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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白의 土地(백의 토지)

2005.08.26 09:07

레크 조회 수:193 추천:1

extra_vars1 영원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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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토지 제 2화



그러던 그 달의 하순 어느 날(1919년 2월 하순), 뿌연 연기를 거푸 뿜어내는 기차가 지나간 후, 한 겨울에 쓰라린 철길이 허전하게 남아 있는 정거장에서 길현과 상현,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서있었다. 길현은 농사로 흙이 묻은 옷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하얀 옷을 입고  서있었고, 상현은 경성학교 학생 제복을 입은 채로 서있었으며, 남기 또한 그러하였다. 그리고 상현의 어머니는 포근한 인상을 하며 서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음 열차를 타려고 줄을 이루었다.
길현의 어머니인 최씨는 철길을 등 뒤로 한 채, 드넓은 논과 먼 산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다.
‘아, 몇 년 만인가, 이렇게 조용한 때가 오다니. 그래, 예전엔 동학도들이 왜놈들에게 대항해서 열심히 싸웠고, 얼마 전에는 나라도 빼앗기고…….’
그러다가 최씨는 정거장의 인파(人波)를 보며
‘아아, 조선인들의 물결이로구나. 그래, 이 땅에 저 백의 물결이 있는 한, 더 이상 우리의 토지를 빼앗기진 않겠지. 아마, 왜놈들이 빼앗으려 든다면, 백의 물결은 단숨에 일어나서 쇳덩이들을 무릎 꿇게 만들 것이다. 암, 그렇지.’ 최씨는 역시 계속 사색에 빠진다.
그러다가 먼 곳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기차가 크게 소리치며 달려온다. 그리고 그 백의 물결은 그 기차를 바라보기도 하고, 짐을 정리하기도 하고…….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물론 길현은 상현이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준다.
기차가 정거장에 도착했고, 상현과 남기는 짐을 든다. 그리고 그들이 그 짐을 들고 열차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길현이 상현에게 말한다.
“상현아,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꼭! 무사히 돌아와서 맛있는 우리 집 고구마를 또 먹어야지! 안 그래?” 길현이 말한 후, 최씨도 같이 말한다.
“그래, 그래. 상현아.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상현이 말한다. 그리고 상현과 남기는 열차 안으로 말없이 들어간다. 그리고 상현과 남기는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며 앉는다. 그리고 남기는 창밖에는 눈길을 돌리지 아니한 채, 깊은 생각에 빠지고, 상현은 창밖의 풍경을 구경한다. 그리고 어떤 소리가 들렸다.
“슛바쯔! (출발!)” 이 소리와 함께 역무원이 깃발을 위로 올린다. 그러더니 열차는 또다시 뭉게구름의 연속인 양 연기를 뿜으며 북녘을 향해 떠나고 만다.
연기를 뿜으며 가는 기차 속, 남기는 깊은 생각에서 갑자기 빠져나와 말한다.
“상현아, 너는 우리가 자주 입는 흰 옷을 어떻게 생각해?” 남기가 물어본다.
“깨끗하고 싶어서 그른 게 아닐까잉?” 상현이 대답한다.
“난, 그 흰 옷은 평화롭게 살고 싶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아닌가?” 남기가 말한다.
그리고 그 둘은 말이 없다. 그 둘은 창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창밖에 보이는 풍경에는 드넓은 농촌에서 백의에 흙을 묻혀 가며 일하는 농부들이 있었다. 그들도 깨끗하거나 평화롭게 살고 싶지는 않은지 누가 알까.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벌써 해가 저쪽 너머로 지고 있었고, 하늘은 노란 슬픈 색을 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큰 소리가 들렸다.
“케이죠우!(경성!)”
너무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던 남기와 상현은 이 소리에 놀라서 깨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짐을 황급히 정리하고 일어섰다. 그들은 열차 밖으로 나와, 역의 출구를 통해 경성역을 완전히 벗어난다. 그리고 그 경성역 앞, 흑색의 인력거들과 조선인들과 일본인들, 그리고 누런 옷을 입고 험상궂은 얼굴로 다니는 순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한 조선인 인력거꾼이 인력거를 끌고 거리로 나가다가 어떤 한 순사와 부딪히고 인력거꾼은 튕겨져 나가, 그의 인력거 위로 떨어져서 그 인력거의 바퀴가 부수어지고 만다.
“나니?(뭐야?)” 순사가 험상궂은 얼굴로 인력거꾼을 향해 소리친다.
“아, 죄송합니다. 스미마셍…….(죄송합니다)” 인력거꾼이 그의 인력거의 바퀴가 부수어진 지도 모르고 순사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말한다.
“끼다나이 죠센징데스네.(더러운 조선인이군)” 순사가 인력거꾼을 노려보며 말한다. 그리고 그는 군화를 신은 발로 인력거꾼의 다리를 세게 걷어찬다.
“아야! 스미마셍…….” 인력거꾼이 다리를 걷어차인 것이 아픈 것을 참고 다시 순사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운가 나이네.(재수가 없군)” 순사가 ‘퉷!’ 하고 인력거꾼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한다. 그리고선 그 순사는 투덜거리며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상현과 남기는 인력거꾼에게 다가온다.
“괜찮으시유, 아자씨?” 상현은 순사에게 맞은 인력거꾼의 다리에 손을 대고 보며 말한다.
“아아, 괜찮네. 올해에 이런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니까.” 인력거꾼이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런, 쳐 죽일!” 남기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순사가 갔던 방향으로 보며 말한다. 그리고 남기는 순사를 진짜로 때려눕힐 의향으로 그 쪽으로 달려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상현이 남기의 왼팔을 잡으며 막는다.
“흥분마라, 시방 힘도 없는디 우짤라꼬 그런디야?” 상현이 남기에게 말한다.
“젠장. 분하다, 분해.” 남기가 씩씩거리며 말한다.
“자, 남기야, 이제 하숙집으로 가자. 작년에 묵었던 그 곳 알지?” 상현이 말한다.
상현과 남기는 그들이 가던 길로 계속 가고, 그 인력거꾼은 순사에게 차인 백의를 입은 채로 슬프게 그의 갈 길을 간다.