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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추리 사적정보관리관 유진 1.

2006.12.22 06:19

아야메블랙번 조회 수:85 추천:10

extra_vars1 1. INFORMATION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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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FORMATION ZERO




다음 날, 소년은 교무실로 불려갔다. 선생님과 아저씨들이 왔다갔다 뭔가를 나르고 있었고, 담임선생님이 책상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웃는 얼굴이었다. 소년은 전날 보았던 선생님의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렸고,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선생님의 얼굴도 웃는 얼굴이 아니라 실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일그러져서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어서 오너라, 수종아. 그 쪽 의자에 앉아라.”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의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의자를 끌어다가 자신의 앞쪽에 두었다. 소년은 자리에 앉았다. 교실에 있는 나무 의자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푹신푹신했다.


 


“수종아, 너 어제 철수네 집에 갔다 왔었지, 그렇지?”


 


소년은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담임선생님이 그걸 알고 있단 말인가.


 


“철수네 어머니께서 어제 밤에 내게 전화를 하셨더구나. 대문 앞 CCTV에 어떤 애의 영상이 찍혀 있더라고, 계속 벨을 눌러대다가 자그마치 2시간이나 집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애의 인상착의를 들어봤더니 어제의 네 모습과 겹쳐지더랬지.”


 


CCTV?


 


소년은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커다란 벨 버튼의 바로 위쪽에 동전 크기만 한 구멍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게 감시카메라였던 것 같다.


 


“왜 갔지? 나는 그 이유가 알고 싶구나.”


 


“친구를 만나러 갔었어요.”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왜 만나러 갔니? 나는 분명히 철수는 열 감기 때문에 학교에 못 온다고 네게 말했을 텐데.”


 


가면 속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소년을 바라보았다.


 


“설마 또 선생님 말을 의심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소년은 선생님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선생님의 말은 거짓말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철수가 걱정이 돼서 갔었어요.”


 


잠시 동안 선생님은 의심하는 눈초리로 소년을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이는 표정, 태도, 어조를 보면서 속으로 내 말을 곱씹어보고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판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는 자기 말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나를 의심하잖아. 소년은 그 동안 선생님에게 가졌던 좋은 인상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수종아.”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 동안 너를 좋게 보고 있었다. 성적도 우리 반에서 5등 안에 들고, 숙제도 잘 해오고, 학급에서 맡은 역할도 열심히 하고, 얌전하고, 비록 친구는 그다지 많이 사귀지 않은 것 같지만 어쨌든 인격적으로 교육을 잘 받은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짓말.


 


“하지만 네가 철수의 상태를 끈질기게 물어보는 것을 보고, 출석부까지 뒤져서 철수의 집이 어디인지 찾아내려 한 것을 보고, 나는 내가 판단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단다. 내가 봤을 때 요즘 너의 행동은 정상이 아니야.”


 


웃기지마.


 


“남의 뒤를 캐는 것은 잘못된 짓이야. 왜인 줄 아니?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 나름대로의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 법이거든. 그것을 무시하고 파고 들어와서 뭐든지 헤집고 가는 짓은 정말로 나쁜 짓이란다. 그런데 네가 요즘 하고 있는 짓이 바로 이런 짓이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하고 있니?”


 


아니.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짓은 그만 둬라.”


 


“싫어요.”


 


소년이 그렇게 대답하자 선생님은 웃음을 싹 거두었다.


 


“왜 그렇게 철수에게 집착하는 거니?”


 


“철수는 제 친구에요. 전 어제 친구가 걱정 돼서 간 것뿐이에요. 철수의 뒤를 캐지 않았어요.”


 


친구라고?”


 


“예.”


 


“친구인데 어떻게 친구 집이 어디있는지도 모를 수 있니?”


 


순간 소년의 표정에서 당황한 기색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것을 포착한 선생님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네. 어떻게 친구인데 그걸 모를 수가 있을까? 네가 정말로 철수 친구라면, 철수가 자신의 집을 보여주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너는 철수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지?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니?”


 


빙글빙글빙글빙글.


 


“설마 네 쪽에서 멋대로 친구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려나?


 


“아니에요!”


 


소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릴 질렀다. 지나가던 선생님과 아저씨들이 전부 움찔해서 소년 쪽을 쳐다보았다. 토할 것만 같았다. 더러워서, 즐겁게 마음속에서 생긴 의심의 상처를 빙글빙글 웃으며 후벼 파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역겨워서, 그러면서도 그 말에 제대로 대답 하나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처지에 너무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철수와 나는 친구에요! 유치원 때부터 항상 같이 놀았어요! 철수도 자기 입으로 저를 친구라고 말했어요! 정말이에요!”


 


“그럼 어떻게 친구네 집이 어디인지 몰랐는지 설명해줄래?”


 


“철수가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럼 그게 정말로 친구 사이일까?”


 


“친구 사이에요! 같이 놀았어요!”


 


“그래? 이상한걸. 보통은 그런 걸 친구 사이라고 하지 않는단다, 수종아.”


 


“정말로 이상한 건 선생님이잖아요!!


 


그러자 소년에게 쏠려있던 시선이 선생님에게로 돌려졌다.


 


그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그럼 선생님은 왜 거짓말 하세요? 철수 병 걸린 거 아니잖아요! 철수 병 걸려서 학교 못 나오는 거 아니잖아요!! 철수 열감기 걸려서 못 나오는 거 아니잖...”


 


“입 다물어!!!”


 


선생님이 갑자기 일어나서 소년에게 소리쳤다.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소년은 생각했다. 이거다. 이게 이 녀석의 본질이다. 항상 학생에게 친절한 선생님이라는 가면을 쓴 추악한 괴물. 괴물은 천천히 소년의 어깨를 붙잡고 꽉 쥐었다. 분노가 그 손을 타고 소년의 몸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있었다.


 


“...쉬는 시간 끝났다. 네 헛소리 들어줄 시간 없으니까 지금 당장 교실로 돌아가. 그리고...”


 


괴물의 얼굴이 소년의 바로 눈앞까지 왔다. 녀석의 두 눈이 흉흉한 기운으로 시뻘겋게 빛나고 있었다. 녀석의 더러운 악취가 소년의 코를 쑤셨다. 녀석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것만 같았다. 녀석은 모든 것이 더럽고 추악하고 공포스러웠다.


 


“마지막 경고다, 김수종 군. 더 이상 네 ‘친구’에게 관심을 가졌다가는 괴롭고 슬픈 일이 생기게 될 거야.”


 


*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줄곧 함께였다. 줄곧 친구 사이였다.


 


하지만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면?


 


친구는 나를 친구로 보지 않았다면?


 


애당초 나는 친구를 친구로 생각했는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년의 마음에서 수많은 물음들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것들은 답을 가지지 못한 채 물음에서 물음으로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점차 확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처음부터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그저 옆에 있으니까 같이 놀았던 것뿐이다. 아니지, 그렇다면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던 건 아니지. 그래, 서로 즐기기 위한 도구로써 옆에 존재했을 뿐이야. 도구로써. 도구로써.


 


도구...로써...


 


갑자기 소년의 눈앞이 흐릿하게 변했다. 길도 지나가던 사람들도 길가의 가로수도 모든 것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어지러웠다.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고 길 위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단지 울고 있을 뿐이었다.


 


힘들고 지쳐 쓰러졌을 뿐이었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천천히, 천천히, 차가운 어둠으로...


 


 


 


 


“얘, 여기서 뭐하는 거니?”


 


 


 




누군가가 소년의 손을 붙잡았다.


 


따뜻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야는 여전히 흐릿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의 대략적인 모습 정도는 보였다. 갈색 모자 아래로 빠져나온 길고 찰랑찰랑 흔들리는 검은 머리, 새하얀 얼굴, 다소 왜소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갈색 코트에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짧은 파이프 담배였다. 소년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얼떨결에 중얼거렸다.


 


“...탐정?”


 


그렇다.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탐정’이었다.


 


“일단 저기 저쪽으로 가자. 길 한복판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발에 치여 넘어지면 큰일이니까. 저기 벤치 보이니?”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에 나무로 된 작은 벤치가 하나 있었다.


 


“네.”


 


“그럼 가자. 어디 다리 다치거나 하진 않았지?”


 


“네.”


 


그러면서 그녀는 소년의 손을 잡고 벤치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갑자기 유치원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는 곧잘 엄마와 손을 잡고 학교 근처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따스한 엄마의 손을 작은 두 손으로 붙잡고 거기에 볼을 살짝 가져다 대었을 때 느꼈던 온기.


 


“아까 나보고 탐정이라고 했지?”


 


“...네.”


 


“미안. 난 탐정이 아냐. 이건 단지 코스프레일 뿐이야. 아, 코스프레가 뭔지 아니?”


 


소년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아이들간의 대화에서 그런 단어를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몰랐다.


 


“연극용 의상 비슷한 거라고 보면 돼. 엄밀히 말하면 둘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그래.”


 


그녀와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눈물은 그쳤다.


 


하지만 소년의 마음속에서 우울함은 없어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어?”


 


그녀가 소년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우울함이 표정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매에 눈물을 닦고 웃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웃으려고 하면 할수록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문득 선생님의 가면이 떠올랐다. 일그러진 웃음의 가면. 그 속에 숨어 있던 괴물의 모습.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괴물이었어.


 


소년을 데리고 온 그녀는 자세를 낮추어 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었다. 그리고 가녀린 손을 들어 울고 있는 소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소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괴롭니?”


 


괴로웠다.


 


“그럼 누나에게 이야기해보렴.


 


왜 괴로운지.


 


왜 우울한지.


 


왜 울고 있었는지.


 


분명 한결 나아질 거야.”


 


 


 




그래서 소년은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모든 것을.


 


- 다음 화 :  2. INFORMATION ZERO


"너는 나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