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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데칼코마니

2008.01.14 09:57

크리켓≪GURY≫ 조회 수:497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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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코마니


 



 창 밖으로 나무가 보였다. 녹색의 나뭇잎이 가을 날 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큰 창문으로 여름 날 같은 햇빛이 들어왔지만 집 안은 여전히 싸늘했다. 소파에 누워있던 나는 왼쪽으로 돌아 보았다. 검은색 화면으로 가득 찬 TV가 채널을 스스로 바꾸고 있었다. 내 방이 보였다. 내 방 안에는 검은색 피아노가 있었는데, 그 피아노에서 마구잡이로 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 창문을 통해서는 달빛이 들어왔다. 그런 방 한 가운데에 한 여자아이가 앉아서 등을 돌린채 그림을 그리고 잇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집 안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 인냥 흐물거렸다. 눈 앞도 슬로우 모션처럼 잔상이 천천히 보였고 나의 시야는 내 방 만을 가리켰다. 어느새 거실 창문이 열려 겨울의 칼바람이 내 전신을 누볐다. TV는 치직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서야 방 안의 모습들이 뚜렷히 보였다. 내 방안에 있던 나의 사진과 여러 포스터들은 처음 보는 대칭의 그림들로 바뀌어 있었다. 데칼코마니였다. 나비모양, 거미, 알 수 없는 괴물의 얼굴 모양 등등... 수 많은 물감들로 어지럽게 뿌리고 눌러 찍은 그림.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이도 데칼코마니를 그리고 있었다.



 다가가 위에서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보았다. 아직 찍기 전의 그림이었다. 뿌려진 물감은 매우 흉층한 괴물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파이노 소리가 멈췄다. 곧 TV의 지직 거리는 소리도 그쳤다. 아이의 손이 부들 부들 떨리며 스케치북 한장을 천천히 반으로 접고 있었다. 스케치북을 완전히 덮자, 방안에 가득차있던 달빛이 사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쏴아 하는 소리가 내 방 창문 밖에서 들려왔다. 세찬 비가 내리는 소리였다. 번개가 번쩍거리고 천둥이 쳤다. 어느새 내 앞에 앉아있던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그림은 여전히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번 더 번쩍거리자 그림은 포개어진 채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손을 뻗어 접힌 스케치북을 폈다. 오른편은 역시 흉측한 모습의 괴물이었다. 그리고 왼편은



 일그러진 나의 얼굴이었다.



 방 창문이 열리며 빗방울이 세차게 나를 때렸고 번개가 환하게 그림을 비추었다. 그림 속 나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피아노가 다시 쳐졌다. 아까보다 더 급박한 템포로. 피아노의 음반이 강하게 쳐질때 마다 그림 속 오른편의 괴물과 왼편의 내 얼굴의 눈에서 핏 방울이 고였다. 천둥 소리가 들리고 내 시야가 흐릿해지며 흔들렸다. 고여있던 핏 방울들이 스르르하고 물처럼 흘러내렸다. 피 눈물이 입가를 스치자 그림 속 얼굴들의 입꼬리는 천천히 올라갔다.



 천둥 소리가 먼저 들리고 번개가 번쩍이자 다시 어둠 속에 빠졌다.


 


 



 "또 꿈이군..."


 기나긴 어둠에서 한 줄기의 빛이 내 눈으로 파고 들어 하나의 거대한 터널을 만들자 보이는 것은 우리 집 천장이었다. 그 소름끼치는 피아노 소리도, 처음보는 데칼코마니 그림도, 오래전 불타서 사라진 나와 부모님의 집도... 모두 꿈인 것일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앞을 응시했다. 그림 2개가 보였다. 어릴적 집이 불타던 날. 그 집에서 가져 나올 수 있었던 단 2개의 그림. 이 2개의 그림 때문일까, 아직도 불타던 날의 아픔과 슬픔은 생생하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그림을 비추자 매우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그림도 꿈 속에선 끔찍하고 무서운 데칼코마니 그림이 될 뿐이었다.


 


 방 밖으로 나가자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1년째 동거하고 있는 나의 여자친구 '예희'가 만든 음식이 작은 탁자 위에 가득했다. 탁자 오른편으로 갈색 피아노가 보였다. 내 눈에 검은색 피아노가 천천히 겹쳐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아 찬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예희는 여전히 요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피아노를 쳤다. 쇼팽의 즉흥환상곡. 악몽을 꾸기 시작한 1주일 전 부터 좋아지기 시작한 음악이다. 건반이 쳐지고 그 음이 내 귀로 들어올때 마다 내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감각은 모두 음으로 향하였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정신은 혼미해지고, 악몽이 서서히 내 몸을 잠식해 나갔다. 나는 악몽의 흐릿한 영상을 보며 피아노를 쳐나갔다. 애절하고, 급박하고, 평화롭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예희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있을 때 였다. 내 손은 그래도 심취되었는지 계속해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부분이었다. 난 내 손을 멈추기 위해 억지로 억지로 손을 내려쳤다. 콰쾅 거리는 음이 들리고, 예희는 흠칫 하며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내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괜찮아...?"


 


 예희가 걱정스레 물어보았다.


 


 "괜찮아. 걱정마."


 


 하지만 온 몸에 힘이 쭉 빠져서 밥을 먹기 위해 탁자로 가지도 못할 것 같았다. 1주일 동안... 많은 잠을 잤지만 잠을 잔 것 같지가 않다. 스트레스는 쌓일데로 쌓이고, 불안함은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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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어디 아파요? 안색도 창백하고 식은땀도 흘리고......."


 


"... 한 놀이터 근처 골목에서 7살의 김 모 어린이가 칼에 난도 당한채 숨져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그림이 되살아나.......


 


 


데칼코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