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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모자(母子)-5

2005.12.28 03:54

아사도라유이치 조회 수:45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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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신을 차린 지 이틀 째가 되는 날. 아침을 먹은 나는 하릴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것도 지루해져 갈 무렵. 조용한 나의 병실 문이 스르륵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낮고도 조용했던 그 소리, 그 소리에 이어 조용조용한 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지더니

거짓말처럼 내 앞에서 멈췄다. 타인의 세 번째 방문.

그 낯선 방문자는 내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의외로 부드러운 그 손길.

아마도 여자의 손길일 거라고 나는 추측했다. 현주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봤지만 현주는 아닌 것 같았다.

왜냐면, 느낌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현주의 손길이 차가웠다면 정체불명의 이 여자의 손길은 흡사

손난로처럼 따뜻했다. 현주의 손길이 건조했다면 이 여자의 손길은 촉촉했다.

다른 것은 비단 손의 느낌만은 아니었다. 현주에게서 나는 냄새가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향기였다면

지금 이 여자에게서 나는 냄새는 자연적이고 천연적인 향기였다. 현주에게서 나는 냄새가

나의 정신을 혼미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여자에게서 나는 냄새는 오히려 어지러운 나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만큼, 여인에게서 나는 향내는 구수하고 부드러웠던 것. 왠지 모르게

너무나 친숙한, 너무나도 기분 좋은 향내였다. 그 여인의 정체가 궁금해진 나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누구죠?'

'......'

'......'

그 사람은 말이 없었다. 덩달아 나도 말이 없었다. 부자연스럽게 이어진 몇 초간의 침묵.

그러한 침묵을 깨뜨렸던 것은......

'흑흑......'

여자의 울음 소리였다. 말이 없던 그 정체불명의 여자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뜨거운 물방울이 내 뺨에

닿아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 난데없는 돌발 상황에 나는 당황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저기, 왜 우시는 거죠? 왜?'

'현빈아....... 나, 네 엄마다. 몰라보겠니?'

'엄마? 당신이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녀의 발언. 놀란 나는 스스로 자문해 본다. 이 여자가 내 어머니가 맞는가?

진실로 그러할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이것 뿐만 아니라 내가 처한 지금의 상황.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다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부터, 살아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데 살아있다는 사실부터.

현주가 내 여자친구였다는 사실도, 얼음처럼 차가웠던 그 여자를 내가 사랑했다는 사실도.

태성이가 내 친구였다는 사실도, 이 여자가 내 엄마라고 주장하는 것까지, 아무것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너무나 익숙했다. 그렇기에, 나는 어느새 그녀가

나의 모친이라고 단정짓게 되었다.

'당신이, 나의 어머니?'

'그래....... 현빈아. 많이 아프지?'

'아니요. 저는, 아프지 않아요.'

몸은 아프지 않다. 신경 세포가 모조리 끊어지기라도 했는지 몸에서는 아무런 고통이 전달되지 않는다.

아픈 것은, 단지 텅 비어버린 공허한 마음뿐.

말 없이 어머니는 나를 끌어 안았다.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내 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까지 전해져 오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