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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Don Quixote

2008.05.11 02:36

Bryan 조회 수:873 추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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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 Quixote


 


“갈릴레이, 아침이다.”


창고더미에 몸을 뉘인 남자가 말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그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감염자들과 자신을 구분 짓기 위해 보라색으로 머리칼을 염색한 남자는 허리가 결리는 지 일어서는데 고통을 느꼈다. 한때는 제법 안방으로써의 충실한 구실을 했던 공간은 어느새 쓰레기 더미가 돼 있었다.


이제 TV와 컴퓨터의 모니터는 잡동사니에 지나지 않았고 제대로 된 구실을 하는 건 라디오  뿐이었다. 남자는 밤새 치이이익― 하고 불쾌한 노이즈 음을 내뱉던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며 동시에 ‘갈릴레이’라고 이름 붙인 검을 주워들었다.


“여어― 친애하는 리마, 아테네, 베이징, 블라디보스토크, 그리고 런던과 서울의 저항군 여러분. 오늘도 감염자들과 성전(聖戰)을 치르느라 노고가 많다. 경은 어젯밤에 또 다른 전우들을 감염자들의 손에 잃어야만 했다. 그러나 전우들이여! 우리에겐 슬픔에 잠겨있을 시간 따윈 없다. 오래 전 우리의 선조들이 일궈왔던 이 땅과 다시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땅을 반드시 우리의 손으로 지켜내야만 한다.”


라디오에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항군들의 정신적 지주인 발렌타인 후작의 연설로 시작되었다. 남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후작의 사기 충만한 목소리를 들으며 용기를 복 돋우고 있었다. 그는 갈릴레이의 검 자루를 잡고는 능숙한 솜씨로 펜싱의 현란한 기술을 선보였다.


갈릴레이를 휘두르다 말고 남자는 창문을 가리기 위해 막아둔 판자를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한 가지 다행이란 점은 그의 집이 2층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그의 집 아래로 서 너 명의 감염자들이 아직까지도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다시 판자로 창문을 가려놓고는 한숨을 쉬며 창고더미에 그대로 몸을 뉘었다.


애석하게도 그의 동네엔, 그의 도시엔, 아니 그의 나라엔 그 자신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자는 아직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후작으로부터 지금도 많은 저항군들이 감염자들과 맞서 싸우고 있고, 후작 자신은 무수히 많은 저항군들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는 만약 신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첫째는 아수라장이 된 이 세계를 되돌려 놓아주라고 할 것이고, 둘째는 후작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 것이다. 물론 이 나라에서 수 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야 후작을 만날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얼마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남자는 아직 이 나라의 정부가 제 구실을 할 때 고립된 상태에서 정부에 도움을 청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 통하는 모든 통신은 두절되어 있었고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인터넷에 들어가 외부로 와의 연락을 취하는 게 전부였다. 남자가 인터넷에서 손을 뗀 건 어느 채팅방에서 때에 맞지 않게 시시콜콜한 농담 몇 마디를 나누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 뒤부터였다. (적어도 남자가 보기엔 그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1032’라고 이름 붙여진 그 채팅방에선 어리석게도 인간 사회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엄격한 계급 체계가 재현돼 있었다. 어떤 사람은 거만스럽게 자기가 현자라도 된 마냥 이 사태에 대해서 논했고, 다른 사람들은 감히 그 현자의 말에 토를 달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물론 현자의 의견에 반박하려거나 하는 사람은 바로 채팅방에서 추방당하거나 감염자라고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웃긴 일이었다. 감염자들에겐 오로지 식욕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현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면 더더욱 웃길 수밖에.


아무튼 그 날 이후, 남자는 고독을 삼키려고 안간 힘을 쓰며 신체와 정신을 단련했고 그가 감염자들로부터 홀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을 때 쯤, 라디오를 제외한 모든 통신 수단이 마비되었다. 그가  목적을 잃어버린 채 서서히 정체성을 잃어갈 무렵, 발렌타인 후작이 구원자처럼 등장했다. 물론 그를 구해준 건 라디오에서 나오는 후작의 연설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자는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갈릴레이, 성전을 치룰 시간이다.”


남자는 마음을 굳게 먹고 갈릴레이를 쥔 채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감염자들이 냄새를 먹고 대문 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기겁을 하고 몸을 숨겼을 테지만 후작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또 자신이 이 도시의 마지막 인류라는 생각에 함부로 행동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밤사이 벌써 두 놈이나 들었다. 남자는 3일을 주기로 근방의 감염자들을 처단하지만 놈들은 죽여도, 죽여도 어디서 나타나는지 승냥이마냥 그의 집 앞에서 서성거렸다.


“캬아아악!”


여자로 추정되는 감염자가 생전에도 바람 난 남자친구를 위해 썼을 법한 날카로운 손톱으로 남자를 할퀴려 들었다. 남자는 갈릴레이를 휘둘러 여자의 손목을 앗아갔고 그 다음에는 목을 베었다. 남은 두 명의 감염자들도 남자의 몸에 생체기 하나 내지 못하고 그대로 동강나 버렸다. 목만 남은 놈들은 미친 듯이 눈알을 굴려대며 남자를 쏘아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치였다. 남자는 검은 구두로 감염자의 얼굴을 있는 힘껏 밟아 그것들을 모두 으깨버렸다.


“후우―”


남자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갈릴레이를 쥔 손의 힘을 풀었다. 이제는 적응이 될 만도 하건만 감염자들의 눈빛이 주는 공포와 역겨움은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우선 와이셔츠 주머니에 넣어둔 담뱃갑을 꺼내어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든 뒤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한 모금을 빨아들자 도대체 이게 없으면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제는 이젠 그의 니코틴 중독(물론 그는 성전 뒤에 치루는 신성한 포도주라고 비유하지만) 을 채워줄만한 담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담배를 찾기 위해서는 많은 모험을 치러야만 했다. 기름이 얼마 남지 않은 벤을 타고 마트가 있는 시내로까지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그것을 ‘포도주 원정’이라고 명명했다. 물론 포도주 원정에는 담배뿐만 아니라 생필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 갈릴레이. 포도주가 떨어지면 십자군처럼 다시 원정을 시작하면 그만이야.”


남자가 담배의 불씨를 털어내며 말했다. 내리쬐는 햇볕이 유독 따갑게 느껴졌다. 그는 성전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말린 손수건으로 갈릴레이를 닦아내었다. 걸쭉한 감염자들의 녹색 피가 손수건에 묻어나왔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말끔해진 갈릴레이를 손에 쥔 남자는 계속 중얼거렸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는 포도주 원정에 일종의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하는 분홍색의 알약 몇 알과, 벤을 운전하는데 필요한 키와 생수, 탄알이 얼마 남지 않은 권총을 가방 안에 넣었다. 오른 손에는 갈릴레이, 왼 손에는 가방을 쥔 채 그는 다시 밖을 나갔다. 밖에는 부패된 감염자들의 시체에서 악취가 안개처럼 그를 메워쌓았다.


남자는 걸음을 재촉하여 골목 모퉁이에 세워둔 벤에 올라탔다. 분홍색 알 약 하나를 입에 털어 넣은 다음,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고 벤에 시동을 걸었다. 녹음된 후작의 연설이 흘러나왔다.


“…우리들은 신을 대행하여 인류의 운명을 등에 업고 있다. 그 옛날 그리스도와 붓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뿌리 내린 어둠을 씻겨 내야한다…….”


벤은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시내 앞에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 없이 감염자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고약한 악취가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의 후각을 마비시켰다.


“캬악! 캬아악!”


벤이 마트 근처에 다다를 쯤, 냄새를 맡은 노인, 여자, 아이들의 구분 없이 많은 감염자들이 벤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들은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소름끼치고 역겨운 음성을 내뱉었다. 가속도가 붙은 벤에 부딪힌 감염자들은 대부분 멀리 나가떨어졌으나, 민첩한 한 녀석이 벤의 보닛 위에 올라타 차창을 박살 낼 준비를 했다.


남자는 급히 핸들을 꺾었다. 벤에서 떨어진 감염자의 뼈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으스러졌다.


“콰아앙!”


그러나 정신없이 핸들을 돌린 탓에 벤이 전봇대를 박고 충돌을 일으켰다. 박살난 유리창의 파편들이 눈보라처럼 흩날렸다. 남자의 이마에서는 굵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조수석에 놓인 갈릴레이를 집어 들었다. 감염자들이 열린 조수석의 문 사이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푹! 갈릴레이가 감염자의 흉근을 뚫고 지나갔다. 녹색 피가 벤의 시트에 낭자했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한 놈을 죽이면 다른 한 놈이, 다시 그 놈을 죽이면 다른 놈이 조수석을 채웠다.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조수석에는 감염자들의 시체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감염자들이 성난 군중처럼 벤을 에워쌓았다. 그 모습이 마치 18세기 시민 혁명을 연상케 했다. 쉴 틈 없이 갈릴레이를 휘두른 남자의 오른 손이 마침내 근육 경련을 일으켰다. 결국 그는 시트에 몸을 누인 채로 발길질로 감염자들을 저지하기로 마음먹었다.


발길질을 하면서도 남자는 왼 손으로 다급히 가방 안을 뒤졌다. 마침내 권총을 빼든 그는 망설임 없이 감염자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연이은 총성과 함께 감염자들 몇이 나가 떨어졌다. 그는 다시 핸들을 잡고 후진기어를 놓곤 힘껏 엑셀을 밟았다.


남자는 감염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담뱃갑에서 마지막 한 개비를 꺼내들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그는 그것을 힘껏 빨아 들여 새하얀 연기를 코와 입에서 내뿜었다. 이제 포도주 원정의 첫걸음을 내민 셈이었다.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강렬한 카타르시스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담배가 필터까지 타들어 갈 때쯤, 남자는 무심코 담배를 창밖으로 내던지고는 생수를 꺼내들어 입에 대고 벌컥거렸다.


“갈릴레이, 이 순간을 잘 기억해두어라. 우린 지금 새 역사를 쓰는 중이니까.”


남자는 핸들을 잡았다. 물론 벤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차창은 보기 좋게 박살이 났고, 보닛은 찌그러졌으며 외관은 감염자들이 남긴 흔적들이 불쾌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벤을 마트 앞까지 운전하기에는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마트의 정문에는 감염자들의 시체가 마치 배수진이라도 되는 냥 줄을 짓고 있었다.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사방을 둘러본 뒤, 갈릴레이를 들고 벤에서 나왔다.


저벅, 저벅, 저벅. 검은 구두가 감염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살점들을 밟으며 비명을 질렀다. 녹색 피들이 대홍수처럼 콘크리트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남자는 마트 안을 휘젓고 다니며 정말로 쇼핑을 즐기듯, 카트 안에 여러 가지 생필품들을 집어넣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값진 휴식이었다. 담배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건 카트가 물건들로 범람했을 때였다.


“Holyshit.”


난관이었다. 한 번도 마트 안의 창고를 뒤져본 일이 없다. 그러나 남자는 이것 또한 포도주 원정의 묘미라고 단정 짓고는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안은 완전 암흑 천지였다. 정돈되지 못한 잡동사니들이 을씨년스럽게 널브려져 있었다. 남자는 갈릴레이를 고쳐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그가 지포 라이터를 꺼내들었으나, 별안간 닫힌 창고의 문 때문에 화들짝 놀란 남자는 그만 라이터를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는 이제 장님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는 라이터가 떨어진 자리와는 다른 곳을 한참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


시각이 마비되면 다른 감각의 민감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분명 감염자의 냄새였다. 쓰레기 냄새, 정화조 냄새, 어떠한 말로 형용할 수도 없는 더러운 악취였다. 남자는 갈릴레이를 높게 쳐들었다. 몸을 최대한 벽 쪽으로 붙이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키에엑!”


괴기스러운 소리와 함께 감염자의 손톱이 남자의 목덜미에 향했다. 감염자의 손톱이 남자의 살점을 물어갔다. 다급해진 그는 감염자에 대고 갈릴레이를 무자비로 휘둘렀다. 녀석의 하반신이 잘려나가고 남자는 목덜미를 잡은 채 문 쪽을 향해 냅다 달렸다. 창고를 벗어나고, 마트를 빠져나고, 그는 정신없이 달렸다. 그러다가 자신의 보검, 갈릴레이를 놓고 온 걸 망각하고 있었다.


“오, 이런, 오오, 이런.”


남자는 자신의 목덜미에 난 상처에서 녹색 피가 나는 걸 보고는 경악했다. 그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자신의 양 손톱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머리털은 탈모 환자마냥 끝임 없이 빠져 내렸고, 두 눈은 붉게 충혈 되어 동공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케엑! 캬아악!”


분명 말을 하긴 했는데 혀가 꼬인 건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감염자들의 것과 같은 기분 나쁜 음성을 내뱉고 있었다. 미칠 것만 같은 식욕이 느껴진 건 그 다음이었다. 그러나 그 식욕의 대상은 감염자가 아닌 자신과 같은 바로 인간이었다.


남자의 눈에 멀리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감염자의 무리인가? 아니다, 이 부근의 감염자는 모두 처리했을 텐데? 그렇다면 사람? 그것은 더더욱 억측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건 사람의 무리였다. 남자는 반가움에 달려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자신의 몰골을 보고서도 저들이 반가워 해줄 리가 만무했다.


“로젠트 경, 이곳은 너무나도 깨끗하군. 아마도 누군가 이곳에서 성전을 치룬 모양이야. 과연 그를 한번 만나고 싶군.”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길은 중년 남성이 그의 무리들 중 젊은 기사에게 물었다.


“외람된 말씀이옵니다만 후작 저하. 저곳을 보십시오.”


기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감염자를 가리켰다. 하얀 와이셔츠에 녹색 피를 물들인, 보라색 머리칼의 남자였다.


“불순한 존재로다. 저 감염자를 당장 화형 시키게.”


“Yes, My Lord!”


기사의 화염 방사기가 남자에게로 향했다.




-fin-


 





가끔은 이런 단편을 쓰는 게 즐겁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