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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미식가들

2008.02.19 20:55

Bryan 조회 수:554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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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들 下




2008년 2월 12일 PM 9:00


아침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중천에 걸려있을 즈음이었다. 정확히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 집엔 시계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논리에 맞지 않는 헛소리인줄은 알겠지만 왠지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속박 당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난 외출 할 때를 제외하곤 시간을 보지 않았다. 물론 그 때문에 곤란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뭐……. 그런데 어쩌다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잠이 들었을까. TV란 거만한 놈은 누가 주인인지 망각해 버리고는 거실 중앙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리모컨에 손을 대었다. 지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섬광이 그려지더니 이내 브라운관에 화면이 잡힌다.


“실종 어린이를 찾습니다. 최 군은 지난 보름이 넘도록 소식이…”


다른 채널을 돌려보았지만 뉴스란 뉴스는 죄다 실종 어린이를 찾는다고 난리다. 찾을 놈이면 벌써 찾았겠지, 알게 뭐람 하고 나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간단히 면도와 세면을 마치고 면도가 잘 되었는지 까칠해진 입가를 만져보고, 혀를 입 안쪽으로 넣어 그리 고르지 않은 치아를 느껴보고, 오줌을 갈기는 것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전화벨 소리에 수화기를 집어 든다.


“아, 장 사장님?”
장 사장은 나의 단골손님이었다. 내가 사업을 시작한 이례 유명 연예인, 대기업의 간부, 사이비 교주, 심지어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까지 와도 거래를 해왔었지만 장 사장은 그 막강한 부와 권력, 허위와 가식으로 뒤끝이 없는데다 굉장한 미식가여서 한 달에도 몇 번 씩 나를 찾곤 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아, 주문하신 물품이요?”


“흠……. 언제쯤 되겠나? 한 사흘이면…….”


장 사장이 뜸을 드린다.


“아뇨. 음,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역시 자네는 프로답군. 마음에 들어. 그럼 기대하겠네.”


“예, 그럼….”


난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걸걸한 장 사장의 목소리에 대꾸하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이미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다. 늙은이들은 세월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눈치가 빠른 법인데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한 노인들을 상대하다 보면 되도 안한 헛소리에 울화통이 다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 사장은 내가 아는 노인들 중 가장 세련된 사람이었다.


이제 사냥감이 덫에 걸렸나, 안 걸렸나만 확인하면 된다. 아침을 챙겨 먹을 새도 없이 먼저 옷을 갈아입고 외투를 걸쳤다. 문을 열자 쩌어억하고 녹슨 문이 악어처럼 입을 연다.




2008년 2월 14일 비와 먹구름


오늘이 바로 J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사실 오래 전 동창과 만난 남녀 둘 이 또 다시 만남을 기약한다는 건 조금 어색한 일이었다. 내 키만 한 원형 거울 앞에 재킷을 정갈하게 갖춰 입었다. 다크 서클이 적운(積雲)처럼 피어올라 있었다. 제길. 차라리 장 사장에게 무리수를 두더라도 돈을 더 요구할걸 그랬다. 이런 얼굴로 여자와 대면하려 하다니. 금방 관 속에서 일어난 좀비 같다. 아무래도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이, 어린 아이보단 다 큰 어른이, 남자보단 여자가 더욱 상대하기 힘든 법이다. 적어도 내 직업의 신조는 그러했다. 어린 아이에겐 말할 것도 없이 사탕을 쥐어주면 그만이지만…. 여자를 유혹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 망념에 젖어있을 무렵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왼손에 찬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계바늘은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대략 30분 앞선 12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파트를 바로 나와 골목을 거칠 것 없이 대로변을 지나면 스위트 피플에서 J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유령의 집 같은 낡은 아파트를 빠져 나와 비릿하면서도 시큼한 비의 향기(香氣)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거뭇거뭇한 먹구름은 대지로 향하는 빛줄기 하나 용납하지 않았고 그 대신 비를 내렸다. 콘크리트 바닥에 사정없이 곤두박질치는 거센 비는 쏴아아 하고 나의 청각을 자극시켰다. 기분 좋은 날이다. 굳이 불편한 점이 있다면 족쇄처럼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한 다는 것이다. 유령의 집을 빠져나와 대로변에 들어서자 그마저도 개성이라고 우산의 바탕이 이것저것이었다. 체크무늬의 암갈색 우산부터 시작하여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알록달록한 우산과 하늘의 풍경을 담은 우산. 멀리서만 보면 꼭 마블링의 행렬처럼 느껴진다. 대로변을 꺾어 돌자 스위트 피플이라는 네온사인 간판을 단 카페가 보인다.




카페에 들어서자 한 눈에 J가 보였다. 그녀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J는 나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곤 인사를 건넨다. 그녀의 미소를 간직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먼저 주문을 시킨 뒤 J는 저번과 다름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마도 그녀는 나를 이성으로써 보다는 수다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전자든 후자든 나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J의 애기를 겉으로는 맞장구쳐주며 의식적으로 웃음 지었지만 사실 따분함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나마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의 소리를 듣자니 안정이 된다. 애기가 막 종지부에 다다를 쯤 J도 지루함을 느꼈는지 화제를 자신이 좋아하는 멜로 배우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 망할 년…….


아니, 오히려 잘됐다. 이제는 J에게 느낄 한 가락의 동정심마저도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까.




극장을 나오며, 진부한 플롯의 멜로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뛰쳐나오지 않았나, 내 자신이 놀라울 다름이었다. 극장 밖을 내다보니 안 그래도 먹구름 때문에 어둡던 게 정말 칠흑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녀와 헤어질 차례였다. 날이 어두워 위험하다며, 자연스럽게, J를 집까지 바래준다고 말했다. J는 괜찮다며 손사래 쳤지만 못이기는 척 하며 나와 동행한다. 인적이 드물고 불빛이 적은 골목에 들어서자 나는, 그녀의 발걸음 템포에 맞춰 걷다가 슬슬 뒤로 빠져나왔다. 난 J가 이상하다고 느낄 찰나조차 주지 않고 우산을 쳐들어 그녀의 머리를 가격한다.


J의 살점이 우산에 묻어나오고 머리카락과 핏방울이 사방으로 난자했다. 우산의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내리쳤지만 다행스럽게도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여러모로 좋은 날씨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하늘의 부스러기가 쏟아져 내려질 듯 천둥이 울려 퍼졌다. 일단 그녀의 몸을 전봇대에 걸쳐 놓고는, 그녀의 으깨진 머리가 보이지 않게 코트의 모자를 씌워놓고는 들쳐 업었다. 근처의 허름한 여인숙에 들어가 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아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그녀를 나의 집에 옮기기로 했다.




2008년 2월 14일 PM 8:08


불을 마저 다 킬 새도 없이 난 조심스럽게 J의 외투를 벗겨냈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 일을 처리했을 지 의문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작업이었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보드라운 얼굴을 쓸어내리자 그 미소를 다시 볼 수 없는 게 조금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상처부위의 출혈이 멈추지 않아 방바닥이 금방 J의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난 다급하게 휴지 몇 개를 뽑아 이리저리 닦아내었지만 분수처럼 피를 뿜어대는 통에 그녀를 욕실로 옮겼다.


벌거벗은 J의 몸을 그대로 들어 올려 욕조에 내려놓았다. 온 몸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장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 사장님? 방금 재고를 입수했습니다. 싱싱합니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오, 하느님! 정말 수고 많았네. 약속한 돈은 내일 아침이 되는대로 바로 입금해주지.”


장 사장은 흥분하면 형식적인 어투를 잊어버리고 말이 많아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말이죠. 제가 저번에 선물해드린 것 말입니다. 매스컴에서 실종 아동 찾는다고 떵떵거리는 데 정말 괜찮은 겁니까?”


“아, 걱정 말래도 그러네. 그 내 친구가 치안정감인데 내가 잘 애기해두었다고. 그 사람도 미식가라니까.”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 *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2시 경에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김 준군 서장이 서 모(24)양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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