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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하드고어(Hardgore)

2006.08.14 09:37

거지의깨달음 조회 수: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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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고어(HardGore)

톱니바퀴

[1]
  
나에겐 부모가 있다. 아니, 있었다. 5년 전 까지만 해도 부모가 있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남들처럼 부모가 있으니 부모 있는 아이들처럼 행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5년 전 난 고아원에 와야 했다. 부모가 멀쩡히 있는데도 말이다. 난 그들의 행동을 버렸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 할 수 없었다. 그들의 행동은 부모가 늙고 병들면 자식들이 지게에 엎고 갖다 버린다는 옛날이야기 중 하나인 고려장을 떠오르게 한다. 그렇게 5년 동안 부모 없이 고아원에서 지내 오면서 난 부모가 보고 싶다느니, 부모를 찾아야겠다, 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고아원에서도 몇몇 아이들은 그런 생각과 정 안되면 입양이라도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 그래서인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입양을 원치 않는다. 입양이 되어 부담스러움과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갔다는 아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아마 나 역시 입양이 된다면 그렇게 행동 할 것이다.

몇 월 며칠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 일과 역시 다른 날 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 서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책 한 권을 읽고 있다. 긴 소매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늘한 바람이 내 몸 이곳저곳 흐르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은 나의 몸 말고 내가 읽는 책에서도 흐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난 책 읽는 데에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이렇게 바람이 분다고 해서 건물 안에 들어갈 수 는 없었다. 진태라는 아이가 오늘 입양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입양은 절대로 가지 않을 거라며 나와 약속 했던 녀석이 갑자기 입양을 간다고 하니 배신감 같은 건 아니지만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형용할 수 없는 이 느낌 때문에 내 기분을 나쁘게 했고 녀석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게 했다. 난 꿀꿀한 이 기분을 없애기 위해 책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기다림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 기다림은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론 희망이라는 향기를 뿜어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지루 한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 문구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를 기다린 적도, 무엇을 기다린 적도 없는 나에게는 공감대가 형성 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설마 나 역시 그 지루 한 기다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 안녕, 무슨 책 읽고 있니?"  

나에게 말하는 것 일까? 난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눈을 떼기 싫었지만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 많은 주름이 잡힌 한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난, 선글라스 속에 숨어 있는 그의 눈을 보고 싶었다.

" 아.. 누구세요?"

" 그냥 가끔씩 이곳에 놀러오는 아저씨란다."  

그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는데, 선글라스 때문에 그가 지은 미소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이 아저씨 본 적이 있다.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아저씨였던 것 같다.  그 아저씨는 가끔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곤 했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날 바라보고 있는 건지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 건지 잘 몰랐었다. 오늘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걸 보니 정말 날 바라보고 있었던 지도 모르겠다.

" 너 이름이 뭐니?"  

아저씨가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왜 이름을 물었을까? 그리고 내가 아저씨에게 이름을 가르쳐 줘야 되나?

" 김민희요..."

난 조심스레 내 이름을 꺼냈다. 말하기 싫었지만 나도 모르게 이름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 예쁜 이름이구나. 넌 나이가 어떻게 되니?"

아저씨가 나에게 나이를 물었다. 이름을 물었으니 다음에는 나이를 묻는 게 당연 한건가?  

" 열여섯인데요.."  

" 그래, 그럼 다음에 또 보자꾸나. 민희야."

그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불렀다.    

" 예.."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은 진심일까? 아니면 마음에도 없는 말일까?  

벌써 그 일이 있은 후로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동안 그 아저씨는 날 찾아오지 않았다. 역시 그 아저씨는 내게 마음 없는 말을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왜 지키지도 않을 거면 서 마음 없는 말을 하는 것 일까?

" 민희야, 원장이 불러."  

" 응?"

사고 친 것도 없고, 잘 못 한 것도 없는데..원장이 날 부를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난 조심스레 원장실의 문을 열었다. 원장실 안에는 원장 말고 다른 두 명이 더 있었다. 한 명은 나보다 4살 어린 민우라는 아이였다. 그리고 또 한명은 지난번에 만난 아저씨였다...

" 안녕하세요, 원장님. 그런데 무슨 일로..?"  

원장은 보살님의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성격 역시 보살님과 같았다. 아이들의 정에는 무심하고 돈의 향기에는 인자한 사람이 바로 우리 원장이다.

" 민희야 이 분에게 인사해라."

" 안녕하세요.."

" 민희야, 딱 일주일 만이구나."

아저씨는 오늘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아저씨 역시 보살님의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 우리 민희를 아십니까?"

" 하하..지난번에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 그럼 민희도 좋아하겠군요. 민희야, 이분이 이제 너의 아버지가 되실 분이란다."

' 아저씨가..아버지...?'

[2]

" 선배님, 요즘 그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박현수는 자신의 대학교 선배였던 이무영에게 말하였다. 이무영은 정리된 차트를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307호 환자 말인가? 모르겠네. 낳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 지금 그 환자는 머릿속이 꽤나 복잡할 걸세."  

" 하하..그 환자의 머릿속은 항상 복잡했죠."  

[3]

어젯밤의 일 생각하기도 싫지만 생각 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생각이 난다. 나의 몸이 어제의 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 민희 누나..괜찮아?"

민우는 만화책을 보다 말고 나에게 말 하였다.  

" 응?"  

" 어제..일 말..이야...괜찮아?"

민우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내 볼은 붉게 달아올랐다. 눈에서도 물이 흘러내리려고 했지만 난 꾹 참았다.

" 민우야, 신경 쓸 필요 없어. 나 괜찮아."  

" 아저.. 아니 아빠가 오늘도 그러면.."

" 민우야!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 누난..괜찮으니까 정말 신경 안 써도 돼.."

그때 벨이 울렸다. 아저씨가 오신 거다. 평소 때는 이 벨소리를 들을 때 마다 설렘을 느꼈지만 지금은 빨라진 심장 박동 소리 때문에 귀가 아파왔다. 민우는 나의 눈치를 보며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문을 열었다.  

" 아빠, 오셨어요?"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가 들어왔다. 아저씨를 보자 괜히 피하고 싶어졌다.  

" 아..빠 오셨어요?"  

" 인사는 치우고 내 방으로 가자."

" 아..빠! 저 배고파요. 우리 밥 먹.."

" 빌어먹을 밥통아! 네 녀석이 내가 밖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줄 알아? 밥이나 축내는 녀석인 줄 알았으면 널 입양 하지도 않았어, 쯧쯧."

민우는 축 쳐진 어깨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 네년은 어서 내 방으로 와."

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아저씨의 방에 들어가야 했다.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닫았다.

아저씨의 거칠어진 숨소리와 흥분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들을수록 내 몸도 아파왔지만 가슴은 찢어 질 것만 같았다. 지금 아저씨의 모습과 처음 만났던 아저씨의 모습..어느 모습이 진짜 아저씨의 모습일까..

[4]

박현수는 녹음기를 이무영에게 건네주었다.

" 박 선생, 이게 뭔가?"  

"307호 환자의 말을 녹음 한 겁니다."  

" 꼭 남의 사생활을 침해 하는 것 같군. 만약 자아가 사라졌다면 그 사라진 자아가 5년 전,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살해자의 자아였으면 좋겠군."

이무영은 헛기침을 두 번 터트리며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 민우야..너..도대체 뭘 한 거니!]

박현수는 녹음기에 흘러나오는 한 남자의 말투 때문에 피식 웃었다.  

" 말투를 들어보니 여자의 자아 같은데요."  

" 박 선생, 그런 웃음은 삼가 해주게. 이 여자의 자아 이름은 김민희라고 하는데 요즘 그의 몸을 지배하는 횟수가 잦아졌다네."

[ 누나..이제 우리 해방이야. 난 누나를 위해서 이런 거란 말이야.]

" 최민우. 김민희 동생의 자아라네."  

[ 해방? 네가 지금 헤친 자가 누군 줄 알아? 우리 아빠야!]

[ 아빠? 우리를 입양해서 부려먹을 대로 부려먹고 누날 강간한 이 새끼가 아빠야?]  

[ 그래도..살인은 나쁜 거야!]

[ 그럼 누난 왜 5년 전 우리의 부모를 살해 한 거지?]

[ 민우야, 무슨 말이야? 우리의 부모라니..너와 난 진짜 남매가 아니야. 우린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매야.]

" 선..배님."

박현수와 이무영은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변해 버렸다. 꽤 큰 충격이 이무영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정신과에 몸담은 지 20년 만에 처음이군. 그렇다면 김민희란 자아가 살해범이란 건가. 계속 들어보는 게 좋겠군."

이무영은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 피 한 방울 안 섞인 건 맞지. 내 피가 누나 피고 누나 피가 내 피지. 크크.]  

[ 민..우야..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모르겠어.]  

[ 모르겠어? 한 몸에 누나와 내가 함께 있는 거야. 원래는 수십 아니 수백의 자아가 존재 했지. 내가 그 많은 자아들을 없애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누나와 여기 쓰러진 새끼를 없애기 위해 내가 이 자리를 만들었어. 누나가 우리의 몸에 남아 있으면 우리의 몸은 사형 당할 거야. 부모를 살해한 죄로 말이야!]  

[ 정..말 모르겠어! 이상한 소리 집어치워! 제발! 제발! 제발!]  

[ 하..지마! 하지 마!]

[ 으...아악!]

" 선배님, 이게 무슨 일이죠?"

박현수는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순간 당황했다.

" 김민희의 자아가 사라져 가는 중인 것 같네. 아니면 최민우의 자아가 사라질지도 모르지."

[ 민우야..왜 그랬어...왜 그랬어..]
























여름엔 역시 공포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