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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재준이가 회사에서 짤렸어요.

2007.01.27 14:42

뚜루루 조회 수:199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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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오늘부터 재준군은 현장실습을 모두 마치고......”




눈치를 살펴가며 사장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현장실습? 거짓말치곤 제법 그럴싸하군.


뭐, 모든 회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재준이는 잘렸으니까 내일부터 회사 안 나옵니다.’ 라고 말하는 것보다야 훨씬 났지만.




“흥.”




옆에서 재준이가 콧방귀를 꼈다.


다행이었다. 큰소리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나만 작게 들릴 정도의 소리였다.


갑자기 크고 작은 행동이 많아진 것을 보면서 난 재준이의 심리가 상당히 불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 이때 난 친구로서 무슨 말을 해 줘야 하지?




“하여튼,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와 함께했던 재준이를 향해 다 같이 박수칩시다.”




회사 사람 수에 알맞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성의 없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에서의 박수소리도 아니었다.




“그냥 필요 없어서 잘렸다고 당당히 말하시죠?”




라고 재준이가 말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마음속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어깨를 내려뜨린 채 박수소리에 가식적인 웃음을 살짝 뛰어 보내주는게 재준이의 현실이었다.




음. 사회의 냉혹함? 아니면 우리가 너무 온실에서만 자란 건가?


우물 속에서만 하늘을 바라다본 건가? 우리 집에서 차타고 20분이면 도착하는 이곳이지만, 이금 이 환경은 너무 낯설고, 살짝 두렵기까지 한걸?




내가 재준이를 밀어낸 듯한 기분이 들어 미안하고 내가 친구에게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니, 나또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난 애써 웃으며 재준이를 위로했다. 재준이또한 오늘 일을 마음에 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이런 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을 마시겠지.




술을 마시면 좀 더 괜찮아 지려나?




재준이와 난 어느 순간부터 대화를 멈추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사실 주 관심은 mp3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깊은 생각에 잠기는 거겠지.








내 예상은 정확했다.


우리는 모두 mp3를 듣는 바람에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고 말았다.


사실 mp3탓이 아니었지만, 재준이와 나는 모두 음악을 듣다가 지나쳐 버린 거라고 입을 맞추었다.




추운 겨울날. 1시간은 걸어야 했지만, 많이 괜찮아 지는군.




재준이와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에 자연스럽게 많은 생각들이 튀어나왔다.




언젠간 나도 오늘 재준이가 겪은 고통을 똑같이 겪게 될 날이 올까?


어떻게 보면 이런 경험도 중요한 거니까 재준이가 나보다 한발 앞서나갔다고 말해도 되겠군. 하지만, 현실에는 내가 더 충실한 모습인걸.


아니야. 재준이는 지금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게 되는데?




사회에서의 첫걸음은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가 아니라, 처음 실패했을 때라고 생각하는 나였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오늘 눈 온다고 했는데, 바람만 불고 눈은 안 오는군.




왠지 아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