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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미식가들

2008.02.19 01:47

Bryan 조회 수:500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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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들 上




2008년 2월 11일 늦은 오후


꽃들이 만발하고 알싸한 가루약의 향처럼 몸이 나른해지는 3년 전 이맘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그 것은 자연사가 아닌 사고였다. 탄생과 부활이라는 상징을 가진 봄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날 이후 부모님들과 함께 했던 모든 추억들이 악몽의 편린이 되어 지금까지 나를 괴롭혀왔다. 생각하면, 따분할 정도로 평화로워 보이는 모든 광경들이 폭풍 전의 고요처럼 긴장되고 숨 막히게 느껴졌고 봄의 존재는 차라리 시한폭탄에 가까웠다.


그리고 지금 나는 봄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햇빛은 콘크리트 바닥과 철골(鐵骨)들을 충분히 달구었고 나는 그 나른함에 잠이 다 올 지경이었다. 어쩐지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날을 회상하면 내리쬐는 봄의 태양이 유독 따갑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를 걷자 지하에 설비된 대형 마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트에 들어서면서 나를 처음 반긴 건 요란한 댄스 음악과 그 소리에 묻힌 사람들이었다. 빠른 비트에 대중들에게 익숙히 알려진 댄스 음악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부추겨 과소비를 증대시킨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헛소리다. 나는 일단 생활용품 코너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생활용품 코너까지 가기 위해선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처럼 구불구불한 코너와 코너 사이를 빠져 나와 사람들의 몸을 비집고 지나가야만 했다. 중요한 물건은 항상 안에 있는 법이다.


“혹시, 인호?”


카트에 치약이며 샴푸며 면도기를 집어던질 때, 익숙하지만 왠지 낯익은 묘한 음성이 들렸다. 나는 덤덤하게 뒤를 돌아보며 음성의 장본인이 누군지 찾는다.


“인호 맞구나.”


그녀는 아마 나의 중학교 동창이다. 스물 몇 해를 살면서 여자라는 동물과 친해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럴지는 몰라도 그녀, 아니 J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여자 아이였다. 내가 J를 마지막으로 본 건 내가 고등학교 막 입학하고 나서 부터였다. J의 소식을 듣게 된 건 그녀가 아닌 친구들을 통해서였다. J의 부모님들을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아 트러블을 자주 일으켰는데 홧김에 J가 가출해 버렸다는 것이, 놈들의 진술 이였다.


“오랜만이다.”


나는 들릴 듯 말릴 듯 얼버무렸다. 몇 년 만에 만난 것치곤 꽤 시시한 반응이었지만 J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요새는 잘 지내냐 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휴대폰 진동이 울리는 바람에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 예……. 죄송하지만 지금 재고가 부족해서 말이죠. 들어오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장사하나봐?”


“응.”


“이 동네 살아?”


J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까닥여 보였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그녀를 어떻게 더 붙잡아 둘까하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해 보았다.


“어디 가까운 카페라도 가서 애기라도 할까?”


젠장. 결국 생각해 낸 게 고작 카페에서 애기할까 라니. 너무 성급한 면이 있었다. 그 것은 J가 일말의 어색함 혹은 지루함을 느끼기도 전에 말을 꺼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J가 망설임의 표정을 보일 때 마다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아니, 생각해 보자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J는 마지못해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나름대로의 성의를 보여줬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성공이었다. 그녀의 웃음에서 달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와 J는 얼떨결에 스위트 피플(Sweet People)이라는 카페에 들어서게 되었다. 나는 오랜 만난 친구와 할 수 있는 으레 형식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J는 내가 그저 조용한 애 인줄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 실제로 애기해 보니 다르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렇게 30분 동안의 쇼(Show)를 끝마치고 나서야 J와 다음에 만나자며, 헤어질 수 있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었다.


그러고는 전봇대에 붙여진 실종 아동을 찾는 전단지를 주르륵 읽어 내려가며, 내가 사는 낡은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섰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봄의 하늘은 보랏빛 그러데이션의 몽롱한 해질녘이었고 허수아비 형상의 가로등은 양 팔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마저도 한산하다.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한 일은 적막을 깨기 위해 일부러 문을 요란하게 연 것으로 시작했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자, 칠흑이란 놈이 하늘을 집어삼켜 저녁이 되어버린 뒤였다. 어디가 하늘의 끝이고 처음인지 분간 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날씨도 꽤 쌀쌀해 진 것 같다.


다시 창문을 닫은 뒤 재킷을 스탠드 옷걸이에 걸고, 마트에서 산 물건들을 꺼내고, 욕실로 가 뜨거운 물을 욕조에 받고, 재고를 확인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어 보고, 인터넷에서 예약자들을 확인할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계획에는 없던 J와의 만남으로 별로 한 일도 없는 데 벌써 피로가 밀려왔다. 오디오를 켜 Radiohead의 ‘Amnesiac’(기억상실증)이라 적힌 앨범을 재생시켰다. 그리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욕조에 천천히 몸을 담갔다.


I jumped in the river and what did I see?


Black-eyed angels swam with me


A moon full of stars and astral cars


All the figures I used to see…


거실에서 Pyramid Song이 잔잔히 울렸고 그 천상의 울림이 욕실에 까지 들려와 나를 질식시키라고 하려는 듯 몽환의 세계로 오라며 부르짖고 있었다. 나는 대답대신 깊숙이 몸을 담근다.



Radiohead - Pyramid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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