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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기묘한이야기]계속 나오는 피

2008.01.16 23:27

엑스트라 조회 수:527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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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별일 없는 태평한 하루였다. 아니, 좀 특별한 일이 있긴 했다. 뭐, 특별히 다른 일이 있었다고 해봤자, 현아가 체육시간에 뜀틀 뛰기를 하다가 뜀틀에 삐쭉이 나온 나뭇가지에 손을 찔려서 담임선생님께 치료를 받았던 일뿐이라서 그다지 대단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이후 현아는 연고의 힘 덕분인지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다행이다. 그런데, 그러고 보면, 현아가 아니었으면 다른 사람이 다쳤을 지도 몰랐겠다. 그 뜀틀에 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 그렇게 보면, 현아는 원치 않게도 우리 반 중 어느 한사람을 살린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애초에 미리 미리 손질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정말. 말로만 안전제일이지. 지키는 걸 못 봤다.


창문 밖의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면 그렇게 있는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악을 지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어왔던 것이다. 무슨 일이지? 그 소리의 근원을 찾다가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 자리는 분명 은영이의 자리였다. 은영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아직 철없는 9살짜리 소녀. 가정의 환경 탓인지, 반 내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걸로 유명한 아이로 저번에 정보에 빠듯한 친구 민수에게 ‘은영이 말이야. 친구하고 잘 못 지내는 것 같지?’라고 물어봤다가 ‘은영이라니? 전학 온 애야?’라는 답을 들었을 정도다. 그게 은어로 그녀를 ‘어쌔신’이라고 부르는 애들도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한 것이다. 하여튼 그런 애다. 남에게 눈에 잘 뛰지 않는 여자애. 그런데 그러한 여자의 자리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 자리에 일어나, 아이들의 관심이 집중된 그곳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으아, 무진장 아프겠다.”


“은영아, 괜찮아?”


아이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유는 바로 은영이의 손등에 배어나온 피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응, 책을 넘기다가 좀 베였어.”


좀 베였다니. 좀 베인 정도가 아닌 거 같다. 피가 손목을 타고 쭈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되겠다. 내가 가서 선생님 불러가지고 올게!”


사태가 심각한 걸 안 보영이가 밖을 나가려고 했다. 은영이는 그 소리에 좀 놀란 듯 했다.근데, 그런 것 치곤 나쁜 표정은 아니다.


그런데, 그때. 반 내에서 가장 헛소리를 잘하는 민수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정도 상처. 금방 치유 돼. 선생님은 부르지 않아도 돼.”


그러자, 보영이가 알았다는 듯이 다시 돌아와 버렸다. 내가 나설까 했지만, 그 후 은영이도 괜찮다는 말을 했기에 관두었다. 그래, 그 정도야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 피가, 피가 멈추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도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마치 샘이 솟듯이 그렇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한 내가 그녀의 손목을 다시 봤다. 마치 벌레가 파먹은 듯이 상처가 나 있었다. 그러나 이내 괜찮아지겠지 싶어 다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게도 피는 계속 나왔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무서워진 나는 도대체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 그녀한테 다시 찾아갔다. 그녀는 이상하게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손목을 보니, 아까의 그 벌레같은 자국이 더 심해보였다. 아마도 피가 덧묻어서 그래 보이는 것 같다. 피는 계속해서 났고, 이상하게 그녀는 몸을 부르르 점점 더 강하게  떨었다. 나는 그녀가 정말로 무슨 벌레가 들어가서 저런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혈액을 응고시키는 혈소판이 고장났거나 뺏긴게 아닐까하는 망상도 했었다. 피는 4시간을 거쳐 계속 흘렀다. 이에 이상한 걸 확신한 나는 담임선생님께 알렸고, 선생님은 은영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 했다. 나도 동참했다. 계속 나오는 피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진료는 순서대로 잘되었고, 의사선생님이 진료를 마치고 우리에게 이야기할게 있다고 해서 따라갔다. 의사선생님은 선생님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동안 뭐 하셨습니까?“


“네?”


선생님은 갑작스런 의사선생님의 질문에 놀란 듯 했다. 그러나 의사는 감정을 조절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아이가 ‘그런 일’을 하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저기... ‘그런 일’이라니, 은영이가 어떤 일을 저질렀나요?”


놀란 표정이 역력해보였다.


“그녀는 말입니다. ‘자학’을 했습니다.”


에? 뭐라고? 이번에는 선생님과 내가 동시에 놀라버렸다. 은영이가 자학이라니. 그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럴 리가요. 자학이라니?”


“사실입니다. 그녀는 손등을...”


“잠깐만요. 의사선생님!”


아무래도 의사선생님이 오해가 계신 것 같았다. 그걸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다가는 방향이 잘못 잡힐 것을 우려한 난 소리쳤다.


“은영이의 손목은 책에 긁혀서 피가 난 것입니다. 자학을 한 게 아니라고요.”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라. 그런데, 피가 왜 그런 식으로 계속 난거지? 고작 한번 긁힌 것 가지고 피가 그렇게 계속 나지는 않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상처. 그건 단순히 긁힌 게 아니야. 그런 단순한 사건이 아니야.”


“하지만, 은영이가.”


“은영이가 거짓말을 친 거다.”


그런. 그런. 그럴 리가. 그럴 수가. 사실인가. 그러면 대체 그건. 나는 왠지 무서워졌다. 도대체 그럼 무엇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책에 긁혔다고 한 걸까.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걸까. 의사선생님은 턱을 어루만졌다. 혹시나 내 상상이 맞았던 걸까. 난 참지 못하고 의문을 털어냈다.


“그런. 하지만, 은영이는 자기가 종이에 베였다고...” 


“이봐, 학생. 책 종이에 베이면 그렇게 파인자국이 나지는 않아. 게다가 손가락도 아니고 손등 같은 곳을 베인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건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나도 책에 많이 베여 보았지만, 손등에 베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녀는 자기 손등을 찌른 겁니다. 손등을. 둥근칼을 가지고.”


“둥근칼이라고요?”


“그래, 조각칼의 종류중 하나인 둥근칼. 그 날로 계속 자신의 손등을 찌른 것이다. 4시간동안.”


“어째서? 어째서 그런거죠?”


“...그건 관심을 받고 싶어서야.”


관심? 도대체 무슨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걸까. 은영이는.


“그녀는 오늘 중에 한 사건을 보았어. 그리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지. 학교 내에서 자주 일어나는 그런 종류의 작은 사건이었어. 현아라는 아이가 뜀틀을 뛰다가, 나뭇가지가 손에 박혀 ‘피’를 흘린 일이니까.”


“그게 무슨?”


“‘피’를 흘리고 나서 누가 그녀에게 왔지?”


“그건 바로 전데요?”


“그래요. 그걸 생각하고, 은영이는 자신의 손등에 피를 낸 겁니다. 담임이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서. 듣기로는 은영이는 여러모로 고독에 시달린 모양이더군요. 그 사이에 당신이 은영이를 많이 돌봐주어서, 더 관심을 받고 싶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말도 않되요. 겨우 그런 일 때문에, 자신에게 상처를 내다니. 그냥 가까이 다가와도 될텐데.”


“서툴렀던 겁니다. 은영이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건 그 일 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런...”


“잠깐만요. 의사선생님. 저기. 은영이가 선생님에게 관심을 받고 싶다고 했었다고 해도, 자신을 칼로 그렇게 계속 찌르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지. 나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아무리 감정이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찔러 되면, 머릿속에서 나는 건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이런 것 밖에 남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 어째서?”


“그런데, 예상외로 그녀는 아프다. 가 아니었네.”


“네?”


“그녀는 아프다. 가 아니라, 기분 좋다. 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처음에는 담임선생님한테 관심 받고자 했던 게 그렇게 변질된 것 같아. 은영이는 그걸 하면서 소위 말하는 삶의 기쁨을 느낀 모양이야.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래서, 그렇게 부들부들 떨었던 걸까.




여기까지다. 우리 둘은 병원 밖을 나갔다. 선생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지, 담배를 재빨리 꺼내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선생님. 은영이는 어쩔 생각이에요?”


“모르겠다 나도. 대체 그게 뭐냐. 자신이 다치는 일로 죽을 지도 모르는 일로 기쁨을 느끼는 건.”


“저는 왠지 알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을 알고 있거든요.”


선생님은 담배를 던져버렸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