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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단편] 행복한 죽음

2006.12.07 09:25

갈가마스터 조회 수:425 추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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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를 나서는 길은 고요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어젯밤부터 공부하기 시작하여 벼락치기 겸 치룬 오늘의 시험은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았듯 피곤과 싸구려 커피의 찝찝한 잔향만 남기며 끝나버렸고, 곧 눈이라도 쏟아낼 듯 가로등의 불그스름한 빛을 반사하는 하늘은 이리저리 흩날리는 단풍잎들과 함께 뒤죽박죽인 내 머릿속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넓은 평지를 차지하며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흩어져 있는 교정은 오늘따라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겨울바람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 지나가는 사람도 없이 한산하여 마치 이 세상에 나만 홀로 남아 있는 듯한 외로움을 자아냈다. 어두운 밤공기, 서늘한 동장군의 숨소리, 폐부를 얼어붙게 만드는 그 서늘한 걸 들이키며 뒤이어 입 밖으로 점점이 퍼져나가는 새하얀 입김을 한숨 섞인 멍한 눈동자로 가만히 주시했다.




  “한심하군. 나란 녀석도.”




  괜히 자신을 책망하며 오늘 망친 시험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한다. 하루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하루라는 시간만 더 있었다면 아까 풀지 못해 끙끙거리던 문제를 풀 수 있었을 거라 망상하며 이미 출발해버린 버스를 쫓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고, 시간이란 절대자는 나란 미물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주지 않는 법. 굳이 깨달음의 시간을 거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절대적인 진리에 순응하지 않고 패배자의 말만 읊조리는 내가 한심스러워 절로 한숨만 나왔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이때껏 살아오는 동안 내가 놓쳐버린 시간들과 순간들을 생각해봤다. 작게는 얼마 전에 떨어진 자격증 시험. 크게는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그냥 지나쳐온 이십년이 넘는 내 시간들이다. 나는 그 시간동안 무엇을 했을까. 그닥 떠오르는 것도 없고 자격증시험같은 경우, 시기를 놓쳐버린 바람에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험에 임해 결국 떨어져버렸다. 이번 시험도 그렇고 나는 그냥 되는대로 살아온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거리는 많았지만 정작 생각해보면 전부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을 미뤄버린 내가 자아낸 과오였다. 그러면서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나는 아직도 이 꼴이었다. 오늘의 시험도 벼락치기가 가져온 필연이니 더 말해봐야 비참해질 뿐이겠지.




  “훗.”




  괜히 실소만 흘러나온다.




  위이잉.




  자학적인 상념에 잠겨 교정을 걷고 있는데 문득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부들부들 진동하기 시작했다. 매너모드로 해놨기에 전화벨도 울리지 않았건만, 나는 그 진동소리조차 시끄러워 냉큼 파카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잽싸게 수신자가 누구인지부터 확인했다. 시답잖은 전화라면 무시해버릴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건 바로 아버지였다. 귀찮다고 내가 끊어서는 안 되는 전화란 말씀.


 무슨 일일까? 또 ‘약 먹었냐’느니 아니면 ‘저녁 먹었냐’는 등 내 건강을 염려하시는 소리겠지? 아버지든 어머니든 내게 전화하셔서 건넬 용무래 봐야 그 정도 밖에 없을 테니까. 어찌되었든 차갑게 식어버린 휴대폰의 냉기에 진저리치며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아빠다. 저녁은 먹었니?”


  “응.”




  아니나 다를까, 뭔가 다른 걸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 뭔가 자극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이런 소리는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귀찮았기 때문에 오늘 같은 날은 더욱 실망이 컸을 뿐. 힘없는 목소리로 대충 대답을 하고 멈춘 걸음을 재개하는데 문득 아버지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빠랑 엄마 지금 병원에 가봐야 하거든. 집에 가면 누나하고 집 잘 보고 있어라.”


  “병원? 어째서? 왜, 누구 아파?”




  병원이란 말이 가진 위력은 참으로 놀랍다. 종전까지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사람을 지레 겁먹게 만들며 알 수 없는 불안감까지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하긴 지금 시각이 8시인데 통상의 진료시간을 넘어선 이 시점에 병원을 간다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인가? 뭔가 급한 환자가 생긴 모양이었다. 누구일까? 할머니? 아니면 이모? 고모? 혼자 별 상상을 다하며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버지의 담담한 대답은 날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외가쪽 증조할머니 알지? 지금 위독하신 모양이야. 아버지 머리 깎고 바로 갈 거니까….”




  증조할머니? 위독? 아버지의 말이 너무 침착하여 한동안 별 느낌은 없었지만, 조금 지나자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 말까지 더듬거렸다. 증조할머니 연세가 올해 아흔일곱 세셨던가? 그 연세에 위독하다는 말이 나오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먹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할머니께서 임종하실 때가 다가왔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나보고 집이나 보고 있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잠깐 아버지. 나도 따라갈래.”




  아버지가 끊으시려고 하셔서 나는 황급히 내 의사를 전달했다. 예상했듯 아버지는 약간 놀라신 듯 뒷말을 흐리시며




  “음? 굳이 따라올 것 까진 없는데.”




  하고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건 내 편의를 봐주신 아버지의 배려였고 내가 재차 가겠다는 의견을 표명했더니 아버지는 알겠다고 하시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아버지도 내가 이런 일을 한번쯤은 겪어봐야 한다는 걸 알고 계신 모양이었다. 전화를 끝맺고 나서 나는 아버지가 머리를 깎고 계실 단골 미용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겨울바람에 저항해 발을 움직일 때마다 마음속은 천근만추처럼 무거워져만 갔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다. 인간이 죽음의 길에 들어선다. 요즘 들어 주변에 그런 분들이 부쩍 늘은 것만 같아 마음 한구석이 괜시리 씁쓸해졌다. 분명 주변 사람의 죽음을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외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돌아가셨고 초등학교 때 어린 외사촌이 병에 걸려 쓸쓸하게 숨을 거뒀다. 다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병도 아니고 순수하게 명을 다한 인간이 삶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외사촌이 죽을 때도 나는 그 곁에 한 번도 서본 적이 없어 인간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되기에 오히려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인간은 죽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표정, 어떤 감정, 어떤 회한을 떠올리며 자신을 돌아볼까.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난 그 생각만 하며 홀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죽음에 대한 인간 본연의 두려움이 날 휘감고 도무지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지금 꽤나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앞좌석에 앉아 운전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도, 그 옆에서 아버지와 담소를 나누시는 어머니도, 혹은 내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계신 외숙모도, 그리고 나도,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을 경험하러 가는데 어찌 저리도 담담하실 수 있을까? 물론 나보다 주변인들의 죽음을 목격한 경험이 많으실 테니 어찌 생각하면 익숙해져버리신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말하기 괴롭고 슬프지만, 부모님들은 나보다 죽음의 문턱에 더 가까우신 분들이다. 인생의 황혼길에 접어드셔서 이제 내가 둥지를 떠나 홀로서기를 기다리시는 것이 낙일뿐인…. 그런데 죽음이 익숙해져서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건 인간으로서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무시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아무런 느낌도 없는 것일까? 나는 늘 그러했듯 든든한 조언자, 아버지에게 내 고민에 대해 털어놓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옆에 계신 외숙모 때문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하고 속으로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주마등처럼 휙휙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혼자 상념에 잠겨야 했다.




  거장 도스토예프스키였던가? 여하튼 그는 죽고 난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나머지 그토록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신을 믿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지금의 내 심정대로라면 정말 사는 것이 너무나 의미가 없게 느껴져 신이라도 믿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인간은 마치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편도 열차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정열을 불태우는 양초와도 같았다. KTX나 떼제베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가는 편도 열차는 결코 돌아올 수 없고 목적지에 다다르면 결국 사라질 뿐인 그런 존재가 인간이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불을 밝히는 양초처럼 생명이란 이름의 몸을 다 태워버리면 불을 피울 수 없고 시간이라는 레일에 의지의 몸을 던져 기차를 멈추게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살아서 이리 발버둥을 쳐야하는 걸까? 왜 학교를 다니고 쓸데도 없는 공부를 하고 짧은 인생을 낭비하며 허무하게 보내버려야 하는 걸까?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거라면 그건 시간에 대한 낭비요, 내 인생에 대한 죄악이 아닐까?


 화가 난다. 도무지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떠올리자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이성이 없는 동물로 태어나 본능대로 살다 가면 좋았을 것을….


 순간, 아무리 그래도 벌레는 싫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정말 한심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차는 어느덧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결국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당도했다. 시 외곽에 세워진 일반 빌딩 4층 높이의 2차 진료기관. 정문에 마련된 좁은 주차장엔 이제 막 도착한 듯한 작은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여태까지 우릴 기다린 작은 할아버지가 계셨다. 딱히 안색이 무거운 것도 아니고 내 부모님처럼 덤덤하기까지 한 그 분들의 표정에서 오히려 위화감이 들었다고 한다면 과장이 심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들 증조할머니가 위태롭다고 하니 어느 한분 예외 없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러나 그 분들의 얼굴은 죽음을 떠올리고 있다기엔 뭔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해보였다. 그냥 일반적으로 아픈 사람 문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나 할까.


 난 도대체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영화에서 본 것처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기대했던 걸까?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을 떠올리며 벌벌 떨길 바랬던 걸까?


 어쨌든 우린 작은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할머니의 병실로 찾아갔다. 늦은 저녁 시간, 뭐 훔쳐갈게 있다고 현관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기에 우리들은 한산한 응급실을 거쳐서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계단을 오르자 2층 복도에서 기다리고 계신 외삼촌이 기운 없는 표정으로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나는 어르신들 앞에선 늘 그랬듯 겉으로나마 복잡한 심경을 숨기고 웃음으로 외삼촌의 인사에 답해드렸다. 외삼촌은 기운없는 목소리로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외삼촌과 어른들의 뒤를 따라 나는 맨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계신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삑. 삑.




  네 명의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좁은 공간, 할머니는 산소마스크를 쓰신 채 힘겹게 숨을 들이키시며 침대에 누워계셨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뭐라도 걸린 듯 목에서 쉰 소리가 씩씩거리며 흘러나오고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미터기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삑삑거리는 소리를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푸른색의 펄스파형은 심장박동을 체크하며 가련할 정도로 힘없이 상하로 움직이고 있었다.




  “할머니. 애들 왔어. 애들.”




  작은 할아버지가 귓가에 대고 부르는 소리에도 묵묵부답. 할머니는 힘겹게 숨을 들이키시며 고요하게 눈을 감고 계셨다. 눈처럼 새하얀 눈썹은 작은 미동도 없었으며 할머니는 숨만 쉬고 계실 뿐 식물인간처럼 손가락하나 까딱거리시지 못했다. 작은 할아버지도 대답은 기대하지 않으셨는지 그저 착잡한 표정으로 할머니의 귓가에서 입을 땔 뿐이었다.


 아버지가 외삼촌에게 경과를 묻고 계실 동안 나는 가만히 무표정하게 할머니를 내려다보았다. 거의 1세기에 범접하는 세월과 그것을 상징하는 주름살과 검버섯, 그리고 못 뵌 사이 어느덧 눈처럼 새하얗게 새어버리신 머리카락. 할머니는 마치 잠이라도 주무시는 것처럼 누워계셨다. 가늘어진 팔뚝에는 링거가, 가슴과 검지엔 심박과 신경전달을 재기 위한 기구들이 더덕더덕 붙어있건만 할머니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시는 지 씩씩 쉰 소리만 내시며 산소를 들이킬 뿐이셨다. 나는 어머니와 이모가 밖으로 나가시는 것을 돌아보며 가만히 할머니의 주름투성이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피골이 상접한 손가락은 해골처럼 앙상했고 시체처럼 차가웠다.


 문득 눈물이 핑 돌았다. 혼수상태라고는 하나 할머니의 겉모습이 너무나 멀쩡해 보여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 설날 때 뵈었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그 생생함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시큰거리며 속에서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나는 조용히 할머니의 손을 내려놓곤 그대로 무거운 공기로 가득한 병실을 빠져나와 병실 밖의 차가운 공기를 폐 속으로 끌어 담았다. 눈물마저 마르게 하는 그 차가움에 놀라며 나는 멍청한 얼굴로 비상구 계단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아직도 숨을 내쉬고 계신 할머니가 눈에 아른 거릴 뿐이었다. 곧 돌아가시리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그렇게 앉아있는데 문득 이모가 나를 불러 손수 구워 오신 쿠키와 원두커피를 주셨다. 나는 여느 때처럼 하하 웃으며 일어서서 이모의 쿠키와 커피를 맛있게 입에 담았고 오늘 오지 않은 누님에게 쿠키를 가져다주기 위해 이따 이모 집에 들르기로 약속하며 한동안 어른들과 밖에 서 있었다.




  “산소 호흡기 떼면 바로 돌아가실 거야.”




  이모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할머니가 살아계신 건 순전히 산소호흡기와 링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이시며…. 전혀 눈을 뜨실 가능성이 없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가능성이야 있겠지. 예전에 죽어서 장례를 치르는데 3일째 되는 날 갑자기 일어난 분들도 계셨으니까 그 가능성까지 부정하진 못해.”




  이렇게 말씀하시며 내 말을 딱 잘라 부정하진 않으셨다. 하지만 그건 극히 드문 경우이고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친할아버지, 양할아버지도 이렇게 혼수상태에 빠지시고 바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비록 천수를 누리시고 가신게 아니고 두 분 다 병을 얻어 고통스럽게 돌아가셨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그 분들이 잠드는 모습을 끝까지 곁에서 지켜보셨다고 했다. 마치 우리들이 밤에 잠이 들듯 영원히 잠으로 빠지신 것처럼 편안한 얼굴이셨다고 덧붙이시며 아버지는 죽음과 늘 가지시고 계신 순환사상을 결부시키시며 자연의 이치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산소호흡기와 링거에 의지하다보면 언젠가 깨어나실 가망성도 있는 거잖아.”




  나는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가정을 입에 담으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0.01 퍼센트? 아니 그 보다 더 낮을 지도 모르는 희박한 확률에 판돈을 거는 무모한 소리. 하지만 난 아무리 그래도 그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나 같으면 아무리 희박해도 그 가능성을 버리지 못할 거야. 나라면….”




  뒷말을 흐리며 덧붙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렇게 되셨을 때를 상상하니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아찔했다. 먼 훗날을 상상했을 뿐인데 간신히 다잡았던 감정이 다시금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운전을 하시며 늘 그러했듯 조용한 어투로 말을 이으셨다.




  “희망을 품는 건 좋은 거지. 하지만 할머니가 저 상태에서 깨어난다손 치더라도 할머니가 과연 행복하실까? 깨어나 봤자 치매 때문에 정신이 온전하지 않을 텐데? 아버지는 말이다.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까지 살고 싶지 않아. 그게 사는 거니? 천만에, 그건 아무리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거야. 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기억은 끊기고, 제 자식도 몰라보는 삶은 살아봤자 헛수고인 거야. 자신도 피곤하고 남들도 피곤하게 만드는 거니까.”




  아버지의 신랄한 말엔 반박할 수 없었다. 대체적으로 나도 그걸 옳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것이 어디 또 그런가? 죽을 때가 다가오면 정신이 오락가락해도 살고 싶다고 발버둥 칠 것이다. 살겠다고 무슨 짓이라도 할 거라 이 말이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듯이…. 내가 이 말을 하니 아버지께선




  “그래, 네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삶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어.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현재 아버지는 그렇게 해서라도 살고 싶지는 않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잠시 입을 축이시는 듯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나가셨다.




  “예전에 아버지가 죽을 뻔 했었잖아…”




  예전에 대장암으로 고생하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는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선을 넘고 보니 지금은 생에 대해 그렇게 미련이 남지 않더라. 지금 살아 있는 걸 아버지는 덤이라고 보거든. 물론 그 때 아버지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이를 악물었지. 너희들을 남겨두고 간다고 생각하니 아직 죽을 수 없었던 거야. 아직 세상에 너희들과 엄마라는 미련이 남았기에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거지. 너희들이 독립하면 이 아버지는 더 이상 미련이랄 게 없어.”




  아버지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렇게 생각해볼까? 너네 증조할머니 연세가 올해 97세잖아. 옛날과는 달리 모든 천수를 누리고 아주 행복하시게 돌아가시는 거지. 아니 오히려 자식들이 먼저 갔으니 천수를 훨씬 더 많이 누리시고 가시는 거니까. 정말 오래 사신거지. 아버지는 아무런 병마도 겪지 않고 저렇게 가는 게 모두를 위해 행복한 거라고 봐.”




  모두를 위해 행복한 죽음이라. 그래, 그건 그렇다. 할머니가 살아계셔도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다면 모든 이들이 불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병하는 사람은 속이 타들어갈 것이고 할머니는 할머니 나름대로 폐 끼치는 것이 싫어 죄책감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이다. 잔인하지만 이렇게 가시는 것이 할머니에게도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도 좋은 해결책이 될 테지.


 “으이구, 늙으면 죽어야지.” 노인 분들이 가끔 하시는 농담을 떠올리며 나는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우리들의 이기적인 입장일 뿐이다.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버린다면 할머니가 귀찮아서 내쫓는 것과 마찬가지지 않은가? 할머니를 우리 손으로 죽이는 것과 무엇이 그리 다른가? 천수에 의해 가시는 거니까? 누릴만큼 누렸으니 이제 갈 때라고 위안을 삼으며 작은 희망은 싹을 피울 틈도 없이 잘라버린다는 건가? 이성으론 알겠다. 이론도 알겠고 어떤 것이 더 행복한 현실인지도 눈물이 삐져나올 정도로 잘 알겠다. 그러나 내 심장은 다르다. 나는 할머니가 죽는 것도 내 주변인물이 죽는 것도, 그리고 내가 죽는 것도 싫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고 오래 살아봐야 추한 꼴만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죽기는 싫다!


 아버지가 굳게 믿고 계신 윤회사상, 모든 우주에는 돌고 도는 흐름과 순환주기가 있다는 그 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죽음은 끝이고 다시 태어난다한들 나는 내가 아닐 것이다. 돌고 도는 그 뫼비우스의 고리 속에서 지금의 나란 존재는 흐름을 끊기고 끝장나버리는 것이다.




  두려웠다. 내가 가진 시간이 영원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슬프고 부질없는 일인지. 하지만 그건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죽음을 인정하고 다른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과연 내가 죽을 때,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이 갈 수 있을까?




  두려움이야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어딘가 나사하나가 빠져버린 것들뿐. 이 지구상에 그 어떤 인간도 심지어 생물이라면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그걸 인정하게 된 이상 이젠 언젠가는 찾아올 그 때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완벽한 건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미련 없이, 최대한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선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없다. 지금의 내 지식수준으론 최대한 현실에 충실 하는 수밖에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나는 죽음이 다가왔을 때,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야.”




  이모네 집에서 쿠키와 식혜를 받아들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한 말이다. 내 딴엔 농담 반 진담 반이라고 꺼낸 말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크게 웃으시며 “그래 너는 그렇게 살아라. 난 그렇게까진 싫다.”라고 대꾸하셨다.




  그렇게 며칠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노인병원의사의 조언대로 호흡기를 뗀 그 즉시 돌아가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영원한 잠에 빠져드셨다. 어머니는 그것을 “예쁘게 가셨네.”라는 감상으로 일축했으며, 세상은 여전히 평온한 일상대로 흘러갔다. 외가 쪽이 장례식 준비로 분주해졌을 뿐 내 주변은 뭐하나 변한 것 없이 돛단배처럼 시간이 흐르는 대로 몸을 내 맡길 뿐이었다. 누군가 죽어도 내 일상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늦게나마 몸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올리고 보자는 이 미칠 듯한 센스!!!!! 누가 나 좀 말려줘요!


시험 기간에 올립니다. ㅡㅜ 이런 지저스 갓뎀 퍽!!!!!!!!


비판은 언제나 대환영이며(비판?)


비평은 언제나 올그린입니다~


그럼 퇴고는 비평을 들은 다음에 하도록 하고... 이만!!! 푸헬헬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