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白의 土地(백의 토지)

2005.08.27 09:13

레크 조회 수:285 추천:2

extra_vars1 영원의 물결 
extra_vars2 4[Fin] 
extra_vars3 81-7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백의 토지 제 4화 [마지막화]

작가의 말 : 저의 첫 단편작, 백의 토지가 제 4화로 막을 내립니다. ^^;
잘 보셨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래도 제 문필실력이 형편 없어서 보는데 지장이 있지는 않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마지막화까지 열심히 봐주세요~

상현이 죽은 지 이틀이 되는 날(3월 3일),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은 그 때, 슬픈 흰 연기를 뿜고 있는 기차가 성난 기운이 잠잠해진 논밭 가운데를 가르면서 간다. 그리고 그 기차 속에는 백의를 입은 자와 색의를 입은 자들이 고루 앉아 있었다. 남기는 상현을 화장시킨 유골을 담은 조그마한 상자를 무릎 위에 얹고 그 것을 손으로 잡은 채, 창밖을 보고 있다. 그리고 뒷좌석에선 두 사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는 있나?”
“아니, 난 모르겠는디?”
“오늘이 나라님 제삿날인데, 그 걸 몰라서 원, 조선사람 맞아?”
“이 친구가 정말, 뭔 그런 것 가지고 말여?”
그 두 사람은 ‘오늘이 무슨 날인가’라는 원래 화제를 벗어나, 기싸움으로 들어간 듯 보였다. 이런 상황에도 남기는 계속 창문 밖을 내다보며 계속 생각에 빠져있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났을까,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라쥬!(나주!)”
남기는 이 소리를 듣고서 유골함과 짐꾸러미를 들고 열차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는 나주역을 나와, 역전거리를 힘없이 걸어간다. 역전거리에는 현지 학생들과 백성들이 뭉쳐서 하나의 물결을 펴고 있었다. 남기는 그 것을 보고서 ‘한양에서 하던 것과 같은 것이겠지.’하며 그 물결을 피해 영산강가로 향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해는 벌써 하늘의 한복판에서 쨍쨍 빛을 비추고 있었다. 남기가 영산강가에 도착한 그 때에도 그의 귓가에는 백의 물결이 분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은 상현의 집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상현이 옛날부터 귀여워하던 누렁이도 오늘은 마당에서 풀이 죽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집의 논밭은 남기에겐 슬픈 빛에 비추어져 보였다.
남기가 점점 죽은 상현의 집에 가까워지자,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길현이 남기에게 손을 흔든다.
“남기 아니냐? 혹시 학비가 벌써 다 떨어졌니? 그런데 상현이는?” 길현이 남기에게 말한다.
그러자 남기는 가슴에 안고 있는 유골함에 시선을 주며 고개를 숙인 채,
“상현이는, 상현이는…….” 남기가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유골함을 길현에게 건네준다.
길현은 남기에게 받은 유골함의 뚜껑을 연다. 그리고 길현은 갑자기 주저앉았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양에서 사람들 속에서 제가 총을 맞아야 했는데, 제가, 제가…….” 남기가 말하다가 눈물을 적시며 흐느낀다.
길현은 힘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상현을 보며,
“고맙다, 소식을 알려줘서. 상현이 어찌되었는지 모르는 것보단 낫지.” 길현이 힘없이 말한다. 길현은 유골함의 뚜껑을 닫고, 유골함을 들고 혼자서 쓸쓸한 등을 지고 집에 들어간다.
그 날 저녁, 태양은 하늘이란 화선지에 슬픈 주홍빛을 물들이고 영산강물에도 그 색을 번지게 하며 먼 곳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영산강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백의 물결에 합류한 탓이다. 그런데 영산강에 조각배 하나가 띄워졌다. 그 배에는 남기가 있었고, 그는 그가 갖고 있는 유골함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유골함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흰 뼛가루를 한 움큼 쥐고서 주홍빛으로 물든 강물에 뿌린다. 그리고 그는 계속 반복했다.
강가에는 상현의 어머니가 백의를 입고 서서 붉게 물든 강물에 뿌려지는 상현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그리고 길현은 한 손에 고구마를 쥐고서 상현이 강물에 뿌려지는 것을 보고있다.
‘상현아, 네가 이 곳 나주로 오면 가장 맛있는 이 고구마를 너에게 주려고 했건만. 먹지 못하면 어떡하니. 잘 가거라. 계속 살아있는 이 백의 토지에 묻혀, 다음 생애에는 조선사람으로 태어나지 말거라. 제발 부탁이다.’ 길현은 흐느낀다.
조각배 위에서 계속 상현의 흰 뼛가루를 뿌리는 남기는 하늘을 보며 말한다.
“천지신명(天地神明)이시여, 왜 제 목숨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저의 학우(學友)를 데려가십니까? 참으로 망동을 한 자는 저인데, 왜 상현을 데려가십니까? 그리고 역전거리에서 종로거리에서 백의 물결이 외치는 분노소리를 듣지 못하십니까, 아직 그 날은 멀었습니까? 백의 물결이 무슨 죄가 있기에 총소리와 함께 백의 토지에 묻혀서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것입니까?”
더욱 붉게 물든 영산강, 그리고 드넓은 백의 토지에는 슬픈 빛이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