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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2부작] 연착 첫경험

2006.12.10 04:02

Mr. J 조회 수:336 추천:9

extra_vars1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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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수는 내가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별로 무겁지 않은 짐을 뒤 트렁크에 넣고, 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주변에 너저분하게 널린 말아 피는 담뱃잎들과 사탕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인 그의 면허증. 운전수가 내 고모에게서 65달러를 받고 운전석에 올라 탔을 때, 나는 그에게 지난 겨울 나를 캠브릿지까지 태워다 준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다.


 


네가 그 교통사고 때의 녀석이냐?


 


그가 되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자신이 그때 나를 집까지 태워다 주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차 문을 닫았고, 나는 창문너머 밤 공기에 서 계신 고모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곳에 도착한 후 줄곧 시동이 걸려 있었던 차는 금방 출발했고, 나는 공기가 살을 에는 새벽 3시 반, 모국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차는 울퉁불퉁한 도로와 비포장도로에서 심하게 덜컹거렸다. 내가 약 2년 전 조부모와 남섬 여행을 갔다 왔을 때 뉴질랜드의 비행기를 처음으로 타 보았는데, 어찌나 덜컹거리는지 비행기를 판자로 만든 줄만 알았다. 지금 이 차 역시 비행기처럼 덜컹거리는 것을 보니, 이곳에선 판자조각으로 비행기며 자동차며 찍어내는 모양이다.


 


새벽이라 길엔 지나다니는 차가 별로 없었다. 바람만이 사람들이 없는 빈 공간을 채우려는 듯, 세차게 불어 안 그래도 심히 흔들리는 차를 더 진동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덜컹거림에 몸을 의지하면서, 창문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 웬만한 도로엔 가로등조차 없는 뉴질랜드의 시골길을 달리며, 나는 전조등 불빛에 드러나는 덤불들과 나무들을 별 생각 없이 주시하였다.


 


나의 운전수는 연신 옆에 놓여진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계속해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그래 보았자 민트라던지 리코라이스겠지만 도대체 운전수라는 사람들은 자신 것을 절대로 권하지 않는다. 뭐, 나는 그때까지도 은근히 그가 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하고 있었으니 그 게걸스럽게 씹어대는 행위가 그의 잠만을 쫓아 내어 준다면 별 불만은 없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자동차의 덜컹거림이 좀 멎었다. 약해진 덜컹거림은 출발 전날 수학시험을 치고 여태까지 눈 한번 붙이지 못했던 내 지친 두뇌의 긴장을 풀게 만들었다. 요람 같은 자동차의 덜컹거림과, 단조롭고 졸린 목소리로 헬렌 클라크와 돈 브래쉬, 혹은 피터스의 정치를 토론하는 라디오 방송에 나는 결국 잠에 빠지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나는 운전수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바람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그냥 이유 없이 내가 잠에 빠졌었다는 것을 숨기고 싶어서, 나는 최대한 쌩쌩한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뭐라고요?


 


저곳이 내가 자란 곳이라고 했어.


 


, 그렇군요. 좋아 보이네요.


 


완전 뻥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살짝 보이는 덤불과 나무, 그리고 울타리뿐이었으니 말이다. 그 후 잠에서 덜 깬 내가 별로 흥미롭지 못한 대답만을 해대자 운전수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내가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되어 차는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좀 더 차가워 졌다고 느껴지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트렁크에서 짐을 뺐다. 그리고 운전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돌아올 때 다시 태우러 왔으면 좋겠군!


 


그가 말했다.


 


그러면 방학 동안에 뭘 했는지 나한테 들려줄 수 있으니 말이야!


 


그가 웃으며 말했고, 나는 한 손을 들어 그에게 인사하고, 공항으로 씩씩하게 들어섰다.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일단 비행기 표를 꺼내어 짐 수속을 할 창구를 확인하였다. 공교롭게도 병역 연장에 여권기간 만료, 비자기간 만료가 겹쳐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학생 비자가 끝나는 오늘, 11월 30일 날 허둥지둥 한국 행 비행기를 찾아보아야만 했고, 유일한 것은 6시 반쯤 출발하는 연착비행기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번도 연착비행기라는 것을 타본 적이 없다. 짐 수속이며 표며 모든 것이 다를 것이었다. 몸에 기운이 빠짐과 동시에 몰려오는 스트레스에 한숨을 내쉬며 나는 사람이 없는 공항을 가로질러 한 창구로 향했다. 첫 번째 창구에 있던 사람은 뚱뚱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마오리 여성이었다. 내가 짐을 옆에 올려놓고 비행기 표를 내밀자 그녀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에어 뉴질랜드 창구는 오른쪽으로 더 가셔야 되요.


 


그녀가 말했다.


 


이곳은 호주 퀀타스 항공이에요. 손님의 비행기는 에어 뉴질랜드로군요. 보이시죠?


 


표에는 별다른 소리가 쓰여 있지 않았지만 나는 일단 알겠다고 대답한 뒤 짐을 들고 허둥지둥 그녀가 가리킨 창구로 걸어갔다. 에어 뉴질랜드, 찾았다. 그 쪽 창구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는 줄에 서서 기다렸고, 곧 빈 창구가 생겼다. 이번 창구에 서 있던 사람은 새 둥지 같은 특이한 헤어스타일의 백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약 40살쯤 되어 보였는데, 실제 나이는 그보다 어렸을 것이다. 사람이 뚱뚱하면 본래 나이보다 늙어 보이기 마련이다. 그녀는 조금 불친절했다. 뭐, 그녀가 직접적으로 나에게 불친절하게 군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나는 그녀가 동양인을 싫어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그녀에게 표를 내밀었고 그녀는 그것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여긴 에어뉴질랜드 항공 창구가 맞지만 손님께서 가지고 계신 표를 체크인 하려면 오른쪽으로 더 가셔야 합니다.


 


아 젠장, 이게 뭔 망신이냐.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실수를 하다니. 하지만 그녀가 가리킨 쪽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야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창구들은 죄다 아르헨티나 에어라인 이라던지 골드 코스트 같은, 나의 시드니 행 연착 비행기와는 절대로 관련이 없을 것만 같은 곳들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옆을 지나가던 공항 직원에게 내 표를 보여주며 물었다.


 


, 101번 창구로군요, 저쪽에 가서 기다리세요.


 


이쪽, 저쪽, 오른쪽, 왼쪽. 아니 도대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어디가 어딘지 내가 알 수가 있나. 그들에겐 공항이 자기네 집 이라던지 고향 동네만큼 익숙한 곳이겠지만 나는 지금 도통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다. 결국 아즈텍 항공골드 코스트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아까 물어보았던 직원이 손짓으로 이쪽이 맞다는 싸인을 보낸다. 그리고 잠시 후, 아무도 없던 아즈텍 항공에 한 동양인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분명 한국인이다. 그녀를 한국인이라 생각한 것은 왜였을까. 물론 이곳에서 3년간 살며 동양인만 봐도 그 사람의 국적을 대강 추려내는 능력이 생기긴 했지만 그게 초능력이 아닌 이상 틀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중국인일수도 있었고, 일본인일수도 있었다. 하여간 나는 마음을 다잡고, 그녀에게 나아가 짐을 올리고 표를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표를 확인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연착비행기이신가요?


 


한국말이었다. 오 주여! 이렇게 기분이 편안해지기는 어제 보았던 수학 시험 이후로 처음이다. 나는 라고 대답하며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꽤 미인이었다. 뭐랄까, 연예인처럼 예쁜 것은 아니었지만 밖에 내놓아도 중간 이상은 갈 만한 얼굴이었다. 키도 컸고. 어쨌건 나는 그녀 덕에(뭐 별 상관은 없었을지 몰라도) 짐 수속을 무사히 마치고, 공항 세를 내기 위해 무인 요금기 앞에 섰다. 지갑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졌다. 없다. 옆 주머니에도, 뒤 주머니에도, 매고 있던 작은 가방에도 없다. 순간,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지갑은, 방금 수속을 마치고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저 너머로 가버린 큰 가방 앞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공항 세를 내지 않으면 비행기를 탈 수 없다. 모든 것을 수포로 돌릴 수는 없다. 나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창구 맨 끝 컨베이어 벨트 옆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 저기 방금 짐 수속을 한 사람인데요. 제가 공항세를 내야 하는데 지갑을 체크 인 해버린 큰 가방에 넣어버렸거든요……. 어떻게 해야하죠?


 


짐 수속 했던 창구로 가봐라.


 


나는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겨 방금 전 짐 수속을 한 아즈텍 창구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짐 체크 인을 도와주었던 한국 여성분께서는 아직도 계셨다. 나는 그녀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 했고, 그녀는 흔쾌히 잠시 후 자신이 직접 내려가서 짐을 찾아 올라오겠다고 해 주었다. 오오, 그녀는 여신이었다. 아름답고 거대한 여신이었고, 메시아였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그녀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며 나는 주변에 놓여진 벤치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오오 여신이여. 나는 가방 앞 주머니에서 지갑을 회수하였다. 그리고 나의 여신에게 다시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그때 컨베이어 벨트 끝자락에 앉아있던 남자가 나를 지갑 맨 이라고 불렀지만 그냥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참았다.


 


 결국 공항세 지불을 마쳤다.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약 30분 정도 남았고, 나는 서둘러 게이트들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공항세 지불을 확인시켜주고, 짐과 몸 검사를 거친 뒤, 나의 출발문인 게이트 7로 향했다. 내가 일등이었다. 대기실엔 아무도 없었다. 잠시 앉아 기다리자 몇몇 사람들이 들어와 앉기 시작했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한국인인듯한 30대 후반의 아주머니, 꼭 껴안고 있던 한 커플, 아까부터 자리에 앉을 생각은 않은 채 창가에 서서 대기중인 비행기를 바라보는 남자, 평범하고 화목해 보이는 백인 가족, 풍만한 몸매의 여성, 연신 노트북을 두드려 대는 대머리 아저씨. 이들 모두 목적은 다르지만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로 간다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그들이 앉은 쪽 반대편에 앉아, 직원들이 표 검사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익숙한 뒷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중국인 자비에르였다. 그래, 영화 엑스맨에 나오는 휠체어 교수, 자비에르와 이름이 같다. 사실 이곳에선 영국발음을 따라 자이비어 라고 발음하긴 하지만, 뭐 어때. 하여간 나는 그를 불렀다. 물론 자이비어 라고. 그가 나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그가 내 옆에 앉자마자 그에게 아는 척 했던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는 끔찍하게 냄새 났다. 나는 고개를 최대한 뻣뻣이 세워 냄새를 피하려 하면서 그와 대화를 조금 나누었다. 그의 미숙한 영어 실력 덕에 대화는 금방 끝이 났고, 나는 비행기표를 확인하는 척 하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얼마 안되어 비행사 직원이 표를 받기 시작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비행기 안으로 들어섰다.


 


내 자리는 벌써 들어와 앉아있는 어떤 깐깐해 보이는 백인 아주머니 옆이었다. 나는 그다지 내키진 않았지만 뭐, 어차피 연착 비행기이다. 시드니에 도착 하기만 하면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니 말이다. 하여간 나는 자리를 잡고, 매고 있던 가방을 발 밑에 내려놓은 뒤, 비행기가 출발하기도 전에 눈을 감았다. 벌써 아침 7시였고, 나는 여태껏 잠을 한숨도 못 잤다(잠시 졸긴 했지만). 나는 내 생애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