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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추리 거울의 경계

2005.06.19 09:39

Weeds 조회 수:230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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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절벽위의 하늘.
    그곳이 오늘만큼 푸르러 보일수는 없었다.
    아네모네는 들국화를 안고 그곳으로 가게 될테니.

    진흙의 연꽃이 되어가기 전에
    나는 그대에게 금잔화 한송이를 보낸다.

    화원속에서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노란 백합이여.』


베란다 바깥으로는 빗줄기가 힘차게 내리고 있다.
요즘엔 비가 온다는 소식을 통 듣지 못했는데, 오늘따라 갑자기 내리는 폭우.
나는 방금 젖은 우산을 털며 401호실의 벨을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뭐야, 멋대로 전화로 불러놓고는 오락실이라도 간건가.(잦은 일상중 하나다)
나는 괘씸한 생각에 몇번이고 벨을 눌러댔다.
그리고, 열받아서 핸드폰을 꺼내려는 찰나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 예- 김명진 탐정사무소 입니다. 요번 고객님께서는 무슨 볼일이신가요? ]
...이것봐라.
"아아, 안녕하십니까? 당신 낯짝을 한대 후리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 아니, 사양합니다. ]

철컥-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곳엔 안경을 남방셔츠 단추구멍에 끼워넣고 오른손엔 바나나우유를 들고 있는
부스스한, 약간 모범생같은 느낌의 남자가 서있었다.
머리의 모양세를 보아하니 일어난지 얼마 되지않은 모양이다.

"오, 신영철. 오랜만이네."
"밸을 몇번이나 울렸는데 이제 나오는거야?"
"화장실에서 일보고 계시는데 자꾸 불러쌓다니. 인정머리라고는 없군, 자네."
"...그 양로원 말투좀 빨리 고쳐라. 일단 들어갈게. 오늘 꾀 춥더라."

나는 우산을 접어 신발장에 팽개쳐놓고 거실로 들어갔다.
이런 이런, 사람 사는곳의 꼴이라니.
테이블엔 먹은지 얼마 안된듯한 컵라면이 비닐봉지와 빈 바나나우유통 속에서 김을 내뿜고 있었다.
바닥에는 발 디딜틈도 없이 서류 비슷한 것과 의류로 매워져있었다.

"제발... 삼일에 한번은 치워야지. 일주일동안 쓰레기를 내버려두면 어쩌냐."
"내가 안 치워도 자네가 다 치워주잖나. 편하게 살아야지."

...겉보기와 다르게 실속있는 저 남자는 투덜거리는 내모습을 빤히 보고는 컴퓨터가
켜져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잠시 바라보고는, 한숨을 한번 쉬고
일어나 내 옆에서 같이 쓰레기를 치웠다.

"왜 그래? 또 사건의뢰야?"
"응. 진영이 이녀석이 잡무가 쌓여서 이런 사건에 일일이 신경을 못쓴다는군."

이진영은 우리 경찰 친구이다. 수사반장인데, 윗사람들의 잡무를 처리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승진이 얼마 안남은것 같은데, 웃기지 말란다.

"보상은 한댔어?"
"캔커피 하나 뽑아준다는군."
"...거절하지 그랬니."
"나도 심심한걸 어쩌겠나. 어쨌든 이리와서 좀 봐주게."

명진은 나를 컴퓨터 의자로 끌고갔다. 꾀 커다란 모니터 속엔 아늑한 배경의 사이트가 있었고,
어떤 게시물이 떠있었는데, 웬 꽃이름이 잔뜩 들어간 시였다.

"...이게 뭐야? 난 꽃에 대해선 잘 모른단 말야."
"그래도 꽃에 관련된 건 잘 알잖나. 이를테면 꽃말 같은거."
"음? 꽃말로 씌여진 시는 내가 알기론 거의 없는데?"
"작가가 아마추어인 모양이야. 내 나름대로 해석해 봤지만, 말이 요상하게 나오더군."
"음... 확실히 꽃말로 바꾸면 어느정도 말이 맞네. 서툴지만."

아네모네는 고독. 들국화는 결백. 연꽃은 나는 물러갑니다. 금잔화는 실망했다, 이별을 고한다.
노란백합은 허위.
이 시를 꽃말로 묶어놓으니 제법 문장답게 만들어졌다.

"이 시의 작가는 며칠 전 자살한 범인이라네."
"뭐? 자살한 범인?"

"그래. 이름은 이성현. 몇달 전에 있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었는데, 처음엔 강력히 부인하다가
끝내 범인임을 인정했다는군. 사건 현장에서 목격했다는 인상착의도 그렇고, 그는 알리바이가 흐지부지
했다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는 자백을 한 후에 제발 하루만 집에서 보낼시간을 달라고 했다네.
그리고는 허락을 받아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와, 이 시를 남기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거지."

"흰 절벽위의 하늘... 흰 절벽은 아파트를 말하는 거였군. 그런데, 하루만 시간을 달라니...
거기다 그걸 또 허락했다고? 보통은 그자리에서 끌고가지 않아?"
"그래. 확실히 이상한 일이네.
그래서, 이 시가 조금 이상해. 그가 기껏 돌아와서 이런 푸념시만 늘어놓고 죽을 리가 없어."
"음... 그렇다면 그가 이것말고 다른 시를 쓰진 않았어?
"그가 돌아다녔던 사이트는 다 돌아봤다네. 단서가 될 건 이것뿐이야."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흠... 확실히 이 시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말고 단서가 될 것 없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 개 뿐인데.

"혹시... 웹게임 형식으로 시를 감춰놓은건 아닐까?"
"웹게임 형식이라니?"

명진은 웬일이냐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요즘 유행하는 미궁게임 형식이야. 홈페이지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만든 게임인데,
주소 끝에 ~~.htm 이라고 써져있으면, ~~부분에 그 문제의 답을 영어로 적으면, 다음장으로
넘어가는 식이지. 나도 몇번 해본적이 있어."

"그러고보니.. 이 홈페이지도 끝이 .htm 으로 끝나는군.
그렇다면, 암호가 될 만한건 하나밖에 없어."
음... 이중에 암호가 있다? 그렇다면... 역시 제일 의심가는 건...

"아! 그렇다면《   》가 암호가 아닐까?"
"그렇겠지. 그렇다면 입력해 보자구. 뭔가를 지목하고 있을지도 몰라."

명진은 《그것》의 스펠링 6자를 .htm 뒤에 적었다.
그러자, 배경이 아무것도 없는 사이트가 뜨고, 가운데엔 두 개의 시구가 떠올랐다.

『아네모네는 너무나 기뻐한다.
   붓꽃께서 아름다운 보라색 머리를 내미셨으니.
   부디, 이미 연꽃이 된 아네모네 옆에 쌓인 낙엽을 치워주시길.

   주홍빛으로 물든 노란백합을 뽑아주시길.』

"음... 붓꽃의 꽃말은 존경합니다. 낙엽의 꽃말은 서러움... 이라.
아까의 암호 시구와 비교해 봐도, 역시 이성현은 누명을 썼답니다 라고 하는 것 같군."
"역시 그렇지 않나? 그렇다면 다음 시는 진범을 지목하는 거겠지?"

명진은 평소와는 달리 조급하게 마우스를 잡고, 오른쪽의 바를 밑으로 끌었다.

『 검디 검은 밤하늘
    그것은 곧 끝없는 어둠
    그것은 곧 티없는 순수

    그 칠흑 속에서
    마치 그곳만 도려낸듯
    찬란히 새어나오는 은색 섬광
    
    달빛이
    방금 서쪽에서 찬란히 비춰진다.

    섬광은
    뒷담의 작은 화원속에 피어있는
    과꽃의 다섯쨰 꽃잎을 비추었고,
    채송화의 셋쨰 꽃잎을 비추었고,
    시계꽃의 셋쨰 꽃잎을 비추었다.
    
    달빛은
    이 모든것을 비추는 것인가
    이 모든것에 숨어있는 것인가. 』

나는 이 시를 읽고 두 가지 의문에 빠졌다.
첫쨰는, 당연히 이 시구의 의미.
이것은 어찌 보면 단순히 밤풍경을 묘사한 것이지만,
중간쯤에 있는 세 가지 꽃에 대한 설명을 보면, 분명 뭔가를 지목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저 세 꽃은 내가 알기로는(정확하지도 않지만) 공통점따위라곤 전혀 없다.
이성현은 이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걸까.

두번쨰는, 명진의 표정.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명진은 내가 아는 한 최고의 추리력을 가진 사람이다.
학창시절 내가 좋아하던 트릭 문제와 넌센스 문제를 명진에게 보여주면 항상 답은 정확했다.
그는 그 능력으로, 아직은 명함밖에 없는 탐정 사무소를 차리고 경찰들의 의뢰를 받아주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든 여유롭게 해결했던 명진은, 약간 심각해하는 눈빛이었다.
아무리 내가 풀지 못해도, 녀석이라면 간단히 풀 수 있을텐데.

"신영철."
그가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저기, 테이블 밑에 노란색 서류봉투좀 가져다 주겠나?"

나는 테이블로 봉투를 가지러 가면서,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이 없다.
봉투 안에는 프린트물 한장이 들어있었다.
내가 직접 프린트를 꺼내 명진에게 건내주자,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심각해졌다.

"역시. 진범은 이 자가 틀림없네. 하지만, 이 시에는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그는 프린트를 대충 훑어보고는 내게 건냈다.
용의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명단이었다.
용의자는 총 다섯명.

1. 김 진철
2. 임 상수
3. 이 준성
4. 안 성환
5. 권 태남

이 사람들중에 진범이 있다. 하지만, 시구와 비교하기엔 역시 일치하는 부분이 없는데....
"어렵게 생각할것 없네. 사전 하나만 있으면 범인을 찾을 수 있을테니.
힌트를 하나 주자면, 아마 서쪽이란 서양을 말하는 것일거야."

나는 컴퓨터 왼쪽에 있는 작은 책꽂이를 뒤졌다.(저번에 들렀을때도 이곳에 있었으니까)
거기서 길이는 아주 짧지만, 엄청난 두께의 영한사전을 꺼냈다.

과꽃... 채송화... 시계꽃.......

...어?

"아! 이사람이 진범이구나!"
"자네도 알아낸 모양이군."  
"그런데... 그렇다면 이 시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관계가 없는게 되는데?"
"그래...... 그게 문제야.
내 생각엔 이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지는 않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그렇다면, 비밀은 아직 다 파헤치지 못한걸까.
창밖의 빗줄기는 더욱 세차게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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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1 -  이 소설의 앞부분에 나온 시에 씌여있는 암호 시어는 무엇인가?

문제 2 -  살인사건의 진범은 누구인가?

답은 작가에게 쪽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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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간단하고 짧게.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길게 씌여졌군요. 이런... 스크롤이 살짝 귀찮으실 겁니다.
아, 소설의 제목은, 제가 최근에 읽은 네오판타지 소설 '공의 경계'에서 따온 거에요.

그런데, 제 생각엔 이 정도면 어렵지 않게 풀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코멘트의 의견을 수렴해서 난이도를 조정하도록 해볼게요. (코멘트가 달렸을 때의 얘기지만)

그나저나, 그냥 짤막한 단편추리물을 엮어서 쓰려던 것이
약간 큰 스토리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예정 변경. 죄송합니다 OTL

아, 앞으로 이 소설의 답은 자유게시판에서 말했듯이 쪽지로만 받겠습니다.
제발 코멘트로 밝히시지 않으셨으면 하네요.
답을 맞추신 분께는, 다음 편에 맞춘 사람 명단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별다른 보상을 해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해주세요.)

그럼, 후기는 여기까지.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