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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환영(幻影)

2007.02.03 02:21

악마성루갈백작 조회 수:168 추천:1

extra_vars1 -고어 스크리밍쇼-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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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벌어진 연속 괴사(怪死)사건.


 


그 어떤 것이든 어떠한 '규칙' 을 가지고 있다.
우연이란 게 없음으로 인해서 '필연' 으로만 만들어지는 어떠한 규칙.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인과율(因果律). 혹은 순리(純利) 라 불리는 것이다.
반드시 어떤 무언가가 발화점이 되어서 결과를 낳는다.


 


그것은 재앙인가, 그렇지 않다면 인과의 응보(應報)였던 것인가.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단 하나, 2000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이 땅에 출몰한,
이종지성생명체(異種知性生命體)가 이미 그때 존재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홍콩에서 인류해방군 사령관 슈발츠가 집필한 '메모리어' 中』



1995년 8월 15일 11시 40분.


 


달도 별도 어디론가 숨어버린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사방은 온통 나무와 풀로 빽빽이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 가운데 오늘의 무대를 장식할 주연배우의 모습이 보인다.


 


"휴우. 이런 곳은 왠지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나."


 


어딘가 불만스레 토한 말엔 낙담의 기색이 보였다.
자, 그럼 이 사람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테의 안경을 끼었으며,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를 하고,
목을 덮는 상아색 스웨터에, 학자풍의 흰색 롱코트를 입은 학자풍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늘진 얼굴은 너무나 창백해서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만 뺀다면, 이상할 것 없는 20대 중반 즈음 되어 보이는 여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다지 키가 큰 편은 아닌 탓에 그녀의 존재가 더욱 작게만 보인다.


 


별로 이상할 것은 없었으나, 숲이라는 공간과는 부적절한 차림새였다.
특히, '이런 때'에는 더더욱.


 


"공휴일인 광복절에 쉬지도 못하다니 운이 없어도 너무 없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있겠군."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서두르는 기색 없이 걷고 있다.
이미 검게 변한 하늘은, 별빛과 달빛조차도 삼켜 가고 있었다.
물론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어두운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장소는 마치 세상에서 고립된 듯 자신만의 확고한 어둠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어둠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의 어둠이 아니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빛을 삼키는 무언가가, 그 장소를 뒤덮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자신이 방문한 이곳이 어떤 의미의 장소인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찾고자 하는 것이 이곳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이 존재할 뿐.


 


그녀가 이 장소에 오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가치를 지닌 물건.
'그것'을 보유하게 되면 자신의 소망도 실현된다.
물론, 여기에 '그것'이 확실히 있다는 상황에 한해서지만.


 


"화린아, 조금만 기다려. 내가 반드시 너를…"


 


그 뒤에 무슨 말을 하려 했을지는 오직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


 


쉬익─


 


지금 그녀가 걷고 있는 이 주변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칠흑 속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뭔가가.
모순되어 있는 것, 이질적이고, 또 이 세상에 어긋나있는 '그 무엇'.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킥──


 



쫓아오고 있다. 누군가가 쫓아오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불안감이 아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의 등 뒤에서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이 숲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계속 일정한 거리를 두고 왔을 것이다.
거의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했다.


 


이 숲에 얽힌 단순한 괴담으로 생각할 법한 어떤 이야기.


 


'…별거아닌 괴담이지만 그 숲에 얽힌 전설로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그 숲을 지나가면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고 하더군요.'


 



크아악──


 



자신의 등 뒤에서 맴도는 이상한 소리.
그 소린,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 희미한 소리는 그녀가 빠르게 걸어갈수록 그녀를 조일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걷고 있는 그녀를, 그대로 없애버릴 듯이.
그녀는 애써 그 소리를 무시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슬쩍 좌우를 돌아본다.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칠흑 속에서의 빛은 사치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설령 그 빛이 다가와 이 어둠을 비춘 다해도 어둠 그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다. 아니, 어둡다라기 보다는 불쾌하다고 느낄 수준이다.
무언가 지독한 게 그녀의 뒤를 쫓고 있다. 기운이 느껴진다.


 


'그 소린 행인의 뒤편에서 계속해서 들려왔습니다.'


 



카악──


 



그것은 목에 무언가가 걸려,
콜록거리는 어린아이 같기도 했다.


 


처음으로 그 소리가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루어야 될 목표가 있었기에 사람을 만날 겨를이 없었고,
처음 보는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신경 쓰는 일을 관뒀다.
…무엇보다 이런 시각에 숲을 돌아다닐 사람 따윈 있을 리가 없기에.


 


최초에 느껴지던 위화감은 지금에 와선 선명한 기운이 되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짙은 안개 속을 걷는 듯 한…….


 


'허나, 뒤를 돌아보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무슨 흔적 같은 것이 남아 있었을 뿐.'


 



키야아아악──


 



반복하여 들리는 소리. 그녀는 이번 한번 뿐이라고 다짐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소리는 그것으로 그쳤다.


 


자신의 뒤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없었다. 광기에 가득한 웃음소리 또한 없었다.
인간의 형상 따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고 했다.


 


나무 사이에 듬성듬성 칠해진 '붉은색의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면.


 


"뭐, 뭐야?"


 


그녀는 그것을 보지 말았어야 했었다.
그것은 선홍색의. 아름답다고 하면 아름답고, 불쾌하다 하면 불쾌할 정도로…….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의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무에 붉은색의 흔적이 있고, 무언가가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오기 불과 몇 분, 아니 몇 십초 전까지.


 


두 근, 하고,
그녀의 오른쪽 가슴에 있던 심장이 요동쳤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처지가 생각났다.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 아무 것도 없다. 움직이는 생명체는 나 혼자.
어둠 속에 혼자 있는 다는 것이 무서워진 것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 자 있 는 다 는 것 이 무 섭 다.


 


'그 주위는 피로 이루어진 듯 온통 붉은 색으로만 점칠 되어 있었죠.
그리고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순간, 그녀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고 걸음을 재촉했다.
달린다. 기분 나쁜 그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때까지 그녀는 달렸다.
뛰어라. 좀 더, 좀 더 빨리 뛰어라. 붙잡혀서는 안 된다.
멈춰선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야말로 끝일지도 몰라.


 


심장은 이미 폭발 직전의 핵폭탄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계속해서 명령한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도망치지 않아도 되겠지.
하지만 그것은 도망칠 수 없다는 결론 하에 나오는 체념일 것이다.
아직 도망칠 수 있다. 그녀는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도망쳐야 한다.


 



큭, 킥, 키힉──


 



그러나 그 소리는 그녀가 뛰어가는 속도에 맞춰 뒤따라오고 있었다.
이건 처음부터 술래가 도망치는 사람을 붙잡는다는 결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그녀에게 불리한 게임. 멈추면 죽는다. 도망쳐도 죽는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늦추기 위해 도망치는 게 낫다.


 


잡히면 어떤 꼴을 당할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그 때, 그녀의 몸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한다.
그 소리도 그녀가 걸어가는 속도에 발맞추어서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
다리가 지치기 시작했을 때 그 소리도 지친 듯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얼마 못가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쓰러질 것 같다. 밀렸던 숨을 한순간에 토해내기 시작했다.
얇게 경련을 일으키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바로 뒤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그녀가 뒤돌아봐주기를 기다리듯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이곳을 감싸는 것은 숨이 막힐듯 한 정적.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인간의 걸음이라는 명령은 이미 경직되어버린 상태였다.
그녀는 몸을 돌릴 수 없었다. 몸을 돌리면 굉장히 무서운 것이,
행동의 결과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그녀 속의 누군가가 경고한다.


 


가슴의 고동이 일으키는 뜨거운 고통. 그리고 끊임없이 몸을 통제하려는 뇌의 명령.
하지만 그녀의 몸은, 조금씩 몸을 돌려, 마침내, 보고야 말았다.


 


"!"


 


어느 새인가 그녀의 등 뒤에 서있는 존재.
숲의 정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형체는 분명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인형(人形)은 달빛을 등진 채 아주 흥미롭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몸 전체를 훑어보는 듯 한,
내면 깊숙한 곳까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 한 시선이었다.
뒤늦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였는지 깨달았지만 아무런 소용없는 일.


 


'…그것이 '피에로' 라고 한다면 믿겠습니까?'


 


이전에 느낄 수 없던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는다.
무섭다.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눈앞의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몸이 굳는다. 공포로 온 몸이 얼어붙은 채 주위를 둘러본다.
분명 아까 전에 자신의 뒤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 했을 터였다.
그런데 기척을 숨기고 몇 초 만에 자신의 등 뒤에 서있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얼핏 봐도 2M을 넘는 장신에 그것을 감싸는 붉은 망토,
광대를 상징하는 양 갈래로 갈라진 검은색의 모자,
오른쪽 눈에 박힌 철은 분장을 대신한 듯 어두운 빛을 발했으며,
코에는 소나 사용할법한 코뚜레를 끼고 있었다.
거기다 괴기스러움을 더한 철가면과 전체적으로 서커스단의 피에로 같은 차림의 모습.
보기만 해도 압도당할 것만 같은 분위기. 그것은 덧붙여서 인간의 존재감을 사라지게 하고 있었다.


 


도무지 인간이라 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형체가 아무리 인간과 닮았다고 해도,
그 형체가 풍기는 음습한 분위기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연상시킬 뿐.
구태여 명칭을 준다면 '지옥의 광대'라 해야 할까.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여어여어여어여어!!?"


 


소름 돋을 정도의 차가운 음성에 그녀는 소름이 쫙 돋았다.
귓가에 울려 퍼진 목소리는 인간의 음성이라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마치 지옥 저편에서 들어오는 듯 한 목소리는 오싹하다 못해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왔다.


 


"프레데터...?"


 


프레데터. 최근 한국 전역에서 화젯거리가 된 사건의 살인마.
10여명의 피해자를 낸 연속 괴사 사건. 분명히 피해자의 공통점은…….


 


"내 이름을 물어봤군! 내 이름을 물어봤어! 그럼 대답하지 대답하고말고. 대답할 수밖에!!"


 


광대는 속사포처럼 쉴 새 없이 말을 내뱉었다.


 


"제 이름은 고어! 내 이름은 고어! 네 이름도 고어! 내 이름도 고어!! 고어고어고어고어고어───"


 


그녀는 이미 반쯤 얼이 나간 상태였다.
도망쳐야 돼.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난생 처음 느껴본다 싶을 정도로 강력한 압박감.
다리에 맥이 풀려 섣불리 움직였다간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고어 · 스크리밍 · 쇼!!"



Gore(잔인하고) Screaming(비명지르는) Show(무대)
그것은 그(라고 해야 될지 알 수 없지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호칭이 아닐까.
보는 이로 하여금 혐오와 공포를 동시에 선사한 광대와 짝을 이룰 만하겠지.


 


"키하하하하! Game Over!!! 이것으로 You는 Dead End. 하지만, 재시작은 없다네!
인간의 생명은 단 한번. 뿐이니까 말이야! 이것으로 끝. 끝이고말고. 그렇지 않아?"
"……!"


 


스스로 고어 스크리밍 쇼라 칭한 광대는 그 노려봄의 즐거움을 느끼듯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광기에 물든 것만 같은 짙은 웃음.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심장이 터져버릴 듯이 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진 않을 것이다. 도망치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디로?


 


"Gentleman&Lady! 무대는 이제 막을 내릴 시간입니다!!! Good Bye!"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단호하게.


 


그녀는 피식 웃음을 짓는다. 한도를 넘어선 공포가 불러온 용기. 아니, 만용이다.
특별히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한 것은 아닐터.
그녀의 힘 따위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건 자신이 더 잘알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확실한 죽음이 기다릴 뿐.


 


단지, 이런 허세라도 부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도망친다고 해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에 내린 결론.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등의 상상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겠지.
구체화되는 이미지는 죽음. 절대의 죽음에 대한 환시(幻視).


 


광대가 움직이면 이 세상에서 그녀가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확실한 것은 눈앞에 있는 '존재'가 도저히 그녀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 뿐.


 


"누, 누가 멋대로 당해줄……."


 


그녀는 끝내 그 말을 다하지 못했다.


 


"……!"


 


자신의 머리카락을 휘감아 억지로 머리를 들게 하는 존재.
하지만 그 손길의 힘은 너무 강해서, 그녀 자신의 온 힘을 다 해도 이길 수가 없다.
그래도 고개를 들면 안 된다. 고개를 들면 자신이 죽임 당한다는 것을 싫어도 알게 되니까.


 


하지만, 바로 코앞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이 있었다. 붉은 눈.
이쪽을 바라보는 피처럼 붉은 눈동자는 분명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악마와도 같은 그 눈은 먹잇감을 사냥하는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광대의 사고는 그저 더럽히고 싶다는 강한 짐승적인 본능과,
'먹고 싶다'는 강한 파괴만이 남아 있을 뿐.


 


죽는다. 어찌할 방도도 없이 확실하게 죽는다.
그녀의 얼어붙은 이성대신 본능이 그렇게 말한다.
아니, 광대를 봤을 때 자신은 이 숲에서 절대 살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광대야 말로 10명의 사람들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
최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 이름……. 프레데터(포식자)였기 때문일까.


 


아아, 줄곧 그녀의 등 뒤를 따라다니던 소리, 그것은.
미쳐버린 살인귀의 웃음소리였다.


 


입이 닿았을 때, 그 모든 것을 단숨에 꿰뚫어버릴 것이다.
아무런 행동조차 취하지 않았기에 그 판단은 확신에 차있었다.
그리고 광대의 입은, 주저 없이 그녀의 두개골을 취한다.


 


화직.


 


그 순간, 피가 튀면서 이윽고 숨이 막힌다.
뭔가가 강하게 그녀의 머리를 뚫어버린다. 비명은 나오지 않는다.
미쳐버릴 것 같은 쾌감이 경련을 일으키며 온몸에 퍼진다.
그녀의 시계가……일그러져…간……다.


 


'…인간을 포식하는 괴물에게 사냥 당하면, 그것으로 끝.
만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피해자들의 유력한 공통점은……. 머리가 심하게 파열되었다는 것.
먹혀가는 가운데 그녀는 자신의 고통도 두려움도 잊어버렸다.
단지, 살아있지 않음을 느낀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혹함을 느낀다.
그 후,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광대의 얼굴은 피에 물든 쾌감을 즐기는 그것이었다.


 


이것은 파괴(Destroy)라는 이름의 공연. 오직 '그' 만을 위해 준비된 막.
주연 배우는 단 혼자. 이름도 알 수 없는 행인 A.
광기와 타락, 희열과 공포로 가득한 일그러진 무대.


 


광대는 서서히 그녀의 머리를 파열시킨다.
파열된 두개골을 쪼개어 그 안에 자리 잡은 뇌에서 광대가 느끼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뇌수를 질질 흘려가며 '먹고 있는' 그녀의 뇌. 정복자의 의식이다.
연수를 잡아당길 때의 그 쫀득쫀득한 감촉. 툭하고 떨어지는 소뇌.
인간 내면의 추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한 그 예술적인 더러움.


 


끓어오른다. 이 즐거움. 끊임없이 타오르는 쾌락이라는 이름의 즐거움은.
연약한 그녀의 육체를 단숨에 부숴버리고 싶다는 강한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입 안에서 끄르륵 소리를 내며 뇌가 짓뭉그러지고,
이빨 사이로 그 회색 가닥들이 미끌미끌 삐져나올 때의 그 몸서리 쳐지는,
미쳐버릴 만큼 날카로운 쾌감.
인간의 맛. 미각세포 하나하나가 느끼는 전율. 그 어떤 맛과도 틀릴 것이다.
그의 혀는 맛볼 수 있지만 말로써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파열됨 속에서 한명의 인간은 끈적끈적한 액체덩어리의 일부가 되어 사라진다.


 


아니, 그것은 이미 시체라 명명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짙게 피 냄새를 풍기는 질척한 고깃덩어리일 뿐.
그가 서 있는 곳에는 고깃덩어리의 파편과 황폐해진 주변 풍경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닥에 뿌려진 피는 넓게 퍼져 경계를 짓는다.
마치,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이.


 


그곳은 썩고, 냄새나는, 토해버릴 것만 같은 장소.
짙은 선홍색의……. 모든 것이 선홍색의 핏빛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검붉은 선홍 속에서 광대는 핏빛에 잠식되어간다.
그의 손도 광기로 가득한 그 눈동자마저도 서서히 잠식해 간다.


 


이윽고, 광대는 그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었다.


 



그 날은 그를 둘러싼 세상이 피로 메워져 있었다…….


 



살인마 프레데터.


 


1995년, 20여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낸, 한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범.


 


검시의가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철저하게 자신에 관한 증거를 남기지 않았고,
살해 방식은 얼굴을 심하게 파열시킨 것이 전부였으며, 결정적으로 누구에게도 목격되지 않았다.


 


얼굴을 파열시킬 만큼 힘이 센 자라면 근육 또한 대단할 테니 눈에 띄지 않았을 리가 없었으나,
대부분의 희생자가 숲에서 살해당했으며,
더구나 그 주변은 왕래조차 드물었으므로 목격자가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시골 가에 돌아다녀도 그리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
즉 시골에 사는 노인층이었다면 야생동물이나 할 수 있을 법한 그런 참혹한 살인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프레데터(Predator, 포식자)



한국의 유력 일간지 조선일보가 이 괴기 살인범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파열된 상태가 육식동물에게 먹힌 자국과 흡사 하였기에 그렇게 불렸다.
노숙자와 청소부에서 시작하여 간호사와 국회의원까지.


 


사람들은 계층을 가리지 않고 살인을 일삼는,
결코 붙잡히지 않는 살인범에게 묘한 쾌감 같은 것을 느끼며 술자리의 화젯거리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이 다음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스타인양 찬양하며,
따분한 일상에 주어진 자극적인 사건을 열렬히 환호하곤 했다.


 


정의감에 투철한 경찰들에게는 악마, 특종거리를 노리던 기자들에게는 반쪽의 영웅.
하지만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저, 그 또한 피해자였을 뿐.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나만이 알고 있는 반쪽의 진실(Fact)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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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부터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오랜만에 뵙겠고,
이번편부터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처음 뵙겠습니다.
반년 만에 신작으로 복귀한 K. A. Y(백작)입니다.


 


이번 콘셉트는 '단순하게 보이는 괴사건에 숨겨진 음모' 입니다.
시간상으로는 illusion -환영(幻影)-보다 1달 뒤의 사건이 되겠습니다.
시작부터 과격하게 나가서 코드가 안맞으시는 분들도 다수 계실듯 하군요;


 


그럼, 빠른 시일내 2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