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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살인 예방자

2007.08.19 13:46

월령검사 조회 수:553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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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 예방자


 



    늦은 어느 밤…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새카만 밤이었다. 그런 밤의 정적을 깨며 작은 파출소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나온 것은 그 파출소에서 일하는 것 처럼 보이는 한 순경이었다. 김순경은 오늘 이 주변을 돌아보는 당직이었다. 원래 2명이 한 조로 순찰을 돌게 되어있으나 오늘은 어쩐 일인지 같은 당직인 최순경이 밤이 되자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어, “또” 혼자서 순찰을 돌게 되어버린 것이다. 최순경이 갑자기 순찰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보나마나 또 어디 오락실 같은 데서 땡땡이나 치고 있겠지… 한심한 사람 같으니라고. 이제 나이도 서른을 바라보는 사람이…쯧.’


 


속으로 몇 시간 전부터 보이지 않는 최순경을 욕하며 김순경은 가지고 있는 손전등을 키고 어두운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렇게 달도 없는 날에 당직이 걸리다니 재수도 더럽게 없다는 생각을 하며 김순경은 좁은 골목길 사이를 누볐다. 벌써 이 일만 3년, 매주 2번씩 해온 그였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야 하는지, 또 어디를 피해야 하는지를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혼자인 날에는 너무 어두운 골목길은 가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예전, 깡패들 4명과 시비가 붙어 크게 혼이 났었던 일을 회상하며 그는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쩝…그때는 참 어렸지. 생각도 안하고 다짜고짜 4명의 깡패들한테 덤볐었으니…’


 


그때 깡패들에게 맞아서 난 상처가 아직도 그의 왼팔에 남아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다니…이제는 자기도 늙었다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데, 저 멀리 어느 막혀있는 골목길에서 어떤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길을 잃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하고있는 짓이 조금 특이했다. 막 어린 티를 벗어난 듯한 학생,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열 여섯은 채 넘어보이지 않는 한 학생이 빛도 없는 골목에 서서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팔을 모두 하늘로 향하고 손 끝을 오므리며 마치 하늘을 잡아보겠다는 양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번쩍 들고 서 있는 학생을 보며 김순경은 자신도 모르게 오싹한 느낌이 들어 외쳤다.


 


“어이~ 학생! 시간도 늦었는데 집에 들어가야지? 부모님이 걱정 안 하시나?”


 


학생은 마치 김순경의 말을 못들은 양 가만히 계속 똑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한번 더 큰 소리로 얘기하려는데 학생이 천천히 김순경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인데...”


 


천천히 손을 내리는 학생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순경은 학생의 손이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너무 놀란 김순경은 비명을 지르는 것 조차도 잊고 멍하니 다시 학생의 손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손이 피로 물든 학생이 멍하니 다시 말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인데…”


 


슬프다는 투로 그렇게 말한 학생을 다시 쳐다보던 김순경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학생의 모습은 온데 간데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일주일이 지났다. 헛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똑똑히 보였던 그 환상…하지만 정말 환상이라고 밖에는 표현 할 수 없었다. 너무 정신적인 충격이 컸던 탓일까…그날 순찰은 대강 끝내버리고 파출소에 돌아오자마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일이 있은 후로 그 아이의 모습과 그 아이가 중얼거리는 말이 계속해서 그의 마음속에 맴돌고 있었다.


 


‘크리스마스…크리스마스라…’


 


오늘은 10월 12일. 그때가 바로 10월 6일의 일이었다. 크리스마스는커녕 아직도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서려있었다.


 


‘그런데 왜 그 아이는 크리스마스라 그런 것일까…’


 


김순경은 아직도 그때의 일 때문에 마음이 혼잡스러웠다. 그냥 헛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도 선명한 그일… 그때의 일을 계속해서 생각하며 고민하고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등을 툭 하고 치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슬며시 든 김순경의 위로 저 번 순찰을 땡땡이 쳤던 최순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이~뭐가 그렇게 고민이야? 여자문제인가? 내가 도움이 되고 싶지만 나도 그 문제 때문에 영 머리가 아파서 말이야. 푸하하하~”


 


“예…아…아닙니다. 그저 생각할 것이 좀 있어서… 선배님은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최순경은 김순경의 3년차 선배였다. 그리고 그 파출소에서 가장 일을 대충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저번 그 이상한 환각을 본 것도 다 이 사람이 순찰을 땡땡이 쳐서 그런 것이라 생각되자 갑자기 김순경은 최순경이 보기 싫어졌다.


 


“저…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뒤에서 최순경이 또 뭐라 비꼬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그는 그 소리를 무시한 채 마음에도 없는 화장실에 가 앉았다. 오늘은 또 자신이 순찰을 도는 날이었다. 지난번 순찰은 아프다는 핑계로 파출소에 나오지 않아 대강 넘어갔지만 이번만큼은 별수없이 또 나가야 할 터였다. 그때 본 이상한 환상 이후로는 별로 밤의 골목길이 내키지만…


 


‘후…잊자. 어차피 지난 3년간 해왔던 일이다. 별거 아니겠지. 그저 어느 누군가가 장난을 쳤던 걸지도 몰라.’


 


누군가가 장난을 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훨씬 마음이 편해지긴 했지만…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있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는 못한 채 또다시 순찰의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의 순찰은 언제나 처럼 별다른 일은 없었다. 거의 다 돌아보았다고 생각할 때쯤 최순경이 김순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김순경이 저기 저 골목들 좀 마저 돌아보고 오라고! 난 저기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목좀 축이고 있을 테니까. 골목길에서 나오는 처녀귀신 조심하고! 푸하하하~”


 


오늘은 어쩐지 너무 열심히 다 했더니…결국 최순경은 또다시 순찰을 하다 말고 땡땡이를 치러 가버렸다. 하필이면 최순경이 돌아보라고 한 골목길들은 김순경이 그때 그 환각을 보았던 바로 그 골목길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도 찜찜한 마음을 억누르며 김순경은 손전등을 다시 켜고 골목길들 사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골목길들을 다 돌아보고…이제 마지막 골목길이 남아있었다. 그때의 바로 그 골목길…용기를 내어 손전등을 비추며 안을 들여다본 김순경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순찰도 끝났고, 이제 최순경이랑 같이 술이나 마시러 갈까 하고 생각하는 김순경의 뒤로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린 김순경의 뒤에는 한 남자가 경직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져 있고, 그의 앞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그런 그 남자를 다시 살펴보는 김순경은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며 김순경이 외쳤다.


 


“헉! 최…최순경님!”


 


그의 앞에 피투성이로, 칼을 들고 쇼크에 빠져있는 남자는 다름아닌 최순경이었다. 그의 히죽거리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정신착란에 빠진 것 같은 모습은 마치 그가 아닌 것처럼 보여주고 있었으나 그 모습이 최순경이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칼을 땅에 떨구며 피투성이의 최순경이 말했다.


 


“어쩔 수 없었어. 내가…내 잘못이 아니야.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어…”


 


계속해서 ‘어쩔 수 없었어’를 중얼거리는 최순경의 몸을 잡으려던 김순경은 다시 놀랐다. 그가 잡으려던 최순경은 또다시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일주일 전의 그 아이처럼…


 


김순경은 뛰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어디로 뛰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어느 정도 뛰자 생각이 정리되며 어디로 뛸 것인가, 생각이 났다.


 


‘최순경님께 가봐야 한다!’


 


최순경과는 분명 아까 헤어졌었다. 술을 마시러 간다고 했고, 분명 자신의 눈앞에서 술집쪽으로 향했다. 술 마시러 간 사람이 그 골목길에 서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환각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환각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술집에 들어간 최순경을 찾아야 했다. 결심이 서자 김순경은 술집쪽으로 달렸고, 곧 어렵지 않게 벌써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최순경을 만날 수 있었다. 김순경이 숨을 헉헉거리며 다급한 표정으로 갑자기 술집에 들어오자 최순경은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자네, 왜 그래? 뭔 일 있나?”


 


“아…아니…그게 저…선배님이 그러니까…”


 


일단 최순경의 모습이 보이자 안심하기는 했지만 방금 일어났던 일들이 정리가 되지 않고 김순경의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자 말들이 두서없이 나왔고, 결국 최순경이 알아들을 만한 말을 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술도 다 깨버린 최순경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김순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내가 칼을 들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네…”


 


“허 참…”


 


이제는 놀란 표정이 아닌 비꼬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간 최순경은 김순경을 향해 질책의 말을 마구 내쏘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현실과 꿈을 구별 못하냐는 둥, 자신을 놀리려고 일부러 놀란 척 들어온 것은 아니냐는 둥, 한참을 그렇게 김순경을 꾸짖고 나서야 최순경의 질책은 멈추었다.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최순경은 여전히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서있는 김순경만을 두고 가게를 나가버렸고, 김순경은 나가는 최순경의 뒷모습을 여전히 바보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최순경이 나간 뒤, 김순경은 혼자서 술을 잖뜩 퍼 마시고는 완전 고주망태의 상태로 집에 들어와 잠이 든 터였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깨질 듯한 통증을 참으며 김순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환영에 대한 생각들…아니, 오히려 술을 더 많이 마실수록 환영들이 중얼거리는 소리와 핏자국은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파출소에 연락을 해 오늘은 몸이 아파 못 나갈 것 같다고 말하자 무덤덤한 목소리로 괜찮냐는 말이 수화기 넘어 저편에서부터 들려왔다. 원체 김순경은 착실하기도 했지만 좀처럼 아프다고 일을 빠지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파출서장의 물음에 김순경은 괜한 죄책감이 드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예,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만 쉬면 내일은 나갈 수 있을 듯 합니다. 휴가요? 아니오, 그렇게 오래 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예…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딸깍.


 


계속 머리가 아픈 것을 느끼며 김순경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뭔가 눈앞이 밝아져 오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고 보니 벌써 해가 지는 것이 보였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내 잠만 잔 모양이었다. 몸이 게을러졌다는 것을 느끼며 그는 밖에 나가 산책이라도 할 심산으로 옷을 꺼내 입었다. 밖은 이제 슬슬 겨울 분위기가 나려는지 쌀쌀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벌써 이 동네에 산 지가 4년인가…’


 


대학교에서 졸업할 때 모았던 돈으로 처음 잡은 게 바로 이 아파트였다. 처음 독립한다고 했을 때 결사적으로 반대하시던 부모님이 생각이 나 순간 웃음이 났다. 1년 동안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헤매다 결국 얻게 된 직장이 지금 일하고있는 이 파출소였고... 직장을 구했다며 처음 경찰복을 입고 부모님 앞에 섰을 때 좋아하셨던 부모님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 이후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언젠가는 이런 파출소의 순경에서 더 높은 직책으로 갈 수도 있을 꺼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위에 아는 연줄도 없는데 이 자리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봤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편안히 일하는 최순경이 부러웠다. 그는 별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편히 사는…가끔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기도 했지만 이 파출소에서 그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사회생활도 여유로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던 김순경은 순간적으로 놀랐다. 믿을 수 없었다. 그 아이였다. 제일 처음 보았던 그 환영…그 환영에서 나타났던 그 아이가 바로 저기 저 앞에 서 있었다. 하던 생각들이 모두 없어지고 머리 속이 하얗게 지워지나 했더니 그 아이의 환영이 다시 생각났다. 그건 마치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 자국처럼 김순경의 머리 속에 박혀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중얼거림…


 


“오늘은 크리스마스인데…”


 


자신도 모르게 그 중얼거림을 따라 해버린 김순경은 순간적으로 달려가 그 아이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아이는 오락실 앞에서 다른 아이가 게임을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순간적으로 놀라 김순경을 바라보았다.


 


“에? 누…누구세요?”


 


“아…누…누구냐고?”


 


예상 밖의 질문에 김순경은 당황해 하며 말을 더듬었다. 솔직히 어떤 반응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평범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평범하지 않을 꺼라는 예상을 뛰어넘어 평범하게 대처하는 학생. 당황한 김순경은 멍청하게 대답했다.


 


“나…난 김순경이다! 넌…넌 누구냐!”


 


“예?”


 


“아…아니 그러니까…이…이름이 뭐니?”


 


“기..김원식인데…”


 


“아…그래. 수…수고해라.”


 


순간 얼굴이 벌개져 김순경은 아이를 두고 다시 집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순간적으로 순경이라 외친 것 때문에 아이가 이름을 댄 것 같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물어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환영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는 찬스를 놓친 것을 후회하며 김순경은 다시 집으로 향했다.


 


‘어차피 물어봤어도 아마 몰랐을 꺼야. 최순경님도 환영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


 


스스로를 위안하며 김순경은 집 문을 키로 열고 들어갔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져 버린 아파트는 어두웠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지만 전구가 다 됐는지 몇 번 깜박이는 것 같더니 전구가 완전히 나가버렸다. 전구를 갈아 끼울까 하다가 귀찮아진 김순경은 그냥 어둠 속 소파에 몸을 파묻어 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계를 흘끗 쳐다보니 시계는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을 가르치고 있었다.


 


‘지금쯤 최순경님이 파출을 돌고 있겠군.’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불안해졌다. 최순경도 이번에 그 골목길로 들어서면 환영을 볼지도 몰랐다. 그 피투성이로 되어버린 자신의 환영을.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는 환영을 보는 느낌은 아마 다른 누군가가 살인을 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욱 충격적일 것이다.


 


‘최순경님이 그것을 봐서는 안된다! 오늘만 지나면 어차피 일주일 동안은 또 순찰을 돌지 않아도 된다. 그 동안 그 환영의 비밀에 대해서 캐 보고, 그 다음 최순경님께 그것을 보여드려도 늦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들자 김순경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뛰쳐나갔다. 원래 순찰을 시작하면 마을의 남쪽 부근부터 순찰을 돌게 된다. 그리고 그 골목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지금 열심히 뛰어가면 아마 최순경님이 도착하기 전에 충분히 먼저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에 더욱 힘을 내어 뛰고 있는데 갑자기 옆 골목에서 들려온 비명소리와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순경은 뛰던 것을 멈추고는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건인가?’


 


환영도 환영대로 급했지만 눈 앞에서 일어난 사건까지 제치고 갈 만한 일은 아니라고 판단하자 김순경은 바로 방향을 바꾸어 근처 소리가 난 듯한 골목을 찾아 들어갔다. 손전등도 없이 들어간 골목은 정말 말 그대로 어두웠다. 발에 뭔가가 부딪히는 느낌이 들어 발 밑을 내려다보니 사람인 듯한 것이 엎드려 있었다. 놀라움도 잠시, 앞에도 사람이 있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잘 들리지가 않아 가까이 다가갔다. 점차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며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비로소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최순경이었다. 자신이 방금 저지른 짓에 놀라 그의 눈은 크게 떠져있었고, 온 몸에 피가 묻어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김순경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최순경님! 최순경님!”


 


김순경이 소리치기가 무섭게 최순경은 칼을 떨구더니 김순경을 향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었어. 내가…내 잘못이 아니야.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어…”


 


중얼거리고 있는 최순경의 모습은 몇일 전 김순경이 보았던 환영과 무서울 정도로 똑같았다. 그때 그저 환각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환영과…


 


몇일 후


 


최순경이 벌인 살인은 확실히 최순경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최순경은 언제나 처럼 순찰을 돌다가 한 도둑이 담을 넘어 집 안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던 모양이었다. 최순경은 집안에서 나오는 도둑을 잡다가 자연스럽게 그 도둑과 몸싸움을 하게 되었고, 도둑이 흉기로 꺼낸 칼을 쳐서 떨어트리고는 자신이 그 칼을 잡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정말 운이 없다고 표현해야 겠지. 최순경은 그 사건 때문에 지금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하더군. 자꾸만 어쩔 수 없었다고 되뇌고 있다고... 이 직장도 그 사건 때문에 그만 둘 모양이야. 후…그래도 성격 하나는 참 밝았는데…”


 


파출서장의 말이었다. 평소에 게으르다고 못마땅해 하더니 역시 그래도 그만둔다니까 많이 섭섭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을 듣는 창백한 표정의 김순경이 있었다. 그때 그 살인사건의 날, 당황하며 자꾸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되뇌는 최순경의 모습과 자신이 보았던 환영의 모습… 분명 그 두 영상은 똑같았다. 그 목소리, 모습, 그리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같았다. 자신은 미리 알았던 것이 아닐까? 그런 살인이 날 것이라는 걸…그렇다면 자신은 어쩌면 그 살인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죄책감이 김순경을 자꾸만 괴롭혔다. 살인을 당하는 이를 위해서 라기 보다는 살인을 하는 자를 위해 살인을 막아 줄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 밝은 모습의 최순경을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겠지…어쩌면 평생 그는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할 지도 몰랐다. 계속해서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김순경의 머리 속으로 갑자기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그렇다면? 그 아이의 환영…그것도 설마 살인 예고가 아닐까? 그것은…내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막아야 한다.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막아야 한다!’


 


아이의 손이 피투성이가 되어 중얼거리는 것이 다시 자꾸만 생각났다.


 


‘그래… 그 환영은 분명 그날이 크리스마스라고 했어. 그렇다면 그 살인은 분명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크리스마스 사이에 일어난 다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환영의 모습만 가지고는 그 정도밖에 추리를 할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까지는 아직도 1달이 넘게 남아있었고, 덕분에 생각할 시간은 충분했지만 더 이상 추리를 하고 싶어도 도대체 그 아이가 어떻게, 어떠한 방법으로 살인을 할 것인지는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한 듯했다.


 


‘살인을 하고 난 뒤의 당황한 표정, 그리고 멍한 행동…분명 그 아이는 원해서 살인을 한 게 아니다. 그 아이가 원해서 한 살인이 아니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예전에 물어봐서 알고 있었다. 김원식. 이름만 있으면 사는 곳 같은 것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에 이름이라도 물어봐 놓은 것을 다행히 여기며 그는 원식이라는 아이의 집 을 가보았다. 그냥 평범한 단독주택 이었고, 집안 형편은 그냥 괜찮은 듯 했다. 그런 식으로 김순경은 그 아이에 관한 조사를 해나갔고, 그렇게 그 아이의 주변을 조사하는데 1달을 허비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김순경의 작전은 상당히 간단했지만 확실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3일 전부터 그 아이의 주변을 맴돌 예정이었고,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는 밤새도록 집 앞에서 잠복을 할 예정이었다. 이번 일은 자신의 숙명이라 여겨졌다. 그 환영을 본 것도 다 숙명의 한줄기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날이 다가왔다. 잘 눈에 띄지 않는 밤색 점퍼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가 집 앞에서 친구들과 모여 노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이후 그는 계속해서 그 아이를 따라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자신의 차를 아예 그 아이의 집 앞에 주차 시켜 놓고는 잠도 그 안에서 새우잠을 잤다. 덕분에 다음날은 매우 피곤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큰 사건을 예방하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그에게 힘을 주었다. 그는 지금 살인 예방자인 것이다. 두 번째 날도 잘 지나갔다. 아이는 아무일 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마을은 여전히 평화스러워 보였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더욱 마을이 활기차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밤 늦게까지 소란스러웠고, 12시가 지나자 이제 크리스마스라며 메리 크리스마스! 하며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그렇게 계속 집을 감시하던 김순경은 자신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계속해서 잘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김순경은 자신이 잠이 들었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흠칫하며 일어났다. 무심코 앞을 쳐다본 김순경은 한 도둑이 담을 넘어 그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이놈이다! 지금 내가 들어가서 살인을 막아야 한다!


 


망설임 없이 김순경은 차문을 박차며 밖으로 나왔다. 용감히 담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도둑이 문을 따 놓은 것이 보였다. 솜씨가 좋은 놈인 듯, 벌써 집 문이 따져 있었고 놈은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김순경은 문 안으로 발을 옮겼고, 거기 그놈이 있었다. 이것저것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뒤지던 그놈은 김순경을 보자 당황했고, 여태까지 뒤지던 장롱을 김순경 쪽으로 엎으며 달려 도망쳐 버렸다. 그놈을 따라갈까 하다가 마음을 바꾼 김순경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괜찮은가 살피러 방문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였다. 김순경은 순간적으로 고통이 가슴부터 퍼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뒤로 넘어졌다. 그 아이였다. 김순경이 도둑이라고 생각해서 그 아이가 김순경에게 칼을 꽂은 듯했다. 그 아이의 팔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그 아이가 꽂은 듯, 가슴에 꽂혀있는 칼이 보였다. 김순경은 깨닳았다. 저 아이가 죽인내가 환상 속에서 보지 못했던 피살자는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고통과 함께 자신의 몸이 천천히 식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 감기는 김순경의 마지막 광경은 아이가 멍하니 피투성이의 팔을 들었다가 내리며 중얼거리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인데...”


 


“오늘은 크리스마스인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