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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피와 뼈 1. 각성(覺醒) (2)

2007.07.18 19:46

페이스리스 조회 수:483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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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覺醒)


 


(2)


 


학교의 소문이란 TV의 거짓말과 비슷하다.


 


리얼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것이 ‘밤중에 학교 정문에 있는 단군 동상의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간다’같은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것이든, ‘어느 선생하고 어느 선생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다’라는 소박하지만 그럭저럭 있을 수도 있는 것이든, 뭐든 간에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어느새 사실감은 붕 떠버리고 흥미로운 3류 가십 기사 같은 게 된다. 그것도 처음에야 흥미롭지, 열기가 식으면 그냥 잘 타는 쓰레기나 냄비 받침대 취급을 받는 것이다.


 


성민희에 대한 소문도 지금은 찬밥 신세지만, 처음 소문이 돌기 시작한 1학년 2학기 초반에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그것 때문에 학교의 아이돌쯤의 대접을 받던 그녀는 순식간에 학교 전체의 왕따로 전락했다. 그녀를 동경하던 남학생들과 그녀를 은근히 질시하던 여학생들은 열광적으로 앞장서서 그 집단 따돌림을 주도했고, 다른 학생들도 대놓고 그녀를 무시했다. 선생들 중에서도 그 움직임에 동참한 사람이 몇 있었는데, 출석을 할 때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거의 애교에 가까웠고, 그녀에 대한 괴롭힘을 외면하거나 같이 괴롭히거나, 교장실까지 찾아가서 그녀를 퇴학시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 사람도 있었다.


 


한 달 동안 학교는 성민희에 대한 풍문으로 인해 일종의 ‘광기’에 휩싸였고, 한 달이 지나자 그 광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를 대놓고 무시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 풍문을 입으로 꺼내지 않았다.


 


마치 놀이에 흥미를 잃은 어린애가 집어던진 장난감처럼, 성민희도 그렇게 내버려졌다.


 


지금 그 소문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청성고등학교 1학년의 아이돌 성민희가 원조교제를 한다.”


 


는 웃기지도 않는 소문을.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빛을 받으며 계속 운동장을 돌고 있는 체대 지원생들을 보면서 다람쥐 쳇바퀴를 떠올렸다. 인간이 만든 우리 속에서 인간이 만든 쳇바퀴 위에서 인간이 만든 삶을 살아가는 다람쥐는 무엇을 위해 쳇바퀴를 굴리는 걸까.


 


내가 옥상에서 이 재미없는 쳇바퀴 굴림을 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양호실에서 나온 시간이 적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업 시작한지 20분이나 지난 시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로 들어가기도 좀 그랬고, 그렇다고 도로 양호실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멍하니 서있는 것도 바보 같았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으니 매점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우물쭈물하고 있다가 선생하고 마주쳤다가는 학교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아주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이다. 결국 택한 곳이 옥상인데, 막상 올라와보니 할 짓이라곤 바닥에 드러눕거나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쳇바퀴 굴림을 보는 것뿐이었다.


 


시간은 지겹도록 느리게 흘러갔다.


 


현실감이 없었다.


 


하늘은 너무 높아서 실감이 안 났고, 일상은 쳇바퀴 굴림처럼 변화가 없었다. 마치 TV 속 거짓말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둘러싼 소리가,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가짜처럼 느껴졌다.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동급생들 무리 속에서도, 새가 조용히 지저귀는 학교의 옥상 위에서도, 진짜라고 생각되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지만 다른 것들은?


 


나 말고 존재하는 다른 것들은 없는 건가.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방관자가 되어 줄곧 존재하는 것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반년 전 그것을 포기했다.


 


지쳤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것들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핸드폰의 시계는 어느덧 5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문득 책가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찬찬히 떠올렸다. 핸드폰 알람을 잘못 맞춰서 아침에 늦게 일어난 일, 악마 같은 진철 선생에게 야구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일,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양호실이었고



 


 


“빨리!!”


“미안해.”


 



 


다소 황당한 일로 양호실에서 쫓겨난 것, 옥상에서의 역겨운 망상.


 


문제.


 


그렇다면 나의 책가방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아서 복도는 여전히 조용했다.


 


창밖에서 내려온 노을빛으로 기름걸레로 잘 닦여진 나무 바닥이 안정된 주홍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수업 종료 5분을 남겨두고 미리 가방을 싸두고 와글와글 떠드는 학생들의 소리가 교실 밖으로 적당히 흘러나오면서 왠지 모를 아련한 그리움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오래된 학교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양호실까지는 앞으로 몇 걸음 정도였다.


 


성민희는 교실로 돌아갔을까, 아직 양호실에 있을까. 양호실에 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책가방을 내버려두고 집에 돌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데 그녀는 왜 양호실에 있었던 걸까. 잠깐밖에 보지 못했지만, 특별히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수업을 땡땡이치기 위해 잠시 양호실에 신세 좀 지고 있었던 거라고 말하기에는 그 후의 행동이 말이 안 된다. 여러모로 신경 쓰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 그녀의 방관자였던 나라면 모를까, 방관자 자체를 포기한 지금의 내게 그녀의 행동에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아무래도 좋아.


 


아무래도 좋은 거야.


 


끼익.


 


끼익.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나는 신경질적으로 양호실의 문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문고리에 뭔가가 묻어 있었다.


 


물은 아니었다.


 


물보다 끈적끈적하고, 독한 것.


 


나는 문 앞에 선채 그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것은 문고리 전체를 새빨갛게 물들이고 바닥으로 뚝뚝 흘러내렸고, 코를 찌르는 듯한 역겨운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정표였다.


 


문을 열었다.


 


덜컥.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솜과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별로 위생적이지 못한 양호실 바닥에 대(大)자로 가만히 드러누워 있었다. 항상 사악한 미소를 달고 다니던 그의 얼굴은 마구 짓이기고 찢어져 살 안쪽에서 새하얀 것이 툭 튀어나왔고, 바로 옆에는 예쁜 빛깔의 고깃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가 그 꼴이 되면서 웃고 싶었든 아니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역겨운 돼지새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미소였다.


 


나무 바닥을 빛내던 주홍의 노을빛이 어느새 핏빛이 되어 양호실 전체를 비추었다.


 


나는 그의 목에 손을 대었다. 맥박은 뛰지 않았다.


 


갑작스레 내 일상을 침범한 방문객에 대한 확인 절차는 그쯤 하기로 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훌륭한 시체였다.


 


삐리삐리삐리리리리~.


 


멜로디가 오래된 스피커를 통해서 잡음과 함께 흘러 나왔다. 밖에서는 책가방을 든 학생들이 갑갑한 교실에서 뛰쳐나와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신경을 박박 긁었다. 정신이 없었다.


 


침대가 움직였다.


 


한순간이었지만 분명했다.


 


내가 하루 종일 누워 있었던 침대로, 다른 침대들과 마찬가지로 사방에 커튼이 쳐져 있어서 안에 누가 있는지 멀리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시체를 넘어 소리가 난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침대는 점점 심하게 떨렸다. 내가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누구지. 


 


거기 있는 너는 누구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굴이 기대로 일그러졌다.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은 어린 아이처럼 나는 커튼을 확 젖혔다.


 


“힉!”


 


그러자 침대 위에 있던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공포로 떨고 있었다. 상의를 풀어헤쳐 안의 속옷을 다 드러내고 있는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 안에서 은색의 고양이 귀걸이가 찰랑거렸다. 원래 얼굴색이 창백했던 그녀는 겁에 질려서 마치 새하얀 분이라도 바른 것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맥이 탁 풀렸다.


 


범인이라도 숨어있는 줄 알았는데.


 


똑똑.


 


누군가가 양호실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라는 소리도 안 했는데 멋대로 들어온다.


 


“실례합니다. 선도부에서 나왔는….”


 


알 수 없는 서류뭉치를 잔뜩 들고 온 그는 바닥에 있는 시체를 보자 그것들을 모두 떨어뜨렸다. 입만 벙긋거리고 손가락으로 시체를 가리키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다 그가 시선을 우리 쪽으로 돌렸다.


 


“이,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글쎄요.”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 말 대로였다.


 


“히익!”


 


성민희는 여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선도부원으로 보이는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해서 쿵쾅쿵쾅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는 것 같았지만, 심호흡을 끝내고 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 어쨌든 너흰 가만히 있어. 난 교무실에 갔다 올 테니까 거기 꼼짝말고 있어! 알았어!?”


 


그는 양호실 문을 벌컥 열고 교무실 쪽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중간에 철퍼덕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발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나는 다시 시체를 천천히 감상했다. 얼굴은 살 안쪽의 새하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뭉개지고 찢어졌지만 목 아래 쪽 부위부터는 놀랍도록 상처가 없었다. 피도 모두 얼굴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얼굴에 콤플렉스라도 있는 걸까.


 


양호실 주위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비명을 질렀다.


 


시체.


 


피.


 


비명.


 


그것은 리얼이었다.


 


그리고...


 


 




*


 


 




저녁부터 주룩주룩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잔뜩 먹구름이 끼어서 우르릉 쾅쾅 천둥이 쳤다. 거센 바람에 창문이 요동쳤고 멀리 있는 어딘가에 벼락이 떨어졌다. 바깥에서 천둥소리에 놀라 시끄럽게 징징 우는 어린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우산을 뒤집어쓰고 미친 듯이 집으로 뛰어가는 한 사람이 보였다. 바람에 망가져 뼈대밖에 남지 않아 하늘하늘 흔들리는 우산을 들고서.


 


누군가가 계단을 쿵쾅쿵쾅 오르고 있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윽고 소리의 주인공은 애꿎은 아파트 바닥 대신에 죄 없는 문짝을 쿵쾅쿵쾅 두들겼다.


 


쾅쾅쾅쾅쾅쾅!!


 


나는 기다렸다가 철컥 문을 열어주었다.


 


아빠는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계단 오르시느라 힘드셨는지 무릎에 손을 얹고 헉헉거렸다. 침이 꼴까닥 넘어가는 소리가 참으로 재미있게 들렸다.


 


아빠는 나를 보자 다짜고짜 싸대기를 날렸다.


 


짝 소리와 함께 나는 신나게 바닥에 처박혔다.


 


“야 이 새꺄! 왜 학원 안 갔어!!”


 


쿵쾅쿵쾅.


 


아빠가 다가와 나의 멱살을 잡고 나를 번쩍 들었다. 아빠의 험악한 얼굴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실핏줄이 눈동자를 향해 솟구친 그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눈동자는 내 얼굴을 비추었다. 나는 무표정 그 자체였고, 나는 그 사실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


 


나는 아빠의 터질 것 같은 눈을 터뜨려주었다.


 


바늘로 풍선을 터뜨리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다.


 


“아아악!!”


 


아빠가 비명을 지르며 왼쪽 눈을 부여잡았다. 구멍 나서 휘휘 날아가는 풍선처럼 이리저리 발광했다. 고통이 크신지 내가 얼굴 쪽으로 다가가는 것도 몰랐다.


 


나는 다시 풍선을 터뜨렸다.


 


펑.


 


“끼아아아아아악!!!!”


 


아빠는 더 이상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볼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테니까.


 


나는 바늘을 집어던지고 부엌으로 총총 뛰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것을 두 손으로 집어 들었다. 아빠와 엄마는 한손으로 그것을 사용했지만, 나는 아직 어려서 손잡이를 한손으로 다 잡을 수 없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아빠의 두 눈에서 나온 피가 새하얀 대리석바닥에 아름다운 모양으로 흘러내렸다. 아빠의 청색 양복과 하얀 와이셔츠는 피로 범벅이 되었다. 추했다.


 


아빠는 역겨웠다.


 


“이 개새끼야! 이리 와!! 죽여 버릴 테다! 죽여 버릴 거야!!”


 


나는 착한 아이처럼 아빠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나쁜 아이도 아니다.


 


두 손으로 든 식칼은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나는 리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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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뼈 예고



2. 대결(代決)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다.


오늘 오후 4시 44분까지 체육관으로 와라.


기다리겠다.


- 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