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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추리 사적정보관리관 유진 2.

2006.12.23 04:32

아야메블랙번 조회 수:109 추천:9

extra_vars1 2. INFORMATION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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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NFORMATION ZERO




고개를 들자 이미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이 보였다. 거리의 가로등에 불이 켜지고, 길을 가는 사람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그 옆을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소년은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입을 떼었는데 울었던 탓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듣기에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옆 자리에 앉은 탐정 옷차림의 소녀는 그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소년은 숨을 가다듬고 제대로, 똑바로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품어왔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내뱉었다. 더러운 것을 토하듯이 얘기했다. 말하다보니 그는 소녀에게 말하는 것인지 그 자신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바람구멍이 난 풍선처럼, 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듯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그래서 울고 있었어요. 나와 철수가 정말로 친구 사이였는지,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져서, 그래서...그래서...”


 


“그렇구나.”


 


다시 그 때의 우울한 기분이 들던 찰나에 그것을 제지하듯이 소녀가 입을 떼었다.


 


“모두 이해했어.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파이프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작고 붉은 입 쪽에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담배연기가 나지 않는 걸로 봐서 실제로 안에 담배 잎은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소년이 보기에 그것은 일종의 버릇 같았다.


 


“인간은 자신이 그 동안 굳게 믿어 왔던 사실이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되면 절망하게 돼. 그 믿음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절망의 크기는 그만큼 커지지. 그리고 그 절망감은 없어지지 않은 채 마음속에 남아 커다란 상처로 남게 되는 거야. 마음의 상처는 그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어.


 


하지만 걱정 마. 너의 상처는 아직 치료할 수 있어.”


 


“어떻게요?”


 


“진실을 찾는 거야. 너가 정말로 철수를 친구로 생각했는지, 철수가 정말로 너를 친구로 생각했는지를 말야. 그런데 말야,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이미 나왔어.”


 


소녀는 손을 들어 소년의 눈가에 손가락을 살짝 댔다. 손가락은 얼굴에 나 있는 눈물자국을 따라가듯이 천천히 내려왔다.


 


“너는 울고 있었어. 철수와 자신이 정말로 친구 사이였는지 알 수 없어서, 그게 혼란스러워서 울고 있었어. 너가 철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런 나쁜 애였다면 그런 고민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거야. 그런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거야. 너는 나쁘지 않아. 그리고 너에게 있어 철수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일 거라고, 나는 확신해.”


 


“하지만, 하지만 저는 철수네 집이 어딘지도 몰랐어요. 친구 사이에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네가 아까 말했잖니. 철수가 너를 집으로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거기에는 무슨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닐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년은 깨달았다.


 


그렇다. 


 


그는 몇 번 친구에게 그의 집을 보여 달라고, 그의 집에 가서 놀자고 말했었다. 그 때마다 친구는 말을 얼버무리며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곤 했다.


 


그래서 소년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어떠한 이유가,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소년은 굳이 그 사실을 캐묻지 않았었다. 친구가 언젠가 자신의 손으로 그를 집으로 끌어다 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게 너가 밝혀야 할 진실이야. 철수는 왜 너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지 않은 걸까? 그것이 방금 말했던 두 번째 질문의 답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 답을 해줄 수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철수 본인이지.”


 


소년은 그제야 자신의 할 일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어떻게 해야 좋을 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친구를 만나야 한다. 만나서 답을 들어야 한다. 왜 그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다 주지 않았는지 이유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설령 그것이 친구에게 괴로운 사실이라 할지라도 소년은 그것을 들어야 한다. 그 괴로움을 친구와 함께 짊어져야 할 의무가 있다. 옆에 앉아 있는 소녀가 그에게 했던 것과 같이.


 


철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니까.


 


“고민은 해결된 모양이네.”


 


“네.”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던 전과는 달랐다.


 


소년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좋은 얼굴이야. 사내아이다워. 그런데 너희 담임선생님이 너를 방해하고 있는 것 같던데.”


 


앗. 소년은 기분에 들뜬 나머지 그를 잊고 있었다. 낮에 그는 분명히 말했다.


 


 


 




[마지막 경고다, 김수종 군. 더 이상 네 ‘친구’에게 관심을 가졌다가는 괴롭고 슬픈 일이 생기게 될 거야.]


 


 


 




“정말 나쁜 선생이야.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상처를 주려 하다니. 그런 사람은 선생도 아냐. 하지만 수종아, 네가 해야 할 일에서 그는 중요한 단서가 될 거야. 철수에 대한 그의 반응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거든. 그는 분명 철수의 상태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래서 너를 경계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그녀는 커다란 코트 속을 뒤지더니 작은 종이조각을 꺼내어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배경에 검은 색 글씨로 직업과 이름, 그리고 연락처만 적힌 간단한 명함이었다.


 


“내 명함이야. 너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어. 어린애가 감당할 수 없는 뭔가가 느껴져. 그러니까 나도 너와 함께 철수를 찾겠어.”


 


“하, 하지만...”


 


“왜 그러니?”


 


안 된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인인데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하고 용기까지 주었다. 그것만 해도 고마운데 도와주겠다니,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다. 소년의 얼굴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듯 그녀는 살짝 미소 지었다.


 


“괜찮아. 사실 나는 이런 게 직업이거든. 원래대로라면 네게 보수를 받아야 하지만, 이건 내가 맡고 싶어서 맡은 사건이니까 돈은 필요 없겠지.”


 


그녀가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소년을 내려다보며,


 


“그럼 다음에 연락할게.”


 


라고 인사하고 천천히 거리로 걸어 나갔다. 소년은 그녀의 뒷모습이 사람들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탐정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소년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옷차림뿐만이 아니었다. 말도, 분위기도,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녀의 마음도, 그녀가 한 사람의 탐정임을 소년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소년은 탐정에게 건네받은 명함을 보았다.


 


사적정보관리관


    유      진


 


- 다음 화 : 3. INFORMATION ZERO


“하지만, 철수네 어머니는 분명 네 얼굴을 봤을 거야. 기회가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