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모자(母子)-2

2005.12.26 04:16

아사도라유이치 조회 수:57 추천:2

extra_vars1 1287-2 
extra_vars2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딩동~'

'현빈이니?'

'어.'

찰칵, 하고 문이 스르륵 열린다. 현관에는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한 중년의 여자가 서 있다.

40대 중반이나 겉모습을 봐서는 50대까지도 측정이 가능한 아줌마다.

여자를 무시한 채 아무 생각 없이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잘 다녀왔니? 별 일 없었고?'

'어.'

'저녁은 먹었니?'

'어.'

'밥 차려 놨는데 조금이라도 먹어.'

'아니.'

'그래...... 그럼 들어가서 씻으려무나.'

'어.'

뭔가를 열심히 권하는 어머니의 말을 귀찮다는 듯이 내가 뿌리친다. 뿌리치치 않으면

계속 뭔가를 권하고 간섭하기 때문에, 간섭받기 싫은 나는 그녀를 뿌리친다.

내 나이 스물 둘. 해를 더해갈수록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말 하나하나가 이제는 간섭으로 들린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살다보니까 그렇게 된다.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여자친구와의 교제문제, 성적문제,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것등의 문제.

그런 여러 일들에 대해 어머니는 항상 내게 부정적이었다.

물론 어렸을 때의 나는 그런 어머니에 대해서 항상 순종적이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의 나는 순응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 거부 뒤에는 항상 어머니와의 마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그 마찰을 피하고제 지금의 나는 아예 어머니에게 무관심으로 대한다.

용돈을 달라고도 하지 않고 등록금을 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모든 걸 나 스스로 처리하고 일체의 간섭을 거부해왔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편했다. 이것이 내 나름대로의 행복이었던 것이다.

욕실에서 간단히 샤워를 한다. 뜨거운 물에 온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양치질까지하고 수건으로 전신을 닦은 후 거실로 간다.

TV에서 재미있는 프로가 하는 시간이라 보려고 했으나, 왠지 거실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

역시나...... 오늘도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 마디로 50대 중반의 여자가 풍기는 더러운 냄새, 왠지 모르게 곰팡이가 썩은 듯한 냄새다.

바로 우리 어머니가 풍기고 다니는 냄새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집안에 이런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수능이 끝나고 내가 대학에 다니게 되어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로 싫지 않았다. 대학에서 여러 친구들을 알게 되고, 현주와 사귀게

되면서 그 냄새는 점점 내게 역겨운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제는 집이 너무나 싫었다. 집에 오더라도 어머니의 냄새가 나지 않는 내 방에서

잠만 자고 갈 뿐, 단지 그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게 집이란 투숙료가 없는 싸구려 여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냄새나는 거실을 뒤로 한 채 나는 나만의 은신처인 내 방으로 들어가서 냄새가 스며들지

못하게 문을 닫는다. 유일한 나만의 공간인 나의 방. 공기가 맑은 이 곳에서 한껏 숨을 들이키고

내뱉는다.

그런데.......

뭔가 변해있다. 집이 변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 방만 변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구조가 이것저것 변했다. 책상이 창가로 옮겨지고

너저분하던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던 옷들 역시 옷장에 정돈되었다.

어머니가 청소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것때문일까. 미미하기는 했으나 거실에서 나는 악취가 여기서도 나기 시작했다.

그 냄새는, 시간을 주기로 점점 심해져 온다. 짜증이 난 나는 문을 확 열어버렸다.

그리곤, 핸드폰으로 현주에게 전화를 건다.

띠리리리......

'여보세요?'

현주다.

'현주냐? 나다. 현빈이. 자던 중이야?"

'아니, 목욕하고...... 지금은 옷 갈아입는 중이야. 오빠, 근데 밤중에 무슨 일이야?'

'음, 답답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고.'

'헤헷, 심심풀이 상대가 필요했던 거구나. 그럼, 현주가 놀아줄께. 하지만 이상하네?

보통 오빠는 이 시간대라면 잘 시간이잖아.'

'응. 그렇지. 하지만, 방에서 썩은 내가 심하게 나서 잘 수가 없거든.'

'냄새? 글쎄? 오빠 방에서 이상한 냄새는 안 났던 것 같은데.'

'몰라. 하여튼, 이상한 냄새때문에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야.'

'그럼, 내 방에서 자고 갈래?'

'네 방?'

'응. 지금, 마침 아무도 없어. 집에는 나 뿐이야.'

'괜찮을까?'

'으응....... 오빠만 괜찮다면 나도 좋아.'

'그럼, 간다.'

통화를 마친 나는 재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어머니는 소파에서 TV를 보다가 지쳤는지

잠을 자고 있다. TV에는 홈쇼핑이 틀어져 있다. 필시 뭔가 이상한 물건을 또 사려고 했던 거다.

그녀의 잠이 깨지 않게 조심하면서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