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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2006.01.08 05:42

문학소년 쉐르몽 조회 수:312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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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1)






문학소년 쉐르몽






 (1)

 

  우리에게 1945년 8월 15일까지의 상황은 너무나 힘든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1945년 8월 15일, 지주였던 칠석이네 집에 유일하게 있던 라디오에서 나오던 일본어를 듣는 순간까지 살아남았다. 드디어 우리는 살은 채로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위 인텔리들로 시끄러워졌다. 그들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프롤레타리아‘, 혹은 ’공산혁명‘을 운운하고 다녔다. 그것이 충청도 청주 근방의 산골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탄압하며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들도, 그 두 부류를 보면서 혀를 차며 신문을 보며 ‘민족‘을 외치는 자들도 들끓었다. 하지만 우리의 대다수(그러니까 어른을 제외한 내 동무들.)는 단지 그들이 시끄러웠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동무들과 함께 그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놀리는 것이 아주 즐거웠다.

 

 “그러니까 이 땅에는 모든 인민들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공화국이―”

 

 “아냐, 아냐. 소련의 10월 혁명보단 우리만의 혁명 방식이 필요하우.”

 

 “아니, 이 자식이! 어디서 소련을 들먹여! 그 위대한 사회주의―”

 

 우리는 그렇게 침을 튀겨가며 토론하는 ‘공산주의자(앞집 경찰이 된 형 말로는 순 악질 빨갱이란다.)’들 앞에 돌을 툭 던지면서 외쳤다.

 

 “인민을 위해 돌 하나만 사우!”

 

 그러면 그들은 여지없이 이렇게 화를 냈다.

 

 “아아니, 이 버르장머리 없는 꼬맹이들이―!”

 

 그들이 그렇게 외치면서 일어서면 우리는 와아― 하고 도망가는 것이 그 놀이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간혹 그들에게 잡혀버리기도 했는데, 그렇게 잡히는 날에는 꼼짝없이 종아리가 부르트도록 부모님께 맞아야만 했다. 무슨 “높으신 학문을 배우신 선상님”한테 그런 장난 좀 그만 치라나? 내가 보기에는 그들은 영락없이 ‘학교에 조금 다닌 건달패’, 혹은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건달’에 가까웠다. 배운 건 그렇게 많은데 일을 얻을 생각도 안 하고, 농사도 힘들다고 안 짓는다. 그러면서 만날 마을 어른들이 주는 돈으로 놀고먹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뒤에서 간혹 감자를 먹여주거나(들키면 정말 대가리가 터지도록 맞았다. 그런 놈들이 무슨 인민을 위해?), 카악― 하고 침을 뱉어 주었다(이건 그나마 그들이 보아도 맞지는 않았다. 내가 목이 컬컬해서 뱉은 거라고 우기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들은 어김없이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밑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다. 더군다나 모주까지 처마시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얄미웠지만,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모주 한잔은 나같이 어린 소년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내가 그들 옆을 지나가자, 그들은 열심히 토론하는 것을 멈추고 나에게 말했다.

 

 “야, 꼬맹아. 네가 보기에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중에 어떤 게 더 낫다고 생각 하냐?”

 

 나는 얼굴을 재빨리 유들유들하게 바꾸어, 당연하다는 얼굴을 한 채로 녀석들에게 말했다.

 

 “아― 그것은 말이지유. 아, 거 참. 목이 마르네.”

 

 그렇게 말하자, 녀석들은 유쾌하다는 듯이 낄낄 웃으면서 나에게 모주 한 사발을 들이밀었다. 나는 시원한 그것을 한번 쭈욱 들이키고는 내 혀가 잘 돌아가는지 우선 돌려보았다. 녀석들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나의 입을 집중했다. 녀석들이 들을 자세가 된 것 같아서 나는 말을 시작했다.

 

 “우선 어떤 것이 좋으냐. 그것은 아주 민감적인 야그인데, 그 뭣이냐. 그 거시기. 응, 그랴, 그 사회주의는 모두가 공평하게 먹고, 양반님네도 없으니까 좋구. 그 뭣이냐. 응, 그 민주주의는 모두가 배우기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 그것도 그것대로 좋다― 그러니까 둘 다 좋단 얘기지유!”

 

 내가 그렇게 말하고 엉덩이를 빼려하자 뒤에서 녀석들이 내 말의 가시랄까나, 석연찮은 점을 깨달았는지 내 뒷덜미를 잡고 말했다.

 

 “아아, 고놈 참. 말은 싸하게 잘 헌다만, 결론적으로 네 녀석은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야그잖냐!”

 

 나는 그런 그들에게 식은땀을 느끼면서 다시 그늘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햇바닥을 이리저리 굴려서 점검을 한 후에, 능청스럽게 다시 말을 이었다.

 

 “아, 거 참, 공부도 많이 하신 사람들이 왜 고런 말도 못 알아 듣는데유? 아, 거 참. 그 뭣이냐. 내 말은 그러니께 사회주의가 좋다는 이야기지유. 아, 왜, 그 뭣이냐아― 저가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모두가 배우기만 하면 잘 먹고 잘 산다는 야그인디, 그 참으로 나쁜 것이, 배우는데는 돈이 든다― 이 말씀이유. 그런고로 더 좋은 교육을 받으려면 더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디, 겨우 논하고 밭을 파는 수준에서 그치면, 그게 좋은 교육이 되겄어유? 증말로 진짜배기 교육이란 걸 받으려면 재력도 많아야한다는 야급지유. 그러니까 제 말은 그것이 빈부격차를 크게 늘린단 이야기쥬. 그런데 반면에 사회주의는 어떠냐, 그것이 아주 좋은디, 그게 왜 그러냐, 그 이유는 바로 평등하고 먹고 자고, 능력껏 일하는 그 아주 좋은 제도에서부터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좋은 제도쥬!”

 

 그러자 녀석들은 낄낄 웃으면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나한테 모주를 다시 한 사발 건네었다. 나는 그것을 다시 한번 들이키고, 김치를 쭉 찢어 먹은 후에, 다시 일을 하러 가기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녀석들은 나한테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야아― 고놈 참 말을 맹랑하게 잘 허눈데? 그랴, 여기서 더 놀다 가거라이.”

 

 나는 그런 그들이 너무 얄미워서 그들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투덜거렸다.

 

 “아따, 저는 말여유, 댁들과는 다르게 할 일이 오라지게 많단 말이어유. 지금 빨리 밭에 가서 김매기를 허구나면, 집에 가서 닭들 처먹으라고 곡식도 뿌려 바쳐야 하쥬, 더군다나 나무도 한 짐 해다 날라야한단 말이유. 더군다나 이걸 오늘 오후내로 못 끝내면 ‘니가 이러고도 인간여!‘, ’아이구, 밥버러지 같은 눔!‘하면서 맞는단 말이에유. 에에잇, 젠장.”

 

 녀석들은 내말을 듣더니 저희끼리 좋다고 시끌시끌하게 웃다가 내 머리를 내려찍었다. 그리고는 제 딴에는 가소롭다는 듯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부모님이 시키는 일에 ”에에잇, 젠장“이라니! 요놈, 요거 아주 못 써먹겠구나야!”

 

 “원래 그때에 일을 많이 해야만 하느니라, 안 그러면 죠렇고 요런 꼴로 망하게 되느니!”

 

 나는 그들에게 실컷 툴툴거려 준 뒤에, 밭으로 달음박질쳐 갔다. 에에잇, 젠장. 누군 그늘에서 술까지 처마시면서 빈둥빈둥 놀고, 나는 이게 뭐라냐. 나도 공부한다고 해 볼까? 그런다고 부모님이 보내줄 것 같지는 않구. 아아, 젠장. 나도 언젠가 저렇게 놀고먹으면서 살고 싶은디. 나는 잡생각을 떠올리다가, 지금 시간이 해가 꼴락꼴락 넘어가려는 걸 생각해내고 소리질렀다.

 

 “이런 젠장헐!”

 






아아, 드디어 쓰는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입니다. 하지만 저번 백야는 이걸로 다시 재탄생. 하지만 연재 가능성도.. 라고 이야기는 하고 싶지만, 역시 이것조차도 벅찬 제게는 백야는, GG. 여하튼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스타트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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