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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모자(母子)-4

2005.12.28 03:42

아사도라유이치 조회 수:59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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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2월 24일.

사람들이 소위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며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그렇다면, 조금 특별한 날일까? 그러나 그렇게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어제와 똑같이 해가 뜨고 어제와 똑같이 해가 저물고 있다. 날씨가 조금 다를 뿐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던 어제완 달리 오늘은 구름이 조금 많다. 저기 저물어 가는 해를

중심으로 한 무리의 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해가 내려가면 내려갈 수록, 그것들은 붉은 빛을

발한다. 그 붉은 빛이 정점에 달한 순간, 나는 시계를 본다. 현재 시간 6시 46분. 아차, 깜박한 것이 있었다.

분명 나는 현주와 오늘 저녁 7시에 만나기로 했었다. 그 사실이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남은 시간은 10여분. 서둘러 가면 약속시간에 늦이 않을 수도 있다. 현주의 화난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뛰고 또 뛴다. 북적한 인파 사이를 뚫고 빨간 불이 켜진 신호등을 무작정 건넌다.

나는 그야말로 바람에 눈썹이 휘날리게 뛰었다.

그렇게 뛰기를 10여 분, 약속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나 뛰었는지 추운 날씨에도 등에 땀이

나려고 한다.

그런 내 앞에 켜진 또 하나의 빨간 불. 별 망설임 없이 나는 그 횡단보도마저 건넌다.

마음 속으로는 절대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가설을 세운 채로.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가설에 불과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번쩍거리는 물체가 보인다. 웬일인지 그것은 나를 보고도 멈춰 설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점점 그것은 성난 황소처럼 나에게 돌진한다.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굳어서 말을 듣지 않는다.

쿵, 하는 강한 소리가 들렸다.

아픔이 느껴진 것은 그 다음이었다. 이상하게도 너무나 아팠다.

오토바이의 바퀴가 내 몸을 할퀴고 지나간 충격에 의해 나는 고꾸러졌다. 머리가 땅에 부딫히고

팔다리가 끊어진 것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의식이 오락가락하며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나는 중얼거렸다. 이것은 꿈일 거라고. 지독한 악몽일 거라고.

그리곤,  스르륵..... 잠들었다.



아침이다. 내가 누워있는 이곳은 병원. 침대 옆에 설치되어 있는 창문을 통해 해가 올라오늘 것을

보고서야 나는 지금이 아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 있으면 별로 맛있지 않은 아침밥이 나오고

간호사라는 여자들이 앞을 보지 못하는 나에게 밥을 먹여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 저것 물어볼 것이다.

몸은 괜찮은 지, 불편한 곳은 없는 지, 벨을 누르면 즉시 달려오겠다는 등의 이야기.

그렇게 내가 아침밥을 물린 후에는 그녀들 중의 한 명이 심심하지 않냐고 물은 후 라디오를 틀어준다.

별로 재미없는 라디오를 듣다보면 어느 새 점심. 지루하고 똑같은 싸이클의 반복.

녹화된 테잎을 재생하는 듯한 지루한 일상. 그것이,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나의 하루 일상이다.

이런 일상이 5일째 반복되고 있었다. 이말은 즉, 내가 깨어난 지 5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5일동안 이런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첫째로, 현주라는 이름의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깨어났던 날, 그러니까 이곳에서의 첫째 날이었다고 기억된다.

당시의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기는 했으되 내가 산 놈인지 죽은 놈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왜냐면 막 태어난 갓난 아기처럼 머리가 텅 빈 것 같았으니까. 내가 누구며, 왜 여기 누워있으며,

무얼 하던 놈이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실명이라도 당했는지 눈 앞이 깜깜했으니까.

눈 앞의 세상은 암흑 그 자체였으니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그런 나에게 자신을 현주라고 밝힌 귀여운 목소리의 여자가 찾아왔다.

맨 처음 나를 보고 그녀는 오빠라고 불렀다. 나는 내 이름은 오빠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오빠 도대체 왜 그래하고 말했다. 그리곤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당신의 이름은

손현빈이며 나이는 22살, 대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자신의 남자 친구였다고 말했다.

그녀와 더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당시 너무 혼란스러운 탓에 기억나는 것은 이것 뿐이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던 현주는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니만 '오빠 바보!' 라는 말을 남긴 채로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나로선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현주라는 저 여자, 정황과 행동을 봤을때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나는 사고때문에 기억을 상실했으며 덤으로 실명까지 당한

꼴이었다. 그럼 도대체 나는 누구고, 뭐하는 놈인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에 현주의 재방문을 기다렸으나 왠일인지 그녀는 그로부터 4일이 지났건만

단 한 차례도 오지 않았다.

둘째로, 태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와 그외 2~3명 정도가 나를 찾아왔다.

그들이 찾아온 것은 현주라는 여자가 찾아온 다음 날이었다.

그들 역시 처음에 나를 현빈이라고 불렀다. 내가 그들에게 너희는 누구냐고 묻자 자신들을 나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때의 기억이 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성이라는 남자는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심히 답답한

모양이었다. 나에게 몇 가지 물어본 후(고등학교 때 친구들 이름이라든가 선생님들. 당연히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뭔가를 쑥덕였다. 그러더니 바쁜 일이 생겼다며 가버렸다.

다음에 찾아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로. 물론,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