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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하드고어(Hardgore)

2006.08.14 09:40

거지의깨달음 조회 수:151 추천:1

extra_vars1 담배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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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 베개를 껴안는 기분이다. 솜털처럼 가벼운 기분이다. 주름이 졌지만 부드럽고 힘이 있던 손가락은 주인의 손에서 벗어난 목각인형처럼 힘없이 고개를 숙인다. 내 몸에 기댄 엄마를 바닥에 눕히자 그녀의 고개는 힘없이 돌아가면서 한 쪽 볼이 바닥에 눌린다. 볼은 일그러진다. 엄마의 손에 쥐어진 피 묻은 식칼은 바닥에 떨어져 피로 물들인 바닥에 놓여있다. 피는 바닥에 마르고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또 다시 그 위에 피가 덮인다. 엄마의 늘어진 배에는 또 다른 식칼이 박혀있다. 식칼에 박혀버려 피는 마음대로 흐르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서 얕은 시냇물처럼 흘러내린다. 난 멍하니 피 흘리는 엄마를 바라본다. 시야는 뿌옇게 흐려지면서 엄마의 모습도 제대로 볼 수 없어 형태만 흐릿하게 보인다.

엄마라고 불러도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누워있을 뿐이다. 엄마가 저렇게 편한 자세로 누워있는 건 처음이다. 구석에 앉아 벽을 기댄 채 항상 무릎을 오므리고 고개는 무릎의 깊은 계곡 속에 박은 채 잠에 들었다. 난 이불을 덮어쓰고 조그만 이불의 틈새로 칠흑 같은 좁은 공간에서 엄마를 바라보곤 했다. 그때 엄마는 잠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둠속에서 매몰찬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술에 취해 항상 손을 올리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술에 깨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품에 다른 여자를 끼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이혼하고 떠나버린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방문을 열자 차디찬 공기와 시멘트 냄새가 난다. 좁은 시멘트 공간은 세탁기와 싱크대가 놓여있다. 세탁기는 며칠 전 고장이나 깊은 잠에 들어있다. 세탁기 위로 거미줄이 쳐져있다. 거미는 진을 치고 묵묵히 무언가를 바라만 보고 있다. 싱크대의 물을 틀자 차가운 물이 싱크대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주르륵 쏟아진다. 손을 갖다대자 피가 씻겨 내려간다. 차가운 물줄기가 손을 때려 손은 붉어지며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피는 개수구로 내려간다.

난 물을 잠그고 마른걸레에 손을 갖다대 흐르는 물줄기만 대충 닦아낸다. 그리고는 방안에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본다. 배에선 아직도 피가 흐른다. 그 피는 식어있을 것이다. 차가운 물줄기처럼 식어있을 것이다. 차가운 시멘트벽처럼 식어있을 것이다.

마른 걸레 두 개를 들고 바닥에 조금씩 흐르고 조금씩 굳어가는 피를 닦는다. 마른 걸레는 금 새 붉은 피로 얼룩져 붉어진다. 씻은 손에는 다시 피가 묻는다. 마른 걸레는 조금 묵직해진다. 얼른 싱크대로 넘어가 걸레를 쥐어짠 후 다시 바닥을 닦는다. 엄마 몸에서도 피가 그치는 중이다. 난 배에 박힌 식칼을 본다.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은 섬뜩하기 까지 했다. 그런 식칼을 들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식칼로 고개를 움직인다. 날에는 바닥에 흘렀던 피가 묻어있다. 내 피가 아니다.

내 피가 아니라서 다행인걸까?  

다행이냐? 내 피가 아니라서?  

바닥의 피도 식칼에 묻은 피도 내 피가 아니라 다행이냐?

난 고개를 흔든다. 머릿속에 뇌수에 갇혀 지내는 뇌가 흔들려 머리가 아플 정도로 흔든다. 난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식칼을 쥐어 배를 향하게 한다. 시퍼런 날이 전등에서 뿜는 빛을 흡수한다. 날카로운 날이 몸속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들어올 것 같다. 살점은 쉽게 자리를 내줄 것 같다. 날은 그리 길지가 않아 몸을 관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몸속에 숨쉬는 내장들 중 하나를 찔러 풍선처럼 터져버릴 것 만 같다. 아니면 풍선에 담긴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내장이 오므라들 것 같다. 천장을 올려다본다. 전등이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버렸으면.    

무섭니?  

잘 찔렀잖아.  

난 다시 고개를 흔든다. 머리가 아프다. 나도 죽어야한다. 죽기로 약속했었다. 서로를 죽이기로 약속했었다. 눈이 뿌옇게 변해버리면서 약속했었다. 죽고 싶다. 죽어서 몸을 떠나고 싶다. 죽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 학교가 없는 곳으로. TV가 없는 곳으로. 핸드폰이 없는 곳으로. 지하철이 없는 곳으로. 법이 없는 곳으로. 구속이 없는 곳으로. 사람이 부딪히지 않는 곳으로. 폭력이 없는 곳으로. 매정하지 않는 곳으로. 아버지가 없는 곳으로. 이름이 없는 곳으로. 내가 아닌 내가 있는 곳으로. 엄마가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엄마의 따뜻한 품이 그립다.

난 식칼을 배를 넘어 깊은 곳으로 찔러 넣는다. 엄마가 보인다. 엄마가 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통곡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의 손에는 피가 묻지 않은 식칼이 쥐어져 있다. 엄마는 손으로 날 멀리 보낸다. 다가오지 말라고 한다. 엄마는 울면서 다시 새우잠에 든다. 나도 눈을 감는다.  

캄캄하다. 어두운 밤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캄캄하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걷는다. 날 방해하는 장애물이 없다. 저리 뛰어도 보고 이리 뛰어도 본다. 이곳을 때려도 보고 저곳을 때려도 본다. 손에 부딪히는 느낌이 없다.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는 느낌이다.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 까지 뛰어가 본다. 숨도 안 찬다. 숨결도 일정하고 땀도 흐르지 않는다. 마치 그림자가 된 기분이다.

아무 것도 없다. 나 혼자만 있다. 몸은 움직이지만 심장이 뛰지 않는 것 같다. 팬티 속에 감춰진 페니스를 만져보아도 별 느낌이 없다. 격렬하게 만져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페니스가 단단해지지 않는다. 축 쳐져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난 손을 내 눈에 갖다댄다. 손이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고 다시 떠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은 것과 감지 않은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눈을 감는다는 것을 머릿속에서만 인식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받아들이지만 몸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닐까? 내 손이 움직인다는 것과 페니스가 있어, 그것을 잡고 마스터베이션을 했다는 것도 머릿속에서만의 일이고 몸은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닐까?

고개를 젓는다. 과연 내가 젓고 있을 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난 저었다고 받아들였다. 혹시 이곳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곳이 아닐까?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처리하고 있다 머릿속이 고장이 나거나 바이러스에 걸려, 내가 진짜 현실에 나와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이 캄캄한 현실 속에서 머릿속의 처리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엄마에 대한 기억도 머릿속의 처리였나? 난 머리를 잡아 머리를 어지럽힌다. 과연 정말 잡아, 머리를 어지럽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일단 일어선다. 내가 지금 현실과 머릿속을 오고가고 있는 상태에 처해있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는 엄마가 존재하지만 현실에는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니라면 현실에는 엄마가 존재하지만 머릿속에는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 거다. 그것도 아니라면 난 미쳐서 공상가가 되어있거나.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쳤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그럼 난 미치지 않은 걸까? 난 걷는다. 발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움직인다. 끝을 향해 걸어가 보고 싶다.  

영화속 ‘트루먼 쇼’가 생각난다. 주인공의 처지가 지금의 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서 그런가. 오래 전에 본 영화가 생생히 떠오른다. 주인공은 평범하다. 하지만 평범한 속에서도 언제나 행복하고 밝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친구가 커서도 함께한다. 아내도 예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대학교 때 좋아했던 한 여학생이다. 그녀는 해변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가 실종된다. 그는 잡지책의 여성들의 얼굴 부분 부분을 올려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런데 주인공은 어느 날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자신의 삶과 자신의 인생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대학교 때 자신이 좋아했던 한 여학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땐 이해해지 못했던 그 말이 지금은 퍼즐을 끼워 맞추듯이 맞춰나가고 있다. 주인공은 결국 알게 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이 현실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공간이란 것을.  

주인공은 바다를 건너갈 생각을 한다. 주인공은 바다를 겁낸다. 그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망설였지만 결국 바다를 건넌다. 바다는 매섭다. 크게 솟구치는 파도는 산이라도 삼켜버릴 듯 하다. 파도가 크게 출렁거리면서 배를 흔들리게 한다. 주인공은 멀미를 하고 고통에 시달리지만 포기 하지 않는다. 천둥번개가 치고 매섭고 사나운 비보라가 자신의 앞길을 끝까지 방해하지만 끝내 벽 끝까지 도달해 현실의 문을 연다. 문을 열고 주인공은 현실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영화속 주인공처럼 나도 이 공간에 나가고 싶다. 어디로 가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이곳만 벗어나면 그곳은 이곳보다 낫지 못하진 않을 것 같다.

내 염원이 우주 어딘가에 닿았는지 어둡고 캄캄한 공간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옷을 찢어버리는 것처럼, 종이를 찢는 것처럼 검은 공간은 찢어진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갈라진다.

내 위에 있는 공간이 찢어지고, 내 옆에 있는 공간이 찢어지고, 내 아래에 있는 공간이 찢어진다. 내 앞에 있는 공간이 찢어지자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무언가가 나타나, 나는 얼굴을 찌푸린다. 너무 눈이 부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다. 눈부신 빛은 내 주위에 있는 공간을 찢어버린 장본인인 것 같다. 그 빛이 강렬해 질수록 공간은 찢어지고 허물어진다. 내 주위에는 더 이상 어두운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 난 눈을 감는다. 하지만 눈이 뜨겁다. 눈을 감는 것과 눈을 뜬 것과 다르니 이곳은 머릿속일까? 아니면 이곳이 진짜 현실?  

눈이 더 이상 뜨겁지 않다. 난 조심스레 눈을 뜬다. 눈부신 빛도 사라졌다. 이곳은 내가 지내던 공간이다. 마루도 있고 옷장도 있고 저 옷장 안에는 내 옷과 엄마 옷이 있을 것이다. 전등에는 아직 생명이 붙어 있어 얕은 불을 발한다. 내 손에는 여전히 식칼이 쥐어져 있고 엄마는 여전히 저곳에 누워있다. 내 배를 더듬어 본다. 내가 입은 청재킷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고 내 배도 멀쩡하다. 모든 것이 멀쩡하지만 엄마만이 멀쩡하지 않다. 깨어나지 않을 생각인 것 같다. 편안한 자세로 누운 엄마는 행복할까?

난 창문을 연다. 차가운 밤공기가 내 얼굴을 때린다. 달은 어둠 속에 가려 보이지 않다. 노란 빛과 붉은 빛을 내는 차들은 도로에 흘러내리고 흘러 올라간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차가 지나가고 그 뒤로 앰뷸런스가 따라간다. 인도에서 몇 몇 사람들이 뛰어간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뛰어가는 사람들의 어깨에 부딪혀 넘어지거나 비틀거린다. 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대충 짐작이 간다. 반대 쪽 인도에선 싸움이 일어난 듯 하다. 내 창문과 멀지 않은 곳이고 그들의 목소리는 워낙 우렁차 그들이 내뱉는 욕이 내 귀에 들린다. 많은 욕이 들린다. ‘개새끼!’ ‘시발 놈아!’ ‘좆만 한 것!’ ‘미친 놈!’ ‘쓰레기 같은 새끼야!’ 들으면 귀가 거북해야하는데 난 담담하다. 욕에 익숙 되어 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익숙할 것 같다. 그들은 끝내 손을 날리고 몸이 뒤엉킨다. 여전히 난 담담하다.

주머니 속에서 손을 찔러 넣어, 담뱃갑을 찾는다. Marlboro다. 담뱃갑을 탁탁 쳐 담배를 꺼낸다. 담배를 문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담배연기를 마시고 내뱉는다. 담배연기는 내 시야에 맴돌다 사라진다. 모든 것이 담배연기처럼 사라졌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내뱉은 새로운 담배연기처럼 다시 나타난다. 담배는 내 손에 잡혀 타들어간다. 난 담배를 다시 입에 갖다대고 담배연기를 한 번 더 내뱉는다. 담배를 저 멀리 던진다. 옥상에서 던진 담배는 아래로 떨어지다,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난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생각한다. 난 죽을 수가 없다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고. 시퍼런 날도 내 삶의 막을 내릴 수 없다고. 엄마는 내가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난 살아야한다. 엄마가 없는 이곳에서. 그것이 엄마가 준 마지막 과제가 아닐까? 엄마는 웃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편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