺼낸 천원을 누나에게 줬다. 과자 사 먹으라고 준 그 돈은 마침내 타의에 의해 거주지를 옮기게 됐다.

모인 애들은 점심을 먹으로 갔고.나와 동생은 점심을 이미 먹은 상태에서 돈도 없었던 터라 남기로 했다. 교실에는 나, 동생, 동갑내기 여자애, 별로 친하지 않는 동갑내기..그리고 아까 필리핀애..독수리 5형제가 모여 뭘 할까만은 필리핀 애는 열심히 컴퓨터 게임을 미동도 하지 않은채 오고 난 이후로 계속 하고 있었다. 나머지 소외당한 다수의 한국인들은 열심히 시험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4명 모두 똑같은 시험을 쳐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터였다.
동갑내기 여자애는 올 A를 받고, 동갑내기 남자애는 B가 2~3개 정도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남자애가 초등학교 4학년때 이민을 왔기 때문에 이제 3년을 지나 4년을 넘겨보는 여자애로서는 아직 영어가 미숙했다. 나와 동생은 아직 1년도 되지 않아서 침묵을 지켰다.

올 에이가 비두개 에게 여러가지를 물었다. 시에 대해서 묻고, 에세이에 대해서 묻고.

나는 할 얘기가 없어 화이트보드에 화장을 무료로 해 주다 지우고, 다시 앉아 두 남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한국이야기가 나오자 나의 6개월 짧은 고등학교 생활을 기억해 낸뒤 말하기 시작했다.

두 남녀는 웃었다. 여자가 웃는것은 상관없는데, 남자가 웃으니 별로였다. 외모지상주의에 젖어서 그러기 보다는 평소에 별로 안 친했기 때문이었다. 나만 그 남자애가 '가증스럽다' 라고 느끼는것인가 라고 회의적으로 변하기도 했지만, 고등학교때 모의고사 전국 1% 안에 들었던 애 앞에서도 자기가 더 공부잘한다고 쇼하는 애가 여자 앞에서는 '자신이 공부 잘 못한다' 라고 대답했다.

모의고사 전국 1%..천재라고 불려도 무방한 분류의 학생이었다. 한국에서는 나한테 형이 되는 존재고 이곳에서는 동갑내기가 되는 친구였다. 나는 그냥 반말을 찍찍 갈기지만 걔도 별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한국에선 모의고사 1% 안 까진 안되더라고 모의고사 전국 100% 안에서 당당히 들었던 내가, 동갑내기 여자애가 시험에 대해 걱정을 할 수록 초라해져 갔다.
한국에선 고등학교때, 약 350명 중에서 전교 350등안에도 당당히 들었던 나 자신이 초라해져 갔다.

진실은 진리와 간접적인 진리로 나뉘어 진다면 나는 이 둘중 간접적인 방법을 선택하겠다.

1시가 되었다.

담임이 돌아왔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2시간 안에 끝내야 되지만, 학생 모두에서 30분이라는 엑스트라 시간을 공짜로 할애해 준다는 말에 입이 함지박 만큼 커졌다가 집중을 했다.

시험은 예상보다 상당히 어려웠다.
'여자애의 걱정이 적중되었나' 보다 라고 생각하다가 5분이 쏜살처럼 지나갔다. 시간과의 전투. 이번 전투는 내가 패배자가 될질 안될지 라는 두개의 카드 중에서 첫번째 카드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은 전투였다.
이번 시험에서 낙방하면 내년에 1년 더 10학년 영어를 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걸린 생사의 기로였다.

시, 논픽션(비소설), 픽션(소설) ..각 각 9문제씩 객관식 27문제, 통합 2문제..객관식은 총 29문제.

문제 30 번은 비소설과 소설을 비교하여 에세이를 적는것.

문제 31번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것은 주제에 맞춰서 에세이를 적어야 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식은 땀이 장마철의 비 처럼 흥건히 내리는 가운데 긴장은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시계를 도대체 몇번 봤는지 모른다.

오늘 시계는 나의 뜨거운 시선에 의해 가열 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1분, 아니 1초가 아까운 상황속에서 계속 잔머리는 굴러갔다.

몇분까지 이것을 끝내고, 몇분부터 다음단계로 넘어간다. .이러한 생각은 수시로 바뀌어야 했다.

새로운 언어에 익숙치 못한 나는 몇배로 뇌에 고통과 부담을 줘야 했다.

30번 까지 무사히 왔다.

30분이 남은 상황에서 나는 31번이라는 무서운 절벽바위 위를 지나가야하는 초라한 심봉사가 되고 말았다.  눈이 멀고, 지팡이도 없는 상황. 심봉사는 심청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가 자책하면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과연 심봉사는 절벽 밑의 인당수에 다이빙을 할것인가?

주제는 이것: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아주 어려운 난제였다.

어떻게 풀지 감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25분이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이 에세이를 적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적어도 50분이었는데 말이다. 말보하는 백치 아다다에게 내려진 잔인한 사형 선고였다.

기지를 발휘해 초등학교때 나의 친구 한명을 생각 해 내었다. 그 친구는 고아였다. 아버지가 있지만 고아원에 살았다. 아버지가 가난한 노동자라 자신의 아들 둘을 지탱 해 주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때 그 친구와 나는 같이 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운동을 했다. 축구부 연습이 끝나면 친구 아버지가 가끔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는데. 그 친구는 그렇게 10분이고, 20분이고 아버지와 쭈그려 앉아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모습을 떠 올려 글을 썼다.

15분 남은 상황.. 지금까지 잘못 썼다라는 빨간 신호등이 뇌 저편 구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해 졌다.

다시 썼다. 에세이는 서론, 본론, 결론으로 끝을 맺어야 했고, 명확하게 하나, 둘, 셋을 구분해야 했다.

새로운 언어를 번역하자면, 소개->몸->결론 이라는 해괴한 순서가 되지만, 아량곳 하지 않고 적었다.


3분 남았다.  
에세이를 적던 손이 드디어 쉴 수 있게 됐다. 결과가 어떻게 됐든 중요하지 않았다. 에세이를 적으로 간간히 느끼던 부모님의 사랑과 나의 숨겨진 행복.. 쉽게 말하자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항상 나를 감싸안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지만, 그렇지 못한 내 친구는 생각치 못한것.

무디고 무딘 내 머리를 치고 감상에 젖었다.

시험을 통해, 에세이를 통해, 난한 주제를 통해, 그 친구를 통해 오늘 나는 또다른 뜨거운 무언가를 얻게 되었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새록새록한 감정.

집에가서 다시 아버지께 인상쓰는 나를 보면서, 언제 내 자신이 가슴 속이 아니라, 몸으로 변할지 미지수를 남기며 글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