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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2부작] 연착 첫경험

2006.12.12 23:05

Mr. J 조회 수:220 추천:7

extra_vars1 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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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정말로 시드니 행 비행기에선 별 일이 없었다. 그저 기내식이 나오기 전까지 펑펑 잤다는 것 밖에는. 삼 년 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땐 몸이 어찌나 근질글질 거리는 지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때 사촌누나가 비행기에서 먹으라며 젤리 비슷한 것을 사줬는데, 잠은 오지 않고, 심심하고 해서 그걸 먹어보았다. 세상에! 그건 시큼한 맛이었다. 왜, 사람들 중엔 별나게도 시큼한 맛이 나는 사탕 같은 걸 즐겨먹는 부류가 있지 않은가. 사실 나도 그런 걸 좋아하는 부류에 속하지만 그 상황엔 아니었다. 비행기 안의 먼지와 피곤으로 목구멍이 말라비틀어진 나에게 그 시큼한 젤리는 용광로에서 흘러나오는 시뻘겋고 뜨거운 액체 같은 느낌이었다. 그 매캐한 느낌에 잠을 못 자 핏발이 섰던 눈이 매워지며 눈물을 흘렸다. 만약 누군가가 그 때의 내 모습을 보았다면 매우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반쯤 포장지를 벗긴 젤리를 들고선 마른 기침을 하며 시뻘건 눈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꼴이라니. 하여간 그때와는 다르게 내 몸이 비행기에 익숙해 졌는지 시드니까지 참 잘 잤다. 기내식은 계란과 햄을 어떻게 잘 섞어서 페이스트리에 담은 음식이었다. 오믈렛이라고 한 것 같았는데, 이건 오믈렛보단 파이 같았다. 하여간 시드니 행 비행기는 순조롭게 보냈다.


 


연착은 짐을 따로 찾지 않아도 된다기에 나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표를 확인하며 나의 한국 행 비행기인 아시아나가 출발하는 게이트로 향했다. 시드니 공항은 그 크기가 뉴질랜드에 비할 것이 못되었다. 인천공항보단 작아 보였지만 정말, 정말 컸고 통로들은 마치 이리저리 꺾여있는데다가 매우 길어 미로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긴 고층빌딩이라고는 몇 없는 뉴질랜드의 일개 공항과 비교한다면 안되겠지만 말이다. 시드니 역시 뉴질랜드처럼 덜 발달된 지역이라 생각했었는데, 차원이 달랐다. 사람도 정말 많았다.


 


나는 일단 내 비행기표를 보고 천장에 매달린 스크린에서 아시아나 비행기가 어떤 게이트에서 대기 중인지 찾아보았다. 게이트 21이라, (시드니엔 게이트가 21개도 넘게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고 얼마 안되어 한 수백만 명쯤 되는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길고 긴 줄을 찾았다. 나는 그 끝에서, 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시드니는 뉴질랜드보다 기온이 높았으리라, 적도에 가까우니 말이다.) 줄에 서서 발끝을 톡톡 두드리며 줄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그 때, 자이비어가 나타났다. 그는 반갑게 인사하며, 연착 표를 바꾸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아까 지나오면서 보았던 표 교환소가 기억났고, 그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와 악수를 했다. 작별인사 겸 해서 말이다.


하여간 직원들이 표를 받기 시작했는지 길쭉한 지네 같던 줄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한 이, 삼십 분쯤 되어서야 내가 표를 낼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직원이 표를 받고 나서 하는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잘못된 게이트를 찾아 온 것이다. 항공사는 아시아나가 맞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표는 게이트 21의 아시아나가 아니라 게이트 32의 아시아나였던 것 이다. 직원에겐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했지만 게이트 32로 향하면서 속으론 갖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설상가상으로 게이트 32는 이곳의 반대편에 있었고, 나는 미궁 같은 복도들을 한 다섯 시간은 걸어 결국 정확한 곳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꽤나 있었고, 나는 앉아 기다릴 곳을 찾다가 어떤 중년 여성의 옆자리가 빈 것을 보고 그곳에 앉아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잠시 쉬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는 일행이 여러 명인 듯 했다. 그녀 주변에 앉은 사람들 몇몇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대머리에 안경을 쓴 남자가 그녀 옆에 앉으려는지 다가왔다가 내가 자리에 있는 것을 보더니 주춤거리다가 내 옆, 그러니까 중년 여성에게서 두 자리 떨어진 곳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나를 사이에 두고 그 여자랑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불쾌했다. 아니 그냥, 그 여자랑 대화를 하고 싶다면 나에게 비켜달라고 할 수 도 있는 것이고 한데, 나를 사이에 두고 일행이랑 잡담을 하다니 말이다. 나는 마치 그 그룹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잠시 불쾌함을 느꼈다. 다행히도 얼마 안되어 직원이 표를 받기 시작했고,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중년그룹으로부터 탈출하였다.


 


비행기에 들어서서 내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자리는 창가였다. 멀미를 하는 사람에겐 비할 바 없이 좋은 자리이지만 나에게 있어 창가자리는 지옥이다. 나에겐 비행기만 타면 소화가 안 되는 병이 있다. 그냥 소화가 안 되는 게 아니라 뭘 좀 먹고 마시면 배가 부글부글, 마녀의 단지처럼 끓는다. 하지만 마력의 약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설사만을 만들어 내는 쓸모 없는 단지이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을 자주 가야하고, 창가는 정말 치명적이다. 남에게 부탁하는 걸 싫어하는 나는 옆 사람에게 화장실이 급한데 잠시 비켜주실래요 이 한마디도 못한다. 그 때문에 나는 통로 쪽에 앉아야만 한다. 하지만 진실은 내가 창가자리라는 것이었고 나는 현실에 순응하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내 옆의 두 자리를 채울 두 주인공이 나타났다. 최악…… 까진 아니었지만 별로 만족스럽지는 못한 두 명이었다. 노부부. 비행기에서의 노인들이란 당황스럽다. 대개 노인들은 비행기를 자신들 안방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신문을 활짝 펴 들고 읽으시기 시작했다. 노친네가 팔꿈치는 얼마나 딱딱한지 팔을 손잡이에 올려놨던 나는 팔을 치울 수 밖에 없었다. 팔걸이 밑으로 팔을 내리니 내 큰 덩치가 압박되는 것을 느꼈다. 결국 나는 창가에 기대었고, 어느 정도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했고, 얼마 안되어 기내식이 나왔다. 예의 할아버지는 진지를 맛나게 잡수신 후 와인을 주문해 드시기 시작했다. 슬슬 취하시는지 그분은 개인 스크린에 나오는 뉴스를 보며 노무현이 어떻다니 청문회가 어떻다니 정치이야기를 막 하시기 시작했다. 그리곤 스튜디어스 아가씨에게 계속해서 와인을 주문했다. 대개 별거 없는 노인들이 술만 좋아하고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그 분야의 권위자인 듯 자기 의견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잠을 좀 자려는데 그 분이 예의 돌 같은 팔꿈치로 나를 툭툭 치며 물었다.


 


우리 때문에 많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불편하겠네?


 


예에, 아주 잘 알고 계시는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손을 저었다. 그러자 이 할아범이 한마디 던졌다.


 


아니, 한국인 아니고 동남아 쪽 사람인줄 알았어.


 


? 동남아? 아으, 그럼 내가 베트콩이냐! 죽어라 베뜨꽁 투투투투투! 베트남 사람이 아니면 태국인? 어느 쪽이던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대개 노인이라는 게 말을 걸 때는 꼭 점잖게 말을 걸지 못하고 팔꿈치 따위로 툭툭 치고나 하고 남이 기분 나빠할 만할 말을 서슴없이 해댄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뻔뻔시럽게 변하는 것일까? 하여간 기분이 나빠 잠을 청했다. 여전히 피곤했던 나는 또 금방 잠들었지만 자리가 불편하고 꾸르륵거리는 배 덕분에 얇은 잠만을 자다가 한 시간 후쯤에 깨어나고 말았다.


 


아시아나가 좋은 점은 대부분의 비행기에 개인 스크린이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꼭 시간에 맞추어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되고 채널만 설정하면 내가 보고 싶을 때, 약 10여종의 영화를 맘껏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영화란 영화는 모조리 보았다. 그 중 재미없는 것은 빨리 감기로 보았다. 약 일곱 편 정도를 보았는데, 재미 없던 것은 이준기가 주연으로 나온 플라이 대디라는 어이없고 식상한, 그리고 눈물이나 빼게 만들려는 영화였고,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오버 더 헷지였다. 3D 만화라 좀 유치할 것 같아 지금 까지 것 보지 않았지만 3D 애니메이션 제작 수준이 토이 스토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


 


인간은 바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면서도 욕망에 굴복한다. 내가 바로 그 바보 중 하나이다. 비행기를 탈 때부터 뱃속이 끓기 시작했는데도 나는 꾸역꾸역 오렌지 주스며 샌드위치를 먹어대었던 것 이다. 결국 나는 마지막으로 나왔던 기내식을 먹지 못하고 고개는 창문에 처 박은 채 낮게 신음하며 남은 비행기 시간을 버텼다.


비행기는 아홉 시간 반의 비행을 안전하게 마치고 결국 나의 모국,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던 악마의 단지는 어이없게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 끓어오름을 멈추었다. 정말 이건 못 말리는 고질병이다.


 


입국 신고를 하였다. 사람들 중에선 꽤 일찍 도착한 편이라 얼마 안 기다렸다.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버릇이 한가지 생겼는데, 그건 모르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땐 고맙다고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길을 지나가다가도 시선이 맞으면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게 버릇이 되어버렸고, 나는 비자 검사를 하는 그 한국인 여자에게도 인사를 했다. 근데, 대답을 안 한다. 그저 묵묵히 내 여권만 검사하고, 도장만 쾅 찍고, 다시 여권을 돌려줄 뿐이다. 또 버릇이 나와 여권을 받으며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대답은커녕 시선조차 주질 않았다.


 


나는 이게 우리나라의 문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뉴질랜드 친구들 중 한 명이 나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동양인을 봤을 때, 만약 그가 미소를 짓고 있다면 그것은 일본인이고, 무표정이라면 중국인이며, 화난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게 바로 한국인 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기이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좀 부끄러운 이야기일수도 있다. 정(情)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지만 사실 정보단 빨리 빨리 개념이 더 잡혀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우리는 남에게 자기 일에만 신경 쓰고 맨날 화나 보이는 인종들로 보이는 것이다. 이건 우리나라가 고쳐나가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뉴질랜드처럼 언제나 웃는 얼굴들로 사람을 대하고, 빈말이라도 상대방의 호의에 감사해하며 서로 기분 좋게 끝내는 사람들이 되는 게 어떨까.


 


느긋하게 걸어 비행기에 실었던 짐을 찾아 들고, 큰 문을 나섰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손을 높이 들어 흔들고 계신 어머니와, 옆에 서 계신 아버지가 보인다.


 


집에 왔다.


 


 


 


 


연착 첫경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