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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죽도록 웃어요

2007.01.15 22:06

신마스케 조회 수:185

extra_vars1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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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른 아침, 두꺼운 패딩 점퍼에 낡은 청바지를 입은 한 사내가 한 손엔 MP3 플레이어를, 다른 한 손엔 담배를 들고는 문을 나섰다.


"인혜야, 오빠 일 갔다 올께. 이따가 9시 되면 꼭 유치원 버스 타고 가야돼. 오빠가 일 끝나고 데릴러 갈테니깐. 알겠지?"


"응, 알았어. 근데 오빠! 유치원 선생님이 담배 나쁘데! 피지마! 알겠지?"


"그래, 그래. 추운데 어서 문 닫고 들어가."


집을 나선 승원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한 동안 물끄럼히 담배 한 가치를 바라보다 이윽고 입에 물고선 불을 붙였다.


'에휴… 미안하다 동생아. 언젠간 꼭 끊을께…….'


새 하얀 김과 함께 뿌연 연기를 뿜으며 승원은 서둘러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지하철역에 도착한 승원은 매표소로 향했지만 평일 출근시간인 만큼 매표소는 엄창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승원이 막 줄을 서려던 순간, 어느 한 사내가 승원의 등을 밀치며 지나갔고 그 뒤에 이어 한 꼬마아이가 승원의 앞을 스쳐지나갔다. 균형을 잃은 승원은 바닥에 고꾸라졌고 이어폰 역시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 이 사람들이 정말……. 미안하단 말도 안하고 그냥 지나가네……."
'안녕하세요. 이제부터 평일 오전 여러분들의 웃음을 책임질 '죽도록 웃어요'의 진행자…….'


'요즘은 아침에 이런 방송도 하나보군… 라디오는 무슨… 기분도 꿀꿀한데 음악이나 듣자.'


오랜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표를 구입 할 수 있게된 승원은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 했으나 지갑은 보이질 않았다. 이내 소매치기 당한 것을 눈치 챈 승원은 주위를 살펴봤지만 아까 전에 부딫혔던 한 사내와 꼬마아이는 이미 사라진 후 였다.


'에휴 이런 미련곰탱이……. 어쩌지… 사람도 많은데 오늘 딱 하루만 넘어서 가야겠다. 오늘 딱 하루만!'


승원은 표내는곳을 넘어 계단을 뛰어내려가 열차를 타려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문은 닫혔다. 아쉬는 표정으로 열차의 문을 바라보던 승원은 다른 승객들을 보곤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저것들이… 아 정말! 이젠 전 국민에게 등한시를 당하네…….'


'콰아아아아아앙!'


그때였다. 그가 혼자 중얼거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이제 막 출발한 열차는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폭발했고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엄청난 양의 피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찢어진 몸둥아리들이 열차밖으로 내팽겨졌다. 이에 놀란 사람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지만 곧이어 계단에서도 연이은 폭발음과 함께 사람들은 공중분해되었다. 승원은 너무도 놀란 나머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은채 몸을 숙였고 폭포를 연상시키는 계단에선 붉은 선혈이 흘러내려와 그의 온 몸을 적셨다.


"이봐요! 괜찮아요? 이봐요! 정신차려요!"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채 승원에게 말을 건냈지만 그의 귓속엔 폭발음의 충격으로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말을 할 처지도 못 되었다. 설령 승원이 말을 했더라도 그 사내도 듣지 못 했을 것이다. 사내는 피바다 속에 반쯤 잠긴 승원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곤 서둘러 불길에 휩싸인 열차주변을 빠져나왔다.


"이런 젠장할!"


황급히 계단을 뛰어 오르던 두 사람은 매표소 쪽의 처참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바닥, 벽, 그리고 천장은 모두 붉은 피와 살점들로 도배되어 있었고 바닥엔 흰 뼛조각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화제가 발생하였으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침착하게 지상으로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위이이이잉…….'


"이제서야 귀가 들리네! 피때문에 잘은 않보이지만 얼핏보니 저랑 나이가 비슷한것 같은데… 전 윤민수라고 합니다. 그 쪽은 성함이?"


"전 김승원입니다. 일단 산 사람들부터 찾죠. 불길이 더 번지기 전에 산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갑시다."


"네, 그럽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최대한 큰 소리로 외쳐댔다.


"살아계신분 안계세요! 여기 살아……."


"도… 도와주세요! 출구 계단쪽이예요."


도와달란 소릴 들을 민수와 승원은 제 빨리 출구쪽을 향했다. 피로 범벅이된 계단엔 교복으로 보이는 치마를 한 여자아이가 쓰러져있었다.


"얘야! 괜찮니? 어디 다친 곳 이라도있어?"


승원이 여자아이를 부축하며 말을 건냈다.


"쾅하는 소리에 놀라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팔을 좀 다쳤어요."


"음, 이정도면 크게 걱정은 안해도 될꺼야. 일단 여기서 빨리 나가자. 민수씨 같이 부축합시다."


셋은 그렇게 악몽같은 지하철을 빠져나왔으나 그들 앞에 펼쳐진 지상의 광경은 더욱 더 어처구니 없는 광경들이었다. 길가에 널부러진 차들은 저마다 불을 내뿜으며 화산처럼 타올랐고 인도는 이미 벌겋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주위에 건물들은 전부 유리창이 깨어져 있었고 불이 난듯 시꺼먼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러한 믿을 수 없는 광경 속에서 도심은 적막함으로 대조를 이루었다. 그렇다, 적어도 그들의 시야 안에선 그들을 제외한 어떠한 인간 아니, 생명체도 없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이건 말도안돼! 이건 사기야! 이건 꿈이라고!"


"민수씨, 이봐요! 일단은 진정하시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의논을……."


"이 판국에 진정은 무슨! 당장 내 가족이 어떻게 됬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제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저… 저기요! 제가 주제넘는 소리를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 분 말씀대로 진정하시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서로 의논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산 사람은 살아야죠……."


민수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흥분을 가라 앉히고는 두 사람에게 웃으며 사과를 하려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그 짧은 사이에 그만 웃음을 잃었는지 그의 얼굴은 마음과는 달리 경직되어 있었다.


"승원씨 죄송해요… 제가 흥분을 잘 해서요……. 그리고 그 쪽 학생도 미안해요… 전 윤민수예요. 그 쪽은 이름이 어떻게되요?"


"아녜요. 미안하긴요. 오히려 제가 주제넘은 소리를 한 것 같아서……. 제 이름은 이혜림이예요."


"전 김승원입니다. 자, 그럼 일단. 오늘 일어난 일을 잘 살펴보죠.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사람들이 폭발하기전 무슨 특별한 일같은거 없었나요? 전 당시 음악을 듣고 있어서……."


"전 MP3를 듣고있어서 폭발음밖에 못 들었어요."


"저도 학교 가기전엔 항상 MP3를 듣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들었어요. 아, 맞다! 제 기억으론 폭발하기 몇 초전 주위사람들이 모두 웃는 얼굴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모두 웃는 것 치곤 좀 흉칙한 얼굴이었지만……."


순간 승원도 잠시 이어폰이 빠졌던 기억과 열차 안의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러고보니 잠깐 이어폰이 빠져서 라디오같은 걸 들었는데… 제목이… '죽도록 웃어요' 였던가……. 아무튼 전 라디오 듣는것도 싫어하고 기분도 좀 그래서 다시 음악을 들었거든요. 그리곤 몇 초 차이로 열차를 놓쳤는데 그 열차 안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폭발했죠."


"승원씨 얘기랑 혜림씨 얘기를 들어보니 대충 감이 잡히네요. 결국 그 방송을 들으면 웃다가 터져버린다는 건가……? 정말 어처구니 없긴 해도 그런 일을 직접 본 저희로썬 그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군요. 자, 그럼 이제부턴 어떡하죠?"


민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혜림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전 학교로 갈꺼예요."


혜림의 이야기를 들은 민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혜림을 바라보며 말을 건냈다.


"학… 학교요? 거기도 지금 난장판이 되어있을텐데……."


"그렇긴해도 제 부모님이 두 분다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시거든요. 제가 오늘 늦는 바람에… 아무튼 전 부모님을 찾으러 학교에 갈꺼예요."


"그럼 전 제 동생을 찾아보러 갈께요. 민수씨는요?"


승원은 자신의 동생을 찾기위해 유치원을 향하기로 맘을 먹었다.


"음… 전 뭐… 마땅히 갈 곳도 없는데 혜림씨 따라서 갈께요. 혹시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니……. 괜찮죠 혜림씨?"


"아… 그럼요! 저야 고맙죠!"


"자 그럼, 핸드폰은 핏물이 들어가서 못 쓰게 된 것 같으니 이 곳에서 5시에 다시 모이는 걸로 하죠."


"그래요. 승원씨 몸 조심하세요!"


"민수씨도 몸 조심하시고 이따가 꼭 다시 뵈요!"


셋은 그렇게 둘로 흩어져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