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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白의 土地(백의 토지)

2005.08.27 09:08

레크 조회 수:240 추천:1

extra_vars1 영원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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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토지 제 3화



그 해의 3월 첫날(1919년 3월 1일), 상현과 남기가 복학을 예정한 날짜는 그 다음날인 3월 2일이다. 해는 남산 뒤에 숨었다가 나와, 중천을 향하고 있다. 상현과 남기는 복학하기 전에 필기구도 사고, 잠시 허기를 달래러 갈 겸하여 하숙집을 나와, 동네 구멍가게로 가고 있다.
“상현아, 우린 너무 힘이 없는 것 같아. 그치?” 남기가 상현에게 힘없이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양까지 와가지고 배우려는 거지. 안 그래?” 상현이 말한다.
이야기를 하다가 남기와 상현은 그들의 시야 속에서 동네 구멍가게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구멍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파고다공원이 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의외로 백의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남기와 상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구멍가게에서 그들이 살 물건들을 고르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위치했다. 상현과 길현은 구멍가게에서 물건들을 모두 사고 그 곳에서 나온다.
“아, 이제 필기구도 사고, 살 건 다 샀으니까 돌아가자!” 남기가 말했다.
“남기야, 근디 저어기 좀 봐라. 대체 저게 뭐다냐?” 상현이 파고다공원의 인파 속에서 어떤 글을 큰소리로 읽는 광경을 보고 가리키며 말한다.
“응? 대체 뭐지?” 남기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한다. 그리고는 파고다공원에서 글을 읽는 것을 다 끝내고선 많은 종이들을 쏟아지듯 뿌렸다. 상현은 너무 궁금해서 그 종이를 받아 읽으려고 파고다공원 쪽으로 달려가서 그 종이를 받았다.
“아니, 이런……. 독립선언?” 상현이 그 종이를 읽으며 혼잣말한다. 역시 남기 또한 궁금해서 그런지, 상현에게 달려와서 그 종이를 같이 읽는다. 그런데 그 때, 인파는 분노와 열기가 극에 달했는지, 두 손엔 백의 태극기를 잡아 위로 들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조선 독립 만세! 조선 독립 만세!”
그 물결은 파고다공원에 있던 것이 종로 거리 곳곳으로 퍼지면서 더욱더 커진 해일로 변해갔다.
상현과 남기가 그 종이를 읽고 갈등을 하는 듯하다가, 옆에 있는 어떤 백의를 입은 아저씨가 그들에게 말한다.
“뭘 망설여? 너희들도 외쳐. 조선 독립 만세!”
상현과 남기도 역시 그에게 많은 압력을 받았는지, 그들도 같은 한 백의 물결이 되었다.
그 물결이 종로 거리를 가득히 채우니, 그 이전까지 무서워했던 왜 순사조차도 어찌할 줄 몰랐다. 그 물결은 맨 손이었고, 오직 발은 걸어 다니고 손은 위로 뻗칠 뿐이다. 그리고선 총독부에서 나왔는지 어디에서 나왔는지, 왜 헌병대가 그 인파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당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로 걷어차고 총으로 겨누면 그만이었는데 말이다.
상현과 남기는 그 물결에 섞여, 종로 거리를 휘젓고 다니다가 그들이 묵던 하숙집 앞을 지나니, 그 곳으로 들어간다. 상현이 집에 들어와서 문을 닫아도, 밖에서 울음소리는 계속 들렸다. 그리고 밖에서는 분노의 노랫소리가 들려나왔다.
“터졌고나 터졌고나 조선독립성. 십년을 참고 참아 이제 터졌네.”
“삼천리 금수강산 이천만 민족, 살았고나 살았고나 이 한 소리에.”
“만세! 만세! 독립만세! 만세, 만세, 조선 만만세!”
남기는 밖에서 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며
“상현아, 우리도 조선인이잖아. 나가자. 나가서 왜놈들의 기를 확 꺾어줘야지!”
“흥분마라. 시방 이랬다간 왜놈들이 또 우리헌티 어떤 만행을 저지를 지 어찌 알아? 참고 또 참고 기다려.” 상현은 남기를 진정시키며 말한다.
“흥, 넌 조선인 아니냐. 그래, 그럼 나라도 조선인 할란다.” 남기는 흥분하며 말한다. 그리고 남기는 문 밖으로 나서려고 하는데, 상현이 남기의 오른손을 잡으며 말린다.
“잘 들어. 우린 조선을 위해서 배우고, 조선을 위해서 쓰일 게야. 근디 우리가 벌써 이 모가지가 날라가믄, 이 나라 조선은 우짤라꼬 그랴?” 상현은 남기의 옷을 불끈 쥐어 잡으며 남기를 향해 말한다. 그 사이에도 밖에서는 계속 노랫소리가 들려나왔다.
그리고는 상현이 남기의 옷을 잡았던 것을 놓으며,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래도 남기는 밖에 나가고 싶었는지, 상현을 무시한 채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남기는 땅에 떨어져 있던 태극기 하나를 주어 잡아 하늘 위로 뻗으며 그 물결에 다시 합류했다.
“조선 독립 만세!”
성난 인파가 종로 거리를, 한양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허리에는 일본도를, 손에는 총을 쥔 왜군들이 남기가 보는 시야에서 발견되었고, 그 인파는 잠시 그 총칼들 앞에서 멈칫했다.
“쇼우-쥰, 핫샤! (조준, 발사!)” 그 왜군들의 대장같아 보이는 자가 명령하니, 왜군들은 백의 물결을 향해 총을 쏜다.
‘탕, 탕, 탕, 탕!’
총소리와 함께 그 물결에 가담한 사람들은 하나하나씩 한 송이의 무궁화처럼 쓰러져간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 사람들이 더 분노할 줄은 어찌 알았겠는가. 그 사람들은 더 힘차게 분노의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조선 독립 만세! 만세! 조선 만만세!”
이에 따라 남기도 더욱 힘차게 백의 물결과 함께 행동했다. 그런데 이 소리는 하숙집 안에 있던 상현에게도 들려, 상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총소리……. 저럴 줄 알았다니깐. 그나저나 남기는, 남기는…….’ 상현은 하숙집 문 뒤에 서서 총소리를 들으며 남기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상현은 문을 박차고 나가, 사람들의 물결에 이미 합류되어 섞인 남기를 찾으러 나섰다.
‘제발, 남기야. 죽으면 안 돼. 우린 조선을 살려야 하니깐…….’ 상현이 빽빽한 인파 속에서 남기를 급히 찾으며 생각한다.
“조선 독립 만세! 만세, 독립 만세!” 아직도 그 사람들은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상현의 시야에서 남기가 그 물결 앞부분에서 태극기를 위로 흔드는 것을 목격했다.
상현은 인파를 뚫고 남기를 향해 다가가며
"저런, 남기야, 미련하게 시리……. 내가 간다!’
“남기야! 남기야! 빨리 와!” 상현이 남기를 향해 인파를 뚫으며 외친다. 하지만 상현이 아무리 외쳐도 남기가 못 듣는 것은 그 만세대열의 힘찬 소리에 덮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조선 독립 만세!” 남기가 그 물결 속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왜군의 대장이 또 다시 명령을 내린다.
“쇼우-쥰, 핫샤!” 이 명령을 하는 순간, 갑자기 상현이 남기의 앞을 막으며 왔다.
‘탕, 탕, 탕, 탕!’ 이 총소리가 들리는 순간, 상현이 남기의 앞을 막고 있는 탓에 왜군이 쏜 총알이 그에게 박혀버렸다.
“으악!” 상현이 소리친다.
“상현아, 상현아!” 남기가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상현이 총알을 맞은 심장부를 보며 말한다.
“남기야, 으윽. 난 절대 신경 쓰지 말고, 윽. 너나 빨리 집에 가. 네가 조선의 밑거름이…….” 상현이 시뻘건 눈으로 남기에게 말을 하다가 말을 놓아버리고 만다.
“상현아, 상현아!” 남기가 죽은 상현에게 외치다가 상현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나, 집을 향해 뒷걸음질 치고 만다. 그리고 결국 남기는 집에 들어와 문을 닫고 그의 방에 가서 주저앉는다.
‘아아,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괜히 저들과 함께해서, 그래서 내가 상현이를 죽인건가.’ 남기는 혼자 울며 땅바닥을 치고 통곡을 했다. 그가 아까 느꼈던 조선 독립에 대한 기쁨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서.
그러다가 남기가 창밖을 보니, 하늘은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의 함성은 약간 사그라졌다. 그 물결이 종로 거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간 탓일까, 총칼 앞에서 죽어, 그런 걸까.
‘밖이 약간 조용해졌다. 이젠 가까이서 총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럼 이제 상현의 시신을 거두러 가야지…….’ 남기는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 그 인파도 약간 사그라져, 상현의 시신이 보였다. 그리고 남기의 두 눈은 시뻘게지고, 눈물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상현아, 상현아! 흐윽…….” 남기는 상현을 계속 부르다가 그만 말을 놓고 만다. 그리고 남기는 상현의 시신을 집까지 가져간다.
남기가 묵고 있는 이 하숙집은 조선이 망하기 전까지만 했어도 손님들이 줄을 이루었는데, 요즘에는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하면서 많이 꺼려해, 사람들이 별로 묵지 아니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곳 하숙비용도 남기에겐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아서, 한양에 올라와 경성학교에 다닐 때마다 상현과 함께 이곳에 묵기도 하였다. 남기가 이곳의 단골손님이라, 이 집의 주인 노파와 매우 친분이 깊다.
남기가 상현의 시신을 자신의 방으로 가져가서 죽은 상현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가 잘못 했어, 상현아. 내가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왜, 왜 그 때 그런 미친 짓을 한 거지?’
‘나의 미친 짓이 상현이를 죽이다니, 이 바보, 바보, 바보야!’
남기은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으악! 이게 뭐요?” 주인 노파가 상현의 방으로 걸레를 들고 들어오며 놀라서 말한다.
“제…… 벗입니다.” 남기가 노파를 보지 않고 오로지 상현만을 보며 말한다.
“워메! 이게 웬 변인고! 어서 갑세이더.” 노파가 말한다.
“어디 말입니까?” 남기가 노파를 보고 말한다.
“당연히 병원이제, 자네 벗을 살려야제!” 노파가 말한다.
“가도, 별 수 없을 겁니다.” 남기는 계속 말한다.
“이 놈 말입니다. 절 살리려다가, 그만…….” 남기가 눈물로 적신 눈을 닦으며 말을 놓는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며 큰 소리로 통곡을 한다. 그래도 그 통곡소리는 밖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만세소리에 파묻힌다.
“저런, 저런. 그래도 그렇제, 유가족들에게 시신도 보내고, 죽었다고 말해야지 않나?” 노파가 말한다.
“아, 예……. 그래야죠.” 남기가 눈물 흘리는 것을 멈추고 노파에게 말한다.
노랗게 타오르던 해는 거의 저물어가고 있다. 만세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지만 들리는 것 같다. 남기는 상현의 시신을 끌고서 수표교(水標橋)쪽으로 간다. 곡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