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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수필 [단편] 고층빌딩

2006.11.20 23:51

Mr. J 조회 수:262 추천: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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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바람이나 쐴 겸 시내를 잠시 걸어 다녔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아스팔트 정글의 인조 공기가 코를 찔렀다. 도시는 정글과 매우 흡사하다. 땅을 덮은 붉은 땅은 시꺼먼 타르로 포장된 도로이고, 정글을 빽빽하게 덮는 나무는 크고 작은 빌딩들이다. 작은 빌딩은 덤불이고, 큰 빌딩은 삼나무겠지. 저기 있는 편의점은 가시덤불이 될 테고 그 맞은편에 우뚝 서 있는 크고 길쭉한 빌딩은 세퀘이아쯤 될까? 나무에 이리저리 걸쳐진 넝쿨줄기는 역시 어지럽게 꼬인 전깃줄들과 회색 전봇대들이겠지. 거인 빌딩, 땅꼬마 빌딩, 고무 넝쿨줄기들과 딱딱하고 거칠거칠한 표면의 회색 땅이 하나의 잿빛 카노피를 만들어낸다.


 


인공 숲의 타잔이 된 듯한 느낌을 가지고 거리를 누비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토록 정글과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한가지가 있다. 바로 공기. 숲의 공기는 평온하고 정글의 공기는 부드럽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만든 인공 숲에선 나쁜 냄새가 나는 것일까. 나무는 사람들이 내뱉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어 낸다던데, 이 잿빛 숲의 나무들은 산소를 잡아먹고 시꺼먼 연기를 꾸역꾸역 뱉어낸다. 생긴 것은 숲과 흡사하면서도 왜 공기는 숲의 공기와 전혀 다른 것일까, 사람들은 인조 정글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숲의 공기는 만들어 내지 못 한 것일까. 그러면서도 왜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어하는 욕심쟁이 먹보처럼 맑은 공기를 만들어내는 진짜 숲을 야금야금 집어삼켜 가면서 까만 공기만 뱉어내는 자신들의 빌딩 숲을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아오른 빌딩들을 보다 보니 갑자기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옛날 사람들은 전부 한가지 언어로 말을 했다고 한다. 말이 같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지금과는 다르게 의견 일치가 쉬웠는지 어느 날 힘을 합쳐서 거대한 탑 한 개를 짓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우스운 것이 그들은 스스로를 신의 창작물이라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신과 동급이 되고 싶었단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이 하늘에 살고 있으리라 믿고 하늘을 찌를 만큼 큰 탑을 만들어 신과 같은 세상에 존재하고 싶어했지만 신은 그들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었던 한가지 언어를 빼앗고 여러 가지 다양하고 복잡한 언어를 주어서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알 사람이라면 알 만한 이야기겠지.


 


어쨌건, 어디선가 들어봤던 그 이야기를 다시 끔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끝없이 치솟아 오르는 빌딩들을 보고 신은 다시 이 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을 빼앗고 또 언어를 섞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많이 바뀔까? 그 바벨탑처럼 거대한 탑들은 무너지고 그와 함께 이 잿빛 숲 역시 무너질까? 그렇게 된다면, 번쩍거리는 유리로 뒤 덮인 고층빌딩이나, 매연을 뿜어내는 건물들 역시 사라지겠지. 그것들이 사라지고 난 다음엔 부드러운 땅을 덮고 있는 아스팔트 역시 언젠가는 닳아 없어지고,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할 테지. 잿빛 숲은 그 존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초록 숲이 그 자리를 메우기 시작할 테고.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한번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그땐 잃어버린 숲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