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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추리 사적정보관리관 유진 6.

2006.12.29 06:13

아야메블랙번 조회 수:164 추천:8

extra_vars1 6. INFORMATION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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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INFORMATION ZERO




울먹이는 소년에게 사과하고 헤어진 그 다음 날, 유진은 탐정 옷을 입고 약속시간에서 정확히 2시간 전부터 벤치에 앉아 소년을 기다렸다. 일단 소년의 핸드폰에 문자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가 유진을 만나러 올지 안 올지는 그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다 할  지라도 어쨌든 그녀는 소년을 울렸다. 상처를 주었다. 그래서 소년은 유진이 싫어졌을 지도 모른다. 다시는 안 만나려 할 수도 있다.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기다리는 동안 유진은 전날 얻은 주요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해 보았다.


 


첫 번째. 11일 전인 6월 13일 새벽 1시. 경찰서 인근의 편의점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신고가 들어온 것은 약 3분 후.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서에 있던 순경 대부분이 출동하여 서에는 한세욱 순경 단 한사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두 번째. 그 직후인 새벽 1시 13분에 철수의 어머니가 아들의 실종 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서에 들어와서 신고서를 작성했다. 그 신고서를 받은 것은 서에 남아 있었던 한세욱 순경.


 


세 번째. 1시 40분경 범인 체포에 실패하고 돌아온 순경들은 한세욱 순경이 돈봉투에 든 돈을 세고 있는 장면을 본다. 그리고 돈봉투와 함께 그의 책상에 놓여있었던 것은 철수의 어머니가 작성한 실종 신고서.


 


이 세 가지 정보를 종합해서, 유진은 경찰이 철수를 찾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보를 연결해서 상황을 추론해보면 대략 이런 얘기가 된다. 새벽 1시 10분 경, 아들의 실종 신고를 하기 위해 철수의 어머니가 경찰서를 방문한다. 때마침 근처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해 서에는 한세욱 순경 한 사람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철수의 어머니가 작성한 신고서를 그가 받는다. 그리고 철수의 어머니는 그에게 돈봉투를 건넨다. 처음에 한세욱 순경은 의아해하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말한다.


 


철수를 찾지 말아달라고.


 


그 한 마디로 한세욱 순경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게 된다. 철수의 어머니가 떠난 후, 원칙대로라면 그는 출동해 있던 경찰들이 돌아오는 대로 실종 신고가 들어왔음을 알리고 탐문 수색을 벌여야 하지만, 그는 실종 신고서를 서류철에 끼워 넣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즉, 어떠한 수색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채 철수는 실종 아동으로 등록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허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실종되었는데 미쳤다고 경찰에게 돈 봉투까지 쥐어주며 찾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겠는가. 게다가 서 내의 순경들이 출동한 1시에서부터 순경들이 돌아온 1시 40분 사이에 경찰서를 찾아온 사람이 철수의 어머니 단 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또, 다른 사람이 한세욱 순경에게 돈 봉투를 건네줬는데 돌아온 순경들이 그의 책상에 놓인 실종 신고서와 멋대로 연관 지어서 오해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보들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그것이 의문점 다섯 번째의 해답이라고.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점 여섯 번째가 생겨난다.


 


철수의 어머니는 어째서 아들을 찾지 말아달라고 한 걸까.


 


유진은 그녀를 한번 만나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철수의 어머니의 행동은 상식을 넘어서 있었다. 굳이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소년에 대해 알아본 것도 그렇고, 자신의 자식을 찾지 말아달라며 경찰에게 돈봉투까지 쥐어준 것도 그렇고, 확실히 그녀의 행동은 이상했다.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담임선생님의 행동도 이상하기 그지없다. 철수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아이들에게 설명도 하지 않고, 소년을 협박해 철수를 찾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가 봐도 그건 철수에 대해 뭔가를 숨기고 있는 행동이다.


 


그리고 이 두 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철수의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소년에 대해 물어보았다. 보통이라면 그런 일은 없었겠지만, 이 두 명이 연결되어 있다면, 철수에 대한 어떤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둘은 대체 무슨 사이일까.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유진은 2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3시간을 보냈고, 4시간을 보냈다.


 


소년은 오지 않았다.


 


역시 미움 받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유진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네, 여보세요.”


 


“...당신 누구야.”


 


“네?”


 


그녀는 그 뜬금없는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핸드폰 너머의 상대는 울먹이면서 유진에게 소리쳤다.


 


“당신 누구야! 왜 우리 아들 납치했어!! 우리 수종이 꼬셔서 도대체 어디로 데려간 거야!!”


 


“저, 저기 잠시만요...”


 


“우리 아들 돌려줘요, 우리 아들 돌려줘!! 제발 좀 돌려주세...”


 


그 때 목소리가 끊기면서 핸드폰 너머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 죄송합니다만 좀 진정해 주십시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하라는 소리예요! 이 녀석이에요, 이 녀석이 우리 아들 데리고 간 거예요!!’ ‘예, 알겠으니까 좀 진정해 주십시오, 어이, 김 순경! 잠깐 아주머니 좀 부탁해!’ ‘형사 양반, 제발 내 말 좀 들어 줘요!!’ ‘잘 듣고 있습니다, 아주머니. 그러니까 잠시 좀 쉬고 계십시오. 김 순경, 뭐 하고 있는 거야!!’ ‘아이고, 우리 수종아...수종아!!’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유진은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수종이 꼬셔서 도대체 어디로 데려간 거야!!]


[이 녀석이에요, 이 녀석이 우리 아들 데리고 간 거예요!!]


[아이고, 우리 수종아...수종아!!]



 


소년이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납치당했다.


 


 


 




“여기인가...”


 


철수의 2층집 대문 앞에서 한 사내가 그 거대한 집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유진과 소년이 어제 경찰서에서 만났던 그 형사였다. 변함없이 녹청색의 후줄근한 코트를 입은 그는 옷에 달린 커다란 주머니에서 레종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후우, 깊은 한숨을 쉬듯이 연기를 내뿜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정보는 어제 그 여자에게 들었다. 그리고 철수의 어머니가 수상하다는 의견에 그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되는, 철수의 어머니가 여성청소년계의 한세욱 순경에게 돈봉투를 줬다는 사실에 그는 유진과는 달리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물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상식에서 벗어난 예외란 게 있는 법이다. 그리고 요즘은 그 예외의 빈도가 상식을 넘어서는 사례도 적잖이 발생한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형사는 상식과 예외 사이에 서서 사건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유진은 그걸 잘 하지 못한다. 미숙하다는 증거다. 아직 어린애라는 증거다. 그런 주제에 탐정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슬슬 들어가 볼까.


 


그는 발로 담배꽁초에 달라붙은 불을 비벼 끄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고 보니 철수의 담임선생님이라는 작자가 이렇게 말했었지.


 


 


 




[철수네 어머니께서 어제 밤에 내게 전화를 하셨더구나. 대문 앞 CCTV에 어떤 애의 영상이 찍혀 있더라고, 계속 벨을 눌러대다가 자그마치 2시간이나 집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애의 인상착의를 들어봤더니 어제의 네 모습과 겹쳐지더랬지.]


 


 


 




CCTV라.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꾹꾹 안으로 집어넣었다. CCTV? 바보인가, 그 작자는. 용어 선택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무슨 의도가 있는 건지 모르지만, 만약 진심으로 말한 거라면 정말 바보 멍청이다. 초인종에 달린 건 CCTV같은 게 아니다. 그냥 평범한 카메라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문 앞의 영상이 찍혀서 저장되는 일 따윈 일어날 수 없다. 그저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면 그 사람의 영상이 집 안에 있는 화면으로 전송되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수종이라는 꼬맹이가 이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누군가가 집 안에 있어서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소리인데...


 


대문이 덜컹거리며 한 명의 중년 여성이 걸어 나왔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니트 가디건을 걸치고 안에는 새하얀 원피스를 걸친 지극히 심플한 복장이지만, 의상에 센스가 없는 그가 봐도 고가의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장식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게다가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은 목걸이까지.


 


“무슨 일이죠?”


 


여자가 커다란 덩치의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도도함을 넘어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그녀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거리는 장식들이 온몸에 치렁치렁 달린 그 의상도 보기 싫었고, 하얗게 보이려고 얼굴을 화장으로 떡칠한 그녀의 얼굴은 웃기기까지 했다.


 


“경찰입니다. 유정현 씨 계십니까.”


 


유정현. 철수의 어머니 이름이다.


 


“전데 왜 그러시죠?”


 


“안녕하십니까, 부인. 저는 오진석이라고 합니다. 11일 전에 실종된 박철수 군의 탐문 수색을 하고 있죠.”


 


그렇게 말하고 진석은 정현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수색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 분명 동요하고 있었다. 그럴 것이다. 돼지 같은 그 한 뭐시기 하는 순경이 잘 처리해 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경찰이 수색을 하고 있다니, 화장 범벅인 얼굴은 아무 변화 없어도 속으로는 너무 놀라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것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인. 원래대로라면 열흘 전에 수색 작업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 때 신고서를 접수받은 순경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저희도 박철수 군의 실종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펼치면 반드시 박철수 군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이 집부터 시작해서 반경 1km 이내에 있는 집들을 집중적으로 탐문 수색할 예정입니다. 그 다음에는 지역 전체를, 그 다음에는 전국적으로 수색 요청을 할 거고요. 해서, 우선 부인의 집부터 샅샅이 조사할 겁니다. 간혹 집 안의 안 쓰는 장롱이나 지하실에서 실종 아동이 발견되기도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형사님.”


 


그녀가 갑자기 진석의 말을 가로 막았다.


 


“신고서에 할 말은 다 써놨습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세요.”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돌렸지만, 진석은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걸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말을 계속했다.


 


“부인, 저는 부인의 말을 들으러 온 게 아니라 부인의 집을 수색하러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애는 가출한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수색 같은 것 할 필요 없습니다. 돌아가세요.”


 


쾅! 철컥!


 


정현은 철문을 신경질적으로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비틀거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석은 주머니에서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가 한 이야기는 전부 거짓말이었다.


 


박철수 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하고 있는지 돈봉투나 세고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지 그는 모른다. 애당초 그는 이 지역 관할서 소속도 아니고 실종 아동 수색 담당도 아니다. 그냥 옆 동네 형사양반일 뿐이고, 그냥 허세 좀 부려본 것이었다. 어쨌든 이로써 그는 한 가지 정보를 재확인할 수 있었고, 한 가지 정보를 덤으로 얻었다.


 


자, 이제 그 여자에게 정보를 팔아먹어 볼까.


 


그는 흥얼거리며 천천히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 다음 화 : 7. INFORMATION ZERO


"자, 기뻐해. 감동의 재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