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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단편집] 세기말

2007.01.16 20:18

신마스케 조회 수:156 추천:1

extra_vars1 첫번째 이야기 - 붉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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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전국이 흐리고 경기지방을 비롯한 서울 전역에 다소 많은 양의 비가 내리겠사오니 출근 하실 때 우산 꼭 챙기는거 잊지마세요. 이상, 기상캐스터 전미연이였습니다.'


7월 말, 드디어 매년 어김없이 찾아와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다. 제 아무리 대비를 한다고 한 들, 매년 피해액은 늘어만 가고 그 잘난 정치인들은 피해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떠들어 대지만 정작 피해입은 곳은 엉뚱한 군인이나 자원 봉사자들이 힘겨운 복구작업을 하기 일수다. 이런 넘쳐나는 모순을 만들어내는 장마가 난 정말 저주스럽기까지 하다.


5층 짜리 아파트 2층, 그것도 방 한 칸짜리에 쳐 밖혀 사는 신세를 한탄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원인 모를 우울함이 하루종일 내 곁을 감싸고 도는 느낌이다. 이윽고 이 우울함은 나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고 난 잠시 머리나 식힐 겸 산책을 나갔다.


낡디 낡은 아파트의 허름한 입구를 지나 집 앞 공원으로 향하던 중 난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솜털처럼 짜여져 있는 하늘을 보니 새삼 마음이 가벼워 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릴적 자주 보았던 하늘과 너무도 흡사한 모습에 그 어릴적 순수함마져 느껴진다. 저 뒤편에 있는 시궁창같은 곳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에 또 다른 모순을 느끼는 나였다.


어느덧 공원에 한 벤치 앞에 앉아선 나는 자연스럽게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붙을 막 붙이기 전, 건강이 최고라며 친구들에게 태권도를 권했던 고교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역시나 세상은 모순 투성이다. 불이 붙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난 공원 주위를 살펴 보았다. 공을 차며 뛰어 노는 아이들,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들, 애인끼리 다정하게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사람들, 모두가 제 각각 할 일 또는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통 통 통…….'


"아저씨! 공 좀 던져주세요!"


"자, 받아."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라……. 그래,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제 나도 아저씨가 되어버린건가. 애써 웃어보려 하지만 쓴 웃음만 나온다. 역시, 나이를 먹는다는건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다시 자리에 앉은 난 갑자기 찾아온 무기력함에 그만 눈을 감았다. 곧이어 온 몸이 나른해졌고 마치 하늘을 나는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 하늘을 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하늘을 날으는 쾌감을 만끽하고있던 찰나, 정체모를 거대한 물체가 내 몸을 휘감았다. 처음엔 따뜻하고 포근했으나 그것은 점점 더 나를 조여왔고 어느새 엄청난 압박감과 함께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난 정신을 차렸고 눈을 떠 보니 나의 팔, 아니 전신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채 고통을 느낄 사이도 없이 내 팔과 다리는 하나 둘 녹아 내리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중심을 잃은 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 갑작스러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으나 이상하게도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난 이내 냉철함을 찾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다행히 아직 안구는 녹지 않은 듯 했다. 사람들은 나의 주위를 빙 둘러싸곤 아까처럼 제 각각 할 일 또는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다급히 구급차를 부르는 듯 한 사람, 울며 도와달라고 외치는 사람, 아이들의 눈을 가린 채 자리를 피하려는 사람, 이 와중에서도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한 남학생 등, 그야말로 모순된 일로 가득한 광경이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시야가 흐려졌고 이내 다 녹아버린 몸통에선 장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엄청난 고통을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내 기분은 오히려 홀가분했다. 마치 모든 삶의 짐들을 저 깊숙한 땅 속으로 묻어버린듯. 모든 짐들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또 다시 하늘을 나는 듯 한 흥분을 느꼈고 비록 몸은 재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불길에 휩싸여 날고 싶군.'


또 다시 하늘을 날으는 짜릿함을 맛보던 찰나, 이번엔 수 백, 수 천 방울의 물이 하늘에서 쏟아져 나의 활 활 타오르던 시껗먼 몸을 적셨다. 비록 모든 신경계는 다 타버리고 난 후였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내 몸에 닿은 것은 비라는 것을. 또 한 안구마저 녹아내려 어둠에 사로잡힌 나였지만 분명 볼 수 있었다. 지금 내리는 비는 진한 붉은색을 띄고 있다는 것을.


거칠어진 붉은 빗 방울은 어쩐일인지 나의 몸을 빠른 속도로 녹여갔다. 차라리 불에 태워져 뭔지 모를 쾌감을 느끼고 싶었던 난 난생처음 하늘을 원망했다. 아, 이 얼마나 모순되는 순간인가. 다 녹아버린 성대를 대신해 난 마음 속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이런 모순투성이 세상은 더 이상 필요없어!'


'콰당!'


소리를 지르다 움찔한 난 그만 공원 벤치에서 넘어졌다. 곧 이 모든게 꿈이란걸 눈치챈 난 당황한 나머지 일어서지도 않은채 먼저 주위를 살폈다. 바닥엔 아까 피우다만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었으나 아직 타고있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 매우 긴 시간동안 꿈을 꾸엇다고 생각한 난 망치에 정수리를 얻어 맞은듯 머리가 멍해졌다. 그렇게 멍 한 정신인채로 난 공원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


이른 밤이었다. 어제 공원에서 돌아온 얼마나 잤을까.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고 리모컨을 찾은 난 TV를 켰다. 


'긴급속보입니다. 현재 막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지금 전국전역에선… 아니… 이게 무슨 말도안되는……. 시청자 여러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켠 TV에선 내 머릴 더욱 더 어지럽게 만드는 방송사고가 일어나고 있었다. 대본을 본 아나운서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대본을 들곤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잠시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들른 난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 현재 막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지금 전국전역에서 내리고 있는 이 붉은 빗줄기는… 강한 산성으로… 사람의 피부 및 차와 건물등 닥치는 대로 다 녹여버리고 있어 엄청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믿기 힘드시겠지만 실제상황입니다. 잠시후 이어질 재난방송에서는 이에 따른 대처방법을 신속히 강구하여 여러분께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긴습속보였습니다.'


'붉은 빗줄기……? 설마!'


아직까지 생생한 어젯적 꿈을 떠올린 나는 서둘러 창문에 블라인더를 올렸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난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어제 꿈에서 본 그 비가, 그 붉은 비가 지금 사방에 휘날리며 뿌려지고 있었고 그 비가 닫는 곳은 모두 타들어 가거나 녹아들고 있었다. 길거리엔 비록 형체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사람처럼 보이는 물체 수 십체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녹아내리고 있었고 TV에서 들은 바와 같이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일제히 지표면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순간 난 바닥에 주저 앉은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난 다시 정신을 되찾았고 다시 창문 밖을 살펴보았다.


이상하게도 창문 밖은 제 갈길 바쁜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붉은 비도 거친 화염도 없었다. 또 악몽을 꾼 것이다. 왠지 나른한 기분을 뒤로 한 채 난 TV를 켰다.


'현재 막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지금 남해안에서부터 북상하고 있는 이 붉은 빗줄기는… 강한 산성으로… 사람의 피부 및 차와 건물등 닥치는 대로 다 녹여버리고 있어 엄청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앗, 이제 막 중부지방에도 붉은 빗줄기를 뿌리고 있다고 합니다. 저로써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만 실제상황입니다. 잠시후 이어질 재난방송에서는 이에 따른 대처방법을 신속히 강구하여 여러분께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긴습속보였습니다.'


순간 창문 밖은 붉은 빗방울과 함께 아비규환에 빠졌고 계속해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온 신경이 무감각해진 난 그저 창문 밖 붉은 하늘만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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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지루한 글,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