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환영(幻影) -고어 스크리밍 쇼- ②

2007.04.01 09:07

악마성루갈백작 조회 수:147 추천:1

extra_vars1
extra_vars2 114550-1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1995년 8월 16일. 영천시 모 경찰서.

두근!

격한 고동이 들려온다. 나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나의 심장소리. 아직 멈추지 않은 나의 격한 심장소리다.

"헉!"

등에 식은땀이 배어있는 소파에 누워있는 채로 눈을 뜨며 잠에서 깨었다.
눈을 뜨면 높게보이는 천정. 오늘도 변함없이 아침을 맞이한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관자놀이를 눌러 두통을 조금 참아보지만 더욱 두통은 심해져왔다.
이마에는 물처럼 투명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꿈……이었나?"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생생한……. 이라기보다 뒤죽박죽이군.
시야가 조금 흐릿해서,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뜬다. 이상한 꿈이었다.
머리를 부여잡으며 애써 꿈을 떠올리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것은 떠오른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무언가를 찾는 듯 한 여성과 그녀를 쫓는 '광대',
그리고… '광대'에 의해 먹혀진 그녀의 최후.

그 광경은 너무나도 생생한 나머지,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실한건, 정말로 마음에 안드는 꿈이였다는 것이였다.
아아, 두 번 다시 꾸고 싶지 않을 최악의 악몽이군. 젠장.
어쩌다가 내가 이런 꿈을 꾸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따지고 싶은 입장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걸 두고 운이 없다고 해야 되나…….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자신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있다는 것을 느꼈다.
가위에 눌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마 그 추측은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에겐 급한 용무도 없었고, 초조함을 느낄 인성도 퇴색되어 있기에,
느긋하게 손가락 끝에 정신을 집중해 본다.

저기 눈앞에 존재하는 손은 확실히 나의 몸통과 연결되어 있지만 실재감이 희박하다.
곧 손끝에 감각이 돌아오고 괴기스러운 뼛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발끝이, 고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각 말초신경에서부터 천천히 온몸의 회로
가 삐걱거린다. 몸이 움직인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본다. 그 일련의 작업이 다 끝나
자 이번엔 마치 기계의 이상을 확인하듯 자신의 몸을 살폈다. 굴러다녀도 상하지 않는
튼튼한 몸. 험한 생활이 무색하도록 무사했다. 만족스러웠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현실을 바라본다.
단칸방보다는 조금 넓은 방. 아니, 방이라기보다는 사무실에 가깝겠지.
곳곳에 보이는 먼지와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역력했다.
그렇게 자신에게 납득을 시키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사무실..? 아, 어제 여기서 그대로 자버린 모양이군.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지만."

문득 시간을 확인해보니, 시각은 오전 8시 10분을 가리켰다.
시계를 보는 나의 눈은 김이 서린 듯 흐려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악몽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거 세수라도 해야 갰군. 소파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나는 세면실로 걸어간다.

촤아!

거창하게 샤워까지 할 생각은 없었기에 간단하게 세수를 하기로 했다.
입을 헹군 후 물을 얼굴에 묻힌다. 시원한 물이 얼굴을 때리고 멍해있던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수도를 잠그고 근처에 놓여있던 타월로 물기를 닦아나갔다.
문득 고개를 들자 세면대 앞의 거울이 보였다. 그 거울에 비추어지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각인된다.
딱히 이렇다 할 것 없는 하얀색 셔츠에 검정색 카고팬츠 차림.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눈꺼풀이 반쯤 감겨있었다.
정오도 아닌데 개꿈이라니 원. 그렇게 투덜거리며 사무실로 돌아온다.

탁자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담긴 재떨이와 오늘자 조간신문이 있었다.
불현듯 왠지 모르게 신문이 신경 쓰였다. 직감(直感)이라 불리는 녀석일까.
나는 신문을 집어 들어 1면을 장식한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쓰여 있는 것은─

【살인마 프레데터 또다시 활약하다! 이번 피해자는 2명.】

그 순간, 고동소리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두근거렸다.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혈압이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두통이 있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내가 잘못 본거겠지? 그렇게 믿으며 두 눈을 비비고 찬찬히 살펴봤다.

"………."

어째서인지 그것은 환각 따위가 아니었다. 제길, 운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분이 찝찝한 대로 시선을 밑으로 내려가며 계속 읽었다.

첫 번째 희생자는 박○○ 씨(58세), 두 번째 희생자는 코트에 있던 신분증을 통해
밝혀진 대한국립수사관 소속 이수희 씨(26세). 여전히 증거로 보이는 흔적은 발
견 할 수 없다는 둥의 내용과 더불어, 아직 모포로 덮기 전의 피해자의 시신이
찍힌 사진이 실려..있었다.

…식욕이 절로 사라질법한 사진이다. 아무리 그래도 모자이크 처리도 안한 건가.
무슨 납량 특집이냐? 아니, 그 전에 어떻게 찍은 거야 이거?
이 나라의 경찰은 너무 안이하다. 믿을 수가 없어.
하지만, 대중의 이목을 끄는 기사를 쓴다면 적어도 조간신문에 그것도 1면에
이런 사진을 실은 것은 미스다. 조만간 항의가 빗발치겠군. 이 신문사.

「정수리를 뚫고, 두개골을 쪼개어 그 안에 자리 잡은 그 물건. 그들의 뇌.
그것은 어땠어? 뇌수를 질질 흘려가며 파열시킨 그들의 뇌.
아아, 그것이 어땠는지 묻고 있는 거야. 그것을 보고 미소 짓는 당신의 얼굴이 궁금해.
그리고 바닥을 시뻘겋게 물들여가는 피는 어떤 붉음이었지?
구역질이 날만큼 선명한 붉은 색이었나?
울부짖고, 외치고, 광소하고, 미소 짓고, 속삭이고, 마지막에는 희열 속에서 입을 다물지.
그러고는 유유히 어둠 속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사라져버려.」


꽤나 실감나는 묘사였다. 기자 때려치우고 나중에 소설가 해도 되겠군.
그런 실없는 소리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만우절에 한 농담이 진담이 된 격일까.
그렇다고 해도─짜증스럽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거슬린다.

왜 한명이 아닌 두 명이나 죽였는지의 여부는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단지 오늘 꾼 꿈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도무지 납득하지 못할 뿐이었다.
예지몽인지 타인의 정신에 간섭한 건지 몰라도 매우 불쾌하다.

"어째서… 어째서인 거야!"

입술을 짓씹었다. 나는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매우 심플하다.
마치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듯 한 살인범─이젠 '광대'라 불러야 되나─과,
그리고 비록 꿈으로 밖에 보지 못했지만, 안면이 있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는 나 자신이다.

범인은 제정신이 아니다. 조금만 기다리고 자시고 이미 미쳐 날뛰고 있다.
이런 무증거에다 미쳐버린 광인의 사건현장에서는 분명히 누군가가 더 다치게 된다.
그리고 지금 가장 심각한 것은 '무증거' 라는 것이다.
유일하게 피해자의 머리가 심하게 파열되었다는 것 이외의 그 어떤 흔적도 없다.

흉기 불명, 목적도 불명. 피해자를 아무리 조사해도 꼬리가 나오지 않는다.
피해자 전원이 남에게 원한 살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뭐, 세간에서 무차별 살인 사건이라 떠들고 있기에 새삼스럽게 되씹을 필요는 없지만.

거기다가, 범인으로 추정되는 그럴듯한 인물도 없다.
주변엔 다 50대 이상의 노인뿐이기 때문이다. 밀실 살인이라면 희망이라도 있겠지만,
전원 야외에서 살해당했으므로 범인의 수법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만큼 사건 상황이 절망적이다. 이러다간 수사 자체를 포기해야 될지도 몰라.

다시 한 번 오늘 꿈에서 본 광경을 떠올려 본다.
나무에 덕지덕지 발라진 피처럼 보인 흔적과 뒤를 맴돌던 괴이한 소리.
연쇄살인? 그리고 무증거? 조금…, 뭔가 이상하지 않나…?

"김 형사? 이봐, 김 형사?"

낮은 톤의 남자 목소리였다. 환청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흔들다 멈칫했다.

"손 선배님..? 아, 예. 왜요?"

내 옆에는 어느새 듬직한 체구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투박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있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죽 재킷은 지저분했고, 안에 입은 셔츠는 잔뜩 구겨져 있었다.
이 사람은 내 직장 선배이신 손시호 선배님이다. 특유의 까칠한 수염과 넉살좋은 인심이 트레이드마크랄까.
물론 수사할 때만큼은 범인에게 사정 봐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일어났어? 아침 아직 안 먹었지? 이거라도 먹어보게."

선배님은 그렇게 말하며 한손으로 방금 끓인 컵라면을 내게 내밀었다.
보아하니 유통기한이 2일 지난 것 같았지만 억지로 무시했다.

"그냥 내버려두세요. 요즘 신경이 날카로워서 아무 것도 안 넘어갑니다."

나는 집어든 신문을 아무렇게 내려치면서 불만스레 말을 토해냈다.

"아무리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지. 자네 어제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먹었지 않나."
"알겠습니다. 성의를 봐서 이번 만은 제가 먹어드리죠."

나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컵라면을 손에 쥐었다.
선배님도 컵라면을 하나 집어 들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하여간, 준비성하난 철저한 사람이라니깐. 속으로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선배님은 한참 동안 말없이 손에 쥔 것을 우물거리고, 씹고, 삼키기만 했다.
미각이 둔해졌는지 맛이 매운지 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확실히 컵라면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는 얼어붙은 심신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자네 괜찮은가? 얼굴이 많이 창백해 보이네만."

선배님은 한참 컵라면을 우물거리다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렇게 내가 안쓰러워 보이나? 뭐, 선배님이 그렇게 말하신다면 맞는 거겠지.

"…그럭저럭 입니다. 하루 이틀 밤샘하는 것쯤 이 바닥에서 흔한 일이니까요."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끼니는 거르지 말라는 소릴세. 당장 자네 건강에도 안 좋잖아."
"물만 먹고도 일주일은 살수 있다니까 상관없습니다."

선배님은 한숨을 푹 쉬었다. 선배님의 말은 비록 가벼워 보이고, 마치 일상의 회화와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 말들 속에는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따뜻한 관심이 감추어져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러다 몸살이라도 앓으면 어쩔 생각─"
"괜찮습니다."

더 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재빨리 말을 가로막았다. 이러니까 꼭 선배님이 내 아버지 같았다.
하긴,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 참, 자네의 그 고집은 알다가도 모르겠군."

선배님은 질렸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한다.
그 행동은 선배님의 버릇 중 하나인데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선배님, 오늘자 신문 보셨어요? 프레데터 사건 특집이 실렸던데요."
"그래?"

선배님은 그새 컵라면의 국물까지 마시고는 내가 들고 있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수염투성이의 얼굴에 라면 국물이 묻어 있어 왠지 노숙자를 보는 것 같았다.

"저번이 열 번째였던가?"
"맞아요, 그런데 이번은 좀 특이합니다. 여태까지의 방식이라면 한명이 죽어야 될 텐데,
이번에는 두 명이 살해당했습니다. 그 중 한명은 외부인이구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창틀에 팔꿈치를 올리고 손바닥으로 턱을 기대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 소리 할만한 행동이었지만 선배님이라 거리낌 없었다.
뭐, 그만큼 서로 간의 친밀감이 없다면 왠만큼 하기 힘든 행동이지.

"두 명? 음, 그건 확실히 특이사항에 들어가겠군. 그 외에 주목할 사항은?"
"두 번째 피해자가 첫 번째 피해자보다 약 1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정도..일까요."

이 부분은 신문에 나오지 않지만 꿈에서 본 광경을 토대로 추론하자면 10m 쯤 된다.
하지만 나와 그녀가 본 것이 확실하다면 시체는 없었는데... 역시 모르겠다.

"확실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네. 범인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한 걸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한명만 죽이는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두 명이나 죽었으니까요.
제가 더 그 이유를 알고 싶군요."

나는 순간 신경질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아무리 인심 좋은 선배님이시라도 이번 만큼은
꾸중을 듣겠다 싶었지만, 예상외로 선배님은 담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어찌 보면 간단한 예기지. 자네 말대로라면 그 곳에 사는 누군가가 살해당하고 끝났어야
했을 사건이, 이번에는 외부인까지 죽임 당했다는 거니까."
"뭐..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우연히 현장을 목격해서 입막음용으로 살해당했을 게 뻔하지 않은가?"

나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선배님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선입견의 폐해인가.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베테랑이이라 느낀 분마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윗분들은 볼 것도 없겠나. 이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으로는 그렇게 되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네 의견은 어떤데?"

선배님은 다소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주시했다.

"처음부터 첫 번째 피해자가 아닌 두 번째 피해자, 즉 외부인을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면요?"
"하지만, 범인에게 그렇게 해야 될 이유가 있겠나?"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내 생각 위주다. 이것이 맞는다고는 할 수 없겠지.
어디까지나 꿈에서 본 광경을 토대로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

"희생된 순서는 내부인이 먼저겠죠, 그러나 첫 번째 희생자에게서 10m 이상 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외부인인 그녀가 그 숲에 목적을 가지고 찾아왔다는 반증입니다."
"피해자를 목격한 것에 패닉을 일으켜 도망쳤다고도 볼 수 있을텐데?"

나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차며, 겉으로는 매우 정중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마 그녀는… 그 숲에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때, 그것도 하필이면 '밤중에' 방문해야될 이유가 없잖아요?"

뭔지는 몰라도 탐색이라면 낮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허나, 그녀는 낮이 아닌 밤에 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밤중에 오지 않으면 찾아지지 않는 물건이란 것.

"흐음..계속 해보게."
"범인은 그녀가 숲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죽 지켜보고 있었을 겁니다.
예정대로 내부인중 한명을 죽인 다음, 그녀를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몰아넣고…."

한 순간 선배님의 눈에 어두운 광채가 서렸다.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은 대충 알겠네. 그렇다면 범인이 외부인을 죽인 까닭은."
"필시 그녀가 찾고 있는 '무언가'를 손에 넣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겁니다."

결과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실제는 어떨까. 꿈에선 사람의 마음까지는 알 수 없었지.
숲에서 찾는 물건이 그만한 희소성을 갖추고 있지 않는 이상, 그녀의 행동으로 볼 때
그 이유가 아니면 그곳에 올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자네도 웬만하면 밤중에는 길가를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무렴 어때요. 어차피 경찰을 노리질 않으니 전 죽을 일도 없는데."

그건 완전히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틀리다고도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 지역 주민 이외의 사람을 죽이지 않던 범인의 돌발행동이 일어났으니까.

"허참, 이 친구야. 19세기를 풍미했던 잭 더 리퍼와 이번 프레데터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그야 뻔하죠, 둘 다 목격자가 없으며 살해 방식이 독특하다는 것."

난 단번에 잘라 대답했다. 이유야 어쨌던 사실은 사실이니까.
선배님은 내 대답에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하지만 결정적으로 인간의 취급방식이 다르지. 하지만, 누가 알겠나?
한순간의 변덕으로 대낮의 홍두깨가 될지 말이야."
"요점이 뭡니까."

의미 없는 문답에 짜증이 난 나머지 재촉하는 투로 대답했다. 선배님은 혀를 쯧쯧 찼다.

"프레데터가 다음번엔 형사를 노릴지 누가 아냔 말일세."
"절 노리지 않길 빌어야 겠죠."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다시 신문지 1면을 장식한 기사를 읽었다.
등 뒤에서 선배님이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라이터를 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 뒤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며 선배님에게 말을 건넸다.

"…선배님, 저 나가봐야 겠습니다."
"음? 어딜 가려고? ..기다려! 음식 남았잖아. 다 먹고 가야지."

선배님은 담뱃재를 툭툭 털며 내게 말했다.

"산책 좀 하고 싶어서요, 앉아만 있다 보니 몸이 뻐근해져서요.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이거라도 마시고 가게."

선배님은 마개를 따 두었던 캔 커피를 내게 내밀었다.
손에 계속 쥐고 있던 탓인지 조금 미지근해져 버렸지만 아직까지 서늘한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캔 커피의 내용물을 들이키며 창문 너머를 살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걸어 다니는 사람은 적었다.
더구나, 살인마의 출연으로 그 광경은 마치 고요하면서도 무서움이 감도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말은 그렇지만, 사실은 이 사건에서 손때고 싶은 거지?"

그것은 내 가슴에 비수를 꽃은 듯 한 말이었다.
그렇다, 나는 '광대'를 두려워하고 있다. 잡으네 마네의 수준은 한참전에 뛰어 넘었다.
만약, 지금 눈앞에 '광대'가 있다면 나는 총하나 제대로 뽑지 못하고 죽을 게 뻔하다.
이 상태로는 범인을 추적하는 행위조차 하지 못하겠지.
여태까지 내가 범인을 쫓을 수 있었던 건 실체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대망상에 젖은 정신병자 같은 소위 '맛간 놈' 이었다면 그래도 아직 인간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상어 수준의 힘이 아닌 이상 생으로 사람을 씹어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단연컨대 그건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 따위가 아니었다.

거기다 아무리 무장을 갖춘다고 할지라도 '광대'에게 먹힐지는..솔직히 의문이다.
그런 것을 상대할 바엔 Bio Hazard의 배경인 라쿤 시티에서 살아남는게 더 낫겠지.
과장되어 말하자면 그건 말로만 듣던 사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우중충한 기분으로 일한다는 거, 역시 무리일려나.

"오리무중이라는 건 나도 동감일세.
그렇지만, 뭐라도 단서가 나와야 추적하던지 말든지 할 게 아닌가.
어차피 우리 관할구역에서 사건이 터졌으니까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해야지."

선배님은 간밤에 산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물론 그 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는 게 좋다고 제 직감이 경고하고 있어요.
선배님도 제 감이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계시잖아요?"

그리고는 갑자기 침묵이 몰려왔다. 이런 침묵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걸 어쩐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말을 해야 겠군.

"아무튼 저는 이 사건에서 손때겠습니다. 감봉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관둘 겁니다."
"…뭐, 그렇게까지 자네가 말한다면야 나도 뭐라 대답할 말이 없군.
알았네, 서장님껜 내가 알아서 말씀드리지."

선배님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그럼, 내일 오후 2시에 '비 내리는 날'에서 기다릴게요."

나는 코트를 채워입으며 선배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어이, 이거 놔두고 갈까?"

선배님은 그렇게 말하며 신문을 쥐지 않은 손으로 컵라면을 가리켰다.

"…불어터진 것 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여하튼 선배님도 서둘러 돌아가 주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나섰다. 그리고 문지방에 서서 선배님에게 말을 걸었다.

"매번 고마워요."
"조심하라고."

선배님은 빙긋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전편부터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오랜만에 뵙겠고,
이번편부터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처음 뵙겠습니다.
약 2달여만에 환영 -고어 스크리밍 쇼-의 2편으로 찾아온 백작입니다.

연재 시기가 원래 예상보다 늦춰졌는데, 그 이유는 뒤에 올라올
광란의 협주곡이라는 작품의 구상 때문이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 작품이 광란의 협주곡의 후속작이
되어야 할텐데 사정상 먼저 올라오게 되었군요;

이번 편은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김수현(김 형사)이라는 형사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일련의 연쇄 살인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 인물로 사실상 주인공이죠.
정의감에 불타지만 광대에게 순수한 공포를 갖기도 하는 평범한(?) 인물상이랄지.
미쳐 날뛰는 주변 인물들에 비해 그나마 제 정신에 속합니다.
손 형사는..글쎄요. 저로서도 딱히 어느 쪽이다 말할 수는 없군요.

3편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광란의 협주곡과 더불어 이 작품도 많이 사랑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