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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모자(母子)-3

2005.12.27 05:13

아사도라유이치 조회 수:96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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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눈을 밟는 조용한 나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집을 나선지 약 5분이 경과했다.

이제 내가 사는 집은 시야에 잡히지 않게 되었다.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어머니의 썩은 내는

더이상 나지 않게 되었다.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나의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인 현주의 집. 언덕을 내려가면 보이는

사거리에서 보이는 주유소옆에 있는 길로 따라가다 보면 또 보이는 갈림길에서 우회전해서

계속 간 다음에 나오는 삼거리에서 은행이 보이는 쪽으로 쭉 가다가 나오는 골목길로

들어가서 다시 쭉 가다가 보이는 수십 채의 집들 중에서 파란 색의 대문을 가졌고 뭔가

알아먹기 힘든 한자의 문패가 붙어 있는 집. 아아, 너무 복잡해서 헷갈리는 군.

하여튼, 그 집이 내 여자친구 현주가 살고 있는 집. 아, 맞다. 3층 건물의 2층이었지.

내 기억대로 나는 현주의 집으로 향한다.



겨울 바람이 꽤나 추웠다. 때문에 걸치고 있던 재킷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속도를 좀더 내기로 한다. 하지만 길이 미끄럽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여분 정도 걸었을까, 헷갈리는 여러 개의 집들 중에서 현주의 집을 찾아냈다.

핸드폰을 꺼낸다. 밤중에 벨 소리를 울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보다, 이 편이 나았다.

뚜두두.......

'여보세요?'

'야, 나 니네 집 앞이다. 문 열어줘.'

'알았어~. 히잉. 빨리두 왔네. 잠깐만 기다려. 나 옷 좀 입고.'

'응.'
......

......

철컥, 하고 문이 열리고 물에 살짝 젖은 검은 긴 생머리의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현주였다. 향기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았는지 은은한 장미향이 코를 찌른다.

어머니의 냄새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향긋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현주야, 춥다......'

'에헷,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빨리 들어가자. 마침 아무도 없어서.'

'응.'

그대로 현주를 따라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과는 달리 햐얀 색 페인트로 도배가 되어 있는 깨끗한 2층 짜리 양옥집. 여기가 현주네

집이다. 내 여자친구지만 한편으로는 부럽다. 그녀의 집은 상당한 부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데이트 비용은 왠만하면 내가 내고 싶지 만서도, 요새는 그녀가 내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괜찮다지만 그때마다 나는 상당히 미안한 감정을 갖게 된다.

'어서 들어와. 오빠. 오빠 올 줄 알고 집 깨끗히 청소해 놨어.'

'후아~. 눈이 부시다.'

정말로 청소라도 한 모양이다. 1주일 정도 전에 보았던 그녀의 집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주일 전에 보이지 않았던 흰색의 벽걸이 시계. 시계는 11시 50분을 가리킨다.

조금, 졸린다.

'오빠, 방으로 들어와.'

'응.'

현주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싱글용 침대가 놓여 있고, 잘 정리된 책상과 컴퓨터가 깔끔하게 놓여있다.

기타 옷장과 장식용 어항등이 눈에 뜨인다.

나와 현주는 침대에 걸터 앉는다.

말없이 서로를 응시한다. 붉은 취침등 때문인가? 현주의 볼이 약간 발개졌다.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왠지 이런 상황에서는 침묵이 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언젠가는 깨어질 침묵.

침묵의 늪에서 먼저 빠져나온 사람은 나였다.

'그런데 현주야.'

'왜?'

'너네 부모님은, 뭐하시니?'

'뭐하시긴, 일하시지.'

'무슨 일 하시는데?'

'아빠는 사업하시고, 엄마는 모르겠어. 집에 도통 들어오지 않으시니 말이야.'

'무슨 사업 하시는데?'

'나두 몰라. 집에 거의 들어오지도 않으시고, 집에 이따금씩 들어오셔도 바로 주무시거나

TV만 쳐다보시기 때문에, 잘 몰라.'

'어머니는?'

'주로 쇼핑하셔. 모임같은 것도 자주 나가시는 것 같고. 별로 집안에 신경 안 쓰셔.'

'그렇구나. 차라리, 그런 편이 나을 텐데.'

'왜? 오빤 그런 게 더 좋은 거야?'

'모르겠어...... 난 괜히 어머니가 싫어. 내가 대학교 다니게 될 때부터인가? 어머니가 변했어.'

'어떻게?'

'예전에 어머니는 그래도 좋으셨어. 다른 사람들처럼 멋도 부릴 줄 알았구, 나에 대해

이해하려고 많이 하셨어. 꾸지람도 잘 하지 않으셨구. 근데, 그런 어머니가 변했어.'

'.......'

'밖에 나다니시더니 어머니는 사람이 변했어.

이제 대학생이 되어 스스로 자립하려는 내게 사사건건 간섭하고 내가 하는 일은 무조건 안된다는

식이였어. 어디 그뿐인가? 집안에 언제부터인가 고약한 냄새를 집안에 풍기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부엌에서부터 시작되었지. 고소한 향내가 나야할 밥에서 어느 날 이상한 썩은 곰팡이같은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쉬어 버린 김치에선 오줌 냄새까지 나는 거야.

그러던게 거실로 확장되었어. 거실 구석구석에 포자처럼 번진 어머니의 냄새 분자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나를 내 방으로 내몰았어. 내가 존재할 곳은 집에서 나만이 쓰는 방으로 한정되었어.

그렇게, 6개월이 흘렀어.

어제였지. 너랑 헤어져 집에 들어갔어. 당연히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지. 잠을 자려고 말이야.

그런데 내 방에서 썩은 어머니의 냄새가 났어. 어머니가 내 방을 대대적으로 청소라도 한 모양이야.

차라리, 너네 어머니처럼 어머니가 내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항, 오빠 단단히 화났구나? 하긴, 그럴만도 해. 현빈씨 어머니 한 번 보긴 했는데, 나를 무슨

술집 창녀 바라보듯 보는 거 있지? 정말 싫었어. 무슨 할머니 같은 패션에 멋도 부릴 줄 모르는

완전 아줌마잖아. 현빈씨 맘 다 이해한다구.'

그렇게 말한 현주는, 살짝 나를 감싸안으며 포옹한다. 그녀의 찰랑찰랑한 머릿결이 내 뺨에

닿는다. 장미 향의 냄새 분자는 산산이 부서져 포근한 장미향을 발한다. 코가 간지럽다.

술취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나와 현주의 입술이 맞닿았다.

현주의 입술은 마치 마쉬멜로우 같았다. 너무도 부드러워서, 깨물면 비누 방울처럼 터질 것 같다.

'현빈 씨.......행복해?'

'응......너무나도 행복해. 영원히 나의 곁에 있어 주지 않을래?'

어머니가 내게 불행의 나무라면, 지금 나의 곁에 있는 현주는 행복의 나무이다.

그녀 곁에 있는 것 만으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물론이야. 근데, 영원이란게 뭐야?'

'영원이란...... 글쎄, 뭘까? 써 놓고도 잘 모르겠는데?

분명한 건, 지금 우리에게는 오늘 밤이 영원이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